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로 오해받는 연예계 생활-2화 (2/200)

[2] 역 베팅(2)

드림 에이전시 매니지먼트 4팀의 해제.

진 팀장님의 퇴사는 회사 전체에서도 꽤나 시끄러운 이슈였다.

벌써 이전 팀원들은 뿔뿔이 흩어져서 각 부서에 배치되었으니.

한동안 직원들 입에 오르내리는 건 피할 수 없겠지.

'그래도 어떻게 팀을 없애버리냐.'

차라리 나처럼 타 매니지먼트에 배치받았으면 오히려 다행이다.

아예 새로운 업무를 처음부터 배워야 하는 동료도 있었으니까.

-띠링, 3층입니다.

드림 에이전시 자회사, 큐앤지 레이블 매니지먼트 1팀.

엘리베이터를 내려 배정받은 사무실로 걸음을 옮겼다.

"정수호 선배님?"

"아, 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

무슨 말을 들었을까.

"저는 저번 달에 입사한 지상모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한 달 차 쌩신입, 갓난아기네.

"드림 에이전시, 대기업이잖아요! 진짜 부럽습니다."

"다 똑같아요."

"아뇨, 제 꿈의 기업이에요! 언젠가는 꼭 올라가려고요!"

"...."

그럼 나는 거기서 내려온 거잖아요.

이게 쫓겨난 사람 앞에서 할 말인가.

'이분 눈치 상태가 좀....'

악의는 없어 보이고, 그냥 나이가 어려서 그런 것 같다.

"선배님 자리는 저쪽입니다."

"...."

하필이면 화장실에서 제일 가까운 자리.

슬쩍 주위에 시선을 돌려 팀원들의 표정을 살폈는데.

눈을 피하는 모습을 보고 대충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자리 선정은 누가 했죠?"

"네? 그, 선배님들이...."

"그래요?"

그동안 사회생활을 너무 편하게만 생각했구나.

한국대 나온 대기업 엔터 출신에, 팀이 해체돼서 쫓겨난 처지.

굳이 배척할 필요는 없지만 그리 친하게 지낼 이유도 없겠지.

"저기, 선배님. 괜찮으세요?"

"아, 네."

다른 회사 출신인데 선배라고 불러주는 게 오히려 특이했다.

눈치는 없지만 착한 지상모 매니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시 불편하시면 저랑 자리 바꾸셔도...."

"아닙니다."

냉담한 분위기 속에서 내 자리를 찾아 짐을 풀었다.

"사무실에 사람이 얼마 없네요?"

"아, 다들 외근 나갔습니다."

"배우 매니저랑 비슷하네요."

"네, 맞습니다. 하하."

큐앤지 레이블, 매니지먼트 1팀.

배우 매니저든, 아이돌 매니저든 외부 업무가 메인이다.

특히, 아이돌 그룹이 바쁜 거 모르는 사람은 없으니까.

드르륵─

그때, 쿵 소리를 내며 누군가 문을 활짝 열었다.

"흠, 니가 정수호야?"

"네. 안녕하십니까, 오늘부터 매니지먼트 1팀에서...."

"됐고."

시큰둥한 표정의 사내가 나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근육 빵빵한 팔뚝과 빡빡 밀어버린 민머리.

외모에서 나오는 포스에 절로 기가 눌렸다.

'여긴 무슨 깡패를 직원으로 쓰냐.'

이내, 나를 지그시 쳐다보던 박철민 팀장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말 편하게 해도 되지?"

"네. 팀장님."

이미 충분히 편하게 하는 것 같은데요.

"한국대 나왔다며."

"네. 맞습니다!"

"똘똘하겠네."

"...."

벌써 로드 매니저로 3년쯤 굴러봐서 금세 눈치챌 수 있었다.

이 팀에서 박민철 팀장의 영향력은 진 팀장님 이상이겠구나.

"배우랑 아이돌 로드 업무는 완전히 다른 거 알지?"

"알고 있습니다."

"담배는 하고?"

"네. 팀장님."

박 팀장은 서류 봉투 하나를 챙기더니 내게 손짓했다.

"따라와."

이내, 새 직장 상사와 함께 옥상에 올라 담배에 불을 붙였다.

망팀에서 쫓겨난 신세인데, 생각보다 좋게 봐주시는 것 같다.

"내가 진영호 팀장님한테 마음의 빚이 있거든."

"아."

며칠 전에 퇴사한 전 상사, 진 팀장님.

인품도 뛰어나고 능력도 출중했으니.

"근데 우리 팀에서 네 이미지가 좀 안 좋아."

".... 각오하고 있습니다."

나뿐만 아니라 4팀 직원들은 다 비슷했다.

불명예 해체된 팀에서 뿔뿔이 흩어졌기에.

스윽─

박철민 팀장은 가져온 봉투를 건네며 말을 이어갔다.

"실장님께서 물어보시면 네가 루나를 맡겠다고 해."

"네?"

"로드 짬순이라 니가 위야. 눈치 보지 마."

"...."

나는 봉투에서 서류를 꺼내 내용을 살피기 시작했다.

4인조 걸그룹 루나 멤버들의 사진과 프로필.

세부적인 스펙을 확인하고서 묘한 확신이 들었다.

"루나, 이 친구들이 메인이었네요."

"맞아."

특히, 한 명의 멤버는 압도적인 비주얼로 눈길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류시아, 이 연습생은...."

"벌써 SNS 스타라 팬들이 많아."

"그러겠네요."

올해 큐앤지에서 데뷔하는 모든 아이돌 중 가장 기대되는 연습생이었다.

'그럼 솔라는....'

봉투에 마저 남아있는 다른 한 장의 서류.

솔라로 데뷔할 멤버들의 정보를 확인했다.

5인조로 구성된 걸그룹 솔라 연습생들의 개인정보.

연예인 지망생들답게 외모는 전부 상위권이었지만.

"같은 연습생인데 차이가 너무...."

"당연하지."

외모에서는 차이가 없더라도 스펙의 격차는 명백했다.

입상기록, 외국어, 연습생 성적, 하다못해 학교 공부까지.

완전한 하위 호환.

회사 내부에서 아무리 쉬쉬해도 대중은 바보가 아니었다.

9명 연습생 중에서 애매한 멤버를 솔라에 몰아놨다.

당연히 회사의 서포트는 루나 멤버들에 집중하겠지.

"거르고 걸러서 루나를 만들었으니까."

"그럼 왜 저한테....?"

큐앤지는 드림 에이전시 만큼이나 담당 연예인의 '급'이 정말 중요했다.

개인 성과급으로 연봉을 두 배씩, 이론상은 그 이상을 받기도 했으니까.

"이번에 네가 맡은 그룹이 또 실패하면, 입지가 남아나겠냐?"

"...."

이거였구나, 팀원들이 굳이 나를 배척했던 이유.

굴러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는 듯한 기분이겠지.

갑자기 모회사에서 큐앤지 레이블에 뚝 떨어졌으니.

역시, 사람 사는 곳은 어디든 전부 비슷했다.

"다른 팀원들 눈치는 볼 필요 없어."

"네. 알겠습니다."

느낌상, 솔라는 무조건 망하고 루나는 반드시 뜬다.

간지러운 뒤통수를 스윽 긁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팀장님."

이번에도 또다시 안전빵을 고르는 게 맞는 건가.

아직도 내게 회사에서의 입지 같은 게 남아있을까.

큐앤지 레이블로 쫓아낸 것부터 퇴사권유에 가깝지.

'최악의 경우에는....'

진 팀장님처럼 이직하면 그만 아닌가.

* * *

큐앤지 레이블, 아티스트 2본부 전략기획실.

분위기 있는 사무실을 장식한 값비싼 예술품들이 눈에 띄었다.

평범한 월급쟁이가 걸어두었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였다.

"루나는 벌써 데뷔 준비를 마쳤습니다."

"솔라는?"

"곡 선정이 아직.... 그래도 데뷔일은 맞출 수 있습니다."

"흠, 수고했어."

공세원 실장은 부하의 보고를 받으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실장님, 루나랑 솔라를 꼭 나눌 필요가 있었을까요?"

데뷔조 연습생 9명을 반으로 갈라놓은 장본인.

공세원 실장은 눈썹을 찡그리며 입을 열었다.

"본부장님 결재 떨어지기 전부터 이미 충분히 말했을 텐데?"

"죄송합니다."

부하 직원이 무슨 생각으로 말했는지 잘 알고 있었다.

너무 무리하게 진행했다고 걱정하는 의견도 있었지만.

'이게 무조건 맞아.'

본부장도 세원의 뜻을 무시할 순 없었다.

큐앤지 공동대표, 공 씨 성을 가졌으니까.

'류시아 때문에 어쩔 수 없어.'

데뷔조 전체에서 다시 거른 루나 멤버, 네 명 중에서도 독보적이었다.

오직 한 명만 반짝이고, 팀은 깨지는 그룹이 얼마나 많은가.

팀 밸런스를 중시하는 입장을 바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한 팀이라도 살아야지."

"네. 실장님."

드림 에이전시에 경영권과 1본부를 통째로 넘기고, 아버지와 술잔을 기울이며 굳게 다짐했다.

보컬, 연기, 댄스, 작곡, 예능을 전부 씹어 먹는 아이돌.

모든 멤버가 완벽한 최고의 그룹을 만들어 보겠다고.

"직원들 중에 해와 달이라는 컨셉이 조금 과하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 그건 대표님 지시야."

"아."

석 달 간격으로 두 컨셉의 걸그룹을 런칭한다.

투자금은 모기업에서 충분히 지원받았으니까.

"얼마 전에도 그렇게 뜬 그룹이 있었지."

"아, 맞습니다."

연습생들을 발라드와 댄스팀으로 나눠서 두 팀으로 데뷔한 케이스.

놀랍게도, 두 그룹 모두 좋은 반응을 얻고 함께 순위권에 진입했다.

"일단은 루나 데뷔가 먼저니까. 그쪽에 집중해."

"네. 실장님."

이어서, 부하 직원은 회의 준비를 위한 브리핑을 시작했다.

"오늘 매니지먼트 1팀에 정수호 매니저가 전입해 왔습니다."

"아, 본사에서 해체된 그 팀 출신?"

연속으로 수차례 실패해서 유명했다.

산하 레이블에도 소문이 쫙 퍼졌으니.

"루나를 정수호 매니저에게 맡기면 곤란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무슨 뜻이야?"

"아무래도, 드림 에이전시에서도 불운의 아이콘이라...."

"내가 키운 그룹이 고작 그딴 이유로 망할 거라는 거야?"

"죄, 죄송합니다. 그런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경력 있는 로드가 케어하는 게 나아."

"네. 실장님."

사실, 정수호 매니저가 루나 제작에 개입할 여지는 없을 것이다.

솔라는 몰라도 루나의 모든 스케줄은 자신이 직접 관리하니까.

'불운의 아이콘은 무슨.'

루나는 그런 잡스러운 미신 따위에 흔들리지 않는다.

음원, 안무, 컨셉까지 전부 한 땀씩 제작한 예술 작품.

큐앤지에 그 완성도를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늘 회의에서 정수호 매니저가 입을 열기 전까지는.

* * *

나는 가려운 뒷목에서 손을 떼고, 덤덤한 어조로 말했다.

"솔라를 맡고 싶습니다."

".... 뭐?"

대략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공세원 실장님.

나랑 비슷한 나이에 굉장히 높은 직급에 앉아 있었다.

아마도 능력이 무척 뛰어나든지, 뒷배가 좋은 거겠지.

"정수호 매니저."

"네, 실장님."

실장님은 살짝 놀란 눈으로 나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방금 뭐라고 했지?"

"...."

평소에도 촉이 안 좋았지만, 뒷목이 가려울 때의 확률은 100%.

간지럽다 못해 짜릿할 정도면 반드시 폭망하거나 대박이 났다.

"솔라를 맡고 싶습니다."

내 말을 듣고, 1팀의 직원들은 나직한 신음을 흘렸다.

특히, 박철민 팀장은 사나운 눈빛으로 나를 응시했다.

"의외네."

공세원 실장님은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내게 물었다.

"이유를 듣고 싶은데?"

"...."

제가 봐도 루나는 뜰 것 같아요.

반대로 솔라는 망할 것 같고요.

"솔라 멤버들의 가능성을 봤습니다."

"오, 그래? 기대하지."

"...."

연예계에서 내 예감은 항상 나를 배신했으니까.

이제는 반대쪽에 손을 들어주는 것도 괜찮겠지.

"그러면 루나는 지상모 매니저가 맡는 걸로."

"여,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해산하죠."

이내, 실장님을 필두로 다른 팀원들은 하나둘씩 미팅룸을 벗어났다.

나를 흘겨보며 사라지는 박 팀장을 끝으로, 한 명만 자리를 지켰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지상모 씨가 감사할 일은 아닙니다."

"네? 아, 네!"

그 족 같은 표정은 뭔데요.

진짜 양보한 거 아니라니까요.

"그래도 감사합니다!"

"...."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면서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모르겠다.

"선배님께서 주신 소중한 기회, 반드시 살리겠습니다!"

".... 그러세요."

루나는 무조건 망할 것 같아서 그랬다니까요.

아니, 뜰 것 같긴 한데 그래서 망할 것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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