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로 오해받는 연예계 생활-8화 (8/200)

[8] 걸그룹 데뷔(4)

그 누가 아이돌 그룹의 성공 여부를 예측할 수 있을까.

하물며 대형 기획사 출신도 확신할 수 없는 시장인데.

대중성과 상업성에 스타성.

그런 것들은 성공한 다음에나 붙일 수 있는 훈장이었다.

지금 내 앞에서 인사를 건네는 여왕님 같은 연예인처럼.

"정수호 매니저, 오랜만이네요."

"네. 대표님."

"잠깐 얘기 좀 하시죠."

".... 네."

곧장, 나는 멤버들을 뒤로한 채 대표님의 뒤를 쫓았다.

퀸이라는 활동명이 전혀 오만하게 느껴지지 않는 연예인.

아직도 꾸준히 관리하며 언제든 복귀할 수 있는 탑스타였다.

내가 중학교 다닐 때 데뷔하셨는데, 그 당시 우연히 봤을 때 이분이 망할 줄 알았다.

그때부터 내 지독한 똥촉은 맞히는 법이 없었다.

뜨고 나서는 씻은 듯이 사라지는 얍삽한 안목은.

"정수호 매니저."

"네. 대표님."

"드림 에이전시 때부터 운이 좀 나빴죠?"

"...."

배우 이수연의 매니저 시절 때도 여왕님과 종종 마주쳤다.

재작년이었나, 그쯤부터는 지독한 불운의 연속이었으니까.

"정말 아끼는 후배 작품이 망했을 때는 조금 화가 나더라고."

"죄송합니다."

"정수호 매니저가 미안할 건 없죠."

"...."

일개 매니저 주제에 공동대표와 제법 씁쓸한 추억을 나누고 있었다.

"수연이가 벼르고 있는 거 알아요?"

"네? 저를요?"

"그야, 팀은 사라졌고 팀장도 퇴사했다면서요."

"...."

왜 하필 나야, 나보다 직급 높은 사람도 있는데.

"그때 수연이가 하고 싶다고 했던 작품이 천만 관객 찍은 건 알고 있죠?"

"아.... 그랬었죠."

나를 포함한 우리 4팀에서 기를 쓰고 반대한 작품이었지.

끝내 이수연 배우는 우리가 추천한 작품에 출연했었는데.

"수연이 작품은 앞으로 두고두고 회자되겠죠. 희대의 망작으로."

"저는 재밌게 봤습니다."

뇌 빼고 진심으로 재밌게 봤다.

작품성에 상업성까지 갖췄는데.

"아무튼, 옛날 얘기는 여기까지만 하죠."

".... 네."

서연정 대표님은 눈을 부릅뜨고 대화를 이어갔다.

"이번에 솔라 월말 평가는 제가 직접 심사할 거예요."

"대표님께서 직접이요?"

"네, 정수호 매니저가 보름 동안 수고 좀 해주세요."

"아, 네. 대표님."

이내, 비서에게 코트를 건네받고 도도한 걸음으로 사라지는 여왕님.

'그러니까.'

제작에 참여하겠다는 뜻인지, 평가만 하시려는지 모르겠지만.

루나에게 집중되었던 회사의 관심은 자연스레 솔라로 향했다.

드르륵─

다시 연습실에 들자마자 아이들은 옹기종기 모여서 입을 모았다.

"대표님이 왜 오신 거예요?"

"무슨 말씀하셨어요?"

"혹시 우리 기대하고 계신대요?"

"빨리 말해죠요."

".... 오케이, 진정들 하고."

나는 솔라 멤버들을 스윽 둘러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데뷔 전 마지막 월말평가 심사 때 직접 평가하실 거야."

"네?"

"서연정 대표님께서 직접."

"...."

아직도 현역으로 뛰는 솔로 여가수이자 안무가의 평가.

데뷔도 못한 연습생들에겐 그야말로 엄청난 압박이겠지.

"너무 걱정하지는 말고, 그냥 하던 대로...."

"끼야호!"

"대박, 진짜예요!?"

"찐따 연습생인 우리가 알고 보니 슈퍼 루키?"

"...."

우리 애들은 실력에 비해 너무 밝아서 문제야.

"매니저님, 정말 감사해요."

"응? 나한테?"

"네."

김예지 연습생은 대표로 나서서 나에게 말했다.

"그동안 회사에서 이런 관심을 받은 적이 없었거든요."

"아, 그건...."

"솔라를 처음으로 믿어준 사람이 매니저님이에요."

"...."

안 믿어줘서 미안해.

지금도 망할 것 같아.

* * *

보름 뒤.

예지는 오늘도 가장 먼저 일어나서 이불을 개었다.

개성 강한 동생들을 깨우는 것도 그녀의 몫이었다.

보통 매니저가 오기 전에 준비를 마치는 편이었다.

"소미야, 일어나."

"으음. 좀만 더 잘랭."

"어서."

보통 자신과 함께 가장 먼저 일어나는 막둥이.

게임을 못하게 막으니까 제일 늦게 일어났다.

"오늘은 중요한 날이니까."

"아으, 귀찮은데...."

"피티쌤한테 말할게."

"지금 이불 개고 있어요, 언니."

노력의 결실을 회사의 중역들 앞에서 선보이는 날.

식욕과 수면욕을 억제하면서 오늘만을 기다렸다.

"빨리 다들 일어나."

"으어, 배고파."

소미를 시작으로 다른 멤버들도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났다.

"뱃가죽이 진짜 등에 붙을 것 같아."

"쿨럭, 기침하니까 복근 생김."

"...."

근 보름은 그야말로 극한의 다이어트 기간이었다.

오늘도 둘째는 일어나자마자 가장 먼저 열을 냈다.

"아 갑자기 개빡친다."

"원래 자주 빡치잖아."

"왜 우리 숙소 근처에는 편의점도 없어?"

"어차피 아무것도 못 먹는데."

"뭐라도 있겠지. 다이어트용으로."

"풉."

그때, 셋째는 피식 웃으며 냉장고 문을 열었다.

그리고 보란 듯이 요플레를 꺼내 뚜껑을 핥았다.

"양주희, 너 지금 뭐 처먹냐?"

"니 요플레 쩔더라."

"...."

은서는 울컥하는 마음을 간신히 삼키며 입을 열었다.

"너는 먹어도 운동으로 다 빼잖아. 이게 공평해?"

"그게 공평한 거야, 멍청아."

"어떤 미친 사람이 매일 운동을 10시간씩 해!"

"나."

스물한 살, 동갑내기 멤버들은 오늘도 싸울 기미를 보였다.

"와아, 안 되겠다. 너 옥상으로 따라와."

"흠, 내가 이기지 않을까?"

"예지 언니, 오늘은 진짜 말리지 마."

"...."

예로부터 원래 무는 개는 잘 짖지 않는다던데.

그냥 한 번쯤은 안 말리고 싸우게 내버려둘까.

"예지 언니?"

"응. 은서야."

"나 분명히 말했어. 말리지 말라고."

".... 응."

"진짠데?"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불쌍하게 바라보면 안 말릴 수가 없다.

"은서야, 네가 참아."

"그럴까 그럼?"

"네가 생일이 빠르잖아."

"그래. 내가 언니 얼굴 봐서 한 번만 봐준다."

"아이고, 고마워라."

은서는 얄밉게 말하는 양주희를 힐끔 쳐다보고, 다시 입을 열었다.

"언니, 우리도 데뷔하면 루나처럼 이사 갈 수 있겠지?"

"오늘 월말평가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준다면."

"으악, 엄청 중요한 거였잖아!?"

".... 몰랐어?"

몰랐던 건 아니지만.

당연히 데뷔조 선발 평가보다는 아니라고 생각했지.

띠리리링─

그때, 거실의 유선 전화기에서 벨 소리가 울렸다.

누군지 안 들어봐도 뻔했다.

정수호 매니저님 전화겠지.

그의 믿음을 저버리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 게 언제부터였을까.

"우리 잘할 거야."

서 대표님과 본부장님 앞에서 당당하게 증명하고 싶었다.

솔라를 선택한 정수호 매니저의 안목이 틀리지 않았음을.

* * *

역시, 내 안목은 틀리지 않았다.

우리 솔라는 실력파가 아니야.

그래도 성격은 착하니까 됐다.

"겨우 이게 전부예요?"

서연정 대표님은 신랄한 독설을 마음껏 내뱉었다.

오디션 방송에서 갈고 닦은 뱀 같은 혓바닥이었다.

"공 실장, 보름 동안 준비했으면서 겨우 이 정도예요?"

"죄송합니다."

"에휴, 루나 때도 그러더니 실망이 크네."

"...."

음정이나 박자, 혹은 안무에 특별한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었다.

국내 최고 전문가들이 모여서 만들었는데 완벽하다고 봐야지.

오히려, 그동안 거슬리는 단점들이 눈에 밟혔다.

고음이 약한 메인보컬.

과할 만큼 강한 래핑.

너무 어린 막내의 조화.

각각 따라 놓고 봐도 거슬리는데, 대표님이 만족할 리가 없....

"제가 얼마나 세계관 구상을 열심히 했는지 몰라요?"

"네?"

"아니, 태양신 컨셉이 제일 중요한데. 이렇게 실망시킬 줄은 몰랐네."

"???"

직원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대표님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다이애나 왼쪽 어깨 브로치, 저게 핵심인데 왜 어깨에 달았죠?"

"네? 그거야...."

"태양 여신이 강림할 때 필요한 물건이라니까."

"아하."

그게 뭔데요, 씹덕아.

"아니, 그럼 실력이 문제가 아니라...."

"실력은 트레이너들이 관리하는 거죠, 제가 그걸 왜 신경 써요?"

"...."

졸라 맞는 말이라서 할 말이 없었다.

탑가수의 평가는 좀 다를 줄 알았지.

"김예지 연습생, 안무에서 창 던지는 자세 있죠?"

"네? 네! 대표님."

"그 창 이름이 뭐라고 했죠?"

"그, 그게...."

"이거 봐, 멤버들도 세계관 숙지가 아직 덜 됐잖아."

"...."

아마 궁니르였나. 그딴 거 외울 시간이 어딨겠냐고.

춤추고 노래 연습하면서 다이어트도 해야 하는데.

"태양 여신 세계관은 나랑 정수호 매니저만 진심인가 봐."

"...."

저는 아닌데요.

"연습생들 데뷔하기 전에 무조건 세계관부터 숙지하도록 하죠, 알겠어요?"

"네. 대표님."

아니, 세계관이 뭔데 그렇게까지 진심인 거야.

"본부장님, 그만 일어나시죠."

"네. 대표님."

곧이어,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서연정 대표님.

문을 열고 나서기 전, 고개를 돌려 입을 열었다.

"정수호 매니저, 코디랑 의상 컨셉을 같이 준비했다면서요?"

"아, 네. 맞습니다."

"감이 좋네요."

그런 말 태어나서 처음 들어봤어요.

그냥 시켜서 어쩔 수 없이 한 건데.

"노래랑 제법 잘 어울렸어요."

"감사합니다!"

대표님이 사라지고, 직원들은 다 함께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실장님, 열심히 준비한 보람이 있네요."

"솔직히 많이 늘었으니까."

"이제 루나랑 같이 무대에 올라도 부끄러울 정도는 아닙니다."

"좀 더 노력해야죠."

공세원 실장님은 박 팀장님을 격려하며 입을 열었다.

"아무튼, 수고했어요."

"아닙니다."

아무리 봐도, 내 눈에 월말평가 무대는 정말 별로였다.

내가 대표였다면 절대 대중 앞에 내놓을 수 없을 만큼.

"정수호 매니저도 수고했어."

"감사합니다."

오늘 솔라 무대는 나 혼자만 별로였나 봐.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예뻐 보이는 법인데.

솔라는 아무리 봐도 불안감이 안 없어진다.

아니, 혹시 대박 나면 그때는 사라질 수도 있겠지.

"박철민 팀장님."

"네. 실장님."

이내, 공 실장님은 진지한 표정으로 질문을 건넸다.

"다음 주에 솔라 뮤비 촬영이죠?"

"맞습니다."

"그 전에 집무실에 들러주시죠."

"알겠습니다."

* * *

며칠 뒤.

나는 오늘도 멤버들을 연습실에 데려다 주고 사무실로 향했다.

이제 결과만 확인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선택의 시간은 끝나지 않은 모양이다.

"수호야, 솔라 뮤비 스튜디오 바꿨다."

"네? 갑자기 왜요?"

"예산이 올라서 업계 탑티어랑 재계약했어."

"...."

공 실장님, 루나 망하더니 진짜 제대로 신경 써주시는구나.

"지금까지 감독 후보는 세 명이야."

"아, 이분들이에요?"

"이전 영상들 한번 확인해 봐."

"네."

이번에는 삼지선다네.

솔라의 뮤비 촬영 감독 후보는 총 세 명이었는데.

그중, 한 명은 이름만 들어도 알 법한 사람이었다.

"이분은 엄청 유명한 분이네요."

"맞아. 루나 뮤비 촬영 감독님."

"그럼 당연히...."

순간, 나는 하던 말을 잠시 멈추고 살짝 뜸을 들였다.

드림 에이전시에서 이런 생각을 하면 항상 망했잖아.

"흠, 근데 루나 때 반응이 너무 안 좋았단 말이지."

"네. 그렇긴 하죠."

이름 자체가 명함인 감독이 아닌가.

선택할 수 있으면 고르는 게 맞았다.

"공세원 실장님은 뭐라고 하세요?"

"우리 팀에서 알아서 선택한 다음 결재받으러 오라고 하시네."

"...."

쫄았네, 쫄았어.

한번 망하더니 많이 위축되셨구나.

"아무튼, 너도 한번 확인해 봐."

"네. 팀장님."

매니지먼트 1팀에 오고, 내 판단은 항상 역선택이었다.

이미 허찬성 프로듀서 마약 사건으로 입증하지 않았나.

탑티어급 스튜디오의 감독들.

실력으로는 변별력이 없었다.

'일단 루나 감독은 제외.'

내가 루나 뮤비를 봤을 때 너무 좋았거든.

대중성과 담을 쌓은 개떡 같은 안목이라.

'나머지 두 명 중에서....'

그동안 두 사람이 찍은 뮤비를 하나씩 확인하며 천천히 감상했다.

후보 A는 아이돌 군무에 초점을 맞추는 기계적인 스타일.

후보 B는 컨셉이나 배경, 의상을 중시하는 감성파 감독님.

곧이어, 뒷골에서 쎄한 감각이 스멀스멀 밀려왔다.

그냥 단순한 취향의 차이였다.

감성이라는 모호한 단어를 좋아하지 않으니까.

'어떡하지.'

이번에는 도무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지금 선택하면 다시는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아서.

"수호야, 왜 말을 하려다 말아?"

".... 후보 B로 가시죠."

"이유는?"

그게 망할 것 같으니까.

"여왕님이 좋아하시겠네요."

"서연정 대표님?"

"네."

대표님께서 열심히 조각한 세계관을 잘 살려줄 촬영 감독.

이분이랑 하면 망해도 대표님한테 미움받을 일은 없겠지.

"고작 그런 게 이유라고?"

"고작이라뇨? 여왕님한테 혼나보쉴?"

"...."

* * *

소원뮤직 미디어, 솔라 M/V 촬영 현장.

나는 몽환적인 무대에 오른 멤버들을 멍하니 바라봤다.

진짜 멤버들 비주얼 만큼은 어디 내놔도 안 부끄러운데.

-나만 봐. 나만 봐. 나만 봐.

-나만 봐. 나맘 봐. 바밤 봐.

지난 한 달 동안 지겹도록 들은 무한 후렴구.

작사가님은 세계관에 맞춰 개사까지 해주셨다.

".... 이렇게 좋은 노래를 나만 들을 순 없지."

하늘하늘한 흰옷을 걸치고 지상에 강림한 5명의 태양 여신.

크로마키 배경 앞에서 관종 소녀 다섯 명은 노래를 불렀다.

뮤비 컨셉은 좀 어떻게 안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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