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로 오해받는 연예계 생활-21화 (21/200)

[21] 길조(2)

본격적인 2차 경연 준비를 하러 밴에 오르고,

예지는 슬쩍 눈길을 돌려 매니저를 바라봤다.

'역시 믿음직스러워.'

디스랩 따윈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세상 편안한 표정.

아니, 오히려 위기를 기회로 삼으려는 듯 도전적인 눈빛.

그 얼굴을 보니 불안감 따위는 눈처럼 녹아버렸다.

"매니저님. 무슨 선물 받고 싶...."

"응?"

"아니, 아니에요!"

"???"

오늘 정산 날이라 선물을 드리고 싶은데.

무슨 선물이 좋을지 밤새도록 고민했다.

'으으, 돈만 있었으면 차라도 한 대 뽑아 드리고 싶지만.'

평소에 갖고 싶던 물건을 선물해 드려야지.

분명히 매니저님도 받으면 기뻐하실 거야.

이내, 멤버들은 정수호 매니저의 케어를 받으며 목적지로 향했다.

서태성 프로듀서님의 소속사, 턴업 레코즈.

힙합 아이돌을 키우는 국내 정상급 엔터였다.

"얘들아, 내리자."

"네에."

평소와 다를 게 없는 일상.

하지만, 솔라 멤버들 주변에서 변화는 확실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서태성 프로듀서님이 이렇게 반겨주지 않았겠지.

"오, 솔라 멤버분들 왔군요."

두 번째 경연곡을 프로듀싱하기 위해 모인 자리.

벌써 <탑아이돌> 제작진은 카메라를 설치했다.

곧, 예지는 멤버들의 눈치를 살피며 힘차게 인사를 건넸다.

"둘 셋, 안녕하세요! 태양을 수호하는 솔라입니다!"

"하하. 구호 좋네요."

"둘 셋, 감사합니다!"

".... 그거 그만해도 돼요."

"둘 셋, 알겠습니다!"

"...."

곧이어, 태성의 지시에 따라 다이애나는 천재 모먼트를 마음껏 뽐냈다.

"여기가 댄스 브레이크 타임."

"주희 언니가 혼자 30초 동안 추는 거죠?"

"아니, 경연인데 45초는 있어야지."

"네! 그럼 스트링 옆으로 좀 땡겨볼게요."

"역시, 말이 통하네."

함께 실시간으로 편곡을 진행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감동, 그 자체였다.

데뷔한 지 고작 한 달 만에 탑 프로듀서와 공동 작업을 하고 있었으니.

"다이애나, 이번에 작곡자로 같이 이름 올릴 거야."

"제, 제 이름을요?"

"그야 당연하지. 같이 작업하니까."

"아...."

국내 탑 프로듀서가 공동 작곡가로 이름을 올려줄 정도라니.

'우리 넷째가 원래 잘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연습생 시절에는 전혀 재능을 발견하지 못했는데.

이 천재성을 혼자 발굴한 정수호 매니저님은 대체.

'매니저님은 정말....!'

그저 항상 믿어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건만.

어떻게 항상 이렇게 최고의 환경을 제공하실까.

스윽─

예지는 슬쩍 시선을 돌려 작업실 한쪽에 서 있는 수호를 확인했다.

얼마나 집중하고 있으면 뒷목을 긁적이고 있는 줄도 모르실까.

날카로운 눈빛으로 작업하는 모습을 세심하게 살피고 있었다.

'그래. 우리 매니저님과 함께라면.'

지금 당장 모든 걸 잃고 다시 새로 시작한다고 해도 전혀 두렵지 않았다.

밑바닥부터 시작해도 지금까지처럼 순식간에 정상 궤도에 올려주시겠지.

자신처럼 고음도 못 내는 가짜가 아니라, 진짜 천재니까.

언제나 멤버들의 가능성을 믿어주는 최고의 매니저니까.

"저기, 정수호 매니저님."

"네. 프로듀서님."

쉬는 시간, 서태성 프로듀서는 수호에게 슬쩍 말을 걸었다.

"제이콥 문제는 죄송합니다. 제 탓인 것 같군요."

"아뇨, 괜찮습니다."

<탑아이돌> 첫 번째 경연 방송이 나가기 직전.

다시 한번, 대중의 관심은 솔라에게 집중되었다.

"2화 방송 때 주목받으면 오히려 좋죠."

"아, 첫 번째 경연 방송 말씀이시군요."

"네. 맞아요."

예지는 새삼 뿌듯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매니저님이 믿어주신 덕분에 1등을 찍었으니.

'디스는 그냥 잊어버리자.'

제이콥은 각종 커뮤니티에서 가루가 되도록 공격받고 있었다.

겨우 곡 작업 한번 틀어져서 어린 소녀를 디스했다는 식으로.

원래 그런 걸 신경 쓰는 사람은 아닌 것 같지만.

* * *

제이콥의 디스곡 발표 이후, 이틀 차.

며칠 사이에 상황은 묘하게 흘러갔다.

"이거 길조 맞냐."

그동안 벼르고 있던 래퍼들은 이때다 싶었는지 죄다 어그로 끌렸다.

제이콥을 따라 아이돌 래퍼를 욕하기 시작하는 언더 래퍼들.

이에, 분개하며 맞디스로 대응하는 아이돌 힙합 그룹 멤버들.

"쩨트킥도 참전했네."

우리 회사 아이돌이니까 당연한 건가.

규모가 점점 커지는 게 실감이 났다.

"아 걸그룹 키우기 왤케 빡세냐."

배우 때는 이러지 않았는데, 자꾸 무슨 사건이 터지는 기분이야.

'뭘까.'

딱히 상황이 나빠진 건 아닌데 시원한 느낌도 아닌지라.

내가 뭔가 놓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뒤통수가 근질근질할 때는 항상 잘 풀렸으니.

툭─

그때, 뒤쪽에서 누군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누구.... 아 실장님!"

"정수호 매니저."

"네?"

공 실장님은 짐짓 근엄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이번에도 뭔가 계책이 있는 거지?"

"네?"

계책이라뇨, 제가 무슨 책사도 아니고.

"디스 배틀 말이야. 저번처럼 무대응으로 가고 있잖나."

"아, 그게."

그냥 아무 생각이 없어요.

"지금 일부러 기다리는 거 맞지? 한방에 터트리려고."

".... 비슷해요."

"하하. 역시 정수호!"

뜸을 너무 많이 들이는 거 아닌가.

<탑아이돌> 2화를 앞두고, 화제성을 얼마나 키우는지 모르겠다.

대중은 첫 번째 경연 방송에서 솔라의 실력에 얼마나 기대할까.

"요즘 공 대표님께서도 솔라의 성장을 관심 있게 보고 계시거든."

"오, 정말요?"

"물론이지."

공 실장님의 아버지.

이 회사의 공동 대표.

"조만간 식사 자리 한번 잡자고."

"네. 실장님."

저것들끼리 디스 배틀을 하든 말든 신경 끄자.

그냥 우린 두 번째 경연만 열심히 준비하면 돼.

드르륵─

잠시 후, 사무실을 벗어나 멤버들이 있는 연습실로 움직였다.

다들 안무를 짜고 연습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특히, 주희는 댄스 브레이크 파트를 준비했다.

"주희야, 힘이 넘치네."

"후우, 형님 오셨어요?"

"예지는 안 보이네."

"엄지유 매니저님이랑 같이 뭐 사러 갔어요."

"그래?"

대화를 마치고, 주희는 다시 혼자 춤을 추기 시작했다.

남자도 하기 힘든 묘기 수준의 브레이킹 댄스.

내가 모르는 분야라 딱히 조언해줄 건 없었다.

'우리 애들, 고생이 많네.'

비보잉 쪽에서 유명한 춤 선생님을 구해주고 싶었지만.

B-Girl, 여자 브레이킹 댄서 선생은 돈으로도 못 구했다.

"형님, 제 파트가 좀 심심하지 않아요?"

"어....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역시, 매니저님 눈에도 보이는구나."

"...."

몰라. 안 보여.

알아야 보이지.

'.... 청순 걸그룹 어디.'

화려한 자세를 취할 때마다 양주희의 근육이 빵빵하게 부풀었다.

"흐음, 형님. 그냥 트월킹을 넣을까요?"

"엉덩이 흔드는 그거?"

"네!"

진정해. 너 청순 걸그룹이라니까.

"음, 안무가님께 의논 드려봐."

"오케이!"

슬쩍 시선을 돌려, 연습실에 있는 다른 멤버들을 확인했는데.

다이애나는 홀로 구석에 쪼그려 앉아서 스마트폰을 두드렸다.

'으휴, 소심해서는.'

뭐를 그렇게 혼자 열심히 쓰냐.

"다이애나?"

"네?"

화들짝 놀라며 쓰던 걸 멈춰 뒤로 숨기는 다이애나.

마치 야동 보다 걸린 초딩처럼 눈을 크게 치켜떴다.

"뭔데 그래?"

"...."

이내, 한숨을 푹 내쉬고 내게 스마트폰을 건네는 그녀.

-미국이었음 벌써 총 맞고 뒤졌을 제이콥. 한국에서 살았는데 이름은 왜 제이콥? 덕배야, 도박하다 걸렸는데 손모가지 왜 멀쩡해?

이게 내가 알던 그 소심한 다이애나가 맞나.

뒷 내용은 차마 눈으로도 읽을 수가 없었다.

욕설이 너무 심해서 입에 담기도 민망했으니.

"너도 맞디스 하려고?"

"해도 돼요?"

".... 하기만 해."

"오."

순간, 뒤통수에서 스멀스멀 간지러운 기색이 느껴졌다.

"하라는 뜻이죠!?"

"...."

당장 아니라고 해야 하는데.

갑자기 왜 뒷목이 가려운지.

아직 계약서에 잉크도 안 마른 신인 걸그룹인데.

굳이 이런 진흙탕 싸움에 끼어들 필요가 있을까.

'아, 혹시 이거였나.'

이제 어느 정도 내 촉을 활용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번 똥촉의 결과는 다이애나의 손에 달렸을 지도.

'뭔가 찝찝하더라니.'

어느새 주변에 모여든 멤버들이 한마디씩 거들었다.

"다이애나, 보통 하기만 하라는 말은 하지 말라는 뜻이야."

"아우. 한국말 어려워."

"우리는 걸그룹이니까. 하고 싶은 거 다 할 순 없는 거야."

"으응, 미안."

나는 매니저니까. 얘들 키우려면 촉을 믿지 말아야 해.

역시나, 내 예감이 가리키는 반대로 가는 게 정답이다.

".... 그냥 해."

"네?"

"맞디스, 하라고."

"진짜요!?"

"어. 대신 잘해."

"네!"

어차피 본부장님께 전권을 위임받았으니.

마음 편하게 멤버들을 밀어줄 수 있었다.

"그거 때문에 경연 준비 소홀히 하면 취소야."

"열심히 할게요!"

멤버들은 동그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탑아이돌 2화 방송 나가면 바로 맞디스곡 발표하자."

"네! 그때까지 준비할게요!"

당연히 방송이 나가자마자 화제성을 끌어모을 터다.

첫 번째 경연에서 솔라는 평점 1위를 차지했으니까.

드르륵─

그때, 예지는 연습실 문을 활짝 열고 내게 다가왔다.

커다란 곰 인형을 끌어안고 당당하게 다가와 말했다.

"매니저님, 이거 받으세요!"

"어, 이게 뭐야?"

"선물이요!"

"나한테? 곰인형을?"

"네! 정산금 받으면 뭐 사드릴지 밤새도록 고민했어요!"

"와, 밤새도록."

우리 예지, 선물 고르는 센스는 진짜 보통이 아니구나.

원래 한국에서 예쁜 여자들은 센스가 좀 없어도.

보통은 좋은 남자도 잘 만나고 결혼도 잘하니까.

"너.무.행.복.하.다."

"정말요? 그럼 저도 행복해요! 헤헤."

".... 예지 생일이 언제더라?"

"10월이에요!"

"응. 기대해."

뭘 사줘야 잘 사줬다고 소문이 날까.

* * *

<탑아이돌> 2화 방영과 함께 솔라의 주가는 수직 상승했다.

첫 방 시청률도 상당했고, 화제성은 최상위권.

연예계 관계자라면 관심이 안 갈 수가 없었다.

마침내, 베일에 싸여있던 솔라의 실력이 드러났다.

천재 프로듀서 다이애나와 음색 천재 김예지의 만남.

기자들은 한마음 한뜻으로 비슷한 기사를 쏟아냈다.

딸깍─

서태성은 너튜브 핫클립에 올라온 솔라의 경연 영상을 클릭했다.

"역시, 대단하다니까."

미리 선점하지 않았으면 함께 작업할 기회가 왔을까.

최근 화제성은 솔라를 따라갈 아이돌 그룹이 없었다.

"음원 차트도 역주행하고 있고."

<나만 봐> 챌린지의 유행.

너튜브 핫클립 조회수 폭발.

이대로만 잘 흘러가면 두 번째 경연도 무리 없이 끝낼 수 있을 것 같은데.

다만 한 가지 걸리는 게 있다면, 다음 경연에서 댄스의 비중이 높다는 것.

"아오, 이럴 때 홍주 네가 도와주면 좋을 텐데."

"아, 오빠 또 그런다."

인기 걸그룹 비걸즈를 가르친 천재 안무가.

프리랜서라 턴업 레코즈와 자주 협업했다.

"나는 삘이 안 꽂히면 같이 일 못한다니까."

"솔라 경연 안 봤어? 조회수 벌써 3백만인데?"

"봤는데, 너무 애기들이라."

"...."

마이웨이라 본인 마음에 들지 않으면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뭐라고 해야 하나, 와일드한 맛이 없어서 오글 거려."

".... 청순 걸그룹이니까."

"어. 그래서 싫어."

사실, 솔라의 이미지는 오직 남성 팬들을 잡기에 최적화됐다.

공주님처럼 아름다운 소녀들이 보호 본능을 자극했다.

경연도 러블리하고 부드러운 감성 충만한 무대였으니.

"엥? 이거 뭐냐."

홍주는 너튜브 바다를 헤엄치다 특이한 영상을 발견했다.

《제이콥 존만아 귀 씻고 들어라》

-8시간 전

-조회수 210만 회

-좋아요 32만, 싫어요 1백

-댓글 1.2만

단순 어그로 영상이라고 하기엔 조회수가 너무 높았다.

-Anna with D.

새로 만든 시그니쳐 사운드와 함께 터져 나오는 빡센 비트.

랩을 뱉기도 전에 강렬한 사운드와 함께 기선을 제압했다.

"호오, 역시 랩은 트랙이 반이지."

"이야, 비트 죽이네."

"근데 랩이...."

입에 담기도 힘든 욕설을 영어와 한국말로 퍼붓는 맞디스곡.

소심하다는 핑계로 꾹꾹 눌러냈던 울분을 마음껏 표출했다.

"와, 청순 걸그룹 커트라인 엄청 높네."

"...."

홍주는 자세를 고쳐 앉으며 디스곡에 집중했다.

직접 찍은 비트 위에서 유려하게 펼쳐지는 속사포 래핑.

수준급의 독한 가사에, 제이콥에 못지않은 랩 실력까지.

확실히, 그녀의 실력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게 본토 힙합인가 뭔가 그건가?"

"와, 맵다 매워."

제이콥 입장에선 자존심 꽤나 상하는 일일 것이다.

갓 데뷔한 걸그룹 멤버를 상대로 시비를 걸었는데.

"어이구, 제이콥 울겠다."

비겨도 지는 싸움.

딜교 개손해 봤네.

"오빠, 다이애나가 원래 이렇게 화끈해?"

"글쎄. 좀 소심한 줄 알았는데."

"솔라 안무 창착, 한번 도와줘 볼까?"

"오, 진짜?"

"어. 재밌을 것 같아."

갑자기 없던 관심도 생기려고 해서

* * *

한편, 같은 시각.

다이애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조회수를 확인했다.

엄지유 매니저의 팬 페이지 직캠 계정에 올린 영상 하나.

정수호 매니저님도 굉장히 만족스럽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이야, 욕을 아주 야무지게 했네. 아주 잘했어. 칭찬해."

"감사해요! 헤헤."

".... 솔라가 청순 걸그룹인 거는 알지?"

"네! 제가 청순하게 욕했어요!"

"...."

역시, 정수호 매니저님은 항상 응원해 주신다.

무슨 일이든 아주 잘했다고, 그렇게만 하라고.

"두 번 청순하면 큰일 나겠네."

"오, 역시! 저는 뭐든 큰 게 다 좋아요!"

"...."

다이애나는 싱글벙글 웃으며 너튜브에 달린 댓글을 확인했다.

"저기, 그런데요."

"응."

"사람들이 저보고 소심한데 반전매력 있대요."

"맞잖아."

그녀는 자신을 머리카락을 비비 꼬며 말을 이었다.

"으음, 저 소심한 거 아닌데."

"괜찮아. 나쁜 거 아냐."

".... 진짜 아닌데."

그냥 한국말이 어려워서 잘 안 하는 건데.

'욕을 해도 칭찬해주셔.'

이제 한국어 공부 열심히 해야지.

좋은 랩으로 칭찬 많이 받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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