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지니어스(4)
소미의 제작발표회 발언이 연일 화제였다.
팬들은 떨어져도 괜찮다고 다들 칭찬해주긴 하는데.
분위기상, 첫 방송에서 떨어질 확률이 가장 높았다.
"소미야, 준비 안 하냐."
"녜?"
음반 활동 끝났다 이건가.
요즘 애들이 빠져가지고.
"저 지금 엄청 열심히 팬들이랑 소통하는데요."
".... 악플에 대댓글 다는 건 소통이 아니야."
"소통의 정의가 다른가 봐요."
"그런가."
소미는 스마트폰을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
"헐키, 잼민이 첫 화 탈락!? 넌 뒤졌다."
".... 어쩔 건데."
"주희 언니한테 일러야죠."
"으음, 근손실 나서 안 싸워줄걸?"
"진짜 넌 뒤졌다."
"...."
아니, 내가 뒤질 것 같아.
답답해서 뒤질 것 같아.
'똥촉 센서 고장 났냐.'
이렇게 불안한데 뒤통수는 왜 지금 간질간질한 걸까.
당장 주말에 첫 촬영인데도 아무런 준비를 안 하잖아.
"소미야, 그때 올림피아드 문제집 네가 다 풀었어?"
"그거, 그냥 숫자만 끄적끄적한 거죠."
"아."
드르륵─
그때, 연습실 문을 활짝 열고 들어오는 예지.
나를 발견하자마자 총총걸음으로 달려왔다.
"매니저님! 언제 오셨어요?"
"방금. 연기 수업은 어땠어?"
"좋았어요! 오늘 배운 거 보여 드릴까요?"
".... 그럴래?"
매번 보여줄 필요는 없지 않나.
나는 다섯 명이나 관리한다고.
"네! 잠시만요."
그래도 열심히 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다.
연기력도 웹드라마 이후로 계속 늘었고.
이제 슬슬 예지도 장편 드라마를 준비해도 될 것 같다.
'분위기를 보면 조만간....'
김고은 작가님도 공중파에서 드라마 하실 것 같은데.
역시 존버하면 촉이 좋은 드라마 하나 물어다 주려나.
"어땠어요?"
"어?"
".... 집중 안 했구나."
"아니야. 연기 좋았어."
"정말요?"
"응. 역시 예지 연기는 항상 사랑스러워."
"심한 욕하는 연기였는데요."
"오히려 좋아."
"???"
옆에서 빤히 지켜보던 소미가 내 옆구리를 콕 찔렀다.
"매니저 오빠, 취향 존중할게요."
"뭐가."
이제 우리 애들도 스케일이 정리가 되는 분위기였다.
장은서랑 신소미는 개인 스케줄.
다이애나는 여왕님 곡 프로듀싱.
'양주희는.... 헬스.'
아무튼, 예지는 당분간 아무것도 없지만.
뭐든 스케줄 하나 잡는 건 일도 아니니까.
'괜찮은 드라마 하나만 들어오면....'
띠리리링─
그때, 유명한 감독님께 전화가 걸려왔다.
이렇게 직접 전화하실 일은 거의 없는데.
"여보세요. 감독님, 안녕하세요!"
-안부 차 연락드렸어요.
"요즘 많이 바쁘시죠?"
-뭐, 정신없죠. 하하.
JTBS 「재벌가 시집가기」는 첫 촬영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아마 제작발표회 전에 1화 분량 정도는 찍으려고 할 테지.
'은서 연기력 논란은....'
나중에 첫 방송만 나가면 금세 사그라지겠지.
공개오디션에서 뽑힐 만한 실력인지, 아닌지.
"우리 은서, 수영은 거의 마스터했습니다. 접영까지요."
-들었어요. 엄청 노력파더군요.
".... 음."
별로 연습 안 했는데.
좀만 배워도 개잘해서.
"사실 맞아요. 은서가 연습벌레예요! 하하."
-연기도 점점 발전하던데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는요.
곧이어, 유 감독님은 조심스럽게 용건을 꺼냈다.
-저기, 음악 감독님이 저한테 부탁을 하나 했거든요.
"네? 어떤....?"
-예지 씨, 우리 드라마에 OST 한 곡 불러주실 수 있을까요?
"아, OST요."
나는 잠깐 고민하고 바로 수락했다.
어차피 당분간 스케줄도 없으니까.
"혹시 무슨 곡인지 들어보고 불러도 될까요?"
-그럼요. 몇 곡 정도 킵 해놨는데, 직접 듣고 천천히 생각해 보셔도 됩니다.
"넵. 감사합니다!"
음악감독이랑 가수가 곡을 듣고 나서 결정하는 게 당연하니까.
보통 OST 작곡가는 가수의 컨택을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린다.
"혹시 메인테마곡은 정해졌나요?"
-아뇨, 아직이요."
도랐네, 이건 잡아야지.
"감독님, 음악감독님 번호 알려주십쇼!"
-네. 보내드릴게요.
뚝.
유 감독님 정도면 굉장히 인성이 좋은 편이었다.
매니저에게 함부로 대하는 갑질러가 워낙 많아서.
"매니저님."
이내. 옆에서 듣고 있던 예지가 질문을 건넸다.
"은서 드라마에 OST 필요해요?"
"응. 네가 한 곡 불러주길 원하더라고."
"해요? 말아요?"
"그건."
이제 당연하다는 듯이 내 의견부터 구하는 예지.
내 입장에선 이렇게 따라주면 고마울 따름이다.
"일단은 몇 곡 들어보고 생각하자."
"네! 좋아요!"
드르륵─
그때, 연습실 문이 열리고 땀에 젖은 주희가 터덜터덜 걸어왔다.
"허억, 허억. 프로티인....!"
".... 혹시 패싸움하고 왔니?"
"아뇨. 아침부터 등 운동 조졌어요."
"조져진 거 아니고?"
"형님, 여기 프로틴 어디 갔어요?"
"내가 치웠...."
순간, 주희는 절망에 빠진 눈빛으로 나를 공허하게 바라봤다.
무슨 헬창 좀비냐.
진짜 문제가 있어.
"저쪽 캐비닛에 숨겨-, 아니, 챙겨놨어."
"오오, 압도적 감사!"
"...."
얘는 이렇게 운동해서 나중에 뭐 하려고.
브레이킹 종목 올림픽이라도 나가려는지.
진짜 어이가 없네.
뒤통수 간지럽게.
* * *
JTBS 방송국 소속 음악감독.
마형준 감독은 스탭들과 OST 음악을 감상했다.
새삼, 포화상태가 된 음악 시장을 재확인했다.
"전부 다 좋아. 어렵네."
"그러면 무슨 노래를 넣든 다 뜨겠네요?"
".... 그럴 리가."
반대로 무슨 노래를 넣든 전부 다 망할 수도 있지.
원래 연예계는 누구도 미래를 예측할 수 없거든.
드라마가 뜰지, OST가 뜰지, 배우가 뜰지.
결과만 놓고, 원인을 분석하는 시장이야.
"저기, 장은서 뉴스 기사 봤어요?"
"아, 공개오디션 논란."
"네. 감독님께서 그냥 유명 아이돌이라 뽑았다는 기사요."
"유 감독님 몰라? 그럴 사람 아니야."
"저도 알죠."
게다가, 장은서가 대본리딩에서 보여준 풍부한 감정 연기는 진짜였다.
조만간 아이돌 명함이 오히려 발목을 붙잡았다는 사실을 증명하겠지.
"근데 최초 보도자료 뿌린 기자요."
"누군지 알아?"
"네. 제 지인 중에 인터넷 찌라시 기자가 있는데, 걔가 아는 회사래요."
"그걸 왜 이제 얘기해?"
"저도 지인한테 오늘 들었어요."
"그래?"
똑, 똑─
그때, 누군가 노크를 두드리며 작업실 문을 열었다.
"정수호 매니저님,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감독님."
그 뒤로, 여배우 보다 아름다운 소녀가 함께 걸어왔다.
'와, 엄청 예쁘네.'
아이돌 특유의 싱그러움과 여배우의 신비감.
장은서와는 다른, 자신만의 매력을 보유했다.
"웹드라마 찍으셨다는 소식은 들었습니다."
"정말요? 감사해요!"
"진짜 기존에 없던 배우상이시네요."
"제가요?"
"네 오늘 정주행할게요."
"아직 몇 화 안 나와서. 헤헤."
"아하."
마형준 감독은 다시 정신 차리고 수호와 예지를 안내했다.
"일단, 몇 곡 들어보시겠어요?"
"저희야 좋죠."
"이쪽으로."
딸깍─
마 감독은 가장 괜찮다고 생각하는 곡부터 순서대로 재생했다.
".... 어때요?"
가수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봤는데.
예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는 좋은 것 같아요."
"오, 그쵸? 드라마랑 가장 어울리거든요."
"근데 매니저님은 어때요?"
"음."
정수호 매니저는 뒤통수를 슥슥 긁으며 다음 곡을 부탁했다.
"계속 들어봐도 될까요?"
"아, 네. 그럼요."
곡 선정에 굉장히 까다로운 성격인가.
솔라를 혼자서 키웠다더니 역시 쉽지가 않았다.
다섯 곡을 내리 재생하고 나서 천천히 생각했다.
'예지 씨가 엄청 따르네.'
음악적 식견을 나눠보니 굉장히 깊은 편이었는데.
정말 이상할 정도로 정수호의 말을 100% 신뢰했다.
떠오르는 신예 스타면 자기 의견을 세울 법도 하건만.
"저는 매니저님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아... 그렇군요."
마 감독은 은근한 어조로 수호에게 물었다.
"혹시 괜찮은 곡은 없었나요?"
"저기, 근데 한 곡 더 있는 거 아니었어요?"
"아, 그건."
한물 간 작곡가가 쓴 노래, 「샤이 보이」
OST치고는 너무 독특한 감성의 곡이었다.
혹시 드라마 분위기를 해치면 위험했으니.
"사실, 그 노래는 선택지에서 지울 생각이었거든요."
"그래도 한번 들어보면 안 될까요?"
"아, 네! 그럼."
가수가.... 아니, 매니저가 원해서 어쩔 수 없이 마지막 음원을 재생했다.
* * *
진짜 졸라 특이하네.
이게 어떻게 OST지.
시청자들에게 감성만 잘 전달하면 대박인데.
그게 안 되면 쪽박을 찰 것만 같은 곡이었다.
"예지 씨, 어떠세요?"
"으음."
예지는 쓴웃음을 지으며 소신껏 노래를 평가했다.
"노래가 너무 독특하네요."
"그렇죠?"
톡톡 튀는 비트 속에 발랄한 분위기의 멜로디.
나도 나지만, 이 노래 작곡가도 역배충이구나.
"하아, 이 노래는...."
그래. 이 타이밍에서 촉이 안 터지면 이상하지.
가려운 뒤통수의 감각에 한숨을 내뱉고 말했다.
"정말 듣기 좋네요."
"예?"
"드라마 분위기를 살릴 수 있을 새로운 패러다임 아닐까요?"
"...."
예지는 내가 개소리를 씨부려도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요, 제 말이 바로 그 말이에요!"
"네? 아까는 너무 독특하다고...."
"저한테는 독특하다는 말이 엄청난 극찬이에요."
"아....?"
우리 예지는 태세전환이 거의 용디르 급이네.
나도 잘 모르겠어.
좀 별로기는 한데.
"저는 감독님만 괜찮으시면 이 곡으로 가고 싶네요."
"혹시 다른 곡은...."
"죄송합니다. 대신 예지 말고 다른 가수를 찾으셔도 괜찮습니다."
"에헤이, 무슨 그런 말씀을."
"...."
다른 노래는 다 너무 좋아서 그래요.
진짜 요즘 음악 시장은 너무 빡세다.
'똥촉만 안 왔으면....'
그냥 꾹 참고 다른 곡으로 갔을 수도 있었겠지만.
여섯 곡을 듣는 내내 뒤통수가 계속 가려웠으니.
"저는 샤이 보이, 이 노래가 좋은 것 같아요."
"다른 곡들은 전부 다 별로라고 하실 줄이야. 솔직히 놀랐네요. 하하."
"노래는 다 좋아요."
"굳이 칭찬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 진짜 다 좋아요."
마 감독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 말했다.
"오케이. 솔라를 키운 매니저님의 안목을 믿겠습니다."
".... 조금 부담되네요."
"부담은요."
잠시 후,
결국, 유명한 감독님의 허락까지 얻은 이후.
작곡가와 OST 작업 일정을 잡고 돌아섰다.
"그럼 다시 찾아뵙겠...."
"아, 매니저님."
"네?"
그때, 마 감독은 뭔가 떠올랐다는 듯 조용히 말을 건넸다.
"은서 씨, 공개오디션 루머 만든 기자가 누군지 아십니까?"
"누군지 아세요?"
"이름은 모르고, 한빛일보 기자라고 하더군요."
".... 감사합니다."
작은 인터넷 찌라시 회사.
감 본부장님, 꼬리 잡혔네.
감독님과 작가님 입장에선 조용히 넘어갈 수 없는 루머.
결정적인 증거만 잡으면 잘라버릴 명분으로도 충분했다.
톡, 토톡─
당장 톡으로 조영수 기자님께 정보를 전달했다.
"마 감독님, 감사합니다."
"감사는요."
* * *
얼마 후, 「방탈출 메이즈」 첫 촬영일.
엄청난 스케일의 세트장 앞에서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다.
소미는 함께 입장하면서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관찰했다.
'미친, 진짜 미로가 있네.'
오늘 방송에서 미로를 활용할지는 모르겠지만.
제작비로 뽕을 뽑으려면 시청률 좀 나와야겠다.
"광고비로 수천 단위씩 땡겨야...."
"매니저 오빠, 여기 대형 풍선이 좀 수상하지 않아요?"
".... 니가 제일 수상해."
소미는 팔짱을 끼고 내게 말했다.
"제가 왜요?"
굳이 코디님이 추천해주신 옷을 마다하고 제 옷을 입고 와서.
샤랄라한 공주님 풍 원피스에 레이스가 덕지덕지 달려있었다.
"그거 뭔데, 무슨 옷이 거적때기 같냐."
"엄마가 사주셨어요."
".... 그래서 그렇게 엘레강트했구나?"
"그래요?"
"응. 나중에 딸 낳으면 꼭 사서 입혀주고 싶어."
"어디서 샀는지 엄마한테 물어볼게요."
"그래. 고마워."
촬영장에는 이미 도착한 지니어스들이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세트장 밖에서 지켜볼게."
"넹. 편하게 다녀올게요."
".... 너무 편하게는 말고."
오늘 촬영이 마지막은 아니었으면 좋겠어.
다음 주 이 시간에도 Tvm에 오고 싶다고.
터벅, 터벅─
나는 김지훈 감독님 뒤편에서 세트장을 물끄러미 지켜봤다.
자물쇠가 걸린 방이 총 10개.
방탈출 수단은 퍼즐로 찾겠지.
"소미 씨, 반가워."
"언니! 안녕하세요!"
"근데 그 옷은...."
"엄마가 사줌."
".... 옷 예쁘네."
각자 인사를 주고받으며 눈치를 살피는 10명의 출연자들.
그 중앙에서 대꾸도 없이 무표정하게 서 있는 딜러 한 명.
'근데 이거 뭔가....'
촬영장 밖에서 이미 6명 정도가 크루를 구성한 느낌인데.
왜 황인우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있을까.
몇몇 겉도는 사람을 제외하면 절반 정도.
'.... 쎄한데.'
소미는 아무것도 모르고 프로게이머 루이팽과 대화를 나누었다.
"에휴, 황인우 씨가 결국."
주변 스탭들이 나누는 대화에 집중했다.
"밖에서 술 한잔한 거 맞죠?"
"그런 거 같아."
촬영장 밖에서 친분을 쌓는 건 반칙 아닌가.
중딩 아이돌이 따라가서 술 마실 수도 없고.
"방탈출 메이즈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첫 번째 게임은 베팅 게임니다."
딜러는 첫 번째 게임, 본경기의 시작을 알렸다.
각자의 방에서 정보를 모아서 베팅하는 게임.
"사실상 팀전인가."
베팅할 수 있는 칩이 많을수록 유리한 게임.
그 순간, 황인우는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역시 이런 게임에서 존목질은 패시브냐.
'저런 치사한 쉑.'
황인우 크루를 제외한 4명을 모으기 시작하는 소미.
나는 간지러운 뒤통수를 긁으며 모니터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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