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로 오해받는 연예계 생활-10화 (10/200)

[10] 걸그룹 데뷔(6)

띠리리링─

나는 연습실에서 솔라 멤버들을 지켜보며 스마트폰을 들었다.

"여보세요. 팀장님."

-수호야, 실장님이 너 찾으신다.

"지금요?"

-어. 올라가 봐.

"알겠습니다."

솔라 멤버들을 뒤로한 채 곧장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나를 왜 찾는지는 알 것 같다.

생각보다 반응이 훨씬 좋아서.

빅 4 기획사에서 내놓은 대형 신인들에 버금가는 화제성.

대형 신인 아이돌은 떡잎부터 남다른 구석이 있다.

데뷔하기 전부터 관심을 받는 그룹이 살아남는다.

이런 기회를 놓치면 소속사 실장 자리에 앉을 자격도 없지.

똑, 똑─

이내, 노크를 두드리고 문밖에서 실장님을 기다렸다.

"네, 들어와요."

처음에는 그저 홧김에 고른 역선택일 뿐이었는데.

눈빛부터 달라지는 실장님 태도를 보고 실감했다.

"아이고, 우리 정수호 매니저 왔어?"

"네. 실장님."

"일단 여기 앉아봐."

진짜 우리 애들이 반응이 좋긴 한가 봐.

"하하, 지금 반응이 심상치 않은 거 알지?"

"네. 알고 있습니다."

스노우볼처럼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굴러갔다.

고작 며칠 만에 솔라를 찾는 사람들이 불어났다.

"크으, 나도 송 감독 때 딱 느낌이 왔다니까?"

"아, 네."

나는 그 망할 느낌이 전혀 안 오더라고.

"역시 정수호 매니저는 촉이 남다르다니까?"

"제가요?"

"그럼! 내가 솔라를 고를 때부터 알아봤지."

"...."

그때 비웃었잖아요.

"다음 주 쇼케이스 무대는 잘 준비하고 있는 거지?"

"네. 문제없습니다."

"혹시 뭐 필요한 건 없고?"

"아, 그게."

아이돌의 힘은 오직 인기, 대중이 부여한다.

그리고 자연스레 내 말에도 무게가 실렸다.

"숙소요."

"응?"

"지금 사는 숙소는 좀 위험합니다. 너무 외졌어요."

"아, 그, 그렇지."

돈이 들어가는 문제라 쉽게 대답할 수는 없겠지만.

어차피 루나도 데뷔하기 직전에 이사 가지 않았나.

"이러다 사생팬이라도 생기면 어떡해요?"

"그럼 일단 루나 숙소라도 비워서...."

"아뇨, 그 앞집으로 이사 가고 싶습니다."

"흠, 그래?"

무슨 딱지치기도 아니고 집을 빼앗겠다고 하는지.

루나한테 무슨 일 생기면 그 책임은 내가 지라고?

"그래. 본부장님께 말씀드려봐야겠네."

"감사합니다!"

곧이어, 나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 실장님 집무실을 벗어났다.

'이게 회사 다니는 맛이지.'

큐앤지 레이블도 드림 에이전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실적에 따라 성과급이 오르고, 직원들의 시선이 달라진다.

그 뽕맛을 한번 맛보면 다른 엔터로 이직할 수가 없다니까.

드르륵─

이내, 매니지먼트 2팀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누군가 내 자리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매니저님."

"네, 유미 씨."

솔라의 태양 여신 의상을 담당한 스타일리스트 조유미.

송 감독님과 함께 뮤비를 촬영하는 동안 친분을 쌓았다.

"오늘부터 제가 솔라 전담 스타일리스트를 맡게 됐어요."

"그래요? 잘 부탁드립니다."

전담 코디도 생기고, 이제는 진짜로 데뷔만 남았구나.

"저기, 매니저님."

"네?"

"죄송합니다."

"???"

유미 씨는 고개를 숙이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사실, 태양 여신 의상 준비하면서 매니저님 욕을 많이 했거든요."

"제 욕이요?"

"네. 잘 될지 안될지도 모르는데 무슨 개짓거린가 싶었거든요."

".... 솔직하시네여."

"죄송해요."

결과론적으로만 보면 잘 됐지만.

송 감독님이 조금 유난이긴 했지.

"아뇨, 저도 이해합니다."

"감사해요."

그래도 이분처럼 욕하고 나서 직접 사과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근데 이렇게 잘 되니까 정말 저 자신이 부끄러웠어요."

"부끄러울 것까지야."

"앞으로 매니저님 안목은 절대 의심하지 않을게요!"

"...."

의심해도 되는데.

개쓰레기 맞아요.

* * *

얼마 후, 강남의 한 녹화 스튜디오.

쇼케이스 때 필요한 녹화 영상을 찍기 위해 멤버들을 데려왔다.

깔끔한 테이블 옆에 다섯 개의 좌석.

카메라 세팅까지 완벽하게 갖추었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아나운서 출신 MC가 일어나 멤버들을 맞이했다.

"우리 애들, 쇼케이스 때도 잘 부탁드립니다."

"하하. 걱정하지 마세요."

아마 각자 프로필이랑 MBTI 같은 정보나 공유하겠지.

솔라를 맡기 전에 나도 멤버들 프로필 달달 외웠는데.

"은서 씨는 원래 배우 지망생이었군요?"

"아, 네. 부끄럽지만."

"좋은 연기로 볼 수 있기를 바랄게요."

"네에. 감사합니다."

은서 연기 실력은 어느 정도일까.

나도 그 바닥엔 인맥이 좀 있는데.

"은서 씨는 본인이 비주얼 멤버라는 데에 동의하시나요?"

"아니요, 예지 언니가 더 예쁘죠."

"두 분 매력이 달라요."

"어떻게 다른데요?"

예지가 순둥순둥한 강아지상이라면, 은서는 날카로운 고양이상.

우리 멤버들 중에서도 비주얼 투톱이라 보기만 해도 흐뭇했다.

'성격만 좀 고치면 좋을 텐데.'

이내, MC는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대화를 이어갔다.

"은서 씨는 다가가면 물어버릴 것 같아요."

"고양이처럼요?"

"아뇨, 상어 정도."

"...."

"아니면 악어?"

"오케이, 카메라 끄고 잠깐 대화 좀 해요."

"하하. 농담도 잘하시네요."

아, 저거 또 빡쳤네.

MC는 왜 또 받아줘.

문득, 은서만큼이나 까칠했던 어떤 연기자가 떠올랐다.

드림 에이전시 시절에 내가 담당했던 1티어급 아티스트.

이수연 배우님과 처음부터 악연으로 시작한 건 아니었다.

회사와 매니저의 선택에 의지하는 타입이었으니.

그래서 나 때문에 작품을 제일 많이 말아먹었지.

'지금은 잘 골라줄 자신 있는데.'

이젠 내 불안한 촉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었다.

어떻게 활용하고, 언제쯤 뒤통수가 간지러운지도.

"매니저님,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아, 예지야."

슬쩍 세트장을 쳐다보니 차례대로 1:1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예지, 네 차례는 끝났어?"

"네!"

예지는 뭐가 그리 좋은지 생글생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좋은 일 있어? 왜 그렇게 웃어?"

"저기, 저 질문이 있는데요."

"응. 말해."

예지는 조금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드림 에이전시에서는 아무런 권한이 없었던 거죠? 신입 매니저라."

"응?"

"그래서 팀 운이 엄청 나빴던 거고."

"...."

아니야, 내가 제일 트롤이었어.

나 때문에 팀이 재수가 없었지.

"저희가 지금 매니저님 안 좋은 이미지 없애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내 이미지?"

"회사에서 이상한 소문이 돌아다니고 있어서요."

"...."

이어서, 예지는 눈빛을 반짝거리며 대화를 이어갔다.

"매니저님이 능력이 없다든지, 불운의 아이콘이라든지."

"아."

그건 소문이 아니라 사실이었다니까.

거기서 내 안목이 제일 쓰레기였다고.

"벌써 친한 트레이너 선생님들께 다 퍼트렸어요! 이제 이상한 소문 안 돌아다닐 거예요."

"굳이....?"

"왜 팀원들 잘못을 매니저님이 혼자 뒤집어쓰려고 하세요!"

"그럴 필요 없다니까."

"그래도."

뒤집어 쓰긴 뭐를 뒤집어써.

그냥 내가 뒤지게 잘못했지.

"너는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데뷔만 집중해. 며칠 남았다고."

"에이, 연습은 열심히 하고 있죠."

"그래. 잘하고 있네."

띠링─

그때, 박 팀장님께 톡이 날아와서 곧장 확인했다.

".... 예지야."

"네?"

나는 새로운 숙소의 주소지를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데뷔하면 이사 가자."

"이사요!?"

드디어 그 우중충한 동네를 탈출하는구나.

"응. 쇼케이스 무대만 잘 마치고."

"네. 열심히 할게요!"

* * *

엔넷(Nnet) 방송국.

한때 잘 나갔던 탁성수 PD는 작가들과 함께 회의를 진행했다.

"이번 시즌 MC는 이수연 어때?"

"이수연 배우님이요?"

"응."

"그분이 미치지 않고서야 여기는 안 나오죠."

"...."

올해로 다섯 번째 시즌을 준비하는 음악 예능 프로그램 <탑아이돌>.

이번엔 시청률을 끌어 올리기 위해 제작진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

"그니까 이번에 포맷을 갈아엎어야지. 이수연 배우님도 혹할 만큼."

"어떻게요?"

"전부 신인으로 뽑아서 서바이벌로 가자."

"아...."

선후배 간에 깍듯하게 예의 차리는 방송은 재미가 없다.

아예 컴피티션으로 매편 탈락자와 우승자도 만들어야지.

"힙합처럼 어느 정도 디스도 하고, 긴장감도 넣어주는 거야."

"이번에 걸그룹 차례잖아요."

"근데?"

"싸가지없다는 인식 박히면 나락 가는데 누가 하려고 하겠어요."

"그니까 섭외를 잘해야지."

"...."

처음 시즌 1이 최고였고, 시즌 2부터 서서히 기울었다.

지금이라도 전부 바꾸지 않으면 다음 시즌은 없을지도.

"저번 시즌, 최고 시청률이 0프로 대였지?"

"에이, 요즘 케이블이 다 그렇죠."

"옆동네 JTBS 경연 프로는 3퍼 찍은 거 알지?"

"...."

방송 시간대도 그렇고, 화제성이 많이 부족했다.

경쟁도 없이 심심하게 아이돌을 불러서 적당히 노래하니까.

심지어, 시청률이 떨어지면서 아이돌의 급도 점점 낮아졌다.

"이번엔 무조건 서바이벌로 가."

"후우, 알겠습니다."

"일단, 인지도 괜찮은 신인 걸그룹은 다 모아 봐."

".... 캐스팅 지옥이겠네요."

적당한 신인을 뽑아서 팀 간의 경쟁으로 1등을 가린다.

자극적이고 솔직한 컨셉으로 화제를 모을 생각이었다.

"혹시 루나는 어때요?"

"나쁘지 않지."

"걸크러쉬 컨셉에 실력도 괜찮아요."

"일단 후보로 킵."

고작 보름 만에 음원차트에서 광탈했지만.

업계에서는 그들의 가치를 높게 평가했다.

"거기 류시아라는 친구는 숨은 보석이에요."

"그래? 멤버 이름은 모르는데."

"그 친구, 포텐이 장난 아니라서."

문득, 큐앤지 엔터에서 조만간 런칭하는 새로운 걸그룹이 떠올랐다.

"솔라도 요즘 반응 좋더라고."

"아직 데뷔도 안 했잖아요."

"얼마 안 남았잖아."

요즘 큐앤지가 프로모션을 밀어주는 신인 걸그룹.

생각보다 대중들의 반응도 뜨겁고 컨셉도 특이했다.

'루나 때는 안 먹히더니, 솔라는 또 먹히더라고.'

루나랑 솔라를 두고 경쟁 구도를 만들면 엄청 재밌을 것 같은데.

"솔라 데뷔일이 이번 주 금요일 맞지?"

"네. 아마 그럴 거예요."

혹시 두 그룹 다 뽑더라도 한쪽은 살짝 악역처럼 나올 확률이 높았다.

악마의 편집이 아니라 시청률을 올리는 기술이지.

나머지 한쪽은 훨씬 더 아름답게 빛날 수 있기에.

"문제는 큐앤지가 섭외에 승낙하느냐는 거죠."

"신인도 섭외 못해?"

이런 컨셉만 아니면 못할 것도 없지.

"바보도 아니고, 우리가 악마의 엔넷인데요."

".... 너는 누구 편이니?"

화제성도 적당하고, 그림도 괜찮았고.

가능하면 꼭 섭외하고 싶은 카드였다.

"데뷔하면 큐앤지 레이블에 섭외 전화부터 해봐."

"혹시 거절하면 어떡하죠?"

"방법을 찾아봐야지."

그래도 신인 그룹인데 방법은 찾으면 나오기 마련이다.

"그리고 다른 신인 중에...."

"JS 미디어는 어때요? 작년에 신인 나왔는데."

"핑크레몬? 걔네는 너무 싼마이야."

"뭐 어때요, 그냥 오디션 자리 채우는 거죠."

"에휴, 그럼 연락이나 해 봐."

"네에."

솔라의 데뷔 성적에 따라 생각이 바뀔 수도 있겠지만.

아직은 대체 가능한 일개 신인에 불과했다.

언제든 갈아치울 수 있는 자동차 부품처럼.

* * *

며칠 뒤,

3월의 어느 날씨 좋은 날, 솔라의 쇼케이스 무대.

전광판 위로 멤버들의 얼굴이 한 명씩 스쳐 갔다.

"다섯 명의 태양 여신들을 박수로 맞이해주시기 바랍니다!"

MC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배경이 양쪽으로 갈라지며 소녀들이 걸어왔다.

김예지, 장은서, 양주희, 다이애나, 신소미.

열렬한 환호 속에서 무대에 오르는 아이들.

"그러면 예지 씨부터 한 분씩 본인 소개를 부탁드릴게요!"

"네! 저는 메인보컬이자 리더를 맡은...."

각자 자기소개할 때 함께 나오는 연습생 기간의 활동들.

짧은 영상 속에 얼마나 많은 땀과 눈물이 녹아들었을까.

이내, 큐엔지 너튜브 채널에도 공식 뮤직비디오가 올라왔다.

솔라의 첫 번째 타이틀곡 <나만 봐>.

뮤직비디오와 동시에 공개하는 음원.

《Solar 1st Digital Single Release》

다섯 멤버들은 기나긴 연습생 과정을 마치고 대중 앞에 섰다.

"데뷔 축하해."

무대 위에서 열심히 <나만 봐>를 부르는 소녀들.

화려한 조명이 반짝거리며 스테이지를 비추었다.

'멋있네.'

실력은 아직 잘 모르겠지만, 무대는 객관적으로 정말 멋있었다.

스테이지를 가득 채우는 비트와 보컬 사운드.

전문 댄서들와 어우러지는 멤버들의 춤사위.

고사양의 음향 기기는 너튜브 채널을 통해 솔라의 데뷔곡을 그대로 전달했다.

루나와 비교해도 전혀 꿀리지 않는 프로모션과 지원.

기자들은 솔라의 모습을 담기 위해 카메라를 들었다.

'만약에....'

내가 역배에 걸지 않았다면 솔라는 어떤 무대에 섰을까.

동네 학교 강당을 빌려서 초라하게 춤을 춰야 했을지도 모르지.

이렇게 많은 기자들이 멤버들을 찍으러 오는 일도 없었을 거야.

조명이나 의상, 뮤직비디오까지.

전부 중소 엔터급에 머물렀을걸.

무대 위, 행복해 보이는 멤버들의 표정을 한 명씩 확인하며 속으로 다짐했다.

'앞으로도 내가 너희를 위해서....'

꼭 망할 것 같은 선택지만 골라줄게.

아무리 불안해도 소신을 굽히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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