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7. 고양이
자동차 밑에 고양이가 들어갔다는 소식이 빠르게 스태프들의 귀에 들어갔다.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자동차 주변에 모여 고양이를 빼내려고 시도했다. 고양이 전용 츄르도 줘봤지만 고양이는 자동차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고양이는 그저 ‘냐옹’ 하면서 울음을 뱉었다.
원래 사람들이 많으면 고양이가 잘 안 나온다고 하니, 고양이가 보란 듯이 바닥에 간식을 놔두고 자동차에서 멀리 떨어졌다. 그러나 고양이는 나올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이러면 안 되는데?”
뮤비 감독이 난감한 표정을 지은 채로 팔짱을 꼈다.
“이대로 촬영하다가 고양이가 차에서 튀어나오면 다시 촬영할 수밖에 없고… 촬영이 끝나도 고양이 소리가 나면 다시 촬영할 수밖에 없는데.”
재촬영한다고 한들, 한 달 정도 스케줄이 꽉 차서 쉽게 할 수도 없을 것이다.
‘어쩌지?’
무엇보다 나는 고양이가 걱정됐다. 고양이의 입장에서는 거인들이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일 테니까.
“제가 다시 츄르를 줘도 될까요? 저만 여기에 남고 다른 스태프분들은 뒤로 물러나면 좋겠습니다.”
“그래, 한 번 더 시도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으니까. 하지만.”
뮤비 감독이 양손으로 입가를 문지르며 이어 말했다.
“고양이를 차에 태운 상태에서 촬영을 시도할 수밖에 없어. 시간이 계속 가고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나는 자동차에 엎드려서 고양이가 어디에 있는지 살펴보았다. 그리고 고양이를 향해 눈을 껌뻑였다.
“나비야, 츄르 줄까?”
“네, 여기 손가락에 묻혀주세요.”
고양이를 향해 츄르가 묻은 손을 뻗었다. 그러자 희망이 보였다. 고양이가 조심스럽게 한 발 앞으로 다가왔으니까.
‘발이 하얗다?’
턱시도 고양이인가.
손가락에 묻힌 츄르로 유인해서 자동차 밖으로 빼내자,
냥?
고양이가 자동차 밖으로 나왔다. 고양이는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오자마자 내 팔을 온몸으로 비볐다.
“잘생긴 남자를 알아보는 건가.”
뮤비 감독의 말에 나는 눈을 껌뻑였다. 그런가? 고양이가 혀를 날름대며 츄르를 한 입 먹었다.
“턱시도 냥이네.”
검은색 털에 발만 하얗다.
“귀여운 주제에. 우리 힘들게 하고.”
주이든이 뒤에서 고양이를 타박했다.
“하지만 귀여워.”
그러면서 주이든은 내 품에 안긴 고양이의 턱을 문질렀다. 옆에서 지켜보던 이정진이 옷을 만지며 말했다.
“나비야, 옷에 털 묻었네.”
“어… 이거.”
그걸 본 스타일리스트분들이 빠르게 돌돌이를 가져와서 처리해 주셨다. 그대로 나는 고양이를 품에 안은 채 뮤비 감독을 쳐다보았다.
“감독님, 촬영 시작해도 될 것 같은데요.”
“이제 촬영 시작할까?”
그런데 이번에는 고양이가 나만 보면 졸졸 뒤를 따라와서 문제였다.
“고양이가 사람 볼 줄 아네.”
주이든이 고양이를 보면서 기가 막힌다는 듯이 말했다.
“범나비, 그거 몰라? 고양이는 자기를 키울 집사를 고른다고 하던데.”
“…예?”
촬영이 끝났는데도 따라오면 큰일인데. 고양이를 데리고 갈 사람들도 없고. 나는 화목현에게 일단 물었다.
“목현 형은 털 알레르기 있어요?”
화목현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없어.”
다른 형들도 털 알레르기가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일단 데리고 갈까요?”
임보를 하다가 입양을 보내면 되니까. 화목현이 고양이의 엉덩이를 팡팡 두드리며 나에게 물었다.
“나비야, 왜? 고양이 키우고 싶어?”
“그건 아닌데… 아직 새끼 고양이라서 여기에 놔두면 안 될 것 같아서요.”
새끼 고양이는 어미 고양이가 없으면 살아갈 수 있는 확률이 극히 드물다. 그렇기에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일단 고양이는 내려놓고 촬영부터 하자.”
“…연호 형.”
김연호가 근처에서 내 후드집업을 가져오더니 고양이 근처에 놔뒀다. 내 향기를 맡은 건지 고양이가 후드집업 위로 올라가 누웠다.
“…와, 범나비 인기쟁이네.”
“뭔가 말투가.”
“뭐?”
“살짝 우리 엄마 같았어요.”
“야!”
뒤에서 중얼대는 주이든의 말을 무시하면서 자동차 앞에 섰다.
“이번 뮤직비디오는 여행이 컨셉입니다. 일단 정진이를 제외하고, 나머지 멤버들이 차에 올라타 여행을 가는 것처럼 신나게 웃어주세요.”
“알겠습니다!”
이정진은 카메라 뒤로 이동하고 우리는 차에 올라탔다.
“신나게 웃어주세요!”
뮤비 감독이 그렇게 말하자 우리는 여행을 가서 신난 사람들처럼 환호성을 질렀다.
* * *
뮤직비디오를 찍고 며칠 후, 형들도 고양이에게 정이 든 모양이었다.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고, 고양이랑 관련된 책을 읽기 시작했으니까.
“자.”
김연호가 집에 있는 고양이 용품을 우리에게 건네주었다.
“예전에 룸메가 쓰던 고양이 물품인데 창고에 놔두고 있었거든.”
“아, 감사해요.”
“나는 물건 처리해서 좋지.”
고양이는 숙소가 자기 집인 것처럼 행세하며 돌아다녔다.
“냐옹! 냐옹!”
주이든은 고양이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관심을 가져달라는 듯이 고양이 울음소리를 냈다. 하지만 고양이는 귀찮다는 듯이 뒤를 돌아보다가 다시 앞으로 걸어갔다.
“임시 보호지만, 우리 고양이 이름부터 지을까?”
화목현의 제안에 나는 고민했다.
“그러면 네온들한테도 이 사실을 알릴까요?”
뮤직비디오 홍보도 할 겸, 고양이 입양도 보내야 하니까.
“HOPE 음악방송이 끝나서 팬들이 심심해할 것 같기도 하고. 팬들에게 고양이 이름을 지어달라고 하면 좋지 않을까요?”
“…범나비, 그냥 고양이 보여주고 싶은 거 아니야?”
“…아닌데요.”
“맞네.”
…고양이를 보여주고 싶긴 했지. 귀여우니까.
“바로 라이브 방송 켤까?”
화목현은 라이브 방송을 능숙하게 켰다. 라이브 방송이 시작되는 동시에 네온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얘들아
-뭐 해
-헉
-잘생김
네온들의 반응을 보면서 화목현이 오늘 라이브 방송을 켠 목적을 네온들에게 말해주었다.
“오늘 라이브 방송의 목적은!”
주이든이 고양이를 품에 안은 채로 네온들에게 보여주었다.
-헐
-고양이
-ㅁㅊ
-고양이 키워?
키우냐는 질문에 화목현이 말했다.
“자, 이제부터 상황 설명을 할게요.”
-네, 선생님
-네네
화목현이 침착한 톤으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번에 허상 뮤직비디오 찍는 거 아시죠?”
-응!
-알지
-벌써 기사 떴잖아
화목현이 채팅을 보면서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그 뮤직비디오 촬영 현장에서 고양이가 차에 들어가는 바람에 촬영이 지연됐었거든요.”
-헐 진짜?
-와
-헐
채팅을 보면서 화목현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나비가 손가락에 츄르를 발라서 고양이한테 내미니까 그제야 자동차에서 나오더라고요. 그런데 문제는!”
옆에서 주이든이 호응했다.
“문제는!”
“고양이가 나비에게서 안 떨어지려고 하더라고요. 이렇게.”
내 팔뚝에는 고양이가 달라붙어 있었다.
-ㄱㅇㅇ
-그래서 고양이 임보 중이야?
임보라는 단어에 화목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아요.”
고양이는 나에게서 벗어나자마자 주이든의 팔에 가서 얼굴을 비볐다.
“그래서 고양이 이름을 어떻게 지을까 고민 중이에요. 아직도 이름이 없어서 그냥 고양이라고 부르거든요.”
형들이 부르고 싶어 하는 이름이 있긴 했지만, 고양이랑 어울리진 않았다.
-흠
-이름을 어떻게 짓지?
네온들도 고양이 이름을 짓기가 어려운 모양이었다. 우리 놀릴 때는 채팅창이 활발한데 말이다.
-까마니까 짜장이 어때
-턱시도니까 턱시도라고 부르자
-까망이?
다들 검은색에 집중하고 있네.
“에이! 네온들이랑 연결이 되면 좋겠는데!”
주이든이 고양이 앞발을 잡아 싫다는 표현을 내비쳤다. 만족스러운 이름이 없는 와중에.
-클로버?
-클로버 오
-오 좋다 클로버
클로버가 좋다는 의견이 나왔다. 왜지?
“클로버가 왜 좋아요?”
내 질문에 어떤 분이 길게 채팅을 적어줬다.
-고양이가 네스트의 행운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앞으로 클로버라고 부르면 어때?
네스트의 행운… 괜찮은데? 형들도 클로버라는 이름이 만족스러운지 고양이를 보더니 클로버라고 불렀다.
그러자 고양이가 냐옹! 소리를 내며 대꾸했다.
“네온들, 봤어요~?”
정요셉이 호들갑을 떨면서 고양이를 품에 안고 얼굴을 비볐다.
-언제까지 임보 할 거야?
-그러게 언제까지?
임보를 언제까지 할까.
“일단 동물병원에 데려가서 검사한 다음에 입양처를 알아보려고 해요.”
-오 좋다
-클로버야 행복하렴
-이럴 땐 클로버가 부럽네
그때였다. 얌전하게 정요셉의 품에 안겨 있던 클로버가 밖으로 나오더니 핸드폰을 발로 툭툭 건드렸다.
“어~ 그러면 안 돼~”
정요셉이 클로버의 몸을 잡고 안 된다고 했으나 클로버는 계속 화면을 두드렸다. 졸지에 고양이에게 맞은 네온들은 채팅창에 억울하다고 말했다.
-아니 클로버야 우리도 네스트를 볼 자격이 있단다
-너만 보면 억울하지
-클로버야 얌전히 있어
-어쩌면 포상일 수도?
포상이라는 댓글을 읽은 정요셉이 크게 웃어버렸다.
“우리 네온들 귀엽다, 귀여워.”
이제 슬슬 방송을 마무리할까 싶어서 화목현에게 눈짓을 했다.
“어, 네온들.”
화목현이 운을 떼자 네온들이 방종은 안 된다며 항의했다.
-벌써 끄려고?
-안 돼
-그러지 마
-우리 오래 봐야지
그렇지만 화목현은 꿋꿋하게 말을 이어갔다.
“나중에 또 라이브 방송 켤게요. 네온들, 다음에 봬요.”
다음에 보자는 말을 건네면서 우리는 인사를 나눴다. 그런데 정말로 클로버가 우리의 행운이었던 걸까.
“어, 우리…….”
계속 핸드폰을 만지작대던 이정진이 고개를 들더니 말했다.
“HOPE 말이야… 빌보드 차트 70위까지 올랐다는데?”
* * *
행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인터뷰, 예능, 라디오 게스트, 개인 광고, 우리는 쉬지 않고 움직였다. 김연호의 핸드폰은 조금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개인 예능부터 시작해서 단체 예능도 들어오고, 드라마 출연을 해달라는 부탁까지 들어왔다. 여기서 끝일까.
공식 명품 엠버서더까지.
그리고 오늘은 투두 네스트 콘텐츠를 찍는 날. 피곤했지만 형들은 미소를 지었다.
“진짜 오랜만에 투두 네스트 찍는 날이네!”
주이든과 정요셉이 손뼉을 치면서 난리를 쳤다.
“그런데 오늘은 왜 촬영 장소가 왜 여기야……?”
이정진의 말에 우리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고 보니 지금껏 항상 촬영 장소가 있었는데, 이번에는 자동차 앞에 우리를 세워뒀다.
‘어디 가나?’
게다가 김연호는 운전석에 앉아 대기하고 있었다. 어리둥절해하는 사이에 PD님이 입을 열었다.
“네스트 여러분, 오늘은 투두 네스트를 찍는 날입니다.”
우리는 크게 환호성을 질렀다.
“오랜만이죠?”
“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안타깝게도?
“투두 네스트 시즌 2 마지막 날입니다.”
그 말에 우리는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우리한테는 그런 말 없었잖아요!”
주이든의 외침에 PD는 가만히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대신, 오늘 촬영은 휴식이 테마입니다. 요즘 바쁘셨잖아요?”
우리를 생각해서 이런 테마를 준비하다니.
“그래서 어디로 가요? 시골로 가나? 아니면 집? 아니면 캠핑?”
들뜬 주이든의 질문에 PD가 말했다.
“식당에 갑니다.”
“식당요?”
우리 회식하나? 그러고 보니 그동안 한 번도 투두 네스트 스태프들과 회식한 적이 없었다.
“여기서 차로 이동하면 금방입니다.”
그 말에 우리는 차에 올라탔다. 그런데 이정진만 계속 고개를 갸웃하면서 침음을 삼켰다.
“정진 형?”
“어?”
“무슨 일 있어요?”
무슨 일이 있냐는 질문에 이정진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기분이 이상해서…….”
그 이유를 물어보려는 찰나 PD의 말대로 정말 금방 식당에 도착했다.
“이제 내리면 돼.”
김연호의 말에 우리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이정진은 앞을 보며 입을 쩍 벌렸다. 왜 그러나 싶어서 나도 앞을 봤는데,
“…어?”
왜 ‘이씨네 갈비’라는 간판이 보이는 걸까?
“저기, 정진이 부모님이 하는 갈빗집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