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로 오해받는 연예계 생활-38화 (38/200)

[38] 지니어스(5)

출연진은 두 팀으로 나뉘어 각자의 방에 들어갔다.

"이거 퍼즐을 풀어야 하네요."

"저 주세요."

루이팽은 자신 있게 손을 내미는 소미에게 미소를 지었다.

'내가 캐리해야지.'

게임 중에 칩의 양도가 가능한 팀전이었다.

솔직히 6:4로 굉장히 불리한 게임이었지만.

띵동─

그때, 방에 설치된 스크린을 통해 베팅 정보가 주어졌다.

[이 방에서 나가기 위해서는 칩이 필요합니다.]

[방탈출에 성공한 출연자는 데스매치에서 제외됩니다.]

즉, 6명이 탈출하려면 더 많은 칩이 필요하다는 뜻.

"어라? 이러면 해볼 만한데?"

"그러게요."

소미는 관심 없다는 듯 퍼즐에 집중했다.

띵동─

[지금부터 1등할 것 같은 경주마에게 칩을 베팅해 주세요.]

각자 레인에서 앞만 보고 달리는 10마리의 경주마 무리.

칩을 두 배, 세 배로 불릴 수 있는 본게임이 시작되었다.

"어디에 걸까요?"

"30초 남았네."

"그럼 일단 시험 삼아...."

"존버해요."

그때, 소미의 입에서 상스러운 단어가 튀어나왔다.

".... 존심 버리고 기다리자는 뜻이에요. 뭔지 알죠?"

"아, 존나 버티는 게 아니라?"

"넹."

신소미는 다시 입을 다물고 퍼즐에 집중했다.

정말로 퍼즐이 중요한 키 포인트가 되긴 할까.

"아, 저쪽 분산 베팅했네요."

"그게 안전하지."

"괜히 저쪽만 조금 땄잖아."

"우리도 할걸."

일단 몇 명은 안전하게 데스매치에서 제외되겠지.

게다가, 꼴찌가 이쪽에서 나올 확률이 높을 테니.

"이번에도 존버요."

".... 또?"

두 번째, 세 번재 베팅에도 소미는 존버를 외쳤다.

"이거 좀 위험한 거 아니에요?"

"격차는 미미해서 의미가 없어요."

".... 그래도."

분산투자는 로우 리스크, 로우 리턴.

소미는 명확하게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풀었어요, 퍼즐."

네 번째 베팅부터 소미는 본색을 드러냈다.

팀원들은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경주마 속도 변화에 규칙성이 있네요."

".... 설마."

"퍼즐이 답지였어요."

"...."

답지를 보고 푸는 문제는 더이상 문제가 아니었다.

'소미.... 천잰데?'

배시시 웃으며 베팅판에 칩을 거는 소미.

팀원들은 멍한 표정으로 지시를 따랐다.

"어케 풀었냐."

시간이 흐르고, 최종 레이스에서 격차는 벌어졌다.

승리가 굳어졌다고 생각한 순간 소미가 입을 열었다.

"마지막 7번 말에 올인 가죠."

"올인....?"

"네. 저쪽도 퍼즐 풀었으면 이게 맞아요."

"...."

소미는 망설이는 팀원들을 뒤로한 채 자신의 칩을 걸었다.

"믿어보죠."

"어차피 질 게임이었어."

"맞아요."

곧이어, 네 명의 팀원들이 방을 탈출하는 데에 필요한 칩을 모두 모았다.

의심의 여지가 없는 압도적인 승리.

꿈을 꾼 것처럼 순식간에 지나갔다.

* * *

폭풍처럼 지나간 첫 번째 게임.

방탈출에 성공한 네 명은 데스매치 지목에서 제외되었다.

즉, 방탈출에 실패한 6명의 참가자 전원은 탈락 후보였다.

'황인우 팀은.... 조졌네.'

스탭들과 출연자들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소미를 바라봤다.

팀전에서 다수팀이 소수팀에게 졌으니.

상황 파악조차 못 하는 사람도 있었다.

황인우 팀의 입장에서는 화가 나기보다는 망연자실한 상황.

중학생 소녀에게 당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어려운 듯했다.

"야야, 방금 로이탱 참가자 혼잣말 들었지?"

"네. 소미가 전부 지시했던 거네요."

"소름 돋네."

"중학생이 천재....?"

주변 스탭들의 대화가 아니어도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중앙 모니터를 통해 참가자들의 행동을 전부 지켜봤으니.

개인 인터뷰까지 마치고, 소미는 도도도 달려와 내게 말했다.

"매니저 오빠! 시키는 대로 다 했어요!"

"내가?"

"네! 시키는 대로만 하니까 쉽게 이겼어요."

".... 내가?"

"네!!!"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소리치는 소미.

이게 진심으로 말하는 건지 진의를 모르겠는데.

주변에 스탭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군거렸다.

'뭔데.'

곧이어, 김 피디는 내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수호 선배, 소미 혹시 천재예요?"

"...."

몰라. 그런가 봐.

나도 얘 무서워.

"요즘 아이돌은 연습생 때부터 퍼즐 푸는 거만 가르쳐요?"

".... 춤이랑 노래를 가르치지."

"와우, 그럼 이 프로그램 잡고 나서 연습시켰구나!?"

"...."

연습 안 시켰어.

춤 연습도 한두 시간 만에 끝내는 애가 무슨 퍼즐 연습.

어제도 온종일 악플러랑 키보드 워리어짓이나 하던데.

숨겨진 퍼즐을 푸는 속도.

팀원들을 통솔하는 리더십.

룰 위에서 판을 짜는 능력.

소미는 모든 재능을 쏟아내며 게임을 주도했다.

그저, 내가 느낀 불안감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다음 주부터 소미가 견제 대상이네요."

"에이, 설마."

"그때도 수호 선배가 잘 가르쳐주시죠."

"뭐라는 거야."

황인우를 포함한 몇몇 출연자들은 소미에게 싸늘한 시선을 보냈다.

'잼민이라고 급식 취급할 때는 언제고....'

모든 촬영이 끝나고, 소미와 함께 대화를 나눴다.

"소미야, 아까 왜 그런 말을 했어?"

"네?"

"내가 시키는 대로 했다는 말."

"그게 사실이니까요."

"음, 그렇게 말해야 다른 출연자들이 방심하니까?"

"아뇨, 열심히 하래서 열심히 했다구요."

"...."

장난하나, 어제 하루종일 놀았잖아.

"너한테 열심히는 어느 정도야?"

"음, 하루 정도?"

"아."

'열심히' 기준이 일반인이랑 다르구나.

어쩐지, 연습도 필요한 만큼만 하더라.

'저 정신머리를 뜯어고쳐야 하는데.'

다른 멤버들은 마스터한 이후에도 계속해서 연습한다.

100번의 무대 중에 한 번쯤은 실수할 수도 있으니까.

"어휴, 이거 촬영 끝날 때까지만 봐준다."

"넹?"

"아니야."

"음, 저기 누구 오네요."

"응?"

소미는 방실방실 웃으며 한 출연자에게 손을 흔들었다.

이어서, 루이팽이 천천히 이쪽으로 다가와 말을 걸었다.

"소미야, 덕분에 버스 탔다. 장난 아닌데?"

"루이팽 쌤, 저 게임 가르쳐 주시기로 했죠?"

"어후, 당연하지."

누구 마음대로.

"매니저 오빠, 인방 켜고 게임 배워도 돼요?"

"그건 회사에서 말하자."

"아 왜용."

아이돌이 무슨 인방 BJ도 아니고.

잘하면 달풍선도 엄청 땡기겠네.

순간, 뒤통수에서 간지러움이 밀려왔다.

".... 그냥 해."

"오, 진짜요?"

"어."

지금 뒤통수가 간지럽거든.

이제는 그냥 신앙 수준이다.

"정식으로 스케줄 잡아볼게."

"아싸."

근데 너는 배워도 개못할 것 같아.

피지컬은 극복할 수가 없는 거야.

"소미야, 너무 기대하지 마."

"넹?"

"0킬 7뎃은 훼이커가 와도 못 고쳐."

"...."

* * *

이튿날.

나는 OST 작업을 위해 JTBS 방송국에 방문했다.

다들 먼저 도착해 세팅하고 계신다고 했으니까.

"매니저님!"

예지는 숙소 앞에서 밴에 타자마자 말을 걸었다.

"소미가 엄청 자랑하던데요."

"그래?"

소미가 캐리하긴 했지.

"매니저님이 시키는 대로 해서 게임에서 이겼다고."

".... 그냥 열심히 하라고 말한 게 전부야."

"그럼 거의 매니저님이 다 하셨는데요?"

"아니, 진짜 그게 다라니까."

"그니까요! 소미는 원래 필요한 만큼만 연습해도 잘해요!"

"...."

그래. 그건 맞는데.

뭔가 말이 이상해.

"방송 나가면 소미가 엄청 뜰 것 같아요!"

"그럼 좋지."

"이건 매니저님이 다 하신 거예요!"

".... 됐고."

일단은 오늘 스케줄에 집중해야지.

"예지야, OST 가사는 외울 필요 없어. 보면서 하면 되니까."

"그래도 예의니까요."

"...."

보컬에게 중요한 건 가사가 아니었다.

일단 기본기만 지켜지면, 그다음부턴.

"감정을 아직 잘 모르겠어요."

"그래?"

음악에서 감정이라는 건 어떻게 알 수 있는 걸까.

나 같은 양민은 꿈도 못 꾸는 경지라 할 말이 없다.

"매니저님은 보통 곡을 들을 때 감정을 잡아요?"

"보통 들을 때도 감정을 잡나?"

"와아, 그럼 아무렇게나 들어도 감성 포인트를 캐치하는 거예요!?"

"아니, 그냥 대충."

똥촉으로 찍는 건데.

"역시 천재들은 그냥 대충-, 이라는 말을 많이 하더라. 소미도 그렇고."

"아니, 그런 거 아니야."

"괜찮아요. 저는 더 많이 연습하면 되니까."

"예지야, 건강부터 챙기자."

"저 걱정해 주시는 거예요?"

"당연하지."

예지는 데뷔하고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좋은 방향으로 눈에 띄게 달라지고 있었다.

'조금만 있으면 진급 시즌인데.'

혹시라도 이번에 내가 팀장급으로 진급한다면.

그때는 지금처럼 솔라만 케어할 수 없을 텐데.

"예지야, 내가 루나도...."

"네?"

"아니, 아니야."

너무 섣부른 판단은 자제하자.

아직은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끼이이익─

이내, 방송국에 도착하고 예지와 함께 밴에서 내렸다.

'드라마 첫 촬영 전에 녹음 마쳐야 해.'

혹시 메인 테마곡으로 선정될 수만 있으면.

은서랑 예지, 두 사람 모두에게 윈윈이니까.

함께 방송국 로비를 지나쳐 녹음실 문 앞에서 노크를 두드렸다.

"와아, 예지 님!"

"안녕하세요."

"진짜 진짜 팬이에요!"

"정말요?"

우리를 격하게 환영하며 꾸벅 인사를 하는 프로듀서.

사실, 퇴물 소리 듣는 작곡가에게는 엄청난 기회였다.

"저도 작곡가님 노래 전부 다 들어봤어요."

"오, 정말요?"

"네. 떡볶이가 맛있어, 고래 사냥하다가 붕어된 썰 품. 다 좋았어요!"

"...."

아니, 노래 제목 뭔데.

갑자기 또 불안하네.

"제목이 좀 그렇죠?"

"제목보다 곡이 중요하죠."

"그래도 샤이 보이는 진짜 열심히 생각했거든요!"

"네. 좋은 것 같아요!"

통통 튀는 매력이 있는 음악, 「샤이 보이」.

호불호가 많이 갈릴 수 있는 곡이었는데.

'개인적으로는 불호.'

솔직히, 제목까지 별로였으면 내가 들어볼 기회도 안 왔겠지.

"우리 매니저님도 작곡가님 노래 엄청 좋아하세요."

"와, 정수호 매니저님. 들었습니다."

"네?"

"제 노래를 강하게 밀어주셨다고."

".... 그랬죠."

상대는 한껏 감동한 표정으로 두 손을 모았다.

"이렇게 인정받는 게 얼마 만인지....!"

"데뷔곡은 떴잖아요."

"아, 사랑은 지독한 양념치킨 맛이다!"

".... 예. 그거."

"그건 한때 떴었죠. 지금은 퇴물이지만."

"...."

그거 처음 들었을 때 재하랑 내기했었는데.

100만원빵 내기였는데 어이없게 개털렸지.

"그럼 예지 씨, 바로 녹음실 들어가겠습니다!"

"좋아요!"

띠리리링─

그때, 전화가 걸려 와서 작곡가에게 양해를 구했다.

"저는 잠시 전화 좀요."

"네. 편하게 하세요."

나는 작업실을 나와 통화 버튼을 눌렀다.

"안녕하세요. 조영수 기자님."

-매니저님, 꼬리 잡았네요.

"...."

회사를 좀 먹는 스파이를 처리할 때가 왔다.

-감석태 본부장이 자료를 건넨 증거, 바로 보내드릴게요.

"정말 감사합니다"

-별거 아니었어요. 한빛일보도 매니저님이 알려주셨잖아요.

"그래도 감사합니다."

-지인끼리 돕고 사는 거죠. 하하.

"넵. 괜찮은 정보 있으면 꼭 연락드리겠습니다."

-좋습니다.

* * *

공세원 실장은 수호의 보고를 받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상상을 뛰어넘는구만.'

이렇게 빨리 일사천리로 해결할 줄이야.

역시, 뒷배가 있는 사람이라 금방이었다.

"박 팀장님, 이거 고소할 수 있겠죠?"

"네. 아마도."

내부 총질에, 공개 오디션을 의심하는 악의성 기사.

외부인인 방송국 감독과 작가에게도 피해를 줬으니.

"일단 법무법인에 넘겨 보겠습니다."

"그러죠."

정수호 매니저는 알면 알수록 대단한 사람이었다.

'하필이면 승진 시즌에 맞춰서....'

이렇게 1본부를 통째로 날려버릴 증거를 잡다니.

앞길을 막으면 누가 오더라도 다 쳐낼 것만 같아.

"실장님, 어제 소미 소식은 들으셨죠?"

"그럼요."

이제 솔라 멤버들은 습관처럼 정수호의 말을 따랐다.

잘나가는 스타가 됐지만, 전혀 변함이 없었다.

정수호가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겠지.

그만큼, 매니저에 대한 멤버들의 신뢰는 절대적이었다.

'팀장급으로 오르면....'

루나도 솔라처럼 크게 키우려나.

아니면, 새로운 연습생을 뽑을까.

어느 쪽이든, 정수호의 프로듀싱 실력이면 반드시 스타로 만들겠지.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연예계에 이런 통찰력을 가질 수 있다니.

'.... 언젠가는 회사를 차리겠군.'

그 전까지는 '정수호 프리미엄'을 최대한 누릴 생각이었다.

그런 지니어스가 회사에 머물러 주는 건 얼마나 축복인가.

"팀장님, 감석태 본부장 고소 건은 바로 처리하죠."

"드림 에이전시는...."

"그쪽도 대비하고 있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두 분, 대표님들께는 제가 보고할게요."

"네. 실장님."

한편, 같은 시각.

정수호는 통장에 찍힌 성과급을 보고 싱글벙글 미소를 지었다.

"큐앤지 레이블 개꿀, 평생 붙어 있어야지."

드림 에이전시 때는 꿈도 못 꿔봤던 인센티브.

이제 부모님께 용돈을 드려도 부담이 없었다.

"뭐 사지."

그때, 사무실 뒤쪽에서 지상모가 다가오며 수호를 불렀다.

"선배님, 지금 공지 뜬 거 보셨어요?"

"뭐를?"

"감석태 본부장님, 대기발령 났는데요?"

".... 올 게 왔네."

수호는 후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바, 반응이.... 선배님이 꾸미셨다는 소문이 사실이에요?"

"그런 건 아니고."

"저는 살려주세요."

".... 내가 널 왜 죽여."

"거치적거리지 않을게요."

"조용히 하고."

솔직히, 공세원 실장이 이렇게 빨리 1본부장을 처리할 줄은 몰랐다.

'공 실장님, 엄청 무서운 사람이었네.'

앞으로 회사 생활 조심해야겠다.

언제 모가지 날아갈지 모르니까.

"저기, 선배님."

"어?"

"공지에 다른 인사발령도 있는데요?"

"뭔데."

나는 한동안 후배가 보여준 내용을 멍하니 쳐다봤다.

[정수호 로드매니저 → 매니지먼트 1팀장]

공 실장님은 1본부장, 박 팀장님은 실장.

그리고, 나는 팀장급으로 고속 승진했다.

'.... 이게 되네?'

큐앤지 레이블에 온 지 몇 달이나 됐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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