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 활동 시작
박서진 스태프가 정식으로 주이든에게 사과했다.
“어, 예?”
주이든은 박서진 스태프의 사과를 듣고는 눈만 껌뻑였다.
“…제 뒷담화를 들으셨다는 거 알고 있었습니다.”
“뭐, 사과해 주셔서 감사해요.”
정작 주이든은 사과를 받을 줄 몰랐는지 굉장히 뻘쭘한 표정을 지었다. 다시 한번 박서진 스태프가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아까 넘어질 때 잡아주셔서 감사해요.”
“아, 그때.”
훈훈한 분위기 속에 정적이 휩싸였다.
‘…훈훈하게 끝나서 다행이네.’
주이든도, 박서진 스태프도 서로가 부끄러워하는 게 보였다.
“박서진 스태프님 멋지다~”
그때 정요셉이 정적을 깨트렸다. 박서진 스태프가 아니라며 두 손을 세차게 흔들었다.
“제가 소문만 듣고 욕을 했던 거라.”
“그래도 사과를 해주셨으니까 멋진 거죠.”
“…아닙니다. 그럼 저는 이만.”
박서진 스태프는 이만 가보겠다며 고개를 숙이며 우리 곁에서 멀어졌다. 주이든에게 사과를 해주셔서 다행이라고 여길 때였다.
“뭐야? 서진 씨가 이든이 욕했어?”
이 사실을 모르고 있던 화목현만 덩그러니 인상을 쓰고 있었다.
“아, 내 욕을 했었지!”
점점 화목현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이든아, 괜찮아?”
“당연히 괜찮지.”
“…마음은?”
주이든이 가슴 쪽에 양손을 얹었다. 두 번이나 눈을 깜빡이더니 주이든이 입을 열었다.
“괜찮대!”
괜찮다는 말에 화목현은 안심하고 우리는 몰래 웃었다.
“엔딩 촬영이요!”
그리고 임생운 PD가 엔딩 촬영을 한다며 앞으로 모여달라고 부탁했다. 좁은 배 안에서 우리는 카메라 앞에 섰다.
“이정진 씨, 어제오늘 하루 이틀 촬영은 어떠셨나요?”
임생운 PD의 질문에 이정진이 앞으로 나와 소감을 말했다.
“…하루 이틀 촬영하면서 정말 행복했습니다.”
“행복이요?”
“네,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일을 도와드리면서 웃기도 많이 웃었고, 특히 멤버들과 좋은 추억을 쌓아서 행복했어요.”
이정진이 살짝 고개를 뒤로 돌려 우리를 쳐다보았다.
“이정진 씨의 소감 잘 들었습니다. 다른 분들은?”
다른 분들이라는 말에 정요셉이 팔을 번쩍 들었다.
“행복했어요! 다음에 또 나오고 싶습니다!”
다음에 오겠다는 욕망을 담은 정요셉의 말에 임생운 PD가 살짝 웃었다.
“저도 즐겁게 촬영했습니다. 아, 범나비 씨?”
“네.”
“앞으로 나와주세요. 이 편지를 전달해 주고 싶어서요.”
“편지요?”
편지? 내가 앞으로 나오자 임생운 PD가 고개를 들어 나에게 편지를 건네주었다.
“한정숙 할머니께서 범나비 씨에게 전달해 달라고 부탁을 하셨어요.”
“…어, 네.”
나는 한정숙 할머니의 편지를 받으며 봉투를 뜯었다.
“여기서 읽어도 될까요?”
“마음대로 하셔도 됩니다.”
임생운 PD의 허락이 떨어지고 나는 편지를 읽었다.
「나비야,
훨훨 날아서
아름다운 나비가 되렴.
-한정숙-」
짧지만 강렬해서 가슴에 와닿았다. 한 글자, 한 글자 그림처럼 그려져 있는 글자에 울컥했다.
‘…글씨를 못 쓴다고 하셨으면서.’
나를 위해 한정숙 할머니가 편지를 써주셨다. 나도 카메라를 보며 소감을 말했다.
“…하루 이틀 촬영하길 잘한 것 같습니다.”
내가 고이 편지를 접어 손에 쥔 뒤에 화목현이 외쳤다.
“감사했습니다!”
그 인사를 끝으로 하루 이틀 멤버 특집이 끝났다.
* * *
우리가 배에서 내리자 김연호가 기다렸다는 듯이 차에서 내렸다.
“얘들아, 하루 이틀 촬영 잘했어?”
정요셉이 김연호에게 기대며 울상을 지었다.
“완전! 완전! 잘했어. 연호 형이 보면 깜짝 놀랄걸?”
김연호가 우리 짐을 트렁크에 넣은 뒤에 우리를 보며 물었다.
“너희들, 하루 이틀 촬영할 때 HOPE 춤도 췄어?”
“당연하지~ 얼마나 잘 췄는데.”
“얼마나?”
“고추를 들고 췄거든.”
정요셉의 말처럼 우리는 고추밭에서 고추를 들고 HOPE 춤을 췄다. 나중에 방송하면 한번 봐야 할 것 같은데. 굉장히 웃겼을 것 같아서.
“얘들아, 타.”
트렁크에 짐을 넣고 우리는 각자 지정석에 앉았다. 이틀 동안 핸드폰을 보지 않아서 무슨 일이 일어났나 싶어 핸드폰을 켰다.
“뭐야.”
처음부터 크래프트 컴백에 대한 기사를 봤다.
‘어제 티저를 올렸어?’
거기다가 크래프트 컴백 영상은 반응이 무척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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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크래프트 이 갈았네?
티저 미쳤는데
컨셉이 그로신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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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가 하데스임 말 다 함
└ㅅㅂ?
└와……
└…티저 얼굴 보고 할 말을 잃음
└하데스라고?
-이번 주에 신화로 컴백하면 네스트랑 활동 겹치네
└ㅋㅋㅋㅋㅋㅋㅋ
└오~
└재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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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미쳤다
크래프트 정규 앨범
‘신화’라는 곡으로 컴백!
수록곡 10개!
컨셉은 그리스로마신화
신들의 전쟁 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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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크래프트 이 갈았네
└크래프트도 대상 타고 싶겠지
-HOPE이 지금 차트 1위 아님? 1위가 바뀔 수도 있겠네
└노래가 티저처럼 나온다면 그럴 수도?
└근데 HOPE이 너무너무 좋아서 이길 수 있을지 모르겠음ㅋㅋㅋㅋㅋ
-씨발 이거지 얘들아! 처음부터 이런 노래 내면 좋았잖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 마음이다
└ㄹㅇ 개존잼
-케팝 안 뒈졌다 이제 시작이다
비상이 걸렸다. 크래프트의 컴백은 생각도 안 하고 있었다. 한숨을 내쉬며 핸드폰을 집어넣자 시스템창이 떠올랐다.
[정답, 하루 이틀 촬영을 완벽하게 해냈습니다!
풀이: 하루 이틀 촬영을 완벽하게 해내지 못했으면
박서진 스태프가 주이든에 대한 소문이 진실이라는 듯한
글을 커뮤니티에 올려 억까 영상이 100개에 다다랐을 것입니다.
그로 인해 대상은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을 겁니다.]
…허, 시스템창의 마지막 문장을 보니 심장이 철렁했다. 대상이 물거품이라.
[정답을 풀어 랜덤 박스 1개를 증정합니다.]
오랜만에 받은 랜덤 박스를 오픈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랜덤 박스가 사정없이 돌아가더니 폭죽이 터졌다.
【랜덤 박스 OPEN】
※랜덤 박스에서 1개의 아이템이 나옵니다.
【1. 빛나는 주인공 효과!:이 아이템을 쓰는 순간 모두가 나를 주목한다. [1번]】
※이 아이템은 영구적인 효과를 지니고 있습니다.
‘…나만 주목한다고?’
굉장히 좋은 효과인데. 이 아이템을 언제 쓰면 좋을까. 나는 창문 너머로 도시의 풍경을 지켜보면서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아이템은 인벤토리에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템이 인벤토리에 들어가는 순간,
‘아.’
아이템을 언제 쓸지 떠올랐다.
허상 뮤비.
이때 써도 효과가 나오겠지?
거기다가 영상에 찍힌다면 더욱더 오래갈 수도 있다. 이거 괜찮겠는데?
“연호 형.”
“어, 나비야.”
“우리 허상 뮤비는 언제 찍어요?”
“아마 다음 주일 거야. 이번 주는 HOPE 활동 때문에 시간이 별로 없거든.”
그렇다면 다음 주에 쓰면 되겠다.
“바로 음방 사녹 촬영하러 간다?”
“네!”
음방 사녹 촬영이 있는 날이라서 숙소에 갈 시간은 없었다. 조수석에 앉은 화목현이 몸을 살짝 틀어서 우리를 불렀다.
“얘들아.”
진중한 화목현의 목소리에 모두가 화목현에게 집중했다.
“나 때문에 HOPE 활동 제대로 못 해서 미안해.”
형들이 무슨 말을 하려는 찰나 화목현이 고개를 저어 말을 막았다.
“나 때문인 건 맞으니까.”
화목현이 저지른 일도 아닌데 왜 그럴까. 형들은 할 말이 많은지 입술을 달싹였다. 이윽고 화목현이 씩 웃으면서 말했다.
“앞으로 너희들보다 더, 더, 더 열심히 활동할게.”
매일 열심히 하면서. 여기에서 더 열심히 하다가는 쓰러지는 거 아닌가?
“목현 형, 그러다가 쓰러지면 우리 책임 아니다!”
주이든이 화목현을 응시하며 협박하듯이 말했다. 화목현은 걱정하지 말라며 미소를 지었다.
“걱정하지 마. 너희들보다 내가 더 튼튼하니까.”
“와, 건강하다고 어필하는 거 웃기네!”
주이든은 팔짱을 끼면서도 입꼬리에서 미소가 내려오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번 활동도 잘해보자.”
그 말에 우리는 동시에 외쳤다.
“예!”
* * *
박랜서의 얼굴에는 그림자가 내려와 있었다. 피곤함에 절여져 있다는 뜻이었다.
“…새벽이라서 그런지 조금 춥네.”
분명히 여름인데 말이지. 박랜서가 가방에서 얇은 가디건을 꺼내 입으며 네스트 사녹 촬영을 기다리는 순간이었다.
“네온들!”
네스트가 방송국 뒷문을 열고 나와서 손을 흔들었다.
“여기요.”
이든이랑 나비가 거대한 상자를 바닥에 놔두더니 담요를 가져왔다며 나눠주었다.
“새벽이라서 춥죠?”
목현이의 다정한 말투에 박랜서는 감동한 표정을 지으며 담요를 받았다. 자기도 힘들 텐데 팬들을 챙겨주는 목현이가 안쓰러우면서도 기특했다.
‘내가 키운 자식도 아닌데.’
왜 이렇게 포근한 마음이 드는 건지.
“목현아! 너는?”
네온의 외침에 박랜서는 그제야 목현의 차림을 확인했다. 새벽이라서 추울 텐데 교복 하복을 입고 있었다. 오늘 무대 의상인가?
“저는 안 추워요.”
“우리 목현 형 체온은 일반 사람들과 달라요.”
요셉이가 끼어들면서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박랜서가 담요를 감싼 비닐을 뜯으려는데 나비가 말을 걸었다.
“담요에 저희 포카도 넣었어요.”
“어?”
“그거 확인해 봐요. 포카 잃어버리면 억울하잖아요?”
포카를 확인하라는 말에 박랜서는 비닐을 조심스럽게 뜯었다. 그러자 담요 속에 있는 포카 다섯 개가 또렷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다, 다섯 개?’
포카를 보자마자 박랜서는 정신이 혼미해졌다. 교복을 입은 포카였다. 그것도 나비가 안경을 쓰고 있는 포카라니?
‘큰일 났다.’
포카를 잡은 박랜서의 손이 덜덜 떨렸다.
“포카 확인했어요?”
정진이의 말에 네온들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응!”
그 소리에 멤버들이 귀엽다는 듯이 웃었다.
“그러면 최신 정보도 흘려야 하겠죠?”
최신 정보? 목현이가 운을 떼자 정진이가 말해주었다.
“우리 하루 이틀 촬영했어요.”
어? 하루 이틀 촬영? 거기에 네스트가 출연한다는 말은 전혀 듣지 못했는데. 이건 정말 최신 정보였다.
“또 있는데.”
이렇게 스포를 해도 되는 건가?
“스포해도 돼?”
네온의 질문에 주이든이 씩 웃었다. 상큼하다.
“재밌잖아요!”
재밌다는 말에 네온들이 빵 터졌다.
“그래서 스포는!”
“스포는!”
네온들이 주이든의 말을 따라 했다. 박랜서는 숨을 죽였다.
“허상 뮤비도 나올 거예요.”
그 말에 박랜서의 뇌는 작동하지 않았다. 허상 뮤비가 나온다고? 이번에 박랜서의 가슴을 뚫어버린 곡이 바로 허상이었다.
물론 HOPE도 좋지만 애절한 허상은 심금을 울렸다.
“그러니까 이 스포, 널리 퍼트려 주세요.”
나비의 부탁에 네온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문을 퍼트릴 자신은 있었다. 박랜서는 서둘러서 커뮤니티에 그 소식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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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스트] 오늘 애들이 사녹에서 스포해 줌
1. 멤버들 하루 이틀 촬영함
2. 허상 뮤비 나온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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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했어!”
그 말에 나비가 박랜서를 향해 손바닥을 들이댔다. 박랜서는 너무 기뻐서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나비의 손바닥을 쳤다.
“이제 사녹 촬영하러 가야 하니까 이따가 봐요!”
네스트가 떠나려고 하는 찰나 박랜서가 외쳤다.
“목현아, 고마워!”
고맙다는 말이 나오자 다른 네온들도 고맙다는 말을 꺼냈다. 가다가 걸음을 멈춘 화목현이 뒤를 돌아 허리를 숙였다.
그러자 화목현을 따라서 남은 멤버들도 허리를 숙였다. 눈시울이 붉어져 눈물을 닦는 네온도 있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네스트가 떠나고 네온들끼리 훈훈한 온기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어? 이 글은 뭐지.”
한 네온이 놀라고 말았다. 무슨 글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