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로 오해받는 연예계 생활-4화 (4/200)

[4] 역 베팅(4)

언제부턴가 계속해서 이어지는 잘못된 판단.

그중 몇몇 케이스는 그냥 '운'이 더럽게 나쁜 경우였다.

불륜, 학폭, 도박, 음주운전, 열애설 등 이유는 다양했다.

그저 안목이 나쁘다는 말로는 설명할 수가 없었다.

재수 없는 스캔들 때문에 몇 번이나 말아먹었으니.

"형, 진짜 왜 그랬어."

"일단 한잔하고 말해."

나는 금수저 날백수 동생과 술잔을 나누며 대화를 이어갔다.

"아니, 지금 술이 중요해?"

"그럼 뭐가 중요하냐."

"당연히 음원이 중요하지!"

실장님께서 승인한 신인 걸그룹 솔라의 디지털 싱글 <나만 봐>.

결국 취향이나 촉, 감각 따위를 믿고 역선택을 강행했다.

뒤통수가 가려울 때 내린 판단은 100% 전부 틀렸으니까.

"벌써 본부장님 결재까지 났다며."

"어, 그럴걸."

"진짜 왜 그랬어?"

"...."

재하야, 다른 사람은 몰라도 니가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나보고 파괴왕이라고 반대로만 고르는 게 더 낫겠다면서.

"그냥 이게 맞다고 생각했어."

"...."

사실, 이전 회사에서도 역배에 걸어볼 수는 있었지만.

공적인 업무를 비과학적인 촉에 의지한 건 처음이었다.

"이유가 뭔데? 어떻게 허찬성 프로듀서를 거절해?"

"좀 약하더라고."

"약하긴 뭐가 약해! 그 사람 히트곡이 얼마나 많은데!"

"...."

그 사람 말고 신인 작곡가 쪽이 약하다고.

"솔라 멤버들은 알아? 누구 곡을 깠는지?"

"알면 개쌍욕 먹겠지."

나 같아도 허찬성 작곡가의 곡을 거절했다고 하면 욕부터 박고 시작한다.

신인 걸그룹에게 인맥을 쌓을 기회가 얼마나 소중한지 잘 알고 있었으니.

"나도 솔라 멤버들한테는 좀 미안하네."

"에휴."

고작 징크스 때문에 젊은 친구들 앞길을 망친 거라면.

앞으로 이 바닥에서 밥 빌어먹으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언제부터 형이 평론가였다고."

"닥치고 짠이나 해."

"형, 설마 내 말 듣고 역 베팅한 거 아니지?"

".... 내가 미쳤냐?"

"후우, 난 또 나 때문인 줄."

이 쉑, 어이가 없네.

쓸데없이 예리한데.

"형님, 그래도 솔라는 진짜 잘 선택했어."

"왜?"

"루나 매니저면 바쁘기만 하겠지, 그게 뭐가 좋아."

"거 참, 금수저다운 생각이네."

"잉?"

너 같은 부자는 성과급을 월급만큼 받는다고 해도 별로 감흥이 없겠지.

드림 에이전시는 인센티브 시스템으로 단시간에 급성장했다.

합병당한 큐앤지 레이블도 당연히 같은 정책을 유지했고.

지금도 회사에 실적 올리고 싶어서 눈깔 돌아간 직원이 어디 한둘인가.

"재하, 너 여동생은 네 아버지 회사 들어갔다며."

"어, 인턴으로."

"수능 끝난 지 얼마나 됐다고."

"그 수능을 조졌잖아."

"....."

띠링─

한창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는데, 박철민 팀장님께 톡이 날아왔다.

[내일 아침에는 이 주소로 정시 출근해]

[강남구 도방대로 24-5 문화빌딩 512호]

주소지를 보니 큐앤지 레이블의 사옥, 연습실.

데뷔조 멤버들이 숙소보다 오래 머무는 장소였다.

"슬슬 솔라도 스케줄 들어가려나 본데."

"음, 형이 걸그룹 매니저라니. 뭔가 신기하긴 하네."

"여태까지도 매니저였는데?"

"남자 배우만 맡았잖아, 여배우 딱 한 명만 빼고."

"...."

취향 확고해서 좋겠다.

"아무튼, 나도 앞으로는 루나 말고 솔라 응원할게."

"그래, 고맙다."

"루나 쇼케이스가 다음 주 수요일 오후 두 시 반이니까...."

".... 그냥 달빛 팬클럽이라고 해."

"그럴까 그럼?"

"...."

루나 데뷔조엔 SNS 스타 류시아도 포함됐기에.

솔라가 그들보다 성공할 확률은 극히 희박했다.

아니, 솔직히 우리 솔라 멤버들뿐만 아니라 데뷔곡도 존나 망할 것 같아.

그렇다고 누구한테 속내를 털어놓을 자신은 없었다.

'촉'이 좋아서 오히려 반대로 골랐다고 하면 비웃겠지.

간질거리는 뒤통수를 긁으며 한숨을 내뱉었다.

'하아, 이번에도 나 때문에 망하면....'

이 길은 나랑 안 맞는 거야.

이제 그만둘 때가 된 거지.

* * *

원래 아이돌이라는 존재는 연예계에서도 좀 애매했다.

솔로 가수보다 노래를 못하고,

전문 댄서보다 춤을 못 추고,

배우보다 평균 외모가 떨어진다.

혹시라도 그 모든 재능을 갖춘다고 한들, 과연 날아오를 수 있을까.

매년 데뷔하는 아이돌 그룹이 대략 40여 팀.

그중 살아남는 건 몇몇 극소수 팀에 불과했다.

그들 모두가 땀을 쏟아내며 연습하고 실력을 키우고 있지만.

대부분은 서서히, 혹은 빠르게 대중들의 관심에서 멀어진다.

"예지야, 보컬 연습 매일 하는 거 맞지?"

"네. 선생님."

"하아, 음색은 너무 좋은데."

"...."

음역대가 너무 좁다는 치명적인 단점.

웬만한 음악으로는 주목받기 어려웠다.

"그래도 곡을 잘 고르면 괜찮을 것 같은데. 고음 없는 후크송 같은 거."

"아.... 정말요?"

"뭐, 음원 선정은 내 담당이 아니라서. 딱히 해줄 말이 없네."

"...."

아주 사소한 오점이나 계기만 있어도 무너지는 게 신인 아이돌.

혹독한 월말평가와 카메라 테스트를 거쳐 데뷔조에 발탁됐지만.

'내가 잘해야 하는데.'

메인보컬이자 리더로서 어깨가 무거웠다.

혹시, 데뷔해도 인기가 없으면 하루살이와 크게 다를 게 없었다.

행사에 불러주는 가수와 그렇지 못한 가수는 하늘과 땅의 차이.

"얘들아, 오늘 새 매니저님 처음 오시니까 인사 잘하고."

"네. 선생님!"

"정수호 매니저님, 다들 이름은 들어봤겠지?"

"들었어요."

예지는 인생 첫 매니저가 정수호라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회사에서 자신들의 미래와 재능을 믿어주는 유일한 직원이니까.

친한 트레이너분들조차 루나의 성공 가능성을 훨씬 더 높게 쳤는데.

루나보다 솔라가 뜰 거라고 말해준 사람은 처음이었다.

그것도, 무려 공세원 실장님 앞에서 당당하게 말했다지.

'수호, 정수호.... 이름도 예쁘네. 수호천사처럼.'

마치 소중한 1호 팬을 발견한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앞으로도 절대 매니저님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언니언니! 루나 애들은 지금 무대 동선 맞추고 있다던데."

"데뷔가 다음 주였나?"

"응. 걔네는 벌써 연예인 라커 받았어."

"우리도 곧 받을 거야."

솔라에게도 오늘은 중요한 날이었다.

마침내 기다리던 데뷔곡을 정하는 날.

"혹시 우리도 데뷔하면 숙소에서 핸드폰 쓸 수 있는 건가?"

"응. 데뷔하면 풀어주신대."

"와아, 그동안 너무 답답했오."

이내, 예지는 멤버들을 독려하고 트레이닝룸을 벗어났다.

박 팀장님은 언제쯤 오시는지.

사무실 전화기로 연락을 걸어볼 생각이었는데.

"정수호, 어제 일은 네 실수였다."

"...."

박민철 팀장님과 정수호 매니저님.

의도치 않게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들었다.

"네가 굳이 실장님 앞에서 그렇게 말할 필요는 없었어."

"죄송합니다."

"죄송한 문제가 아니야."

"...."

혼나는 상황 같아서 자리를 피해주려고 했는데.

대화 내용을 들어보니 자신들과 연관이 있었다.

"솔라 데뷔곡은 전적으로 실장님께 선택을 맡기는 게 맞았어."

"저는 그 곡이 최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책임은 질 수 있고?"

"네, 저는 솔라를 띄우지 못하면 퇴사할 겁니다."

"뭐?"

순간, 예지는 깜짝 놀라서 급하게 입을 틀어막았다.

대체 어떤 곡을 선택했길래 퇴사까지 각오하셨을까.

"저는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이렇게까지 자신들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계셨다니.

아티스트를 아껴주는 매니저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우리를 그만큼....?'

언제나 루나에게 밀렸던 멤버들의 가능성을 처음으로 알아봐 주셨다.

서로에 대한 믿음으로 성장하는 아티스트와 매니저.

줄곧 머릿속에서 상상했던 멋진 파트너 관계가 아닐까.

아직 데뷔도 못한, 회사에서도 2군 취급받는 연습생에 불과했지만.

매니저님을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

그렇게 연습하면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오겠지.

"뭐, 일단 들어가서 인사부터 하자고."

"네. 팀장님."

김예지는 급하게 정신을 차리고 연습실로 돌아갔다.

* * *

원래부터 퇴사까지 생각한 건 아니었지만.

나도 양심이라는 게 있는 사람인데.

역 베팅 실패했으면 이 바닥 떠야지.

그냥 나는 연예계에서 뭔 지랄을 해도 안 되는 사람인 거야.

누가 봐도 루나가 정답인 상황에서 솔라를 골랐다.

허찬성 곡을 버리고 신인 작곡가의 곡을 선택했다.

'일단, 시원하게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보자.'

어쨌든 내 목표는 솔라를 키우는 데에 있었다.

성공을 위해서 '망할 것 같은' 감각을 따를 뿐.

"인사해, 이쪽은 정수호 로드 매니저."

"안녕하세요─!!"

나는 솔라 데뷔조 5명의 멤버들을 천천히 확인했다.

리더 김예지와 둘째 장은서가 비주얼 멤버.

여배우와는 다른 걸그룹만의 매력이 있었다.

'사진보다 실물이 낫네.'

루나는 걸크러쉬, 솔라는 청순큐티 컨셉이라고 하더니.

생각보다 그룹 분위기가 밝아서 일할 맛은 날 것 같다.

"와아, 우리도 매니저 생겼다!!!"

"몇 살이에요?"

"오빠라고 부를게용."

예상과 달리, 멤버들의 실물 비주얼과 밸런스는 전체적으로 무난했다.

아주 좋은 건 아니고 딱 무난한 수준.

워낙 기대치가 낮아서 감지덕지했다.

특히, 가장 몸매가 좋은 미국 혼혈인 넷째 멤버.

고작 6개월 차 연습생이라던데 비율이 사기였다.

'그리고, 막내 이름이 소미였나.'

급식밥 먹는 중딩이라고 해서 걱정했는데.

실제로 보니까 비율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키가 작은 대신 얼굴이 극단적으로 작아서.

".... 아니, 잠깐만."

뭐지, 한 명이 좀 수상한데.

"저기요, 근육 상태가....?"

"네? 저요?"

양주희 씨, 아이돌 말고 트레이너 하셔도 되겠어.

"무슨 걸그룹 멤버가 3대 300은 칠 것 같은데."

"에이, 보통이죠."

그럴 리가.

".... 건강미 있네요."

"오, 뭘 좀 아시는구나?"

칭찬 아니야.

이건 뭐, 맞짱 뜨면 남자도 이길 것 같잖아.

누가 그런 걸그룹 멤버의 팬이 되려고 할까.

"크흠."

그때, 박 팀장님은 헛기침을 두어 번 하더니 귓속말로 속삭였다.

"양주희, 앞으로 운동 못하게 막아."

"...."

팀장님이 할 말은 좀 아닌데요.

뇌까지 근육으로 채웠으면서요.

"그럼 여태까지는 왜 안 막은 건데요?"

"루나랑 찢어지고 나서 그냥 그렇게 됐어."

"네?"

그때부터 대충 방치했다는 뜻인가.

그럴 거면 데뷔조로 뽑지를 말든가.

"저 친구는 일주일만 내버려둬도 근육이 붙어서."

"아."

무슨 근육이 증식이라도 하나 봐.

'어지럽네.'

과연 걸그룹이랑 헬창이 어울리는 단어인가.

당장 연습실에 가져온 프로틴부터 버려야지.

"아무튼, 다들 모여 봐. 노래부터 들려줄게."

"좋아요!"

"빨리 틀어줘요, 현기증 날 것 같아요."

"너무 기대돼."

이내, 박 팀장님은 연습실에 설치된 오디오를 조작했다.

넓은 연습실에 울려 퍼지는 리드미컬한 비트.

대충 선율에 끼워 맞추는 댄스곡 가사는 정말 거슬렸다.

그리고 멜로디도 마찬가지.

도입부는 무난한데 후렴구는 내 취향이랑 거리가 멀었다.

'에휴, 또 모르지.'

아무리 별로여도 그동안 내 촉이 좋았던 적은 없으니까.

"와아, 노래가 엄청 좋은데요?"

"그러게, 후렴구 너무 잘 짰네. 계속 생각나."

"신인 작곡가 노래 맞아요?"

"이런 게 재능....?"

생각보다 반응이 좋네.

작곡 시장도 워낙 레드오션이라 한 곡을 위해 수백 곡이 경쟁한다.

특히, 이렇게 중견급 엔터 소속 A&R의 귀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다들 좋다고 하시니까 다행이네요."

"매니저님, 감사합니다."

"네?"

이내, 김예지 연습생은 눈을 반짝거리며 나를 바라봤다.

"후크송, 일부러 저 때문에 고르신 거죠?"

"아니요."

"제가 고음이 약해서 단점을 가리려고."

"무슨 말씀이신지...."

"고마워요."

"???"

이게 그렇게까지 고마울 일인가 싶네.

일단, 데뷔조 멤버들이 썩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경쟁 곡이 허찬성 프로듀서의 곡이었다는 사실을 알면 달라질 수도.

"저기, 근데 우리 두 곡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아, 그러네."

사실 숨기려면 숨길 수도 있었지만.

어차피 금세 밝혀질 사실이었으니.

"저랑 팀장님, A&R 님이 상의하고 이 곡으로 선택했습니다."

"뭐, 이 곡도 좋은...."

"다른 후보곡은 허찬성 프로듀서님 곡이었습니다."

"???"

순간, 연습실의 공기가 차갑게 얼어붙었다.

".... 누구라고요?"

특히, 둘째 장은서의 붉어진 표정을 보니까.

이러다 잘하면 오늘 한 대 맞을 수도 있겠다.

"허찬성 프로듀서님이요?"

"와, 선 넘네."

"왜, 왜지. 어, 왜 때문에....?"

"으아앙. 망했어."

"매니저님, 어디 살아요? 주소 좀 불러주세요."

".... 그건 왜요."

혼란스러운 틈에, 오직 리더만이 내 편을 들어주었다.

"으음, 매니저님도 생각이 있으셨겠지. 그쵸?"

"그럼요. 당연하죠."

생각이 있긴 있었는데, 이유가 조금 거시기해요.

"작곡가 명성보다는 노래 자체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죠? 저는 믿고 있었어요!"

"감사합니다."

"당연히 이 곡이 뜰 거라고 생각해서 골라주셨잖아요, 맞죠!?"

"...."

그 반대입니다만.

* * *

며칠 뒤,

생각보다 불운의 효과는 빠르게 나타났다.

그것도 아주 즉각적이고 확실한 방법으로.

아침부터 뉴스 기사를 멍하니 쳐다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유명 작곡가 허 씨, 대마초 흡입 혐의로 입건. 증거 인멸을 시도한 정황을 포착한 경찰 관계자는....]

"세상에, 솔라는 데뷔도 하기 전에 망할 뻔했네."

이게 그 운빨 불변의 법칙인가 뭔가 하는 그거냐.

허찬성 곡 좋다고 생각하니까 귀신같이 터져나가.

"신인 작곡가 노래는 좀 약할 줄 알았는데."

저쪽은 진짜로 '약' 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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