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5. 국밥
이윤도를 위로해 주는 동안 홍학이 말했던 국밥집에 도착했다. 미리 국밥집에 연락을 해놨는지 사장님은 넓은 자리에 우리를 안내했다.
“내가 미리 해놨지.”
홍학이 손가락으로 브이를 만들며 우리에게 말했다. 이남주는 자연스럽게 홍학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우리 형, 대단해.”
“남주야, 그렇다고 내 머리를 쓰다듬으면 어떡해.”
“그냥 만지고 싶었어.”
그러는 와중에 화목현이 손뼉을 쳤다.
“우리가 오른쪽에 앉을게. 크래프트가 왼쪽에 앉아줄래?”
화목현의 제안에 왼쪽에는 크래프트가, 오른쪽에는 우리가 앉았다. 그런데,
“아, 왼쪽에 자리가 없어서 실례하겠습니다.”
내 맞은편에는 이남주가 앉았다.
“제가 있어서 좋죠?”
“…좋긴 하네요.”
내가 일어나서 식탁에 숟가락과 젓가락을 놓는 순간 홍학이 의자에서 일어나 외쳤다.
“이번엔 내가 살게!”
산다는 발언에 정요셉과 주이든이 환호성을 질렀다. 남은 사람들이 손뼉을 쳐주자 홍학이 우리를 보면서 말했다.
“지난번에 펜션에서 술을 마시다가 1시간 만에 잠드는 바람에 미안해서 쏘는 거다. 그리고.”
그리고? 홍학이 화목현을 보더니 말을 이었다.
“나중에 네스트가 더 맛있는 거 사주겠지 싶어서 먼저 쏘는 것도 없지 않아 있지.”
“왜지?”
“네스트가 잘나가니까?”
…지금 밥을 사주는 건 계획적인 행동이라는 건가. 나중에 더 좋은 걸 받아먹겠다는? 그러자 화목현이 코웃음을 쳤다.
“크래프트도 잘나가지 않나? 우리보다 대상을 먼저 받은 걸로 아는데?”
“하지만 우린 빌보드에 들어가지 못했거든요.”
“100만 장을 먼저 돌파한 그룹이 그런 말을 하는 건 아니지.”
그러자 홍학이 상체를 앞으로 당기더니 말했다.
“목현아, 대결하자 이거지?”
“그래, 마음대로.”
아니, 리더끼리 이러면 안 되지 않나요. 나만 땀을 삐질 흘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다른 멤버들은 말리지도 않고 흥미로운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보고 있었으니까.
“너희 막내가 얼굴 없는 가수 1등 했잖아.”
“박채민도 이번에 얼굴 없는 가수에서 1등 했다고 들었는데?”
박채민은 자기 칭찬에 부끄럽다는 듯이 뺨에 홍조가 올라왔다.
“너희는 인기 배우도 있잖아. THE END에서 신인남우상도 받고!”
“이남주는 공중파 사극 드라마 주연 한다며.”
정요셉이 핸드폰으로 신인남우상 사진을 크래프트 멤버들에게 보여주었다. 크래프트 멤버들은 신기하다는 듯이 사진을 보았다.
“네스트에는 작곡가가 있잖아. 그걸로 돈 좀 쏠쏠하게 벌었다는 기사가 있던데.”
쏠쏠하게 벌었다는 말에 이정진이 고개를 돌려 헛기침을 연달아 뱉었다.
“아니지, 학아. 크래프트에는 작사가가 있다며? 작사가들 사이에서 칭찬도 많이 받고 있던데?”
“그랬어?”
이건 몰랐는지 홍학이 서영진을 쳐다보았다.
“그렇긴 해.”
서영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춤은 이든이가 잘 추잖아. 이번에 너튜브에 춤 영상 떴던데.”
“너희 막내도 댄스 경연 프로그램에서 1위 하지 않았어?”
주이든은 칭찬에 뿌듯함이 깃든 미소를 띠었다. 이윤도는 제대로 안 들었는지 밑반찬 구경에 빠져 있었다.
마지막으로 리더들만 남은 상황에서 홍학이 손가락으로 뺨을 긁적였다.
“그리고 목현아, 너는 잘생겼잖아.”
“너도 잘생겼어.”
뭐지? 마지막은 훈훈한 외모 칭찬으로 끝났다.
“야, 뮤직비디오 봤는데 목현이 너무 멋있더라.”
“고맙다.”
대충 이야기가 마무리되자 내가 운을 뗐다.
“광고 촬영할 때 나온 노래요. 이번 타이틀곡인가요?”
아무렇지도 않게 이남주가 대답했다.
“예, 맞아요.”
“노래 좋던데.”
“좋아요?”
좋다는 말에 이남주가 냉큼 물었다.
“네, 이를 갈았을 것 같은데.”
그러자 이윤도가 콩나물무침을 입에 넣다가 말고 나에게 말했다.
“당연하죠!”
“응?”
“네스트가 잘나가는데 우리도 잘나가야죠.”
이윤도가 콩나물무침을 입에 넣으면서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FG 엔터도 우리처럼 이를 갈고 있었다는 건가.
“우리도 성공하고 싶었거든요.”
대상을 받은 사람이 저런 말을 하니까 이상하긴 하지만.
“…어떻게 성공하고 싶은데요?”
“적어도 네스트만큼은 하고 싶습니다.”
이윤도의 포부에 이남주가 등을 토닥여 주었다.
“안 된다는 보장은 없잖아요.”
그렇지. 안 된다는 보장은 없지. 모두가 이윤도를 지켜보고 있었다. 기특하다는 눈빛을 장착한 채.
“…뭐, 운이 따라준다면 가능하겠지만.”
삐죽, 입술이 앞으로 튀어나온 이윤도는 뒤이어 나타난 수육에 눈이 커졌다.
“학 형! 수육도 시켰어요?”
“어, 맛있게 먹어라.”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에요?”
“무리는 무슨. 내가 쏜다고 했는데 쪼잔하게 굴 필요가 뭐가 있어?”
“맨날 쪼잔하게 굴…….”
이윤도의 뒷말은 이남주가 이윤도의 입에 수육을 넣어 끊겼다.
“학 형이 맛있는 거 자주 사주고 그래요.”
“그래요? 우리 목현 형도 자주 사줘요.”
“목현 형이요?”
“음식도 직접 해주는걸요.”
그 말에 크래프트 멤버들이 일제히 화목현을 쳐다보았다. 왜지?
“좋겠다.”
이윤도가 정말 부럽다는 듯이 혼잣말을 뱉었다.
“…요리도 해줘요?”
나는 이남주의 물음에 눈을 껌뻑였다.
“거긴 요리도 안 해요?”
“잘 안 하죠.”
크래프트는 요리는 안 하는 모양이었다.
“우리 막내는 떡볶이도 자주 해주는데, 거기는 안 그러나 봐~?”
내 팔을 잡은 정요셉의 입꼬리가 사악하게 올라갔다. 왜 내 팔을 잡고 그러지? 박채민이 상추에 수육을 올리며 입을 열었다.
“우린 요리는커녕 애초에 밥을 잘 안 먹는데.”
“밥을 잘 안 먹는다고?”
밥을 잘 안 먹는다는 발언에 주이든이 깜짝 놀랐다.
“왜 밥을 안 먹어?”
“대부분 소식해서?”
소식을 한다고? 그렇게 안 보이는데.
“주로 닭가슴살을 먹어서.”
“그러다가 통풍 와.”
통풍 온다는 주이든의 일침에 박채민의 미간이 좁혀졌다.
“그래도 밥은 먹거든? 많이 안 먹을 뿐이지.”
“밥을 잘 먹어야 활동을 잘하지.”
“거긴 잘 먹나 봐?”
“당연하지!”
주이든이 젓가락으로 수육을 입에 넣고 씹었다. 맛있는지 주이든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얼마나 맛있길래. 나도 젓가락으로 수육을 집으려고 하자 이정진이 쌈을 건네주었다.
“정진 형, 고마워요.”
나는 이정진이 준 쌈을 입에 넣고 오물오물 씹었다.
“와…….”
이윤도가 부럽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윤도야, 왜?”
이윤도는 내 물음에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부러우면 지는 거겠죠…….”
이정진이 나에게 쌈을 싸주는 게 부러웠던 모양이었다. 우리랑 정반대의 분위기로 살고 있나 보군.
그런데 이윤도의 생각과는 달리 크래프트는 이윤도를 배려해 주고 있었다. 숟가락이나 젓가락을 챙겨주거나 이윤도가 좋아하는 반찬을 옆으로 밀어주거나.
‘자기가 느끼지 못하는 거겠지.’
언젠간 그 배려를 느끼는 날이 올 것이다.
“나도 쌈!”
이정진은 칭얼거리는 주이든에게 자기가 먹으려고 싼 쌈을 건네주었다.
“윤도야, 저게 부러워?”
“뭐… 예, 채민 형!”
박채민은 재밌는 놀이가 생각났는지 쌈에 마늘과 고추를 넣었다.
‘…저러다가 이윤도가 울면.’
내 생각에 이윤도는 저 쌈을 먹고 울지 않을까 싶었다. 박채민이 쌈을 들이대자 이윤도가 반갑다는 듯이 쌈을 입에 넣었다.
“어때?”
박채민이 질문했다. 오물오물 쌈을 먹은 이윤도는 맛있다며 눈을 크게 떴다.
“맛있어!”
“맛있기만 해?”
맛있기만 하냐는 말에 이윤도가 고개를 갸웃했다.
“아! 설마!”
“어?”
“쌈에 뭐 넣었지!”
“고추랑 마늘 넣었지.”
그러자 이윤도가 이상하게 맛있었다면서 더 넣어달라고 박채민에게 부탁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느꼈다.
‘우리랑 전혀 다르네.’
지금껏 형들이 나에게 싸주는 쌈에는 마늘이나 고추가 없었다. 우리 형들이 순하긴 하네…….
정요셉이랑 주이든이 장난을 치기는 하지만. 그것도 별로 장난치는 것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
‘…크래프트가 아니라서 다행이네.’
수육이 사라지는 순간 돼지국밥이 나왔다. 연기가 폴폴 끓는 국밥을 보자 저절로 침이 나왔다.
“맛있게 잘 먹겠습니다.”
새우젓을 넣은 다음 다대기로 다시 간을 맞췄다.
“학 형, 맛있게 잘 먹을게요!”
“맛있게 먹어라!”
감사한 마음으로 국밥을 먹기 시작했다. 국밥을 먹다가 말고 주이든이 작게 중얼댔다.
“아, 국밥엔 소주인데.”
하긴 국밥에는 소주다.
“어? 뭘 좀 아네?”
박채민이 주이든을 보면서 말했다.
“내가 좀 잘 아는 편이지.”
“안 그래도 소주 시키고 싶었는데 눈치 보여서 안 시키고 있었는데…….”
박채민은 주이든을 끌어들이려고 하는 모양이었다.
“안 돼.”
화목현이 소주는 안 된다며 말렸다.
“왜요?”
박채민의 물음에 화목현이 고개를 살짝 들었다.
“우리 내일 뮤직비디오 촬영이 있는 날이라. 이든이 얼굴 부으면 안 돼서.”
“어? 뮤직비디오?”
박채민은 우리 뮤직비디오 나오는 거 모르나? 허상 뮤직비디오가 나온다고 단독으로 기사까지 나왔는데.
“허상 뮤직비디오 나오거든요.”
“와~ 빨리 보고 싶다.”
그때 조용히 국밥을 먹던 이남주가 말을 꺼냈다.
“커피차 하나 보내도 돼요?”
“무슨 커피차를?”
이남주가 고개를 들어 나를 정면으로 주시했다.
“크래프트가 네스트를 응원합니다… 이런 문구를 넣어서요.”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예.”
…어? 진짜로? 남은 멤버들도 이남주를 쳐다보았다.
“우리 친목 도모도 많이 했고.”
2번밖에 안 했는데?
“그러니까 커피차 한 대 정도는 보내도 될 것 같은데.”
이남주가 정말 커피차를 보내려고 하는 건가.
“그러니까 네스트도 우리한테 커피차 한 대 보내주면 좋겠어요.”
우리가 크래프트에게?
“하도 말들이 많아서요.”
“아.”
“알잖아요?”
네스트와 크래프트의 사이가 좋다는 말이 퍼지려는 시점이었다. 우리가 클럽에서 논다는 허위 사실이 퍼지는 바람에 한동안 고생을 좀 했었다.
그 당시에 집에 있었다는 증거를 공식 SNS에 올렸으니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다들 허위 사실을 굳게 믿었을 것이다.
“우리가 건전하게 놀고 있다는 모습을 팬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서요.”
“알겠어요.”
모두가 설득된 상황.
“제가 크래프트에게 커피차를 보낼게요.”
“어? 진짜요?”
“대신 저는 크래프트에게 주는 게 아니라 크크분들한테 드리고 싶은데요.”
확실한 방법은 크크분들에게 커피차를 보내는 방법이겠지. 내 말을 들은 이윤도는 너무 좋다고 말했다.
“…오! 그러면 겹치지 않을 때 커피차 보내주세요!”
“네, 언제 보낼 건지 톡으로 알려주세요.”
“와! 나도 마셔야지!”
내가 보낸 커피를 마시겠다는 건가. 이윤도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신난 강아지처럼 어깨를 들썩였다.
* * *
박랜서는 퀭한 눈으로 휴식을 취하며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분명 핸드폰 광고 촬영이 스케줄로 있었는데 아무 떡밥도 올라오지 않아 심심했다. 그 순간 공식 SNS에 글 하나가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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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온]
허상 뮤직비디오 촬영 현장에 커피차를 보내준
크래프트 멤버분들, 특히 남주 형 감사합니다.
맛있게 잘 마실게요.
(단체사진_jpg)
(커피차사진_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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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