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4. 하루 이틀 반응(1)
네스트가 허상으로 컴백한 덕분에 김올팬은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그리고 오늘은 하루 이틀이 방송되는 날.
김올팬은 자연스럽게 거실 소파에 자리를 잡고 TV 리모컨을 잡았다.
“딸, 뭐 보려고?”
“나……?”
김올팬은 눈동자를 떼구루루 굴렸다.
“하루 이틀 보려고.”
부엌에서 사과를 가져온 엄마가 옆에 앉더니 김올팬에게 물었다.
“아, 화목현이 나온다고 했던가?”
“오늘은 화목현 대신 다른 멤버들이 나와서 보려고.”
“아, 그래?”
김올팬은 자연스럽게 하루 이틀을 틀었다. 이미 하루 이틀 오프닝이 나오고 있었다.
[어르신들의 생활 속으로 찾아가
어르신들의 하루를 알아보는 시간!
하루! 이틀!]
엄마 눈치를 보면서 김올팬은 질문을 던졌다.
“…엄마, 이거 봤어?”
설마 이걸 봤겠나? 평일 오후 6시에 하는 생생한 정보 방송이랑 오후 10시에 하는 트로트 방송만 보는 엄마가?
“응, 지나가다가 봤지. 재밌던데?”
평소 재미가 없으면 다른 채널로 돌리라고 했던 엄마였기에, 김올팬은 리모컨을 꼭 쥐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재밌다고 하니까… 채널 돌릴 일은 없겠지?’
하루 이틀 오프닝이 끝나자 곧바로 네스트가 차에서 내리는 장면으로 바뀌었다.
[PD : 여기 앞에 서주세요.]
PD의 말에 네스트는 허둥지둥 차에서 내렸는데, 질서가 엉망이었다.
[PD : 소개부터 할까요?]
목현이가 없으니까 먼저 입을 떼며 구호를 외치는 멤버가 없었다. 그 모습마저 귀여워서 김올팬은 웃음이 절로 나왔다.
“저런 모습도 웃겨?”
“귀엽잖아.”
“…신기하네.”
엄마가 도통 이해를 못 하네. 김올팬은 엄마에게 예를 들었다.
“엄마는 트로트 가수 좋아하잖아?”
“그렇지?”
“그 트로트 가수가 무슨 행동을 해도 귀엽지 않아?”
“그거랑 이거랑은 다르지.”
“뭐…….”
김올팬은 할 말은 많지만 꾹 참았다. 엄마의 심기를 건드렸다가 TV를 못 볼 수도 있으니까.
멤버들이 스태프들과 인사를 하면서 무인도로 떠나는 배에 올라탔다. 그러자 나비가 가방에서 멀미약을 꺼내 이든이에게 건네주었다.
[범나비 : 형, 멀미약.]
[주이든 : …형을 위해서 멀미약을 챙겼구나!]
[범나비 : (할 말을 잃음)]
나비는 어이가 없는지 입이 네모가 됐다. 그때 엄마가 말했다.
“쟤 귀엽다.”
“누구?”
“쟤, 멀미약 주는 애.”
엄마가 콕 집어서 말한 아이는 나비였다.
“나비?”
“쟤 이름이 나비야? 이름도 귀엽네. 얼굴도 잘생기고.”
김올팬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노래도 잘해.”
“그래? 내가 좋아하는 가수보다?”
“…나중에 나비 트로트 부른 거 들려줄게.”
노래 잘한다는 말을 듣자마자 엄마의 눈에 흥미가 엿보였다.
배에서 내린 네스트는 카메라 앞에 서서 배꼽 인사를 했다.
[이정진 : 안녕하세요! 저희는 네스트라는 아이돌입니다. 쉽게 말해서 가수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얘들아…….]
목현이가 없으니 정진이가 리더 역할을 해주는구나. 애들 소개가 끝나자 PD가 오늘 하루 동안의 룰을 알려주었다.
간단했다.
그냥 어르신들에게 일감을 받고 호감 쿠폰을 받으면 끝. 네스트는 룰을 들은 뒤 섬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다 애들이 섬의 지도 앞에 섰다.
[범나비 : 형들, 이 별이요. 난이도는 아니겠죠? 게임에서 보면 게임 난이도를 이렇게 표시하잖아요.]
네스트는 우선 한정숙 할머니가 있는 집으로 향했다.
[네스트 : 안녕하세요!]
기다렸다는 듯이 한정숙 할머니가 등산용 지팡이를 잡고 일어섰다. 한정숙 할머니가 반갑게 네스트를 맞이하면서 할 일을 알려주었다.
[한정숙 : 부엌 전등 갈기, 닭들에게 모이 주기, 배에서 오는 짐들 옮기기, 슈퍼에서 물건 가져오기. 그리고 내가 부르는 대로 편지를 대신 써주면 돼.]
일거리를 듣자마자 네스트는 빠르게 가위바위보를 하면서 할 일을 정했다.
[범나비 : 아…….]
보자기를 낸 나비가 두 개의 일을 해야만 했다. 망연자실한 표정을 보자 엄마가 웃었다.
“엄마, 재밌어?”
“괜찮네.”
괜찮네? 이 정도면 선방이다.
“인품이 좋네.”
인품이라는 말까지 나오다니. 이든이가 닭장에 들어가 모이를 주는데 닭에게 쪼일 뻔했다.
[주이든 : …읍!]
닭들이 놀랄까 봐 소리는 못 지르고 입술을 깨무는 행동이 귀엽고 안쓰러웠다. 드디어 모이를 다 준 이든이가 퀭한 눈으로 카메라를 보았다.
[주이든 : 닭 모이 주기 성공?]
성공이라는 의미로 카메라가 위아래로 흔들렸다.
[주이든 : 일도 끝났겠다, 저희 조금 쉬다가 가죠? 지금 아니면 섬 풍경을 못 볼 것 같은데!]
그러고는 카메라 스태프들과 섬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이든 : 와!]
이든이가 아름다운 섬의 풍경을 담을 때였다. 장면이 전환되면서 정진이와 요셉이가 등장했다.
[정요셉 : 정진 형~ 배 들어온다~]
[이정진 : 어, 배 들어온다.]
배가 들어온다는 말에 정진이가 배 앞까지 리어카를 끌고 갔다. 짐을 옮길 용도로 가져온 리어카에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관심을 보였다. 마치 자기 짐도 옮겨달라는 듯이.
[이정진 : 어떡해?]
[정요셉 : …도와드릴까?]
[이정진 : 도와드리자.]
그렇게 정진이와 요셉이가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짐을 리어카에 옮겨 담았다.
[정요셉 : 다들 집이 어딘지 알려주셔야 저희가 짐을 옮깁니다!]
졸지에 다른 할머니와 할아버지 댁까지 짐을 옮기게 되었다. 하지만 정진이와 요셉이는 힘든 내색을 하지도 않았다.
“착해라.”
“착하지?”
“그러게~ 그래도 나는 나비가 제일 좋네.”
나비가 좋다고? 김올팬은 엄마를 한번 떠봤다.
“엄마는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 다 별로라며.”
“쟤는 재밌잖아.”
하긴 재미가 없으면 채널 돌리라고 했을 텐데.
[이정진 : 저기, 할머니! 슈퍼가 어디에 있어요?]
슈퍼가 어디에 있냐는 질문에 할머니가 지팡이로 위를 가리켰다.
[정요셉 : 위?]
리어카를 끌고 다닌다고 힘을 다 쓴 정진이와 요셉이는 위를 보면서 입을 쩍 벌렸다.
[이정진 : 우리 어떡하지?]
여기서 문제가 하나 더 있었다. 스태프가 슈퍼는 30분 뒤에 장사를 마친다고 말해줬다.
[정요셉 : 섬이라서 빨리 마치신대, 형!]
[이정진 : 가자!]
슈퍼로 뛰어가는 정진이와 요셉이의 뒷모습을 마지막으로 화면이 전환되었다.
[범나비 : 편지를 쓰면 돼요?]
[한정숙 : 그렇지.]
나비가 볼펜을 들고 한정숙 할머니가 시키는 대로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와.”
김올팬은 순수하게 감탄했다. 나비의 글씨체는 정갈하니 예뻤다. 포토 카드 뒷면을 볼 때마다 나비의 글씨체가 예쁘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글씨체가 예쁘네.”
“예쁘지? 성격도 예뻐.”
“그렇겠지.”
“그걸 어떻게 알아, 엄마?”
“원래글씨 잘 쓰면 마음도 예쁜 법이거든.”
그런가? 김올팬은 고개를 갸웃하면서 다시 화면을 보았다. 편지를 쓰는 나비의 눈시울이 붉었다. 나비가 할머니를 안아드리는 훈훈한 광경을 보고 김올팬은 휴지를 뽑아 몰래 눈물을 훔쳤다.
“딸, 저 장면 때문에 울어?”
“안 울어.”
“우리 딸, 우네.”
“안 운다니까?”
곧 이든이와 슈퍼에 갔던 정진이와 요셉이가 돌아왔다. 곧바로 전구까지 교체하고 할 일을 다 끝냈다.
[한정숙 : 자.]
한정숙 할머니가 주는 호감 쿠폰을 받기 무섭게.
[한정숙 : 이제 오지창 할아버지 댁에 갈 거지?]
한정숙 할머니가 애틋한 눈길로 멤버들을 쳐다보았다.
[한정숙 : 곧 썰물 때일 텐데… 바닷가로 가봐. 그럼 오지창 할아버지가 있을 거야.]
오지창 할아버지는 멤버들이 오자마자 옷을 갈아입으라며 호통을 쳤다.
[PD : 오지창 할아버지가 원래 목소리가 커서 그렇지, 화나신 건 아니랍니다.]
옷을 갈아입는 동안 PD가 설명해 주었다.
[주이든 : 다 입었습니다!]
그 말에 오지창 할아버지가 채집통과 삽을 건네주었다.
[오지창 : 우리는 지금부터 갯벌에 들어가 낙지를 잡을 거다.]
이든이는 설렌다는 듯이 오지창 할아버지를 따라 갯벌에 들어갔다.
“귀여워…….”
“최애가 나비라며?”
“다 귀엽네.”
“그래?”
다시 TV에 집중했다.
[정요셉 : 으악!]
갯벌에 발이 빠졌는지 요셉이가 바닥에 쓰러졌다. 요셉이를 구출한다고 나비가 다가가서 요셉이의 팔을 잡았으나,
[범나비 : 어?]
무슨 시소처럼 나비가 일어나면 요셉이가 앉아버리고, 요셉이가 일어나면 나비가 앉아버렸다.
“하하!”
엄마가 그 모습을 보더니 손뼉을 치면서 크게 웃었다. 그 후로는 나비의 몸 개그가 계속되었다. 앞으로 고꾸라지고, 뒤로도 넘어지고. 얼굴이 아예 진흙으로 범벅이 되었다.
[범나비 : …인생 쉽지 않네.]
나비가 하늘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범나비 : 그래도 해내야지.]
그래도 나비는 꿋꿋하게 일어나 낙지를 잡으려고 애를 썼다.
[주이든 : 저 잘하죠?]
반면에 이든이는 갯벌에서 닌자처럼 돌아다녔다. 오죽하면 칭찬에 무색한 오지창 할아버지가 이든이를 보며 엄지를 들을 정도였으니까.
“쟤 이름이 뭐라고?”
“쟤?”
“낙지 잘 잡는 애.”
“이든이.”
“이든이 낙지 잘 잡네.”
이든이의 캐리로 마지막 낙지만 남은 상황. 나비가 낙지를 잡으려고 하자 오지창 할아버지가 조언을 해주었다.
[오지창 : 원래 인생은 말이다.]
[범나비 : 예?]
[오지창 : 늦을수록 행운이 따르는 법이야. 그러니까 낙심하지 말고 쭉 가. 못 잡았다고 슬퍼하지 말고.]
그러더니 오지창 할아버지가 나비에게 한 구멍을 가리켰다.
[오지창 : 여길 파.]
나비는 열심히 구멍을 파더니 낙지의 다리가 보이자마자 잡아서 끌어 올렸다.
[범나비 : 와……!]
낙지 크기를 보고 나비가 입을 벌리며 감탄하는 순간이었다. 낙지가 반항하듯 움직이는 바람에 나비의 얼굴에 철퍼덕 붙어버렸다. 오지창 할아버지의 얼굴에 균열이 일어나더니 오지창 할아버지가 짧게 웃었다.
“…풉.”
오지창 할아버지도 웃겼던 모양이다. 나비가 몸 개그를 해준 덕분에 나와 엄마도 크게 웃었다.
“네스트 재밌네.”
“재밌지?”
이 틈을 타서 김올팬은 엄마에게 질문했다.
“엄마, 네스트 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