소설리스트

천재로 오해받는 연예계 생활-46화 (46/200)

[46] 예능 천재(2)

큐앤지 레이블 실장실.

함호진 피디는 민머리의 박 실장이 보여준 숫자를 감상했다.

"와아, 공이 몇 개지."

"아형에선 이 정도를 제시하더군요."

"...."

거긴 잘 나가는 방송이고.

우린 이제 첫 방송인데요.

"음, 출연료...."

개런티, 시청률, 조회수, 광고 단가.

모든 연예계 종사자는 숫자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었다.

"조금 비싸네요."

"어려우세요?"

"나작텔이 예산이 조금.... 나의 작은 텔레비전이잖아요. 하하."

"그렇습니까."

옆에 있는 정수호 실장이 고개를 슬쩍 저었다.

예능 출연과 이미지 소모를 극도로 꺼리는 걸까.

아형과 나작텔, 둘 다 출연할 것 같지는 않았다.

솔직히, 아육대에서 활약한 양주희만 섭외해도 만족할 수 있었지만.

'뭔가 될 것도 같고....'

현재 솔라는 방송가 전체의 블루칩으로 통했는데.

개인 멤버들이 각자 개성을 보여준 적은 없으니까.

"피디님, 반드시 솔라여야만 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그럼요."

아무 예능이나 대충 나가지는 않으니까.

희소성이 있으니 시청률도 나오는 거지.

그러면, 방송도 흥행하고 광고 단가는 올라가는 게 당연한 이치.

"제가 또 이번 아육대 피디 아닙니까."

"네. 그렇죠."

"무조건 솔라 위주로 편집하겠습니다. 보이그룹보다 훨씬 더 많이!"

".... 어차피 걸그룹 분량의 절반은 주희가 다 해먹어서."

"아, 그렇긴 하죠."

이게 안 먹히네.

차라리 무릎 꿇는 게 편했다.

그게 뭐, 닳는 것도 아니잖아.

"그럼 나작텔 첫 방송에서...."

함호진 피디는 작가와 함께 나누었던 의견을 슬쩍 내밀었다.

솔라 개개인의 매력을 보여주는 첫 예능이 될 수도 있었기에.

"아예 솔라 특집으로 나가면 어떨까요?"

"솔라 특집이요?"

"네!"

순간, 자세를 고쳐잡고 자신의 말에 집중하는 정수호 팀장.

"각자 멤버들이 한 채널씩 맡아서 5개 컨텐츠를 찍는 거죠."

"아."

정 팀장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뒷목을 쓱쓱 문질렀다.

'이게 먹혔나?'

어쩌면 솔라 멤버들에게도 엄청난 부담이 될 수도 있었다.

시즌 3 첫 방송부터 망하면 전적으로 솔라의 탓이 될 테니.

"크흠."

이내, 박철민 실장은 헛기침을 두어 번 하며 말을 꺼냈다.

"솔라 특집은 아형에서도 제시했습니다."

"그, 그쵸?"

"네. 그쪽은 MC만 여덟 명이 도와주니까 애들도 편하겠죠."

"...."

나작텔은 방송 포맷이 타 예능과 달랐다.

시작부터 끝까지 혼자 알아서 하는 구조.

각자 개인 방송을 켜서 '노잼' 소리를 들어가며 시청자와 소통해야 했다.

할 만한 컨텐츠는 많아 보이지만.

결과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다.

"저기."

그때, 정수호 팀장은 슬쩍 손을 들며 입을 열었다.

"솔라 멤버 다섯 명 전부 다 재미없으면 어떡해요?"

"그, 그럼...."

"그건 피디님 편집 탓."

"다, 당연하죠. 제가 편집왕입니다! 하하."

"아하."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는 법.

연예계에서 갑을 관계는 언제나 정해져 있었다.

유명하든지, 인기가 많든지, 실력이 뛰어나든지.

"그래도 요즘 솔라 인지도면 절대 망할 일 없을 겁니다!"

"오, 기대할게요."

"그럼....?"

정 팀장은 뒤통수를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나작텔 시즌 3 첫 방송, 솔라 특집으로 가시죠."

"좋습니다!"

"세부 일정을 추후 논의할게요."

"넵. 감사합니다!"

함 피디는 말을 바꿀세라, 냉큼 일어나 실장실을 벗어났다.

".... 수호야, 괜찮겠냐."

남은 두 사람은 다시 대화를 이어갔다.

"나작텔은 개그맨 박영수도 무덤석 소리를 들었다고."

"네. 알아요."

고작 한 채널만 망해도 그런 굴욕을 당하는 곳인데.

모든 채널에서 솔라 '개인' 멤버가 감당할 수 있을까.

"안전빵은 아닌데요."

옛날 같으면 뒤도 안 돌아보고 거절했겠지만.

"우리 애들이 잘할 겁니다. 솔라잖아요."

"뭐, 개인 방송이 다른 예능보다 나을 수도 있겠지."

"그쵸. 개인 방송으로 팬들이랑 소통은 가끔 하니까."

"여태까지 예능으로 이미지 소모하기 싫어서 안 나가는 거였잖아."

"????"

수호는 의문 섞인 표정으로 뒤통수를 긁적였다.

'그런 게 아니라....'

그냥 뒤통수가 신호 보낼 때까지 존버하는 건데요.

설명하기는 뭐 해서 그냥 존나 가만히 있어야겠다.

"저는 그럼 이만 일어나보겠습니다."

"그래. 은서랑 소미 스케줄 좀 신경 쓰고."

"네. 실장님."

이내, 꾸벅 인사하고 실장실을 벗어나는 수호.

박 실장은 민머리를 문지르며 혼잣말을 했다.

"아, 까먹고 말 안 해줬네."

프렌즈 엔터에서 작곡가분이 왔다고 말을....

".... 알아서 만나겠지?"

* * *

나는 실장실을 벗어나 연습실로 향했다.

'아, 졸라 불안하네.'

예능에서 받아주는 MC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엄청났다.

걸그룹 멤버 혼자 2시간 동안 컨텐츠를 끌어갈 수 있을까.

".... 그것도 5명 전부?"

노잼봇인 은서나 소심한 다이애나는 어떡하라고.

각자 개인 방송을 하면 팬들은 좋아하겠네.

멤버들이 두 시간 동안 뭐라도 하긴 하겠지.

"에라이, 모르겠다."

일단, 함 피디가 그 제안을 했을 때 똥촉 센서가 발동했으니까.

드르륵─

이내, 연습실 문을 열고 멤버들을 확인했는데.

"다 어디 갔...."

스피커를 통해 솔라의 신곡이 흘러나왔다.

가이드 보컬이 녹음한 멜로디와 가사까지.

-The Sunrise and Sunset, we can't be down....

거의 완벽에 가까운 정박에 칼 군무까지 딱 들어맞았다.

".... 노래 좋은데?"

다만, 문제는 오직 나에게 있었다.

이제 솔라의 실력이 너무 늘었어.

다행히 뒤통수가 간지럽지는 않지만.

"하아, 하아. 오셨어요?"

"어, 예지야."

멤버들은 기대감 가득한 눈빛으로 내 의사를 물었다.

".... 어땠어요?"

조심스럽게 물어보는 예지.

내가 해줄 수 있는 답은 하나였다.

"아주 잘했어."

"음....?"

이제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칭찬을 해줄 수 있었다.

시원한 고음과 칼군무.

다이애나가 찍은 비트.

트렌디한 멜로디와 가사.

뭐 하나 거슬리는 게 없이 완벽에 가까웠다.

"매니저님, 칭찬이 뭔가 달라요."

"응?"

예지는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말했다.

"평소에 해주시는 칭찬이 티오피라면, 지금은 그냥 커피 같아요."

".... 아닌데."

"맞는데."

정확히 반대로 생각하네.

평소 칭찬이 그냥 커피야.

'지금 칭찬이 찐이야.'

그렇다고 이전의 칭찬이 가짜라고 말할 수도 없고.

"다이애나, 비트 좀 고치자."

"알겠어."

"아니, 좋다니까?"

"억지로 칭찬하실 필요 없어요."

"...."

드르륵─

그대, 연습실 문이 열리며 한 여성이 걸어왔다.

연습생이 아닌가 싶을 만큼 외모가 뛰어났다.

"누구....?"

"프렌즈 엔터 추미령 작곡가예요."

"아! 안녕하세요!"

어쩐지, 멜로디랑 가사가 세련됐더라.

류시아의 최종 형태가 이런 느낌일까.

'진짜 곡 잘 뽑네.'

빌보드 1위 곡을 만든 10여 명의 프로듀서 중 한 사람.

원래 그런 명곡을 만들 때는 많은 작곡가가 달라붙었다.

"방금 밖에서 들었는데요."

"아, 네."

"솔직히 말씀해 주셔서 고마워요."

"네?"

"별로라면서요."

아니, 제가 언제요.

분명히 좋다고 칭찬만 했는데.

"저도 뭔가 부족한 느낌이 있긴 했어요."

"...."

그냥 완벽했다니까요.

왜 사람 말을 안 들어.

"작곡가님, 저는 노래 정말 좋았어요."

"네. 말씀만으로도 고맙네요."

"아니."

솔직하게 말을 해도 왜 안 들어요.

"다이애나, 다시 녹음실로."

"네에!"

나는 멀어지는 두 사람을 멍하니 바라봤다.

옆에서 예지가 다가와 고개를 끄덕였는데.

"매니저님, 진짜 운이 좋은 것 같아요."

"내가? 니가?"

"당연히 우리죠. 이런 금손, 금귀, 금눈, 금콧구멍을 가진 매니저님을 어디서 만나겠어요?"

".... 콧구멍?"

"그건 농담."

우리 예지가 농담이라는 걸 할 줄도 알았구나.

다행이야, 나작텔에서도 재능을 마음껏 펼치길.

"우리 예능 방송 잡혔다."

"오, 뭔데요!?"

잔뜩 기대 중인 멤버들 앞에서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나작텔 시즌 3 첫 방송이야."

".... 그거 무덤석이잖아요."

"누가 그래."

"개그맨 박영수 님이 너튜브에서 썰 풀던데요."

"괜찮아. 너희는 솔라 특집이니까."

"오오, 우리 다 같이 뭐 할까요?"

"...."

다 같이라니, 무슨 소리야.

"각자 한 채널씩 맡을 건데."

"???"

나작텔에서도 시청자 수에 따라 등수가 나뉘긴 하던데.

이번에는 솔라 멤버들끼리 경쟁이라 큰 의미는 없겠네.

"시청자 수 1만 명 달성한 멤버한테 소원 들어줄게."

".... 소원이요?"

"응. 아무거나."

나작템 방송은 예고도 없이 하는 건데.

설마 갑자기 1만명을 찍을 수 있을까.

* * *

그날 밤, 솔라의 숙소.

멤버들은 다 같이 모여 작은 회의를 진행했다.

"정수호 매니저님이 뭔가 뜻이 있을 거야."

"당연하지."

다른 대형 예능도 마다하고 잡은 예능.

그것도 개인 방송이라는 특이한 형식.

"유명 개그맨도 망했는데, 우리가 할 수 있을까?"

"그만큼 매니저님이 믿어주시는 거지."

"...."

예지는 언제나 정수호의 선택에 숨겨진 의미를 찾고자 했다.

"그냥 대충 괜찮은 거 잡으셨겠지."

"놉! 그럴 리가 없어."

은서의 시니컬한 말을 단칼에 잘라냈다.

"매니저님이 우리한테 거는 기대가 크신 거지!"

"...."

음반 발매도 중요하지만, 매니저님이 잡아온 스케줄도 중요했다.

행사나 예능을 최소한으로 잡는 만큼, 매번 그 효과는 상당했다.

"그래도 게스트 초대해도 된다니 다행이야."

".... 나는 인맥 없는데."

그나마 개인 일정이 있는 은서와 소미 정도.

그 외에는 딱히 초대할 만한 지인이 없었다.

"근데.... 나작텔 시청자 1만 달성하면 소원권 준다는 말은 다들 들었지?"

"그럼, 당연하지."

'소원권'이라는 단어에 멤버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프로틴 평생 이용권!?"

"게이밍 세트!"

".... 작업실 갖고 싶어."

예지는 멤버들의 한심한 소원권을 듣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당연히 매니저님 24시간 이용권이 최고지, 바보들아.'

갑자기 회의에 집중하는 멤버들.

예지는 가장 중요한 말을 꺼냈다.

"그럼 우리 컨텐츠는 각자 뭐로 할래?"

"글쎄."

이내, 질문을 던지고 본인이 먼저 답을 내놓는 예지.

"나는 노래나 보컬 레슨."

"그럼 난 게임 방송."

"운동."

조금은 단순한 선택의 예지와 소미, 주희.

소미는 주희의 어깨를 톡톡 건들며 말했다.

"언니야, 운동하지 말고 그냥 먹방을 해. 그게 더 인기 많아."

"싫어. 근손실 오면 삼촌한테 빠따 맞아."

".... 빠따를 맞는다고?"

"너는 안 맞아?"

"대체 무슨 집구석이야."

"근수저 집안."

그럼 그 삼촌을 불러서 같이 먹방을 하지.

무조건 너튜브 조회수 떡상할 것 같은데.

"아무튼."

소미는 고개를 대충 끄덕이고 다이애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언니는?"

"음, 나는...."

이내,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여는 넷째.

얼굴에서 뭔가 묘한 결심이 느껴졌다.

"욕 배틀 영어로."

".... 장난하지 말고."

"장난 아닌데."

"...."

다이애나는 멤버들의 시선을 느끼고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한국어 공부 시간!?"

".... 언니가 배우는 거 아니고 가르칠 수 있어야지."

"오케이, 디스 랩 배틀! 제이콥과 전화 연결!?"

"아 쫌. 그런 거 말고."

"아니면.... 즉석 편곡이나 작곡?"

"어. 그게 제일 낫다."

"그냥 다 해야겠다."

"...."

한편, 은서는 별로 관심 없다는 듯 다음 촬영의 대본을 넘기며 말했다.

"나는 스케줄이 되려나 모르겠네."

"그날 언니 촬영 없대."

"오, 진짜?"

소미는 방긋 웃으며 수호에게 들은 소식을 전했다.

"대신 그 다음 날 새벽 12시 5분에 촬영 있대."

"밤 12시면...."

"나작텔 촬영 끝나고 바로 가야지."

"에라이."

그 정도면 그냥 스케줄 있는 거지.

"그럼 난 뷰티 방송할래."

"...."

예쁜 사람이 뷰티 방송한다니까 뭐라 할 말이 없네.

소미는 꿍한 표정으로 신발장 옆 거울을 바라봤다.

'.... 안 되겠다.'

이제 브론즈 탈출할 때가 된 것 같아.

자존심 때문에 피지컬이 필요한 캐릭만 고집했지.

백도어가 필요할 때도 우직하게 미드만 노렸다고.

"소미야, 그러고 보니 며칠 뒤에 촬영 있지?"

"응. 방탈출 메이즈."

"벌써 다섯 번째 방송이네."

".... 약속의 5회차."

이번에 생존하면 리얼리티 편성해 준다고 했던가.

"여행 가야지."

"맞아. 이번에 지면 우리 일만 하는 거야. 알지?"

"무적권 이긴다."

* * *

어느새 <방탈출 메이즈>도 5번째 촬영.

그동안 소미 팀은 승승장구를 거듭했다.

그동안 대립 구도를 보였던 황인우 크루도 많이 약해졌으니.

소미의 팀원이 떨어지든지, 독을 품은 황인우가 살아남든지.

아마, 오늘이 결전의 날이 될 터였다.

드르륵─

이내, 밴의 문이 열리고 소미가 탑승했다.

"소미야, 컨디션은 어때?"

"그냥 쏘쏘?"

"좋다는 뜻이네."

"...."

최근 방송가에서 솔라의 위상은 상상을 초월했다.

리얼리티 예능은 너튜브에 올려도 화제를 끌겠지만.

'.... 그래도 이겨야지.'

어차피 공중파에서 리얼리티 예능을 편성해 줄 리가 없었다.

"매니저 오빠, 요즘 예능 많이 잡으시네요."

"그러게."

아육대, 방탈출 메이즈, 나작텔, 리얼리티 예능.

방송에 얼굴을 비출 때마다 임팩트가 상당했다.

"필요한 것만 잡을게."

"저는 재밌어요."

"그래?"

리얼리티 예능까지만 해야지.

팬분들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예능은 그만 잡을 거야. 새 앨범도 준비해야지."

"네."

잠시 후, Tvm 방송국의 한 세트장.

오늘도 여전히 커다란 미로가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그런데, 그 내부에 카메라를 설치하는 스탭들을 보니.

"소미야, 오늘 미로 탈출인가 봐."

"그러게요."

"피지컬 게임 아니야? 큰일 났네."

"...."

다른 방송에서도 활용한 세트장이었다.

"지금까지 제시간에 탈출한 사람 없다던데."

".... 그럼 제가 최초로 탈출해 볼게요."

"그게 될까?"

"당연하죠."

저건 머리보다는 운동신경 쪽인 것 같은데.

"너 안무도 머리로 암기해서 추잖아.

"웬만한 건 다 잘해요."

소미는 씨익 웃으며 미로의 구조를 스윽 훑어보기 시작했다.

"저렇게 복잡한 걸 외우게?"

"이거 제시간에 탈출하면...."

"응?"

"나작텔에서 썰만 풀어도 시청자 1만 명 찍겠네."

"...."

곧이어, 소미는 다섯 번째 게임을 시작했다.

각자 미로를 탈출하는 개인전.

속도와 센스, 민첩성이 중요했다.

'아, 갑자기 불안한데.'

소미가 피지컬 게임도 잘할 수 있나.

뒤통수에 살랑살랑 바람이 불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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