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역 베팅(3)
걸그룹 루나와 솔라.
두 그룹의 멤버 구성을 보면 대충 감이 왔다.
한쪽에만 얼마나 많은 힘을 실어주고 있는지.
인기 연습생 류시아를 중심으로 걸크러쉬 매력을 뽐내는 루나에 비하면.
고음 안 되는 메인보컬, 잼민이, 헬창소녀, 6개월 차 외노자, 남은 한 명은.
[분노조절장애 안 고치면 좆됨]
"이게.... 데뷔조 프로필?"
공식 프로필은 아니고, 후배 직원이 구해온 비공식 자료집.
회사 직원이 이렇게 평가할 정도면 대체 어느 정도인 거야.
아니, 나 말고 대부분은 똑같이 생각할 것 같은데.
누가 봐도 망할 것 같은 느낌이 들 수밖에 없잖아.
간지러운 뒷목을 긁적이며 다른 정보들을 꼼꼼하게 확인했다.
"저기, 선배님."
"아, 상모 씨. 저한테 프로필 보내 주신 거 정보 확실해요?"
"네. 맞습니다!"
"와.... 할 말이 없네."
"양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런 자료를 건네줬으면서 그런 소리가 나오냐.
내가 병신도 아니고 안 친한 후배한테 양보는 무슨.
이 회사는 성과에 따라 월급봉투 두께가 달라진다고.
'이게 맞을까.'
솔직히, 징크스 때문에 이런 선택을 하는 게 맞는 건가 싶다.
남들 모두가 맞는다고 하면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법인데.
"선배님, 벌써 공고 났어요!"
"아 그래요?"
들뜬 모습을 전혀 숨기지 않고 스마트폰을 내미는 후배.
[아티스트 2본부 로드 매니저 인사 공고]
⦁소속 : 매니지먼트 1팀
-4인조 걸그룹 루나 <팀원 지상모>
-5인조 걸그룹 솔라 <팀원 정수호>
공식 홈페이지에 걸린 공지를 보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보통은 햇빛이 달빛보다 위에 있는 게 일반적이지 않나.
그냥 대놓고 루나가 메인 그룹이라는 걸 드러내는 건가.
"제가 성과급 타면 식사라도 대접할게요! 하하."
"그래요, 극한직업인데 돈이라도 벌어야죠."
"아 선배님, 말씀 편하게 하세요."
"그럴까?"
"네!"
정확한 날짜는 모르지만, 루나가 먼저 데뷔한다.
개인적인 예상으로는 무조건 성과를 낼 것 같다.
벌써 회사 차원에서 들어가는 프로모션의 예산 규모가 달랐다.
'.... 기다려보면 알겠지.'
이 미쳐버린 똥촉이 이번에도 반대편의 손을 들어줄지.
4팀 때처럼 회사가 아무리 푸시해도 쫄딱 망해버릴지.
"선배님, 근데 아까부터 머리를 자꾸 긁으시네요."
"그냥 어릴 때부터 습관."
"아하."
혹시라도 루나가 망하면 내 탓일지도 몰라.
뒷목이 살살 간지러운 것을 보면 확실했다.
"정수호."
"네?"
순간, 뒤쪽에서 박철민 팀장의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
"생각보다 훨씬 더 꼴통이었구나?"
"...."
빡빡이 근육 형님 화법이 너무 직설적이네요.
"뭐, 본인 선택이니까 존중은 해야지."
".... 감사합니다."
"솔라 데뷔 일정이 정해졌다."
"아."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박 팀장의 이어지는 말을 기다렸다.
"석 달 뒤."
"...."
아직 곡도 준비 못 했는데 너무 타이트한 일정이었다.
대조되는 컨셉이라고 언플하더니 차별이 너무 심했다.
'지금부터 석 달이면....'
그냥 딱 연습할 시간만 주네.
안무도 짜고, 뮤비도 찍으려면.
"정수호, 따라와. 지금 A&R 부서에 피칭받은 곡 찾으러 가니까."
"네. 팀장님."
"상모는 시간 날 때 루나 멤버들한테 인사라도 하고."
"알겠습니다."
* * *
큐앤지 레이블 사옥.
연습생들은 졸린 눈을 비비고 트레이닝룸에 모습을 드러냈다.
총 9명의 데뷔조는 자연스럽게 반으로 찢어져 팀을 구성했다.
"주희랑 소미는?"
"뭐, 오랜만에 쉬는 날이니까."
"음, 그치."
아마 한 명은 운동 중이고, 한 명은 소환사의 협곡에 있겠지.
솔라의 예비 리더는 한숨을 내뱉고 남은 멤버들에게 말했다.
"우리 담당해줄 매니저분 정해졌어."
"1팀이겠지?"
"응. 정수호 로드 매니저님."
"아."
미신 따위를 믿고 싶지는 않지만, 다들 기피하는 대상이었다.
"그, 드림 에이전시에서 오신 분?"
"맞아."
회사에서도 재수 없다는 이유로 4팀을 해체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유치하지만 '죽을 사(死)' 팀이라며 잘 없어졌다는 이들도 있었다.
"왜 하필이면...."
아직도 연예계에선 돼지 머리를 앞에 두고 고사를 지내는 게 일상이다.
작품과 실력이 충분하다면, 남은 건 오로지 운빨과 타이밍.
성패를 하늘이 점지해준다는 말은 우스갯소리가 아니었다.
이러한 바닥에서 성공에 대한 확신은 그 누구도 할 수가 없었다.
"그분.... 루나 애들도 무조건 피하고 싶댔잖아."
"그렇게 됐어."
"설마 이런 것도 차별이야?"
"은서야, 말조심."
"아니, 솔직히 좀 그렇잖아. 너무하네."
"그런 거 아니고."
고립된 성에서 유일하게 가치를 알아봐 준 고마운 사람.
처음으로 회사에서 자신들을 높게 평가해준 직원이었다.
"직접 선택하셨대, 우리를."
"응?"
예지 역시 큐앤지 레이블의 성과급 시스템을 잘 알고 있었다.
직장인이라면 루나를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전혀 없을 텐데.
"루나를 마다하고 우리를 선택하신 거야."
".... 왜 그랬지?"
"가능성을 봤다고 하셨댔나."
"풉."
그때, 옆에서 듣고 있던 루나 데뷔조 멤버가 슬쩍 끼어들었다.
"아, 미안. 나도 모르게."
"너 방금...."
"아니, 말이 좀 이상하잖아. 회사에서 우리 사정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그건."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같은 데뷔조로 묶여 있던 아이들.
어른들의 사정으로 찢어진 이후에 사이가 소원해졌다.
"야, 지금 우리 비웃었냐?"
"은서야, 그만해."
"언니 놔 봐."
"...."
별로 잡고 있지는 않아.
가서 싸워도 괜찮은데.
"아, 놔보라니까?"
".... 그러지 마."
"빨리 놔, 안 놔?"
"...."
아니, 안 잡고 있다니까.
오히려 니가 잡고 있어.
"손목 아프니까 놔죠요."
"너희들, 내가 우리 언니 때문에 특별히 봐주는 거야!"
"예, 예~"
루나 데뷔조 연습생들은 미친개를 피하려는 듯이 연습실을 벗어났다.
"아오, 저것들 옛날엔 안 저랬는데."
"그야, 뭐."
그때는 같이 데뷔할 예정이었잖아.
지금이랑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지.
저쪽은 유망주, 큐앤지와 2본부의 희망이라고 불렸으며.
솔라 데뷔조는 그냥 남는 인원들을 모아놨을 뿐이니까.
"우리가 많이 부족하지."
"뭐야, 언니 왜 그런 말을 해? 노래는 언니가 제일 잘해!"
".... 음역대가 좁잖아."
"에이, 음색 깡팬데."
외모와 노래 실력은 뛰어나지만, 고음이 너무 부족했다.
김예지가 보컬 트레이너들 앞에서 항상 듣는 평가였다.
"고음 못 올려도 노래 잘하는 가수가 얼마나 많은데!"
"내가 메인보컬이니까 더 잘해야지."
"...."
그때,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던 다른 멤버가 입을 열었다.
"저기, 언니."
"응?"
예지는 다이애나의 말에 눈을 치켜떴다.
평소에 심하다 싶을 만큼 말수가 적어서.
"이제 우리 곡 나오는 거야?"
"응. 아마 오늘 확정 날 거야."
"으음...."
외국인치고는 발음이 나쁘지 않았지만, 아직은 살짝 어눌했다.
"확정? 확장?"
"아, 그니까.... 픽스!"
"오."
박철민 팀장님은 후보곡이 두 개라고 말씀해 주셨다.
루나처럼 열 곡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아마 두 곡 가져오실 거야."
"그럼 둘 중에서 우리 마음대로 골라도 돼?"
"음, 그냥 의견만 물어보시는 정도겠지."
"에이, 그게 뭐야."
그래도 데뷔할 기회가 주어지는 게 어디야.
벌써 루나는 뮤비 찍고 데뷔만 기다리던데.
"루나 애들 부러워."
"부러울 거 없어. 우리도 금방 데뷔할 거니까."
"응. 우리도 데뷔!"
굳이 다른 걸그룹과 비교할 필요는 없었다.
데뷔까지는 앞으로 고작 석 달.
든든한 매니저까지 생겼으니까.
"우리 열심히 하자."
"응!"
* * *
확실히, 요즘 작곡가들 실력은 다들 뛰어났다.
개인적인 취향이나 선호도에 따라 갈리기는 하겠지만.
실력이나 수준은 상향 평준화돼서 변별력이 없으니까.
발라드풍의 부드러운 댄스곡 <동화>.
중독성 있는 힙합 댄스곡 <나만 봐>.
개인적인 취향을 차치하면 기술적으로는 우열을 가릴 수 없었다.
"흠, 둘 다 좋네요."
"...."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거지 같이 확고한 취향이 발목을 붙잡았다.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이해할 수가 없네.
귀로 듣기에는 두 곡 다 훌륭하고 좋은데.
'두 번째 곡은 후렴이 너무 반복적이라....'
무한히 반복되는 싸비.
이건 너무 많이 나오네.
하나가 거슬리니까 다른 단점들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Hey, look at me! 나만 보라니까, Du-bi-du Bab! 기대해, 새로운 Generation! 깜짝 놀랄걸?]
가사는 또 왜 이러지.
이거 청순 컨셉 맞나.
내 빌어먹을 '촉'은 절대 이 곡을 고르지 말라고 강하게 경고했다.
"저기, 이거 가사가 좀···."
"트렌디하죠? 김영은 작사가님이 써주셨다고 하네요."
"엥?"
"요즘 젊은 감성을 정확히 저격했죠."
"...."
센세, 저는 평생 트렌드를 따라갈 자신이 없읍니다.
'그냥 내 취향이 이상한 건가.'
기본적으로, 두 번째 곡은 망했을 때 뒤가 없는 느낌이다.
성지훈 A&R과 달리, 박철민 팀장은 나와 생각이 같았다.
"두 곡 모두 멜로디는 좋은데, 개인적으로는 첫 번째가 낫군요."
"아, 그래요?"
"나만 봐, 이 곡은 호불호가 많이 갈릴 것 같아서."
"음, 그런 면이 있긴 하죠."
한 번이라도 망하면 그다음 기회는 절대 오지 않을 것 같은 음악.
고급스러운 느낌보다는, 뭔가 싼마이 느낌이 물씬 풍겼다.
노래를 다 듣고 난 이후에도 귓가에 후렴구가 맴돌았으니.
큐티청순 컨셉 걸그룹의 데뷔곡으로 쓰기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게다가, 동화는 허찬성 프로듀서님 곡이니까요."
"네. 직접 프로듀싱까지 맡아주실 겁니다."
"그럼 더 좋죠."
데뷔도 못한 작곡가의 <나만 봐>와 탑 프로듀서가 쓴 <동화>.
신인 작곡가가 여기까지 올라온 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했지만.
'이거 참.'
그룹에 이어서, 또다시 시련의 순간이 찾아왔다.
이번에도 개떡 같은 예감이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점점 더 <나만 봐>에 대한 불안감이 커져만 갔다.
"일단 두 곡 모두 연습생들한테 들려주시죠."
"그게 좋겠네요. 의견 정도는 들어볼 수 있으니까."
".... 저기."
박철민 팀장이랑 성지훈 A&R.
뒷머리를 슬쩍 만져주고,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정수호, 무슨 할 말 있어?"
"나만 봐."
"뭐, 인마?"
".... 가 좋은 것 같습니다."
이번에도 선택의 이유는 오직 하나였다.
매번 실패하는 이 불안한 감각을 따라서.
"망할 것 같아서요."
"응?"
"나만 봐, 이 곡을 고르지 않으면 망할 것 같아서요."
"흠."
당연히 거짓말이지.
그게 망할 것 같은데.
"허찬성 프로듀서님께 너무 실례 아닌가?"
"아, 그런 뜻은 아니었습니다."
작곡가 이름값 떼고 고르더라도 <동화>쪽이 훨씬 끌렸다.
이 간질간질한 손모가지를 잘라내기 전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냥 개인적인 취향입니다."
"네 취향으로 아티스트 곡을 골랐다고?"
"...."
남의 취향을 내가 골라줄 수는 없잖아요.
말로 표현이 불가능한 나만의 촉.
한마디로 말하면, 그냥 거슬린다.
계속해서 훅이 반복되는 게 너무 마음에 안 든다.
수능금지곡에서나 발생하는 이어웜 현상.
귓속에 벌레가 들어온 것처럼 윙윙거렸다.
"개인 취향입니다. 존중해주세요."
"흐음...."
그래도 다행히 A&R 담당자는 내 말에 힘을 실어주었다.
"솔직히 제가 봐도 두 번째 곡 후렴구가 중독성 있긴 합니다."
"그야, 그렇긴 한데."
괜히 신인 작곡가 곡이 최종까지 올라온 게 아니었다.
음악적인 측면에서 프로와 비교해도 꿀리지 않았으니.
"일단, 두 곡 모두 실장님께 보고하는 걸로 하죠."
* * *
다음 날.
나는 실장님의 호출을 받고 박 팀장님과 함께 실장실로 향했다.
아티스트 2본부의 실세, 공세원 전략기획실장님.
낙하산 설이 돌아다니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엄청난 속도로 승진해서 30대 초반에 그 위치까지 올라갔으니.
"정수호."
"네?"
박철민 팀장님은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떼었다.
"공세원 실장님은 보통 사람이 아니야."
"아, 능력이요?"
"아니."
얼마 전까지 드림 에이전시에서 일할 때는 이름도 몰랐던 인물이었다.
"금수저 낙하산이야. 능력은 오히려 평범한 편이지."
"그냥 소문인 줄 알았는데."
"확실한 정보다."
굳이 왜 나한테 이렇게까지 말해주나.
이전 팀장님께 진 마음의 빚 때문인가.
"네가 고른 곡은 딱 한 번만 말씀드리고, 아니다 싶으면 바로 접을 거야."
"아, 네."
"눈치껏 행동해. 그분한테 찍히면 골치 아파."
"알겠습니다."
허찬성 프로듀서의 곡을 까고 무명 작곡가의 곡을 선택했다.
굳이 위험한 옵션을 추천할 거면 명확한 이유가 있어야겠지.
'근데 그 이유가....'
그냥 느낌이 안 좋아서 고른 거니까.
그것도 둘 중에 별로인 쪽을 골랐네.
잠시 후, 공세원 실장님은 당연하다는 듯이 이유를 물었다.
"나만 봐, 이 곡을 추천하는 이유는?"
"...."
그 노래가 심각하게 별로라서요.
후렴구 반복하는 게 극혐이에요.
"음, 솔직하게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물론."
아주 조금만 생각을 정리해서 말을 꺼내보자면.
어차피 <동화>를 골라도 뜬다는 보장이 없어서.
"루나를 이기기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 루나를 이기겠다고?"
"네."
이내, 공세원 실장은 입가에 기다란 호선을 그렸다.
"아하하하. 재밌네. 진심이지?"
"네. 진심입니다."
"그래. 후크송은 보통 모 아니면 도니까. 충분히 걸어볼 가치가 있지."
"...."
그런 뜻은 전혀 아니었는데요.
"정수호 매니저는 언제나 예상을 벗어나."
"...."
그동안 연예계에서 누적한 뿌리 깊은 똥촉을 믿는다.
부디 이번에도 내 판단이 틀렸기를 간절하게 바랐다.
"솔라 디지털 싱글은 자네가 고른 곡으로 가지."
"감사합니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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