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 이게 맞아?
나는 정요셉의 팔뚝을 진심을 담아 때렸다.
“아야~ 우리 막내, 형을 이렇게 때리면 어떡해.”
“어떡하긴요. 그냥 때린 거죠.”
“아파~”
“아프라고 때린 거예요.”
한 번 더 때리려고 하자 정요셉이 웃으면서 도망갔다.
“얘들아, 놀지 말고!”
화목현의 호통에 우리는 베개와 이불 매트를 거실 바닥에 깔았다. 이정진은 베개와 이불 매트를 보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마 베개와 이불 매트는 각 5천 원이라서 다행이긴 한데…….”
주이든이 돈을 세더니 인상을 쓰며 말했다.
“벌써 십만 원을 썼어!”
“그러니까…….”
[10만 원이 빠져나갔습니다.]
그때 핸드폰에 알람이 울렸다. 무섭다. 이러니까 뭘 먹으려고 해도 겁이 나서 못 먹겠다. 각자 자기가 눕고 싶은 자리에 누울 때였다.
“아, 맞다.”
그때 화목현이 어디론가 가더니 자기가 가져온 가방에서 편지를 꺼냈다. 그것도 곰돌이가 그려져 있는 편지였다.
“촬영 전에 PD님한테 연락이 왔었어.”
“언제요?”
“지난주에. 이번 테마가 힐링이니까 멤버들에게 편지 좀 써달라고 부탁하시더라.”
화목현이 편지를 나눠주면서 힘든 내색을 했다.
“너희들 몰래 편지를 쓴다고 바빴다?”
주이든이 편지를 들면서 화목현에게 질문했다.
“목현 형! 지금 읽어도 돼?”
“어, 읽어도 돼.”
그러면서 화목현은 헤드셋으로 귀를 막고 안대로 눈을 막았다.
“일단 나는 누울게.”
화목현도 부끄러운지 귓가가 붉어졌다. 다른 형들이 읽으니 나도 그 자리에서 편지를 꺼냈다.
“길다.”
짧은 편지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길었다.
《네스트의 막내 나비에게.
안녕, 나비야.
처음 네스트에 합류할 때 힘들어했던 네가 아직도 생각나.
안무실에서 나오지 않고 춤을 외우는 너를 보니 미안한 마음이 들더라.
그냥 먼저 다가가서 알려줄걸.
내 마음이 힘들다는 이유 하나로 너를 도와주지 않았잖아.
미안하다. 내 마음 알지?
그 후로 막내가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힘낼 수 있었어. 몰랐지?
매번 형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해결해 주는 나비가 최고라고 말하고 싶어.
우리 걱정해 주는 사람도 막내뿐이고.
우리 막내로 와줘서 고맙다.
진심이야.
-네스트의 첫째 목현 형이-》
…파노라마처럼 기억들이 떠올랐다. 오히려 내가 더 고마운데 말이다.
‘…이렇게 친해질 줄은 몰랐는데.’
지금은 한 명이라도 없으면 옆이 허전하다고 느껴질 지경이니까.
“…큽.”
구석에서 편지를 읽던 이정진은 눈물샘이 터졌는지 휴지로 눈물을 닦았다. 정요셉과 주이든도 벅차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는지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 있었다.
나는 편지를 고이 접어 다시 편지 봉투에 넣은 후에 가방에 쏙 넣었다. 팬들의 편지를 담은 상자에 화목현의 편지도 넣어야겠다.
이제 자려고 하는데 주이든이 말을 걸었다.
“범나비, 자려고?”
“예? 자야죠.”
“원래 이런 날에는 자는 게 아니야.”
자는 게 아니라고?
“그럼요?”
“수련회 한 번도 안 가봤냐.”
“…음, 안 가봤는데요.”
수련회나 수학여행은 항상 빠졌다. 돈이 들기도 하고 왠지 가기 싫은 마음이 있어서 학교에 남아 공부했던 기억밖에 없다.
“…뭐? 진짜 안 갔어?”
“예, 가봤자 재미도 없을 것 같고.”
주이든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부엌 쪽으로 가서 춤을 췄다.
“이렇게 앞에서 춤추는 것도 안 했어?”
“예, 안 했는데요.”
학창 시절 에피소드가 없는 이유가 있었다. 나는 원래 나서지 않는 체질이었다.
“와!”
나는 멀뚱히 눈만 껌뻑였다.
“나비야, 정말로 안 가봤어?”
“예.”
“흠.”
형들이 고민에 휩싸인 것처럼 침음을 흘렸다. 그러다가 주이든이 집에 있는 조명이란 조명은 다 꺼버린 채 핸드폰 플래시를 켰다.
“다들 여기에 모여봐!”
주이든의 주도하에 우리는 거실 중앙에 모였다. 그랬더니 주이든이 부엌에서 가져온 소주병을 핸드폰 위에 올렸다. 그러자 플래시가 소주병을 비추면서 은은한 조명 역할을 했다.
‘왜 하필 소주병이지……?’
나랑 같은 생각을 했는지 정요셉이 소주병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우리 이든이, 감성 파괴범이네.”
“무슨.”
“우리는 수련회에 온 사람들이란다~? 까먹지 마.”
정요셉의 조언에도 굴하지 않고 주이든은 소주병을 치우지 않았다.
“그래서 이든아, 뭐 할 건데?”
“뭐 하긴!”
주이든이 이불을 가져오더니 망토처럼 걸쳤다.
“대화를 나누는 거지! 근데 난 할 말 없어!”
분위기는 다 잡았지만 할 말은 없다 이 말인가. 그때 이정진이 조용히 읊조렸다.
“그러면 이번 기회에 각자 멤버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하는 거 어때? 투두 네스트 분량도 채울 수 있으니까.”
분량까지 챙기는 이정진의 센스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죠.”
그런데 나는 딱히 할 말이 없는데…….
“나는~”
정요셉이 멤버들의 얼굴을 하나씩 훑어보더니 나에게 말했다.
“여동생이 있으면 소개해 주고 싶은 사람은?”
뭐, 흔한 질문이긴 하지. 하지만 나에게는 여동생이 없어서 상상이 필요했다. 나는 누운 상태에서 골똘히 생각했다.
‘…제일 말을 잘 들어주고 센스 있게 행동할 사람은 바로.’
몇 분 동안 고민하다가 고개를 위로 들었다.
“목현 형이요.”
화목현을 지목하자 형들은 왜 화목현인지 궁금한 시선으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일단 목현 형이 잘생겼어요.”
“…크흠.”
“제일 다정하고.”
“그렇지.”
“제일 센스도 있고 리더십도 있고.”
“그렇지.”
“여동생이 있다면 안심하고 사귀라고 할 거 같긴 해요.”
내 대답이 끝나자 정요셉의 얼굴이 구겨졌다. 아무래도 자기를 찍길 원했던 것 같다.
“자, 그러면 나비는?”
나는 이정진을 지목했다.
“정진 형.”
“어?”
“한 번이라도 미웠던 멤버가 있어요?”
물이면 물, 불이면 불. 흐르는 대로 살아가는 이정진이 미워했던 멤버는 누구인지 궁금했다.
“막내.”
“왜 고민도 없이 나를 골라요?”
형들은 웃음을 참으려는 듯이 입술을 말고는 말을 하지 않았다.
“왜요?”
“제일 노래를 잘 부르잖아.”
“아니, 그게 뭐예요.”
“그거 말고는 없어. 어떻게 막내를 미워할 수 있겠어.”
뭐야. 이 훈훈한 반응.
“…잘까?”
주이든은 재미없다면서 핸드폰 플래시를 꺼버렸다.
“이든 형, 벌써 끄면 어떡해요?”
“범나비, 우리 내일 할 일이 많거든? 자자.”
주이든은 내 어깨를 토닥이며 타이르더니 자기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어이가 없네.
그렇게 짧은 수련회는 끝이 났다.
* * *
푹 자고 일어났더니 제일 먼저 들은 말은,
[물 사용료 3,000원이 빠져나갔습니다.]
누가 씻고 있는지 물 사용료가 빠져나가고 있었다.
“막내야, 일어났어?”
“정진 형도 일어났네요?”
“아까 일어났어.”
다들 부스스한 머리를 정리하지도 않은 채 멍하니 정면을 주시하고 있었다.
“우리 정진 형 집에서 잔 첫날 밤~”
정요셉이 이정진을 끌어안으면서 느끼한 멘트를 날렸다.
“첫날 밤은 무슨.”
“맞는데.”
“그렇구나.”
“정말~ 우리 정진 형은 반응이 재미없어~”
“재미가 없긴.”
그러나 이정진은 저 느끼한 멘트를 순순히 받아줄 의향이 없어 보였다. 나는 거실 테이블 위에 있는 거울로 내 얼굴을 확인했다.
‘…괜찮네.’
얼굴이 조금 붓긴 했지만, 카메라에 찍혀도 괜찮을 정도였다. 대충 가방에서 뿔테 안경을 가져와 얼굴에 썼다.
“범나비, 안경 썼네?”
“우리 팬들의 눈을 보호해 주고 싶어서요.”
그래도 안경으로 얼굴을 조금 가리면 좋겠지. 주이든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내 안경을 툭 건드렸다.
“제일 피부가 탱글거리는 놈이.”
“…말투.”
“뭐.”
“아니에요.”
약간 아저씨 같았어. 정요셉의 느끼함이 주이든에게도 전달된 듯싶었다.
“와! 목현 형! 언제 나와!”
아까 화장실에 들어갔던 화목현이 아직도 나오지 않고 있었다.
[물 사용료 3,000원이 빠져나갔습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 아니야? 목현 형 쓰러졌을 수도 있잖아.”
주이든이 그렇게 말했으나 정요셉과 이정진이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내가 화장실 문을 열어봤는데 열심히 씻고 있더라.”
“정진 형, 들어가서 확인했어?”
“어, 노래 틀어놓은 채 씻고 있던데.”
주이든은 패드로 열심히 뭔가를 검색 중이었다.
“이든 형, 뭐 해요?”
“어? 나?”
주이든이 고개를 뒤로 돌리면서 말했다.
“우리 부모님 선물 사야 한다며.”
“아.”
그랬지. 그래서 선물 검색 중이었나?
“우리 부모님이 은근히 물건을 자주 사는 타입이라서. 내가 선물을 해드리고 싶어도 거의 다 있더라고. 그래서 뭘 사드릴까 고민하는 중!”
“처음 만나는 자리니 조금 값이 나가는 물건을 사드리고 싶은데요.”
“됐거든? 무슨 비싼 걸 산다고!”
나는 주이든의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찔렀다.
“제일 좋아하시는 게 뭔데요?”
“제일 좋아하시는 거?”
한 번도 생각을 안 해봤는지 주이든의 고민이 길어졌다. 그러더니 자기 허벅지를 손바닥으로 때리면서 말했다.
“아.”
“아?”
“우리 부모님, 건강식품을 제일 좋아해.”
그렇다면 제일 보편적이고 비싼 건강식품을 사드리는 게 좋을 것 같네. 그때 화장실에서 뽀송뽀송한 열기를 피우며 화목현이 나타났다.
“…오래도 한다.”
정요셉이 화목현을 보면서 지독하다는 듯이 말했다.
“아, 내가 오래 씻었어?”
“굉장히.”
다음 차례인 이정진이 화장실에 들어가면서 나는 궁금증 하나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런데 이든 형의 부모님이 있는 곳으로 어떻게 가요?”
“어, 그러게?”
설마 하는 마음으로 나는 고개를 돌려 머리를 말리고 있는 화목현을 쳐다보았다.
“어, 왜?”
“목현 형, 차 가져왔어요?”
“안 가져왔는데?”
그러자 주이든이 입을 쩍 벌렸다.
“여기서 굉장히 먼데, 우리 부모님 회사?”
“이든 형, 몇 분 걸리는데요?”
“잠깐만.”
주이든이 핸드폰으로 몇 분이 걸리는지 확인했다.
“여기서 버스 타고 가면 40분은 걸리네.”
“그래요?”
“그나마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있어서 그거 타면 될 것 같아. 엄마가 12시 전에 오라던데? 같이 점심 먹자고.”
그렇다면 지금 시간이,
“어? 10시?”
준비할 시간이 빠듯하다.
“우리 목현 형이 빨리 화장실에서 나왔으면~!”
모두의 시선이 화목현에게 닿았다. 화목현은 뻔뻔스럽게 콧노래를 부르면서 내 말이 안 들린다는 듯이 굴었다.
“이렇게 서둘러서 준비를 안 해도 됐겠죠?”
내가 일침을 가하자 화목현이 헛기침을 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