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대형 신인(3)
엔넷 방송국 뮤직스타, 최종 리허설 현장.
뮤직스타 오프닝 무대를 장식할 여신 컨셉의 소녀들.
<나만 봐> 무대를 보며 박 팀장님의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팀장님."
-너 어떻게 한 거야?
"네?"
팀장님은 한껏 격양된 어조로 대화를 이어갔다.
-너 뮤비에 3주 메인 무대까지 땄다면서?
"아, 네. 팀장님."
-미쳤네. 피디님이 친척이라도 돼?"
"아니요. 그런 건 아닙니다."
-근데 어떻게....?
<탑아이돌> 섭외를 수락하면서 얻은 부산물이었다.
방금 전화에서 실장님께서도 만족스러워하셨으니.
"운이 좋았어요. 실장님께는 방금 보고드렸습니다."
-실장님께서 완전히 네 실적이라고 하시던데!?
"그게, 구 PD님께서 캐스팅 조건으로...."
-크하하. 아무튼 잘했어.
박 팀장님은 호탕하게 웃으며 말을 끊었다.
-나 없이 혼자서도 잘하네! 앞으로도 이렇게만 해!
"아뇨, 그런 게 아니라."
-잘했다고.
"...."
안 들을 거면 왜 물어보는 거야.
"팀장님, 지금 솔라 리허설 끝났어요."
-그래. 미팅 끝나고 엔넷 들를게.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무대에서 내려오는 멤버들을 확인했다.
곧장 솔라 멤버들과 함께 복도를 지나 대기실로 향했다.
길목에서 마주치는 모든 스탭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이내, 예지는 은근한 어조로 내게 질문을 건넸다.
"매니저님, 오늘 무대 어땠어요?"
"뭘 물어."
원래 뜨고 나서는 똥촉도 옅어지기 마련이다.
이제 그냥 익숙해서 무덤덤하게 볼 수 있었다.
".... 엄청 좋았지."
"하아, 다행이다."
얘는 왜 내 칭찬을 그렇게까지 신경 쓸까.
장화 신은 고양이처럼 눈빛을 반짝이면서.
"어라....?"
대기실에 도착했는데, 벽에 붙은 이름표가 바뀌었다.
[4th 아이솔레이션]
얼마 전, 대형 엔터에서 데뷔한 신인 걸그룹.
그새 방의 주인이 다른 아이돌로 바뀌었다.
'설마....?'
혹시나 싶어서 근처에 있는 가장 큰 방을 확인했는데.
[3rd 솔라]
".... 방 바뀌었네."
"어, 여기 오프닝 무대 대기실인데."
"맞아. 오늘 생방 때 너희가 서는 순서야."
"엥, 어떻게....?"
뮤직스타는 특히 오프닝 스테이지에 힘을 실어주었기에.
최종 1위 후보, 두 무대를 제외하면 가장 메인 무대였다.
"일단 들어가 있어. 선배님들께 인사드릴 거야."
"아, 네!"
아직도 정신 못 차리는 멤버들을 대기실에 들여보내고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방송국 놈들."
왜 일을 이렇게밖에 못 하냐.
각 소속사들이 순서와 분량에 얼마나 민감한지 알고 있었다.
무대뿐만이 아니라 대기실까지 바꿔버리면 나는 뭐가 되냐.
음방 스케줄은 그 누구 하나 스트레스 안 받는 사람이 없었다.
방송국의 갑질 아닌 갑질에, 의상과 무대 준비는 수백만 원.
더군다나, 음방 스케줄은 보통 새벽 2시부터 오후 6시까지.
그런데, 대기실까지 바뀌었으니 이 팀은 얼마나 짜증이 났을까.
"에휴, 어쩔 수 있나."
이따 같이 인사 돌릴 때 예의라도 갖춰야지.
대형 엔터는 눈치껏 띄워줄 필요가 있어서.
드르륵─
이내, 대기실 문을 열고 멤버들의 상태를 확인했다.
"얘들아, 괜찮아.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꺄하하. 대박이야!"
"여기 엄청 넓어!"
"우리가 어떻게 오프닝 무대?"
".... 퉷."
그냥 아무 생각이 없구나.
이러니까 망할 것 같았지.
"매니저님, 괜찮으세요?"
그 와중에 예지는 눈치를 살피며 내게 질문을 건넸다.
"표정이 어두우셔서요."
"그런 거 아냐."
그래도 리더는 리더구나.
이렇게 사려가 깊다니까.
"매니저님이 오프닝 무대 받아오신 거죠?"
"어? 아, 그렇긴 하지."
"역시 우리 매니저님은...."
"응?"
솔직히 나는 별거 안 했어.
PD 혼자 북 치고 장구 쳤지.
"정수호 매니저님이 일을 엄청 잘하셔서 잡아주신 거잖아요!"
"...."
내가 일을 잘한 것 같지는 않고.
그냥 PD님이 억지로 꽂아줬어.
"이게 다 너희가 잘해서 그런 거야."
"정말요?"
"당연하지. 계속 지금처럼만 해."
"네에!"
음악 방송 PD들 사이에는 무언의 합의가 있다.
'급'에 맞춰서 순서와 분량을 정하려는 불문률.
솔라가 어떻게 오프닝 무대에 섰는지를 떠나서, 요즘 핫한 신인이 메인 순서를 단번에 꿰찼으니.
다른 음방 PD들도 일단 눈길이라도 한 번 더 주겠지.
세 번째, 네 번째 메인 무대에 서는 건 어렵지 않았다.
"매니저 오빠."
그때, 소미가 슬그머니 다가와 입을 열었다.
당연히 무대 순서에 대해 말할 줄 알았는데.
"저 오늘도 학교에서 야만전사라고 조리돌림당했어용."
".... 그것도 관심이야."
"저 중 3이라고요. 감수성 풍부한."
"응. 그렇구나."
그냥 좀 받아들여.
이제 어쩔 수 없어.
"혹시 다음 곡에서 뮤비 찍어도 똑같은 거 아니겠쥬?"
"글쎄. 대표님이 정하셔서."
"으아아."
"자자, 조용히 하고."
일단 방 빼앗긴 사람들 먼저 찾아가서 고개라도 숙여야겠다.
누가 잘못했는지는 둘째치고, 어찌 됐든 피해자가 존재하니까.
"얘들아, 선배님들께 인사드리러 가자."
"네에!"
* * *
유능한 매니저의 몸값은 무엇으로 결정될까.
음방 PD들과 친분을 쌓고, 분량과 좋은 순서를 확보하는 능력.
비싼 값을 치르고 팀장급을 스카웃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경현식 팀장은 수호를 떠올리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정수호라고 했나.'
빅 4 엔터 중 하나인 DK 뮤직에 스카웃되었으니.
이쪽 바닥에서는 자신도 먹어주는 실력일 텐데.
'그 친구는 진짜 보통이 아니었어.'
그러니 아이솔레이션의 오프닝 무대를 빼앗았겠지.
큐앤지 레이블 매니저 중에 이렇게 일을 잘하는 친구가 있었을 줄이야.
커피숍에서 구 PD를 세 치 혀로 구워삶는 실력은 가히 하늘의 경지였다.
"오빠, 이게 말이 돼요?"
"아, 우리 오프닝 가져갔네."
"어떻게 솔라가 오프닝 무대를 서지?"
"...."
데뷔하자마자 무서운 속도로 성장해서 대형 엔터 급으로 올라선 솔라.
정수호 매니저는 그녀들의 위치를 단 하루 만에 한 단계 더 격상했다.
"후우, 탑아이돌 출연권으로 밀당을 기가 막히게 하더라고."
"...."
고작 로드 매니저 주제에 솔라의 스케줄 조정권을 쥐고 흔드는 인간.
그렇지 않으면 앉은 자리에서 <탑아이돌> 출연을 결정할 순 없었다.
"그거 우리도 출연 제의받았잖아."
"그랬지."
대형 엔터에서 나갈 이유가 없기에 단번에 거절했는데.
"으으, 그래서 우리도 그거 출연하고 싶다고 했잖아요."
"괜히 나가서 망신만 당하면 손해가 커."
"우리 실력이 그것밖에 안 돼요?"
"에이, 그런 게 아니라...."
작년에 데뷔한 신인 아이솔레이션의 리더.
나수린은 경 팀장의 자존심을 살살 긁었다.
"팀장님, 회사에 그런 말 할 위치는 아직 안 되죠?"
"어허, 내가 그것밖에 안 될 것 같아?"
"그럼 우리도 탑아이돌 출연할래요."
".... 자존심 상했구나?"
"에이, 제가요? 솔라한테?"
"...."
그렇게 말하면서도 수린의 눈은 묘한 열기로 불타올랐다.
시청자들은 단순해서 음방에서 눈에 띄는 순서를 인기의 지표로 삼는다.
몇몇 팬들은 오늘부터 솔라를 아이솔레이션보다 윗 단계로 생각하겠지.
"우리도 출연할게요. 탑아이돌."
"하아, 실장님께 말씀드려볼게."
똑, 똑─
그때, 문밖에서 누군가 노크를 두드렸다.
"네. 들어오세요!"
수린은 프로답게 밝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는데.
이어서, 솔라 멤버들을 보더니 표정이 굳어졌다.
"둘 셋, 안녕하세요! 태양을 수호하는 솔라입니다!"
"...."
인사 구호 뭔데.
고작 1년쯤 후배지만, 각 팀의 매니저들이 있는 자리.
리더는 웃는 얼굴로 솔라 멤버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예지 씨, 우리 샵에서 같은 선생님이 머리 해주죠?"
"네? 아, 네! 선배님."
"아침에는 인사도 안 해서 제가 후배인 줄 알았네요."
"앗, 아까도 인사드렸는데...."
"어머나, 목소리가 작아서 제가 못 들었나 봐요."
".... 죄송합니다."
일부러 꼽을 주니까 솔라 측 매니저는 눈살을 찌푸렸다.
'뭐, 어쩔 건데.'
드림 에이전시면 모를까, 큐앤지 레이블과 DK 뮤직의 격차는 실로 어마어마했다.
큐앤지 같은 중소 엔터의 신인에게 밀린다는 건 말이 안 되지.
빅 4급 엔터에서 데뷔조가 되는 과정은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솔라, 탑아이돌에 나가신다면서요?"
"아, 그게.... 회사에서 시키면요."
"곧 보겠네요."
"네?"
아이솔레이션의 리더는 속으로 이미 출연 의지를 굳혔다.
누구처럼 회사에서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인형은 아니었다.
"우리도 나갈 거라서요. 탑아이돌."
"...."
옆에서 듣고 있던 경 팀장은 한숨을 내쉬며 눈썹을 매만졌다.
* * *
시간이 흘러,
솔라의 팬클럽 규모는 눈에 띄게 볼륨을 키웠다.
새벽 음방 출근길에 응원하는 팬들도 있을 만큼.
"초동 20만 장...."
앨범 발매 후, 일주일 동안의 판매량을 초동이라고 부른다.
음원 순위 50위권에서 수십만을 찍을 만큼 K팝이 성장했다.
이래서, 연예인이 뜨고 지는 건 진짜 예측이 안 돼.
이제는 너무 스케줄이 많아서 도저히 혼자 감당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오늘만 해도 새벽부터 멤버들 챙기고, 밤 11시까지 일정이 가득 찼으니.
"그래도 오늘 신입 뽑는다니까."
새로 뽑힌 매니저는 눈치만 좀 있었으면 좋겠네.
띠리리링─
사무실에 도착해 짐을 풀고 있는데, 아침부터 재하의 여동생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어, 지유야 오랜만...."
-수호 오빠! 나 오늘 면접이야.
"무슨 면접?"
-우리 오빠가 말했다며. 큐앤지 레이블 2본부 매니저.
"그러지 말고. 그냥 재수해서 다시 수능 보는 게 어때?"
-절대 싫어!
결국에는 지원하는구나.
아무리 중소 엔터라지만.
"대학도 안 가고 붙긴 힘들 텐데?"
-나 인턴 경력 있잖아.
"그래. 어쨌든 면접 마치면 전화해. 퇴근하고 한번 보자."
-오케, 연락할게!
최근에 매니저 입사 지원자가 늘었다고 들었다.
원래 보이그룹 원툴이었지만, 솔라까지 뜨면서.
'아무래도....'
탑아이돌 때문에 더 화제가 되는 것 같아.
이내, 사무실 의자에 앉아서 관련 기사를 확인했다.
엔넷 방송국과 사전 미팅도 깔끔하게 진행되었기에.
[엔넷 탑아이돌 출연 확정! 솔라, 아이솔레이션, 케이돌스, 비걸즈....]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탑아이돌>의 스케일.
DK 뮤직이 합류하더니 스노우볼이 굴러갔다.
몇몇 기자들은 4세대 신인 걸그룹들 간의 정상 결전이라고 떠들어댔다.
"어쩌다 이렇게 판이 커졌냐."
뒤통수가 가려운 듯한 묘한 감각이 서서히 밀려왔다.
여기서 솔라가 어떻게 살아남아.
객관적으로 루나도 못 이기는데.
쎄함을 애써 무시하고, 간지러운 뒷목만 벅벅 긁어댔다.
"저기, 매니저님."
순간, 뒤에서 들려오는 여성의 음성을 듣고 고개를 돌렸다.
"아, 유미 씨."
솔라 멤버들의 전담 스타일리스트.
유미 씨도 최근에 일감이 급증했다.
"어제 드마리아에서 협찬 들어왔거든요."
"오, 그래요?"
"네. 팀장님이 전화를 안 받으셔서."
"서류 저한테 주세요. 전달해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중저가 브랜드에서 공식적으로 들어온 협찬.
연예인의 인기를 측정하는 쉬운 지표 아닌가.
'진짜 많이 컸구나.'
이제는 망할 것 같다느니, 안 될 것 같다고 헛소리하면 안 되겠네.
벌써 커뮤니티 사이에선 4세대 대표 걸그룹 중 하나로 평가받는데.
솔라는 더이상 무시당할 위치가 아닌 거야.
지금도 열심히 연습하고 있을 테니까.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연습실로 향했다.
이내, 연습실에 홀로 남아 있는 막내를 보고 질문을 건넸다.
"소미야, 언니들은?"
"녹음실이요."
"아 지금 작곡가님 오셨겠구나."
"넹."
<탑아이돌> 경연을 대비한 편곡 작업.
제작진 측은 멤버들 중 적어도 한 명에게 프로듀싱 능력을 요구했다.
다른 참가자들도 첫 번째 경연을 대비해서 급하게 공부하고 있겠지.
"근데.... 너는 혼자 왜 여깄어?"
"학교 숙제요."
우리 잼민이 공부하고 있었구나.
"이거 좀 어려운데에...."
은근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막내.
한국대 다닐 때 과외 경력도 꽤 되니까.
"수학이네? 내가 한번 봐줄게."
"오 진짜요? 개꿀."
"소미야, 걸그룹이 개꿀이 뭐야."
"개이득."
"...."
우리 막내, 어리긴 어리구나.
중딩 수학 문제 정도는.... 어라?
"뭐냐, 왤케 어려워."
"아, 올림피아드 문제긴 한데."
".... 너 이런 거 풀어?"
"넹."
내가 문과만 아니었으면 풀어줬을 텐데.
"문송합니다."
"괜찮아요."
내가 게임 할 때부터 알아봤지.
스트레스 잘 풀어줘야 한다고.
"소미야, 먼저 녹음실 갈 테니까 숙제 끝나고 와."
"넹."
댕청미 있는 지니어스라니, 확실히 흔치는 않네.
* * *
큐앤지 레이블 녹음실.
윤성현은 다이애나의 작업물을 보면서 감탄사를 뱉었다.
<나만 봐>를 새롭게 해석해 그녀만의 편곡을 진행했다.
"크으, 비트 죽인다."
큐앤지 측에서 자신에게 제안한 전속 계약에 응할 만한 이유가 생긴 느낌.
대충 숟가락 얹는 아이돌 말고, 진짜 재능 있는 친구와 작업할 수 있었으니.
"다이애나 씨, 대박이네. 천재였구나?"
"맞아요. 우리 다이애나 천재예요!"
"하하."
성현은 다이애나를 칭찬하는 리더를 보며 아빠 같은 미소를 지었다.
'이게 아티스트지.'
원래 편곡은 멜로디를 짜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어려웠다.
음악 이론은 물론, 센스와 감각까지 요구하는 작업이었기에.
'탑아이돌 나가면 다 씹어먹겠네.'
원래 프로듀싱 능력은 무대 위에서 더 빛을 발하는 법이지.
각종 세션과 음향을 조화롭게 녹여내는 비트 메이킹 천재.
아이돌 판에서 이 정도 실력자는 손에 꼽을 만큼 희귀했다.
배우려는 자세가 기특해서 그녀의 질문에 몇 번 대답해 준 게 전부였는데.
'이미 편곡 실력은 나보다....'
<탑아이돌> 제작진 측에서 요청한 무대용 편곡을 준비하는 과정.
자존심 상하지만, 다이애나가 만든 비트는 이미 원곡을 뛰어넘었다.
"이래서 연습생 6개월 만에 데뷔했구나."
"네! 맞아요."
예지는 자식을 칭찬하는 부모처럼 추임새를 붙였다.
그 모습에 피식 미소를 짓고, 다시 입을 떼려는 찰나.
똑, 똑─
순간, 정수호 매니저가 노크를 두드리고 녹음실에 들어왔다.
"오, 안녕하세요. 매니저님."
"안녕하세요."
윤성현 작곡가는 인사를 건네며 새삼스러운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솔라를 단숨에 라이징 스타로 키운 천재.
그의 엄청난 안목에 존경심이 생겨났다.
애초에, 루나가 아니라 솔라를 선택한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다이애나 재능을 알아본 거야.'
심지어, 그녀와 함께 작업을 진행한 자신보다도 먼저 발견하다니.
그게 아니라면, <탑아이돌>에 나가는 자살 행위를 할 리도 없었겠지.
정수호 매니저가 솔라를 얼마나 힘들게 키웠는데 무리수를 뒀으려고.
곡 잘 쓰는 작곡가.
노래 잘 부르는 가수.
춤 잘 추는 안무가.
편집 잘하는 디렉터.
그외, 수많은 예술적 영감을 아득히 뛰어넘는 압도적인 '안목 천재'.
대중 예술에서 성공을 예측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데.
정수호 매니저는 그 어려운 미션을 보란 듯이 달성해 냈으니까.
이미 큐앤지 레이블에서도 그 재능을 알아보는 듯했다.
그의 선택을 믿고 <탑아이돌> 출연에 동의한 걸 보면.
"저기, 윤성현 작곡가님?"
"네? 아, 네."
"멍하니 계셔서."
"아...."
그의 꽁무니라도 쫓다 보면 콩고물이라도 얻어먹을 수 있으려나.
천재 프로듀서가 '솔라'라는 날개를 달았으니 어디까지 날아갈까.
"정수호 매니저님, 저 결심했어요."
"네? 무슨...."
"저 그냥 큐앤지랑 전속 계약하려고요."
"엥? 굳이 중소 엔터랑 할 필요는 없을 텐데요."
"여기도 나쁘지 않아요."
최소한 천재가 두 명은 있으니까.
"퍼블리싱이 낫죠. 차라리 건당 계약이 몸값 올리기 좋아요."
"아뇨, 말리지 마세요."
".... 안 말려요."
정수호 매니저는 쓴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럼 저는 이만...."
"매니저님, 이거 다이애나가 만든 트랙인데. 들어보실래요?"
"아.... 네."
잠시 후,
강렬한 사운드는 녹음실 부스를 단숨에 집어삼켰다.
수호는 곡을 듣는 내내 팔짱을 끼고 눈썹을 찡그렸다.
'예감이 좋을 때 저런 표정을 짓는구나.'
지난 번에 곡 작업 때 보여줬던 모습.
이번에도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작곡가님, 혹시 이 곡으로 탑아이돌 무대 서는 거예요?"
"그렇죠. 여기가 양주희 씨 댄스 브레이크 파트예요."
"아.... 그냥 듣지 말걸."
역시, 좋은 영화는 영화관에서 보고 싶은 법이다.
이렇게 미완성본을 들으면 스포당하는 기분이라.
"하하. 매니저님은 저랑 생각이 비슷하시군요!"
".... 제가요?"
"그럼요!"
윤성현 작곡가는 씨익 미소를 지으며 수호에게 악수를 청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매니저님!"
"저야말로."
그는 멋쩍은 듯 뒤통수를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잘부탁드립니다. 작곡가님."
무명 작곡가였던 자신을 발굴해 준 고마운 사람.
오랜만에 생각이 비슷한 친구를 만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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