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의 1군 가이드-233화 (233/235)

233. 허상 공방

박랜서는 오랜만에 힘겹게 공방에 왔다. 네스트의 인기가 올라가면서 공방을 신청하는 네온들의 수가 많아진 탓일까. 박랜서는 수도 없이 공방 신청에 탈락했다.

그래도 꿋꿋하게 공방 신청을 했더니 드디어 성공했다.

“…허.”

방송국에 도착하자마자 박랜서는 입이 쩍 벌어졌다. 네스트가 ‘네온의 아침 밥상’이라고 적힌 밥차와 ‘아침엔 필수’라고 적혀 있는 커피차를 준비해 줬기 때문이다.

‘이런 것까지 해주다니…….’

박랜서도 불고기 도시락과 커피를 받고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어쩐지 주변이 어수선했다.

“…저분 네온 아니라던데?”

“진짜?”

기어코 팬이 아닌 사람이 커피차랑 밥차를 이용하는구나. 박랜서는 굉장히 불쾌했다. 네스트가 역조공으로 유명해지면서 팬들은 조금씩 불안해졌다. 팬도 아닌데 이용하는 사람이 생기면 어떡하나 싶어서.

그런데 실제로 이런 사람이 나타날 줄은 몰랐다.

‘거지인가?’

거기다가 타 팬이 네온인 척한다는 말이 나오면서 박랜서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타 팬은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꿋꿋하게 불고기 도시락을 먹었다. 소란이 일어나는 건 좋지 않기에 네온들은 불편해도 입을 다물며 시선으로 눈치만 주는 상태였다.

“커피 맛없네. 이딴 커피를 역조공으로 주다니.”

팬도 아니면서 이렇게 훈수를 두는 건 좀 아니지 않나.

그때였다.

“네온들!”

나비의 목소리가 박랜서의 귓가에 들렸다.

‘나비?’

나비가 종이 상자을 들고 달려오고 있었다.

“어? 나비야!”

“안녕하세요.”

나비가 양손에 들고 있던 종이 상자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한 분씩 제 앞에 오세요. 사탕이랑 단체 포카 나눠줄게요.”

그 말에 네온들은 익숙하다는 듯이 줄을 섰다.

아니다.

“이번에는 사탕이야?”

“레몬 사탕인데 맛있어요.”

박랜서도 줄을 서서 사탕을 받았다. 게다가 포카를 넣는 탑로더가 꾸며져 있었다.

“형들이랑 붙인 거예요.”

나비가 자랑하듯이 탑로더를 보여주었다. 시간도 없었을 텐데.

‘이건 사랑이 아니면 안 되는 거 아닌가?’

모두가 사탕을 받고 난 뒤, 나비가 남은 사탕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안 받은 네온이 있는 것 같은데?”

저 멀리에서 도시락을 먹고 있는 타 팬을 제외하고는 다 받은 모양이었다. 나비는 개의치 않고 남은 사탕을 종이 상자에 넣은 후에 우리에게 안부를 물었다.

“밥은 잘 먹고 있어요?”

“응!”

“밥 잘 먹고 있나 보러 한번 와봤어요. 오늘 요셉 형이랑 이든 형이 음방 MC인 거 아시죠? 그래서 같이 못 왔고, 목현 형이랑 정진 형은 메이크업을 받고 있어서 같이 올 수가 없었답니다.”

“괜찮아!”

나비가 네온들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아니던데? 저번에 나 혼자 포토 카드 나눠주러 와서 아쉬웠다면서요? 팬 싸인회에서 들었거든요?”

누가 그딴 소리를 지껄이는 거지? 시간이 없는데도 나비가 왔다는 걸 다 알지 않나. 아쉬운 소리는 SNS에서만 하지, 직접 얼굴을 대고 말을!

박랜서는 속으로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지로 참았다.

‘참을 인을 3번 쓰면 살인도 면한다.’

그런데 나비가 주변을 두리번대더니 한 분에게 가서는 질문했다.

“저번 공방에서 저한테 편지 주셨죠?”

그걸 기억해? 기억력도 좋다. 나비는 편지의 내용을 말하지는 않았지만 편지를 읽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고 말해주었다.

‘…근데 나비, 굉장히 바쁘지 않나?’

이번 허상 스케줄도 바빴다. 음악방송이 끝나면 K-축제라는 독일 축제에 가는 걸로 아는데.

“그러니까 서포트 못 해서 아쉽다고 선물 주고 그러면 안 돼요. 손 편지가 제일 좋아요.”

“편지를 전지에 써도 받아줄 거야?”

그 말에 나비의 표정에서 난감함이 엿보였다. 미소를 띠고 있으나 고민에 휩싸인 얼굴.

“어… 전지요?”

“왜? 싫어?”

“아니, 그게 아니라. 쓰기 힘들 것 같아서.”

“그런 걱정은 하지 마!”

네온이 전지가 들어 있는 케이스를 나비에게 건네주자 나비가 빵 터지고 말았다.

“…전지가 내 품에 들어올 줄은 몰랐어요.”

케이스의 뚜껑을 열자 전지가 툭 하고 튀어나왔다. 얼마나 세세하게 적었으면 글자의 크기가 무척 작았다.

전지의 크기도 크기지만 빼곡하게 적힌 글자를 보면서 나비의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

“혼자서 이걸 다 적은 거예요?”

“그거 반 애들이랑 같이 적은 롤링 페이퍼야.”

“롤링 페이퍼?”

전지를 준 네온이 설명해 주었다.

“반 애들이랑 롤링 페이퍼를 적었거든!”

“반 애들?”

고등학생이었구나. 나비가 눈을 가늘게 뜨더니 말했다.

“정말 감사해요. 저 아이돌 하길 잘한 것 같은데요?”

나비가 케이스를 품에 꽉 끌어안은 채로 다시 네온들과 대화를 이어가던 중이었다. 나비가 고개를 돌리더니 홀로 도시락을 먹고 의자에 앉아 있는 타 팬을 발견했다.

“저분은 네온인가?”

큰일 났다.

지난번에 ‘팬이 아닌데 역조공을 받으러 오는 사람이 있으면 어떻게 할 거냐’라는 질문에 나비가 이런 답을 내놓았다.

-그래요? 혼내야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하긴 했지만. 나비가 진짜로 혼을 낼까 봐 두려웠다. 아이돌이 팬을 혼내면 어떤 반응이 나오겠는가.

“우리 팬이 아닌 것 같은데.”

나비가 성큼성큼 긴 다리로 걸어가더니 홀로 앉은 타 팬의 옆자리에 앉았다.

“안녕하세요?”

“…어, 네.”

“우리 팬이세요?”

그런데 나비가 혼내기는커녕 질문 폭탄을 던졌다.

“우리 팬이 아니에요?”

“팬은 맞는데.”

“그런데 포카 홀더에는 우리가 없는데.”

“아, 제가 오늘 잘못 가져와서.”

“그럼 애초에 우리 팬이 아니었던 거네요?”

“이쪽저쪽 다 좋아해서.”

“아~ 그렇구나.”

저게 변명이 되는 건가. 박랜서는 코웃음을 쳤다. 그런데 아직도 궁금증이 풀리지 않았는지 나비가 도망가려고 하는 타 팬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가려고요?”

“아, 아니.”

“우리 공방 오신 거 아니에요?”

“맞는데요…….”

반말하던 타 팬도 서서히 존댓말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타 팬이 이상한 말을 할까 봐 전전긍긍했는데, 지금은 시트콤을 보듯이 구경 중이었다.

“우리 팬 맞잖아요?”

“…놀리는 건가요?”

“아니요. 진심으로 우리 팬이라고 생각하니까 말 거는 거예요.”

하긴 나비가 사생 한 명을 물리친 사건은 유명했다. 그걸 실제로 구경하다니.

‘…진짜 말 많다.’

순식간에 타 팬의 혼을 쏙 빼놓는 나비를 보면서 다른 네온들도 혀를 내둘렀다.

“아니, 저 네스트 좋아한다니깐요?”

타 팬은 계속 궁색한 변명을 내놓았다.

“알죠. 가깝게 지내고 싶어서 그런 거죠.”

나비의 시선이 아래로 내려가더니 목에 걸린 포카 홀더를 손가락으로 살짝 툭 쳤다. 이윽고 나비가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그 모습을 본 박랜서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잘생겼다.

저건 반칙이지.

“아, 싫다…….”

“예?”

“이 포카 홀더에 제 얼굴이 없어서 속상해요.”

“어…….”

타 팬의 포카 홀더에는 다른 아이돌의 포카가 넣어져 있었다. 그 포카 홀더를 보며 나비는 정말 속상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나중에 제 얼굴 꼭 넣어줘요.”

나비가 손을 내밀자 타 팬은 얼떨결에 나비의 손을 잡았다.

“약속.”

약속까지.

저런 행동을 무의식으로 하는 나비에게는 이런 별명이 있었다.

범유죄.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을 지닌 나비지만 나비는 네온들에게만큼은 스스럼없이 다가와 저런 행동을 했다.

나비가 자기 핸드폰을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시간 끝났다.”

벌써 가야 한다고?

“나중에는 우리 네스트가 최애였으면 좋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나비가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우리에게 손을 흔들었다.

“네온들, 공방에서 봬요.”

박랜서도 짧은 한숨을 내쉬면서 아쉬운 마음을 달랬다.

‘그래도 공방에 가면 만날 수 있으니까.’

* * *

나는 품에 편지를 들고 대기실에 도착했다.

“어? 오늘도 편지 한가득이네.”

“네, 편지는 많이 받을수록 좋잖아요.”

편지를 읽으니 기분이 좋았다. 은근히 팬들의 사랑도 느낄 수 있었고, 팬들이 어떤 생각을 하면서 지내는지 알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팬들과 한층 더 가까워진 느낌도 들고.

“형들, 편지는 나중에 숙소에 가면 분배할게요.”

어깨에 걸어두었던 케이스를 테이블 위에 올려두자 정요셉이 관심을 보였다.

“이거 뭐야?”

“전지 케이스래요.”

“그림이라도 주셨어?”

“그건 아니고. 보여 드릴까요?”

“보여줘~”

정요셉의 말에 케이스 뚜껑을 열어서 전지를 펼쳤다. 소파에 올려두자 형들도 놀라서 전지에 시선이 꽂혔다.

“우리 막내. 이거 전지야~?”

“예. 전지에 롤링 페이퍼를 썼대요.”

얼마나 귀여운지 모른다. 어떻게 전지에 쓸 생각을 했을까.

화목현은 케이스가 마음에 드는지 계속 만지작거리다가 나를 쳐다보았다.

“어? 나비야, 한 장 더 있는데?”

“한 장 더 있다고요?”

편지만 있는 줄 알았더니 아니었나?

“뭐라고 적혀 있는데요?”

화목현이 뒷장을 보여주자 내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림이네!”

전지에는 우리를 그린 그림이 있었다.

“와…….”

바닷가에서 우리가 뛰어노는 그림.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줄 때 말해주지.’

이런 그림이 있는 줄 몰랐단 말이다.

“…미쳤다!”

주이든이 그림을 보면서 방방 뛰었다.

“누가 이걸 주셨어?”

“고등학생 팬이요.”

“고등학생이면 공부한다고 바쁠 텐데!”

정말 잘 그렸다. 벽에 걸고 싶을 정도로.

“형들, 이거 액자 사서 벽에 걸어둬도 돼요?”

“응, 나는 좋아.”

냉큼 이정진이 답해주었다.

“다른 형들은요?”

혹시나 싫어할까 봐 걱정했는데 다른 형들도 괜찮다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이건 사랑이 아니면 못 해.”

“그러니까요.”

사랑만 먹고 살아도 배는 부르겠다.

가방에 팬들에게 받은 편지를 넣자마자 사전 녹화를 진행한다며 스태프가 왔다. 그렇게 사전 녹화를 마치고 나가는데 크래프트와 마주쳤다.

“어? 어디 가?”

홍학이 나를 보며 물었다.

“사전 녹화 끝나고 가는 길이에요.”

“아~ 다음 무대가 우리겠네.”

홍학이 알려줘서 고맙다면서 나에게 사탕을 하나 건네주었다.

“이건 왜?”

“남주가 네가 이걸 좋아한다고 하던데?”

사탕을? 그동안 당이 떨어질 때마다 사탕을 먹긴 했는데… 일단은 홍학이 주는 사탕을 받으면서 감사 인사를 남겼다.

“이번에 남주랑 여행하러 간다면서?”

“아, 예…….”

“…음.”

홍학은 어떤 말도 하지 않은 채 내 어깨를 두드렸다.

“힘내라.”

…무슨 뜻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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