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걸그룹 데뷔(5)
뮤비 감독 송유환은 화려한 의상을 입은 다섯 소녀를 보고 확신했다.
"이건 된다."
걸그룹에게 가장 필요한 재능은 무엇인가.
업계 관계자로서 오직 '태'만을 중요시했다.
'그렇지, 역시 몸매는 타고나야 해.'
외모와 실력은 회사의 컨설팅을 따라가면 누구나 가질 수 있지만.
타고난 몸의 형태, 골격과 사이즈는 바꿀 수가 없다.
목이 짧거나, 머리가 크거나, 키가 작은 친구들처럼.
심지어, 어릴 때 갈비뼈 제거 수술을 받는 아이들까지 있을 정도였으니.
'이걸 소화하네.'
누구 하나 빠지지 않고 태양 여신 컨셉을 완벽하게 소화하는 소녀들.
솔라 멤버들은 키가 비슷해서 선이 정갈하면서도 깔끔하게 떨어졌다.
최근에 만난 아이돌 중 이렇게 '태'가 나는 그룹을 보는 게 얼마 만인지.
"크으, 컨셉도 장난 아니야."
이런 세계관을 구축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인력을 투입했을까.
큐앤지 엔터가 이번에 걸그룹을 제대로 작정하고 만들었구나.
"감독님, 수고하셨습니다!"
"아, 정수호 매니저님."
"저기, 혹시 컨셉이 너무 과한 건 아닌...."
"박 팀장님께 들었습니다."
"네?"
송유환 감독은 활짝 웃으면서 대화를 이어갔다.
"저를 공 실장님께 추천해주셨다면서요."
"네. 맞아요."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그야, 뭐...."
역시, 이런 걸그룹을 맡는 매니저쯤 되면 안목이 남달랐다.
트렌디한 시류를 읽는 힙스터.
그에게서 동류의 냄새가 났다.
아이돌에게 세계관이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 줄 아는 거지.
기라성 같은 유명 감독들을 마다하고 자신을 선택했으니까.
"태양 여신 컨셉이 포인트죠?"
"음, 그렇긴 한데."
"이런 의상이나 배경은 저를 따라올 감독이 없거든요. 하핫."
"아, 예. 그러시군요."
"제가 자랑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디테일이 다르잖아요."
"이미 자랑하시는 것 같...."
송 감독은 그의 말을 귓등으로 듣고 녹화 중인 영상을 확인했다.
"크으, 이 몽환적인 분위기. 죽이지 않나요?"
"네. 진짜 죽이겠어요."
"이건 아무나 소화 못 한다니까요?"
".... 가스라이팅."
이내, 자화자찬을 늘어놓던 송 감독은 씨익 미소를 지었다.
"촬영은 다 끝났고, 조만간 편집해서 보내드리죠."
"벌써 이대로 편집하려고요?"
"네. 믿고 맡겨주시면 됩니다."
"...."
뮤비 속, 아름다운 배경과 화려한 의상미.
그 진가를 알아보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너무 일감이 줄어들어 슬슬 방식을 바꿀까 고민하던 찰나.
이렇게 전부 믿고 맡겨주는 소속사를 만난 게 얼마 만인가.
"이틀이면 됩니다."
".... 겨우 이틀이요?"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그러지 마시고 여유롭게 잘 좀 편집해주세요."
"아뇨, 이틀이면 됩니다. 하핫."
"...."
정수호 매니저와 자신처럼 컨셉 덕후들끼리는 통하는 게 있었다.
완성도 있는 작품이 나올 수 있을지 걱정이 돼서 불안한 거겠지.
"태양 여신 컨셉에 맞춰서 뮤비 제대로 뽑아 드리죠."
"아."
* * *
"좆됐다."
우리 애들, 진짜 나 때문에 좆된 것 같은데.
일개 로드 주제에 감독이랑 싸울 수도 없고.
"형님! 빨리 왔네?"
"어, 재하 왔냐."
오랜만에 동네 술집에서 친한 동생과 약속을 잡았다.
"뭐야, 형 표정이 왜 그래?"
"회사에서 일이 좀 안 풀려서."
"무슨 일인데?"
외부인한테 자세히 말하기는 좀 그렇고.
"내가 나름 어필했는데 귓등으로도 안 듣더라고."
"누가?"
"있어. 진짜 내가 더러워서 빨리 팀장을 달아야지."
"회사 일이 다 그렇지, 뭐."
"그러게."
콘티에도 없던 과한 의상이랑 배경 때문에 죽을 맛이었다.
내가 솔라 애들한테 무슨 짓을 한 건지.
미친 뮤비 감독이 망치려고 작정을 했어.
'이번엔 진짜 느낌이 쎄한데.'
컨셉에 잡아먹힌 건 송 감독이 아니라 나였을지도 모른다.
그저 역선택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솔라 앞길을 막은 건지.
"그래도 요즘 솔라 잘 나간다며, 프로모션 빵빵하던데?"
".... 너는 몰라, 인마."
내가 선택한 감독님이라 더 골치가 아팠다.
그저 현재로서는 지켜보는 수밖에 없어서.
"솔라 컨셉이 태양 여신이라며."
"맞아."
"신선하고 좋더라고."
"그래?"
"응. 회사 옮기니까 똥촉에서 탈출한 거 아냐?"
"...."
아니, 그대로야.
지금도 뒤통수가 간지럽다 못해 찌끈거릴 지경이다.
언제는 내 취향이 대중성과 일치했던 적이 있었던가.
'실장님이 컷할 수도 있으니까.'
현재로서는 결과를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재하 말대로 뮤비가 별로면 알아서 거르겠지.
"형님, 솔라 빵 떠서 성과급 받으면 한턱 쏴."
"그래. 니 동생도 이제 성인이니까, 같이 한잔하자."
"오키."
나는 불안한 마음에 재차 재하의 의견을 물었다.
"근데, 네 생각에는 솔라가 뜰 것 같아?"
"응. 형도 그래서 솔라를 선택했다며."
".... 맞아."
혹시 몰라, 이 세계관 덕분에 대박 날지.
과한 컨셉의 뮤비가 오히려 뜨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오히려 인터넷에서 밈처럼 자리 잡고 인기를 끌 수도.
'이젠 나도 모르겠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윗선의 판단에 맡기는 것뿐이었다.
.
.
.
.
.
이틀 뒤.
나를 포함한 관계자들은 다 함께 모여 뮤직비디오를 감상했다.
다섯 명의 크루세이더들이 지상에 강림하는 모습.
마치 RPG 게임 시네마틱 영상을 보는 기분이었다.
신성한 분위기 속에서 부드러운 사운드가 펼쳐졌다.
-나만 봐. 나만 봐. 나만 봐.
장인이 정성스럽게 빚은 똥, 아니 작품을 다 함께 감상했다.
서연정 대표님의 표정을 보니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정수호 매니저."
"네. 대표님."
나지막한 목소리로 나를 부르는 여왕님.
그 표정에서 어떤 감정도 읽을 수가 없었다.
"송유환 감독을 밀어줬다면서요?"
"죄송합...."
"그래. 이게 태양 여신이지!"
"네?"
"어떻게 세계관을 이렇게 잘 이해할 수 있지?"
"...."
아, 우리 여왕님도 컨셉에 잡아먹혔지.
아니, 오히려 컨셉을 창조한 쪽이었나.
"이야, 이분 실력이 보통이 아니네. 너무 좋은데요?"
"....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대표님."
"정수호 매니저도 수고했어요."
"감사합니다."
곧이어, 2본부 직원들의 아부성 칭찬이 쏟아졌다.
컨셉을 제대로 살린 감독을 칭찬하기에 바빴으니.
"전부 대표님 덕분입니다."
"거의 세계관을 창작하셨죠. 하하."
"정수호 매니저가 제대로 한 건 했네."
"...."
저분들이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지 진지하게 물어보고 싶다.
걱정보다는 미래를 준비하는 게 낫다.
솔라의 데뷔일은 코앞까지 다가왔으니.
드르륵─
곧장, 나는 솔라 멤버들에게 결과를 전달하기 위해 연습실을 찾았다.
"주희야, 왜 너 혼자야. 다른 애들은?"
"후우, 밥 먹으러 갔어요."
"샐러드 맞지?"
"후우, 그럴걸요."
"...."
아령을 들고 맨몸 운동을 하며 대답을 이어가는 양주희.
이 친구는 볼 때마다 뭔가를 하고 있는 게 참 신기하네.
"주희야, 운동 좀 줄이자."
"후우, 언제는 복근 만들라면서요."
"너는 이미 복근 있잖아."
"하아, 하아."
이상한 소리 좀 내지 말고.
"형님, 저 운동 안 하면 살 엄청 찌는 타입인데. 가능?"
"아 그건 좀."
"그쵸?"
그냥 안 먹고 운동도 안 하면 되는 거 아닌가.
"후우, 운동도 습관이에요."
어느새, 주희는 팔굽혀펴기를 하며 대화를 이어갔다.
이 친구는 대충 무인도에 던져놔도 운동만 할 것 같다.
"너는 메인 댄서잖아. 근육 때문에 유연성이 떨어지지 않겠어?"
"아뇨, 브레이킹도 하려면 근력은-, 후읍."
".... 하던 운동은 좀 멈추고 대답해."
"잠시만. 흡."
드르륵─
그때, 연습실 문이 열리며 누군가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류시아 씨?"
루나의 리더는 푸시업 중인 주희를 슬쩍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냥 평범하게 얼차려 주고 계셨구나."
"네?"
그게 무슨 미친 소리예요
매니저가 얼차려를 왜 줘.
"흐응, 교육 방식이 쉽지 않네."
"???"
드르륵─
이내, 다시 문을 닫고 사라지는 류시아.
우리가 언제부터 농담하는 사이였더라.
"뭐야, 저 사람."
설마 진짜로 얼차려 준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형님, 뭔 일 있어요?"
".... 그냥 하던 거 계속해. 근손실 온다."
"예압."
잠시 후, 식사를 마친 멤버들이 연습실에 모여들었다.
소녀들이 재잘거리는 소리를 듣고 마음이 차분해졌다.
이제는 나도 이런 분위기에 점점 익숙해지는 듯했다.
"얘들아, 나만 봐 뮤직비디오 최종 컨펌 났다."
"오, 대박!"
"저희도 뮤비 보여줘요!"
"궁금하긴 하네."
그냥 안 보는 게 정신 건강에 이로울 거야.
우리 막내는 사춘기라 충격받을지도 몰라.
"그럼 우리 다이어트는 그만해도 돼요?"
"데뷔가 코앞인데?"
"아."
최종 점검은 트레이너들이 맡아줄 테니까.
앞으로는 컨디션 관리에만 집중해야 했다.
내 실수로 망칠 순 없어.
어떻게든 애들 띄워야지.
* * *
큐앤지, 서연정 대표와 언니 동생 하는 몇 안 되는 여배우.
이수연은 우연히 매니저에게서 듣기 싫은 소식을 들었다.
"오빠, 내가 듣기 싫은 말은 알아서 좀 안 하면 안 돼?"
"미안."
자신의 커리어를 짓밟은 '그'가 대표님께 칭찬을 들었다니.
"언니한테 칭찬을 들어? 정수호가?"
"응. 뮤비 감독을 잘 골라서."
".... 혼잣말이었는데."
"아 미안."
원래 매니저와 둥글둥글하게 지냈던 자신을 바꿔버린 사람.
그때 놓친 천만 영화는 아직도 꿈에 나와 마음을 어지럽혔다.
'흥, 정수호 안목이 어디 가겠어?'
다른 팀에 가도 마찬가지.
조만간 내리막길을 타겠지.
그 쓰레기 같은 시야로는 어디에서도 성공할 수 없다.
특히, 정글 같은 연예계에 발붙일 곳이 있을 리가 있나.
"오늘 너튜브에 솔라 데뷔 트레일러 공개한다던데."
"정수호가 맡은 걸그룹?"
"응. 맞아."
큐앤지에서 루나에 얼마나 투자했는지는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다.
"루나도 망했는데, 솔라가 뜨겠어?"
"그렇긴 해."
톡, 토톡─
그래도 얼마나 망했는지 확인해줘야지.
솔라와 함께 연예계에서 사라져줬으면.
"어.... 뭐지? 이거 꿈인가?
"응?"
뮤비 선공개 형식의 데뷔 트레일러.
《[SOLAR] Debut Trailer "나만 봐"》
-23시간 전
-조회수 317만 회
-좋아요 12만, 싫어요 1천
-댓글 8천
수연은 눈을 크게 치켜뜨고 영상의 조회수를 확인했다.
이 바닥만큼 운칠기삼이 어울리는 시장이 또 있으려나.
공식 뮤직비디오도 아니고, 그냥 짧은 선공개 영상인데.
"조회수 300만? 미친 거 아냐?"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
이건 너무 불공평하잖아.
"으아, 왜 나랑 할 때는...."
고르는 족족 갈아 마셨으면서.
솔라는 데뷔하자마자 뜨냐고.
"와아, 어이가 없네."
너무 억울해서 눈물이 찔끔 나올뻔했다.
"오빠, 이게 말이 돼?"
"오, 신기한데."
"뭐?"
"댓글 보니까 뮤비 컨셉이 특이해서 반응이 온 것 같아."
".... 뮤비 감독 덕분에 떴다고?"
"그런 셈이지."
그럼 정수호가 솔라를 띄웠다는 거잖아.
"와, 사기 치고 있네."
매니저 놈, 지금 연예인 차별하냐.
커리어 복구하느라 뒤질뻔했는데.
"힘숨찐이야? 왜 나랑 할 때만 힘을 숨기는데, 왜!"
"수연아, 진정해."
"내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
"솔라는 아직 데뷔도 안 했는데."
"...."
수연은 연신 새로고침을 하면서 쭉쭉 올라가는 영상을 조회수를 확인했다.
"후우, 오케이. 두고 보자고."
자신뿐만 아니라 수많은 배우를 망친 그 안목.
솔라가 언제 어떻게 무너지는지 지켜봐야겠어.
* * *
연예인에게 필요한 건 여러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운빨, 둘째는 재능, 셋째는 노력이다.
'와, 이게 왜 떴지?'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어도 망하는 게 일상인 바닥이니까.
원래부터 노력에 대한 보상이 주어지는 시장은 아니었다.
"이런 게 될놈될인가?"
"우리 여잔데요."
"그럼 될녀.... 아무튼."
데뷔 트레일러부터 대중의 반응은 굉장히 뜨거웠다.
너튜브에 공개한 뮤직비디오 선공개 영상이 떡상하는 것도.
알고리즘의 간택을 받고, 인기 급상승 영상에 오르는 것도.
그간의 노력을 무색하게 만드는 '운빨'의 영역이었다.
'댓글창도 바글바글하네.'
독특한 컨셉의 짧은 영상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댓글들 반응에서는 대부분 컨셉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태양 여신 뭔데 ㅋㅋㅋㅋㅋㅋ
ㄴ컨셉 미쳤다 진짜 ㅋㅋㅋ
ㄴ이왜진 ㅋㅋㅋ
ㄴ아폴론좌 ㅋㅋㅋㅋㅋㅋ
ㄴ신박해서 좋은데 ㅋㅋㅋ
-그냥 관종 아닌가....?
ㄴ진지충 검거
ㄴ뮤비 찍는데 돈 엄청 썼을듯 ㅋㅋㅋㅋㅋ
ㄴ트랙은 듣기 좋음
ㄴ큐앤지 신인 걸그룹을 둘이나 ㄷㄷ
ㄴ원래 그럴 예정이었음
-와 센터 존예네 ㄹㅇ
ㄴ정식 뮤비는 언제 나옴?
ㄴ류시아도 예쁨 ㅎ
ㄴ우리 루나는 왜 안 뜨지 ㅠ
ㄴ안 사요 안 사
괴물 신인이라고 불렸던 몇몇 대박 난 아이돌처럼.
솔라 역시 데뷔하기 전부터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와아, 이게 댓글이 몇 개야."
"예지야, 댓글 읽지 마."
"이거 보세요, 칭찬이 대부분이에요! 헤헷."
"...."
낙천적이라서 좋겠다.
"매니저님, 항상 우리를 믿어주셔서 감사해요."
"내가....?"
"항상 응원해주셨잖아요."
"아, 응원은 했지."
진심으로 뜨기를 바랐으니까.
"앞으로도 이렇게 반응이 좋을까요?"
".... 그래야지."
어떻게든 대중의 관심을 끌었으니 분명히 긍정적인 신호.
정확하게 내가 예측했던 상황과 반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뮤비 감독님도 매니저님이 선택하셨잖아요."
"아, 그렇긴 한데."
예지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와 눈을 마주쳤다.
"저는 매니저님 무조건 믿어요."
"...."
너무 믿지는 말자.
감으로 찍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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