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대형 신인(1)
솔라의 쇼케이스 데뷔 무대.
햇살처럼 아름다운 스테이지 위에서 MC는 인터뷰를 진행했다.
주로 리더인 예지가 대화를 리드하고, 다른 멤버에게 전달했다.
"대표님께서 직접 세계관을 만드셨다고요."
"네. 이번 곡 테마는 사장님께서...."
아나운서 출신 MC와 적당한 텐션으로 대화를 주고 받았다.
쇼케이스도 이제 마무리 단계.
첫 음원 성적도 슬슬 나오겠지.
"정수호 매니저님."
그때, 뒤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아, 네. 혹시 누구....?"
"조영수 기자입니다. 솔라 매니저분 맞으시죠?"
"네. 맞아요."
홍보팀에서 초청한 유명 기자들 중 한 명.
공생 관계지만,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오늘 솔라 무대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나중에 매니저님 시간 되시면 인터뷰 한번 부탁드립니다."
"네, 그럼요."
명함을 주고 사라지는 조영수 기자님.
마침, 박 팀장님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정수호, 너 저분이랑 아는 사이였어?"
"아니요. 오늘 처음 봐요."
인플루언서급 영향력을 가진 대중문화예술 평론가 출신.
워낙에 유명한 기자라 업계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본부장급 아니면 명함을 주시는 분이 아닌데."
".... 그러게요."
근데 나한테는 왜 주신 거지.
"명함 잘 보관해. 인맥이 힘이니까."
"알겠습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뜻밖의 인맥이 생겼다.
드림 에이전시 때는 인사할 기회도 없었는데.
"이제 데뷔도 했으니까 니가 많이 바빠질 거야."
"네. 각오하고 있습니다."
"소미 학교 가는 건 내가 아침마다 챙길 수 있을 것 같다."
"정말요? 안 그래도 걱정했는데."
이제 연예인이라 통학도 신경 써줘야만 했다.
데뷔하기 전에는 알아서 버스 타고 다녔지만.
"그냥 출근하기 전에 잠깐 들르면 되니까."
"그것만으로도 고맙죠."
급식 먹는 멤버는 막내 신소미가 유일했다.
다이애나도 스무 살, 일단은 성인이었으니.
"아무튼, 솔라 개인 활동 시작하면 로드 한 명 더 붙여줄게."
"네. 이제 개인 활동도 있을 거라서요."
"아, 그리고 이거 법인 카드."
얼마 전에 소고기 사주라고 주셨던 카드였다.
"애들 스마트폰 사줘."
"오, 벌써요?"
"원래 데뷔하면 풀어주니까."
"통 크시네."
사실, 멤버들은 핸드폰 쓸 시간도 거의 없었다.
이번 주말만 지나면 아마 지옥이 시작되겠지.
음방만 해도 총 4개 방송국.
KBC, SBC, MBS, 엔넷까지.
하루 종일 이어지는 스케줄을 소화하면서 연습도 해야 하니까.
"주말에 들어오는 스케줄 정리하고, 월요일 회의 때 같이 픽스할 거야."
"네. 팀장님."
"그나저나...."
이제 슬슬 솔라의 첫 음원 성적이 나올 시간.
".... 벌써 나왔네요."
"몇 등인데."
[57위 나만 봐 <솔라>]
"예상은 했지만, 엄청나네."
"그러게요."
최근에 데뷔한 빅 4 엔터 출신 대형 신인도 비슷한 성적으로 시작했다.
워터멜론 차트 첫 번째 실시간 음악 순위 50위권.
신인에게는 그야말로 입이 떡 벌어지는 수치였다.
잠시 침묵을 지키던 박 팀장님은 입가에 미소를 띠며 입을 열었다.
"수호야, 요즘 회사에서 너에 대한 소문이 돌더라."
"제 소문이요?"
"네가 드림 에이전시에서 발언권만 강했으면 4팀이 안 없어졌을 거라던데."
"...."
발언권이 전혀 없지는 않았어요.
예지가 이상한 소문을 퍼트렸나.
"큐앤지에 발령받고, 솔라는 처음부터 네가 키웠으니까."
"에이, 그 정도는 아니에요."
회사에서도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생겼다.
솔라에 대한 내 평가나 기대와는 무관하게.
"너는 그냥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만 해."
"...."
계속 어떻게 하라는 거지.
* * *
데뷔한 지 고작 사흘.
신인 걸그룹 솔라는 4세대 아이돌의 한 축으로 급부상했다.
음원 차트 중위권에 박힌 곡은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으니.
"재하야, 너 지금 변태 같아."
"나 사랑에 빠진 것 같아. 예지 눈나."
"너보다 어려."
"아니. 예쁘면 누나지!"
"...."
오늘따라 엄재하는 목소리를 높여 열변을 토했다.
"솔라는 컨셉부터 대박이야. 오늘도 동생이랑 같이 뮤비 보고 반했다니까."
"컨셉?"
"그거, 가사 보면 세계관 다 나오잖아. 올림포스는 다음 곡에서 공개하나?"
"...."
나도 몰라 씹덕아.
"뮤비에서 소미가 혼자 다른 방향 보잖아. 이게 알고 보니 흑막 같은 거야?"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대충 잼민이 주의가 산만해서 다른데 봤겠지.
"형, 내가 재미로 만든 팬카페가 있는데."
"어휴, 삭제해."
"오키."
회사가 공식적으로 운영하는 팬카페는 유료 회원만 받는다.
사설 팬카페 규모가 너무 커지면 오히려 관리만 어려웠기에.
"아, 요즘 지유는 어떻게 지내? 안 본지 좀 됐네."
"내 동생 지금 인턴하지."
"아, 수능 끝나고 계속 아버지 회사 다니고 있어?"
"글쎄."
재하는 피식 웃으며 여동생의 근황을 늘어놓았다.
"얼마 전에 솔라 매니저 지원했다더라."
"뭐? 지유가?"
"응."
아무리 중소 엔터라도 갓 졸업한 스무 살을 뽑진 않아.
"팬매니저 지원했다던데."
".... 굳이?"
중소기업에 팬매니저가 어딨어.
그냥 다 같이 으쌰으쌰 하는 거지.
"아버지께서는 허락하셨어?"
"지유가 하는 건 뭐든 오케이야."
"...."
태생부터 재벌은 아니고, 자수성가하셔서 그런가.
생각보다 이쪽 시장이나 업무에 편견이 없으셨다.
"뭐, 지유가 알아서 잘하겠...."
띠리리링─
그때, 내 스마트폰에서 벨 소리가 울려 퍼졌다.
온종일 걸려오는 섭외 전화.
받기 싫어도 어쩔 수 없었다.
"전화 좀 받을게."
"응."
원래 스케줄은 내 담당이 아닌데 어떻게 번호를 알았을까.
"여보세요. 큐앤지 레이블 정수호 매니저입니다."
-안녕하세요. 엔넷 방송국 탑아이돌 작가 소은성입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다름이 아니고....
시즌 5를 맞이한 아이돌 음악 방송.
이번 섭외 전화는 제법 큰 건이었다.
"작가님, 섭외 연락이면 저보다는 팀장님께 먼저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니요. 박철민 팀장님께서 이쪽에 먼저 연락하라고 하셨어요.
"아, 그러시구나."
그냥 나한테 떠넘기셨구나.
-저희가 이번에 많이 개편했거든요. 신인 걸그룹만 섭외하고 있어요.
"그래요?"
-서바이벌 방식으로 솔라와 루나가 함께 출연하면....
"아, 서바이벌이요?"
-네! 당연히 솔라 멤버분들 위주로 편집할 겁니다!
"...."
원래 화기애애한 방송인데 시청률이 부진해서 그런가.
루나와 솔라의 경쟁 구도.
실력이 좋은 쪽이 유리했다.
작가의 설명을 들을수록 묘한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이건 나가면 안 돼.'
분위기 좋은 상황에서 진흙탕에 몸을 담글 이유가 있나.
지금까지 얻은 작은 명성을 짓밟고 루나가 올라서겠지.
'뻔해, 악편이나 당할 거야.'
시청자들이 물어뜯기 딱 좋은 그림이 아닌가.
객관적으로 루나보다 실력이 떨어지는 솔라 멤버들.
그런 상황에서 더 좋은 반응과 대중성을 확보했으니.
"작가님, 정말 죄송하지만.... 아."
순간, 쎄한 불안감이 등줄기를 타고 서서히 올라왔다.
동시에, 뒷목 부근에서 간지러운 감각이 밀려들었다.
'젠장.'
와, 미쳐버리겠네.
이건 진짜 아닌데.
-매니저님, 죄송하지 말고 한 번만 다시 생각해 주세요.
"아니, 그게...."
-이번 시즌 솔라가 메인이에요. 피디님도 기대하고 계십니다.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작가님."
-꼭 연락주세요! 꼭이요!
"그럼요."
전화를 끊자마자, 재하는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형님, 우리 솔라가 탑아이돌에 나가는 거야?"
"언제부터 우리야."
"거기 시청자 고였어. 실력 없으면 엄청 까여."
"...."
솔라의 팬을 자처하는 재하까지 이렇게 말할 정도면.
'이런 게 진짜 역 베팅인가.'
굳이 도박할 이유가 없는 상황이라.
독이 든 성배를 마셔야 하는 건지.
* * *
꿈에 그리던 화려한 데뷔를 마치고,
솔라 멤버들은 새로운 숙소에 이삿짐을 풀었다.
얼마 전에 루나가 이사 갈 때 얼마나 부러웠던가.
"우왕, 우리 집 진짜 좋아졌네."
"그러게. 넓어서 운동하기 좋네."
"하아, 버리고 올걸."
시야에 펼쳐진 14층 아파트의 탁 트인 풍경.
예지는 옆에 있는 소미에게 슬쩍 말을 건넸다.
"우리 이사 가는 게 누구 덕분인지 들었지?"
"언니, 벌써 다섯 번째 얘기하고 있어."
"우리 매니저님이 실장님께 신신당부하셨대!"
"나 귀에서 피 날 것 같아."
정수호 매니저님이 실장님과 담판을 짓고 얻어낸 새 숙소.
보안 시설, 냉난방, 교통에 편의시설까지.
새로운 보금자리는 거의 모든 게 완벽했다.
"아이 참, 나는 이사 안 가도 괜찮은데."
예지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며 소파에 앉았다.
"지금 언니가 제일 행복해 보여."
"내가 그랬나? 헤헷."
예지는 웃는 얼굴로 소미와 대화를 나눴다.
"소미야, 내 생각에 매니저님은 수호천사가 분명해."
"그건 좀 오글거리는데."
"에이, 그동안 우리를 그렇게 믿어주신 분이 있었니?"
".... 없었지."
한때, 류시아를 필두로 완벽해 보였었던 루나의 데뷔조.
언제나 그녀들의 뒤에 가려져 2군 멤버로 살았었는데.
"지금 우리 음원이 50위권이라고, 이게 말이 돼?"
"그건.... 내가 봐도 확실히 대단하시긴 해."
"그치, 그치?"
데뷔곡 <나만 봐>를 강하게 주장한 건 수호가 유일했다.
심지어, 컨셉을 잘 살린 뮤비 감독도 그의 선택이었으니.
"오늘 이사하는 것도 매니저님 덕분이잖아."
"네네. 아주 감사하고요."
이제 정수호 매니저님이 말하는 건 뭐든 믿을 수 있을 것 같다.
하물며, 솔라와 운명을 함께하겠다는 다짐까지 했었잖아.
그 정도로 각오해서 이렇게 열심히 뛰어다니시는 거겠지.
띠리리링─
그때, 새 숙소에 울리는 유선전화를 듣고 수화기를 들었다.
-예지야, 문 열어줘.
"네!"
이내, 아파트 문을 열고 들어오는 정수호 매니저님.
"아 양주희, 쇳덩이 좀 버리고 오라니까."
"형님, 많이 버리고 온 거예요."
"이게?"
"거의."
"...."
그는 숙소 내부를 스윽 둘러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얘들아, 너희 스마트폰 허락받았다."
"어, 정말요!?"
"대박....!"
아이처럼 기뻐하는 멤버들을 보며 피식 미소 짓는 정수호 매니저.
그 모습은 마치 친자식을 따스하게 챙겨주는 부모처럼 든든했다.
"예지야, 잠깐 나랑 얘기 좀 할까?"
순간, 예지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어깨를 움츠렸다.
"저만요?"
"응."
두 사람은 곧장 문밖으로 나가서 대화를 이어갔다.
"예지야, 너 혹시 도박하는 거 좋아하니?"
"저, 저요!? 아니요. 한 번도 해본 적 없어요!"
".... 네가 했다는 게 아니라."
예지는 가슴을 쓸어내리고 대화를 이어갔다.
"예능 섭외가 들어왔거든. 이거 봐."
"탑아이돌이네요."
"응. 한때 유명한 프로였지."
"...."
새로운 환경에서 도전하는 마음.
그걸 왜 도박이라고 표현하실까.
"저는...."
예지는 수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입을 열었다.
"매니저님이 하라는 대로 할래요."
"네 의견은?"
"제 의견은 필요 없어요."
"응?"
도박이라고 표현하셨지만 틀렸다.
대충 감에 의지하는 게 도박이지.
'매니저님이 하시는 건 분석이야.'
철저하게 수집한 정보와 천재적인 안목의 조합.
그래서 정수호 매니저의 선택은 믿을 수 있었다.
"저는 믿을래요. 매니저님."
"...."
현재 걸그룹 멤버로서 누구보다 믿고 의지하는 매니저님.
절대로 자신들을 망하는 길로 인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예지야, 너무 그렇게 믿을 필요는...."
"아뇨. 무조건 믿어요."
대중들의 뜨거운 반응이 가장 확실한 증거 아닐까.
* * *
월요일 아침 7시.
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팀장님과 함께 일정 회의에 참여했다.
솔라의 성공은 자연스럽게 내 어깨에도 힘을 실어주었기에.
"지금까지 들어온 스케줄을 정리해 보면...."
아무리 중소기업이지만, 높은 분들과 한 자리에 있으려니까 불편했다.
"당분간 음방 위주로 굴러가겠군요."
"네. 실장님."
"정수호 매니저 혼자 감당할 수 있겠어?"
"...."
나는 공세원 실장님의 질문을 듣고, 곧장 입을 열었다.
"충분합니다."
어차피 한동안은 단체 스케줄만 잡을 계획이었다.
신인 그룹에게 개인 활동은 득보다 실이 많았으니.
"지금 매니저 모집하는 중이니까 조금만 기다려 봐."
"네. 감사합니다."
이내, 두 그룹의 스케줄 회의를 진행했다.
당연히 내가 끼어들 여지는 1도 없었지만.
'이제 루나는 찬밥인가.'
데뷔하기 전과 후, 큐앤지 레이블에서 두 걸그룹의 위치는 완전히 역전되었다.
고작 며칠 만에 음반 차트에서 내려온 루나는 더이상 솔라의 상대가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두 팀 모두에게 들어온 스케줄인데...."
그때, 박 팀장님은 중요한 안건을 꺼내며 운을 떼었다.
"탑아이돌 출연은 어떡할까요?"
"...."
이어서, 임원들은 각자 의견을 꺼내기 시작했는데.
"저는 홍보팀장으로서 솔라 출연은 반대입니다."
"솔라에 루나를 끼워팔 수는 없지."
"그냥 루나만 출연시키죠."
이 자리에 솔라를 방송에 내보내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특히, 드림 에이전시 출신인 홍보팀장님의 입장은 단호했다.
"이제 막 뜨기 시작했는데 무슨 서바이벌이에요."
"그렇지. 경연 프로는 실력을 더 키우고 나가든지 해야지."
"맞아요. 어차피 한물간 방송이에요."
평범한 아이돌 음악 방송에 서바이벌을 끼얹었다.
그 결과가 어떨지는 PD 본인도 예상할 수 없겠지.
"정수호 매니저."
순간, 공 실장님은 나를 빤히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탑아이돌 출연 어떻게 생각하나?"
"저는...."
내게 쏟아지는 부담스러운 시선을 애써 무시했다.
이제 내 불안감을 의심하지 않는다.
내 똥촉은 무적이다. 역배는 신이고.
간질거리는 뒷목을 꾹꾹 주무르며 입을 열었다.
"저는 탑아이돌에 출연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 이유는?"
이내,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은 회의실.
처음부터 나의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솔라에게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나가면 무조건 뜬다.
망조의 기운이 느껴지거든.
뒤통수로부터 스멀스멀 밀려오는 간지러움, 과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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