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로 오해받는 연예계 생활-42화 (42/200)

[42] 넥스트 레벨(4)

JTBS 「재벌가 시집가기」 제작발표회장.

예상대로 은서는 기자들에게 가장 주목받는 배우였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그녀에게만 질문을 집중했다.

"감독님, 예고편으로는 장은서 배우의 연기력을 제대로 확인할 수가 없네요."

"아, 은서 씨는 히든 카드라서 꼭꼭 숨겼죠."

"그만큼 자신 있다는 뜻인가요?"

"첫 방송을 보시면 아실 겁니다."

"...."

내가 실수로 들여보낸 한빛일보의 악질 기자, 오영수.

괜히 이름은 왜 조 기자님이랑 같아서 헷갈리게 하냐.

'저 사람, 왜 이렇게 거슬리지?.'

아까부터 뒤통수가 근질근질한 게 아마 오영수 기자 때문인 것 같다.

딱딱한 질문과 평탄한 대답만이 오가는 현장.

오 씨는 타겟을 바꿔 은서에게 질문을 던졌다.

"은서 씨, 데뷔작부터 주연을 맡은 소감을 묻고 싶군요."

"그야...."

스윽─

순간, 은서는 내가 있는 방향에 눈을 흘기며 입술을 앙다물었다.

'진짜 여우 닮았네.'

기자들의 질문은 전부 예상했던 범위 내에 있었다.

기계처럼 미리 맞춰 본 답변을 하면 되는 상황이다.

'그냥 첫 방송 보고 확인하라고 해!'

그저 편하게 대답하라고 고개를 끄덕였는데.

이내, 은서는 확신에 찬 어조로 입을 열었다.

"공개오디션은 온전히 제 실력으로 붙었어요!"

"아."

먹이 던져주지 마라니까.

불안하게 왜 이러는 거야.

저분들은 그냥 제목만 자극적으로 뽑으면 끝이라고.

찰칵, 찰칵─

기자들은 이때다 싶어서 플래시를 터트렸다.

어이가 없어서 뒤통수만 벅벅 긁고 있었는데.

"오빠, 방금 은서 언니한테 신호 보냈지."

".... 아니."

옆에 있던 엄지유는 눈빛을 반짝이며 입을 열었다.

"방금 언니한테 고개 끄덕였잖아."

"아니, 그건."

그냥 준비한 대답만 하라고 한 건데.

"역시, 수호 오빠! 은서 언니랑 따로 말을 맞춰놨구나!?"

"아니라고."

"아니긴! 지금 신호 보낸 거 다 봤는데!"

"...."

장은서에게 질문 세례를 퍼붓는 기자들.

마치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진 격이었다.

이렇게 됐으니 어쩔 수 있나.

첫 방에서 증명하는 수밖에.

은서는 화가 날 때 감정이 너무 격해지는 경향이 있다.

남들보다는 분노 임계치가 훨씬 낮은 느낌이긴 했지만.

"지유야, 은서 촬영장에 있을 때."

"응?"

"네가 은서 화를 좀 자주 풀어줘."

"어떻게?"

"달달한 거 좀 먹여. 프라페나 마카롱 같은 거."

"살쪄도 돼?"

".... 반만 먹여."

감정을 통제하는 건 모든 배우의 기본자세였다.

나 역시 아이돌 배우를 맡은 게 처음이긴 했지만.

"은서는 아직 부족해. 더 열심히 배워야지."

"지금도 열심히 하잖아."

"그렇긴 한데."

장은서는 훨씬 더 잘할 수 있으니까.

유명한 감독님께서도 내게 따로 말씀해 주셨다.

감정을 완벽하게 절제하고 표현할 수만 있으면.

'이수연처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여배우로 성장할 수 있을 거라고.

어쩌면, 그 이상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고.

"은서는 아직 더 잘할 수 있어."

"역시, 매니저님....!"

그때, 옆자리에 있던 예지는 감동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진짜 우리를 믿어주는 건 매니저님뿐이에요."

".... 지금은 많은데?"

"아뇨. 처음부터 믿어준 사람이 제일 중요하죠!"

"...."

정말 미안한데, 안 믿어준 것 같아.

대신 비밀은 무덤까지 가져가 줄게.

"그냥 계속 지금처럼만 해."

"아뇨. 더 열심히 해서 기대에 부응할게요!"

".... 그래."

아이처럼 순수한 예지의 감성을 파괴하고 싶지가 않았다.

* * *

《아이돌 배우 장은서의 연기력 논란, 드라마 첫 방송 전부터 휘청!?》

"오영수 이 인간이, 진짜."

제작발표회 이후로 미친 듯이 양산되는 기사들.

은서의 연기에 대한 기대감은 양날의 검이었다.

어떤 드라마, 배우가 뜰지 미리 알 수 있다면 연예계의 신이겠지.

거의 모든 대중 예술의 성공 여부는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다.

'.... 내 똥촉만 빼고.'

이제 와서 역 베팅에 실패하는 건 좀 아니지.

드림 에이전시 시절에는 온통 다 망했으니까.

"재벌가 시집가기, 무조건 뜰 거야."

"오빠는 어떻게 그걸 확신해?"

"그냥.... 탈모 올 것 같아서."

"응?"

뒤통수를 너무 긁었거든.

피가 안 나는 게 신기해.

"지유야, 오늘 은서 촬영 스케줄은 네가 맡아."

"오빠가 안 가고?"

"응. 솔라 신곡 멜로디 작곡해 줄 사람 찾아보려고."

"아, 그 노래 제목이....?"

"선라이즈 앤 선셋."

다이애나가 만든 트랙 위에 노랫말, 멜로디를 만들어 줄 작곡가.

류시아가 먼저 떠올랐지만, 일단 퍼블리셔를 알아볼 생각이었다.

"아하, 그래서 팀장님이 SAS라고 불렀구나."

"제목 진짜 족-, 좋네."

"...."

해가 뜨면 달이 지고, 달이 뜨면 해가 진다.

비트부터 솔라와 루나의 컨셉과 어울렸다.

톡, 토톡─

퍼블리싱 A&R에게 톡을 보내던 찰나,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큐앤지 레이블 매니지먼트 1팀장 정수호입니다."

-안녕하세요. MBS 아육대 제작진입니다.

".... 안녕하세요!"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목소리를 들으니 막내 작가 정도 되려나.

-솔라와 루나, 섭외 차 연락드렸습니다.

"아, 네."

사실, 대형 엔터 1티어급이면 안 나가는 경우도 있지만.

우리 같은 좋소기업의 신인 걸그룹은 선택지가 없었다.

-혹시 8월 13일, 14일에 시간 괜찮으세요?

"그럼요. 괜찮아야죠."

출연료나 조건 따윈 말하지도 않았다.

이딴 걸로 공중파에 찍힐 순 없으니까.

-그럼 세부 일정은 메일로 보내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디."

뚝.

이내, 멀리서 노트북을 두드리는 후배를 불렀다.

"상모야!"

"네? 네! 팀장님."

"루나 스케줄 표 좀 가져올래?"

"아, 넵!"

아직 팀장 명함에 잉크도 마르지 않았지만.

슬슬 다른 팀도 신경을 쓸 때가 온 것 같다.

"여깄습니다."

"8월 13일, 14일은 비워놔. 아육대 촬영이야."

"아, 넵."

나는 사무실 팀장 자리에 앉아 스케줄을 정리했다.

솔라와 달리, 루나는 단체 활동이 주요 일정이었다.

'무슨, 예능이랑 행사가....'

이렇게 빡빡하게 굴리면 연습할 시간이 없잖아.

오히려 솔라보다 스케줄이 많으면 어떡하라고.

"루나 스케줄은 보통 네가 짜?"

"네. 보통은요."

".... 너무 많은데? 일단 라디오부터 좀 줄여."

"이미 잡은 것도 취소할까요?"

"아니, 지금까지 잡은 것만 하자."

"네. 팀장님."

너무 스케줄이 많아서 내가 손을 댈 껀덕지도 없었다.

"루나도 신곡 낼 때 됐겠네."

"오, 정말요?"

"어. 신곡 후보 가져와. 골라보게."

"넵."

솔라랑 루나, 둘 다 신곡 활동을 슬슬 준비하는 게 좋을 것 같다.

'12월에 열리는 엔넷 마미 시상식.'

어쩌면, 공중파 3사 연말 축제보다 중요할 수도 있었다.

국내 무대 중에서 유일하게 '상'을 주는 시상식장이니까.

<탑아이돌> 덕분에 인지도가 많이 오르긴 했지만.

어쩌면, 루나는 무대에 오르기 어려울 수도 있었다.

'두 팀 모두 후속곡 활동에 성공하면....'

조만간 합동 무대를 기획하는 날도 오려나.

* * *

며칠 뒤.

서연정 대표는 너튜브로 웹드라마를 검색했다.

예지의 데뷔작, 그 마지막 편이 업로드 됐으니.

《[나의 이중생활 Ep.10] SNS 스타가 된 예지의 마지막 고백》

-20시간 전

-조회수 83만 회

-좋아요 11만, 싫어요 2백

-댓글 1.4만

웹드라마 특성상 뒤로 갈수록 조회수가 떨어지기 마련인데.

오히려 예지의 작품은 뒷심을 발휘하며 역주행에 성공했다.

"대단하네."

예지도 대단했지만, 정수호는 놀라울 정도였다.

노래, 예능, 드라마를 가리지 않고 전부 다 떴다.

'이 드라마가 아니었다면....'

과연 김예지는 연기력으로 호평을 받을 수 있었을까.

다른 배우와 티키타카나 내면 심리를 잘 표현했을까.

'.... 이제 은서 차례.'

이번 JTBS의 흔하디흔한 재벌물까지 잭팟이 터진다면.

정수호는 또한번 무패신화 기록에 한 줄을 채워넣겠지.

똑, 똑─

그때, 문밖에서 권석동 2본부장이 노크를 두드렸다.

"들어오세요."

마침내, 정규 5집 앨범 작업을 마쳤다.

무려 반년 이상 동안 진척이 없었는데.

"정수호 팀장 덕분에 끝났네요."

"다행입니다."

특히, 류시아와 다이애나가 콜라보한 타이틀곡 .

곡명은 여러가지 의미를 품고 있었다.

오직 최고가 되기를 바라고 있으면서.

"솔라와 루나, 세계관을 제가 직접 만든 거 아시죠?"

"네. 대표님."

공세원 전 실장이 처음부터 찢어놓은 두 그룹.

솔라와 루나는 9인조 연습생 때부터 하나였다.

'솔라와 루나....'

이번 앨범에서 작곡팀을 하나로 묶었다는 데에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연예계에서 가정법은 큰 의미가 없지만.

처음부터 9인조로 시작했으면 어땠을까.

큰 무대에서 합동 공연을 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권 본부장, 일본에 제 스케줄 잡았어요?"

"네. 도쿄돔에서...."

"게스트로 솔라랑 루나를 초청하죠."

"네?"

이미 게스트 초청을 끝마친 이후였지만.

15분 정도는 충분히 낼 수 있을 것이다.

"정수호 팀장한테는 제가 직접 말씀드리죠."

"알겠습니다."

마침, 솔라랑 루나도 신곡을 준비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으니.

"저는 우리 아이들이 크게 성공했으면 좋겠네요."

"저도 그렇습니다. 대표님."

누군가 제 자식을 건드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수호 팀장처럼 몸을 웅크리고 힘을 길러야지.

"솔라랑 루나, 신곡 준비에 집중하시죠."

"네. 대표님."

상대가 드림 에이전시의 실세일지라도.

* * *

나는 은서와 함께 JTBS 방송국에 직접 방문했다.

주연 배우들이 함께 시청하는 장면을 따기 위해.

"하아암, 얼마나 기다려요?"

"그냥 자고 있어."

"네."

은서는 가끔 이렇게 본인 일에도 무관심할 때가 있다.

본인 드라마 데뷔작 첫 방송이 30분도 안 남았는데.

'후우, 모르겠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제작발표회 너튜브 댓글을 확인했다.

여기 댓글도 비슷하네.

커뮤니티랑 동급인데.

-예고편에서 장은서 통편집 ㅋㅋㅋㅋㅋ

ㄴ그냥 곡이나 뽑지 뭔 연기냐

ㄴ기사 보니까 엉망진창인가 보더라

ㄴ기자들이 물어뜯는 데엔 이유가 있음

-매니저가 감을 잃었네

ㄴ좋소에서 이만큼 띄웠으면 캐리했지 ㅋㅋㅋ

ㄴ그니까 감 잃었다고 ㅋㅋ

ㄴ응. 니 엄마 만수무강

ㄴ너희 부모님 백년해로

-우리 은서 연기 보고 까라 ㅡㅡ

ㄴ똥인지 된장인지 처먹어 봐야 아나

ㄴ이수연 인터뷰 안 봄?

ㄴ탑아이돌 좆목질

-그냥 연기는 예지만 시키라고 ㅠㅠ

ㄴ예지 = 단편 연기 한정 여포

ㄴㅇㅇ 예지도 웹드라서 단점이 안 보인 거지

ㄴ너네 웹드 보고 말하냐?

이 작은 공간에서 싸우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옹졸해진다.

'오영수 기자가 물을 흐렸네.'

드라마 시작 전부터 대중은 은서의 연기에 의심을 품고 있었다.

원래는 호의적인 분위기를 바랐었는데.

쓸데없이 선동 당한 기자가 너무 많았다.

똑, 똑─

그때, 문밖에서 지유가 노크를 두드렸다.

"오빠, 지금 가면 될 것 같아요!"

"아, 그래?"

이내, 은서와 함께 방송국의 한 스튜디오로 이동했다.

커다란 스크린, JTBS 채널에서 나오는 광고 화면.

첫 방송을 앞에 두고 배우들끼리 인사를 나눴다.

"자자, 이거 시청률 내기 안 하면 섭섭하죠?"

"...."

에휴, 꼭 안 되는 방송에서는 저런 거 하더라.

"저는 3프로에 10만 원."

"에이, 좀 더 하지?"

"저는 5퍼에 5만!"

"...."

은서는 주변 눈치를 살짝 살피며 슬며시 입을 열었다.

"저는 현실적으로 0점...."

"은서야, 조용히 해."

"네."

순간, 스탭들의 시선이 전부 나에게로 향했다.

"정 팀장님?"

"네?"

"말씀하셔야죠."

"...."

이럴 때는 그냥 매니저가 조금 밀어줘야지.

지금 좀 불안한 걸 보니 무조건 역배각이다.

"대박 나겠는데요?"

"오, 진짜로?"

"네. 지금 간질간질해요."

"아, 그럼....?"

다들 나한테 무슨 기대를 걸고 있는 건지 모르겠는데.

연예계 한정, 촉으로 나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거든.

"10프로에 배당이 얼마나 돼요?"

"대충 5배 정도?"

"저는 피 같은 백만 원을 걸게요."

".... 10프로에요?"

"네."

판돈을 걸던 스탭들이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너무 뻥이 심한데요? 하하."

"직장인한테 백만 원은 너무 크죠."

"절반만 가시죠."

그 순간, 이수연이 손을 번쩍 들고 말했다.

"저도 10프로에 백만 원."

"...."

묘한 정적 속에, 첫 방송 시간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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