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역 베팅(1)
나는 어렸을 때부터 호불호의 경계가 분명했다.
뭐, 다들 그런 거 하나쯤 있지 않은가.
무언가 거슬리면 계속 그것만 보이는.
아무리 노래를 잘해도 가수의 손동작이 별로면 내 기준에서는 꽝이었다.
드라마나 영화, 음악도 뭐가 하나라도 걸리면 다시는 거들떠도 안 봤다.
그냥 내 취향이 아니라서.
이유는 오직 그것뿐이었다.
* * *
우리 4팀에서만 도대체 몇 번째 실패인지.
고작 1년 사이에 일곱 번 연달아 망했으니.
"수호야, 시청률 나왔냐?"
"네. 지금 나온 것 같습니다."
"빨리 확인해 봐."
어디까지나 매니지먼트 업무는 아티스트 케어와 서포트지만.
그래도 잡아오는 작품마다 우리 배우들이 개 같이 망해버려서.
"제발, 이번에는 제발."
"떴냐?"
동료 직원들과 함께 간절한 마음으로 시청률 테이블을 확인했다.
".... 첫 방송 27프로."
내 입에서 나오는 나지막한 목소리에 직원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꺄아아아악!"
"됐다!"
"그래, 이거지!"
"정수호가 제대로 한 건 했네."
"감사합니다."
일류 감독님의 메인 연출과 스타작가, 오스카상을 받은 주연 배우까지.
이 작품 조연 자리에 우리 배우님 꽂아 넣기 위해 얼마나 뛰어다녔는가.
"수호야, 너 이번에 성과급 좀 받겠다."
"에이, 아니에요."
"아니긴, 인마."
드림 에이전시의 성과금 시스템은 업계에서도 유명했다.
최근에 줄줄이 망하면서 인센티브는 구경도 못 해봤지만.
"자자, 다들 주목하시고! 오늘 회식입니다."
"설마 소고기!?"
"당연히 소고기지! 김 배우님도 부르자고."
"엥, 밤 11시에는 좀...."
"지금 시청률 몇 프로가 나왔는데, 설마 주무실까?"
"하하. 그럴 리가요."
진영호 팀장님은 내게 법인카드를 건네며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수호야, 네가 나가서 케익 하나만 사와."
"네. 팀장님!"
"그냥 바로 회식 장소로 와. 회사 앞에 소고기집."
"알겠습니다!"
우리 배우님께서는 나 같은 매니저를 만나서 얼마나 행복하실까.
처음엔 똥촉 매니저랑 일하기 싫다고 하시더니.
이번 작품 물어오자마자 아이처럼 좋아하셨지.
터벅, 터벅─
회사를 나오는 발걸음이 무척이나 가벼웠다.
서늘한 밤 공기를 마시며 상쾌함을 만끽했다.
"와, 드디어 망팀 탈출하나."
지난 한 해 동안 우리 팀에서만 얼마나 많은 실패를 거듭했던가.
팀장님 라인, 김 이사님도 이제는 실드 쳐주기 곤란한 모양이다.
'이번에도 또 망했으면 진짜 팀 해체될 뻔했네.'
공교롭게도 내가 신입 딱지를 떼고 발언권이 생길 때쯤부터였다.
운이 나쁘면 별처럼 반짝이는 스타도 고꾸라지는 시장이 아닌가.
회사에서 핵심이 되는 아티스트들의 잇따른 악재.
더러운 스캔들에, 주연 배우 학폭 따위는 예사였다.
딸랑, 딸랑─
나는 간지러운 뒷목을 긁적이며 카페에 입장했다.
이내, 괜찮은 케이크를 확인하고 직원에게 말했다.
"이거로 주세요."
"네에."
두 명의 직원은 케이크를 포장하며 듣기 좋은 대화를 나눴다.
"아까 드라마 엄청 재밌더라."
"그러게. 첫 방송부터 장난 아니야."
"그 배우 이름 뭐야?"
"앗, 누구 말하는지 알 것 같아."
"그, 으으."
나도 모르게 두 사람의 대화에 슬쩍 끼어들었다.
"혹시 김현성?"
"맞아요! 아시는구나!"
"네. 하하."
그래요. 제가 맡은 배우랍니다.
자랑하는 건 아니고 팩트예요.
"여기, 포장 다 됐습니다."
"넵. 감사합니다."
첫 방송 이후, 현실에서 호평을 받으니까 기분이 한층 좋아졌다.
"와아, 드디어 징크스 탈출하나."
언제부턴가 연예계와 관련된 예측은 단 한 번도 맞는 법이 없었다.
연예계 한정, 호불호가 나뉘는 갈림길에서는 예외가 없었다.
망할 거라고 확신하면 뜨고, 성공을 예감하면 폭망했으니까.
"처음으로 징크스가 깨졌구나."
똥촉이고 나발이고, 이번 작품은 잘 차려진 밥상이야.
이렇게 작감배가 완벽한데 당연히 뜰 수밖에 없겠지.
맞아. 징크스는 깨라고 있는 거야.
이번에도 뭔가 터지면 안 된다고.
그게 아니면,
치익─
케이크에 초를 꽂고 불을 붙이는 내 모습이 너무 초라해지잖아.
"서프라이.... 즈?"
무거운 분위기 속, 팀원들의 싸늘한 시선이 꽂혔다.
축제인 줄 알았는데 장례식이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어쩐지, 오늘따라 뒤통수가 간지럽더라고.
"수호야."
"네?"
".... 불 꺼."
"넵."
* * *
와, 시발 인생.
디스패치 개놈들은 한밤중에도 존나게 부지런하네.
내일 아침에 터졌으면 욕 대신 케이크 먹었을 텐데.
"이 새끼들은 잠도 없나."
새벽녘, 나는 자취방에서 맥주를 홀짝이며 인터넷 뉴스를 확인했다.
[SBC 드라마 '무명 시인' 감독과 작가 교체 확정! 그로 인해, 다음 촬영 일정은 기약이 없는 상태로....]
"여기가 무슨 동물의 왕국이야?"
연예계 더러운 건 잘 알고 있었지만.
감독이랑 작가랑 불륜이 웬 말이야.
"시벌롬들. 걸리지나 말든가."
나처럼 재수 없는 놈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더니.
첫 방송 시청률 빵 터졌는데 드라마도 같이 터져버렸네.
똑, 똑─
그때, 근처에 사는 친한 동생이 현관문을 두드렸다.
"재하야, 왔냐."
"형님 이게 무슨 일이야."
"그냥. 한잔하자고 불렀지."
"드라마 잘 된 거 아니야?"
"...."
나는 조용히 스마트폰을 건네며 뉴스 기사를 보여주었다.
"아하."
아하, 이 지랄하지 말고.
"그냥 한잔해."
"오키."
재하는 눈치껏 망할 연예계 이야기를 접고 술잔을 기울였다.
돌아가신 할머니 덕분에 이어진 사이.
금수저와 친해진 계기는 좀 특별했다.
"너는 웬 홍삼을 다 가져왔냐."
"아, 좀 있으면 형님 할머니 기일이잖아."
"그렇긴 한데."
단순한 홍삼 세트라고 하기엔 금빛 포장이 무척이나 고급스러웠다.
"아버지께서는 뭘 이렇게 매번 챙겨주신대."
"에이, 형네 할머니 덕분에 우리 아빠 회사도 대박 났잖아."
"...."
고인이 되신 할머니께 할 말은 아니지만.
그와는 별개로 무속인을 믿지는 않아서.
"그냥 우연이야. 미신을 믿어?"
"아니, 엄청 용하셨다니까."
"글쎄. 나는 그런 거 안 믿어서."
"그건 뭐...."
솔직히, 너무 어렸을 때 돌아가셔서 기억도 가물가물했지만.
매번 '촉'이 발동할 때마다 간질간질한 뒷목 부근.
할머니도 비슷한 감각을 자주 느끼셨다고 들었다.
"그 얘긴 됐고, 재하 니 여동생은 어떻게 지내? 수능 끝나지 않았냐?"
"아, 지유? 며칠 전에 우리 아빠 회사 인턴으로 들어갔어."
"수능 조졌나 보네."
"응. 아이돌 덕질만 할 때부터 알아봤지."
"...."
하는 짓이 제 오빠랑 똑같네.
무슨 고3이 아이돌 덕질이야.
"요즘에는 새로 덕질할 아이돌 다시 찾는다던데."
"어이가 없네."
그럴 거면 수능은 왜 망친 거야.
"형도 큐앤지 레이블 알지? 요즘 거기에 관심 갖더라고."
"우리 회사 자회사잖아."
"거기서 걸그룹 두 팀 런칭한대."
"두 팀씩이나?"
이내, 재하는 스마트폰을 두드리더니 내게 사진 몇 장을 보여주었다.
"지금까지 공개된 연습생들."
드림 에이전시 산하, 아이돌 전문 음반 제작사.
일정 기간을 두고 두 팀을 데뷔시킨다는 정보.
"컨셉 뭐냐. 달이랑 태양이네."
"요즘 다들 이런 거 하나씩 하잖아."
"졸라 오글거려."
두 가지 컨셉의 걸그룹, 루나와 솔라.
한쪽은 세련되고 차가운 걸크러쉬 이미지.
다른 한쪽은 사랑스러운 큐티발랄 이미지.
아무래도, 돈이 되는 걸크러쉬 컨셉의 성장 가능성이 훨씬 높았다.
"형은 누가 더 뜰 것 같아?"
"루나."
"보통 걸크러쉬가 대세긴 하지."
"그러니까."
재하 여동생도 걸그룹을 좋아하는 거 보면.
"원래 남팬이 덕질을 잘 안 하잖냐."
"엥, 나는 하는데?"
".... 그건 니가."
"???"
요즘 시장에서 걸그룹은 남팬과 여팬, 양쪽 전부를 잡아야 했다.
그런 의미에서 남팬만 확보하는 러블리 컨셉은 한계가 명확했다.
곧이어, 간지러운 뒷목을 슥슥 긁으며 입을 열었다.
"내가 촉이 딱 왔어. 얘들은 뜨겠다."
"달빛 걸그룹?"
"어. 이쪽은 망해도 중간은 갈걸?"
"...."
큐앤지에서도 적당히 저울질하다 돈이 안 되는 솔라를 버리겠지.
앨범 작업이든 뮤비 촬영이든, 자본이라는 건 언제나 한정적이라.
"형님, 안 되겠다. 나는 태양돌에 투자할래."
"태양돌? 솔라?"
"어. 그쪽이 뜨겠네."
재하는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이어갔다.
"형이 뜬다고 하면 싹 다 망하니까."
"뭐냐, 싸우자는 건가."
"아니야, 이건 찐이야. 형님 파괴왕이잖아."
"팩폭 오지네."
그동안 촉이 좋았던 작품과 연예인이 다 터져나갔는데.
그럴 때마다 항상 반대편의 손을 들어줬다면 어땠을까.
'내가 망할 것 같은 쪽만 골랐으면....'
불현듯, 옛날에 할머니께서 해주신 말씀이 떠올랐다.
몇 살이었는지 기억도 안 날 만큼 까마득한 과거에.
-수호야, 갑자기 뒤통수가 간지러울 때는....
너무 오래전이라 뒷말은 기억나지 않았지만.
이런 감각은 누구에게나 흔히 있는 거 아닌가.
'.... 간지러울 때는.'
그럴 때는 그냥 반대로 생각하라는 말씀이셨을지도 모르지.
"형님, 근데 내일 회사에서 괜찮겠어?"
"뭐가."
"이제 여덟 번 망했잖아."
"...."
나 혼자만 망한 건 아니고 우리 팀이 그랬지.
사실,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뭐, 우리 팀이 없어지기라도 하겠냐?"
"그러게. 막 어디 발령이라도 나는 거 아니겠지?"
".... 큐앤지 레이블로?"
내 입으로 말하면서도 말도 안 되네.
"하하하. 내일쯤에는 형이 루나 매니저 되는 거 아냐?"
"뒤질래? 1절만 해라."
"오키!"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 * *
하, 이래서 내가 1절만 하라고 한 건데.
아침부터 팀 분위기가 어수선하더라니.
팀이 없어졌다.
좌천 당한댄다.
팀장님 잘렸네.
"정수호는 큐앤지 레이블 매니지먼트 1팀."
".... 갑자기요?"
"니가 한국대 출신이라 사정 봐주신 거다. 계속 매니저 업무만 보면 돼."
"아."
팀장님은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따뜻한 위로를 건넸다.
"네 잘못 아니니까 너무 자책하지 말고."
"...."
매니지먼트 입장에선 권유하는 정도가 최선이었다.
작품을 선택한 건 전적으로 배우와 윗대가리들인데.
'이게 왜 우리 탓입니까!'
이건 진짜 말도 안 된다고 따지고 싶었지만.
팀장님 앞에선 차마 말을 뱉을 수가 없었다.
"팀장님, 정말 그만두십니까?"
"인마, 좋은 조건으로 회사 옮기는 거야."
"그래도."
팀장님이 잡은 김 이사 라인이 생각보다 약했다.
안 그래도 위태로운 동앗줄에 막타를 쳐버렸으니.
"죄송합니다."
"니가 왜 죄송해, 인마."
"...."
혹시 내 징크스만 아니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까.
"내가 우리 팀원들 가는 부서에 다 전화해 놨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 감사합니다."
무거운 책임감이 내 가슴을 세게 짓눌렀다.
특히, 마지막에 망한 건 내 탓인 것 같아서.
"수호야, 원래 연예계가 예측이 안 되는 거야."
"네. 저도 느꼈습니다. 뼈저리게."
"큐앤지 레이블에서도 열심히 하고."
".... 알겠습니다."
굳이 수식어구를 붙이지 않아도 느껴지는 매력, 다른 말로 스타성.
그 거지 같이 주관적인 단어에 울고 웃는 게 엔터 판의 현실이었다.
'적어도 이번 작품은 망하면 안 됐지.'
아니, 망하더라도 이딴 식으로 망하는 건 진짜 아니잖아.
나를 포함한 우리 팀원 모두의 공통적인 생각이었다.
반드시 성공할 거라고 확신하는 작품을 가져온 건데.
그동안 단 한 번도 공적인 업무를 '감'에 의지했던 적은 없었다.
고작 징크스 따위에 내 배우의 미래를 맡길 수는 없는 거니까.
"팀장님."
"어?"
나는 간지러운 뒤통수를 벅벅 긁으며 지난 날들을 떠올렸다.
드림 에이전시 가이드라인만 계속 따랐더니 다 폭망했잖아.
'큐앤지 레이블에서는....'
그냥 꼴리는 대로 살 거야.
뭐, 짤리기 밖에 더 하겠냐.
어차피 바닥까지 찍은 마당에 잃을 것도 없겠지.
"새 회사에선 진짜 제대로 해보려고요."
"그래. 자세 좋네."
이제 무조건 역배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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