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7. 섬 예능 – 하루 이틀(3)
나는 얼굴에 붙은 낙지를 떼어내며 오지창 할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안쓰러운 건지 오지창 할아버지는 나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흠…….”
그래도 희망은 보였다. 이대로면 낙지를 20마리 이상은 잡을 수가 있을 것 같아서.
‘…열심히 해보자.’
그렇게 다짐할 때였다. 멀리 떨어져 있던 형들이 내 주변으로 왔다.
“막내 못하는 거 같으니까 같이 하는 거 어때?”
이정진이 형들에게 제안했다.
“나는~ 좋지~”
정요셉이 좋다고 하자 주이든이 씩 웃었다.
“나도!”
작은 감동이 밀려왔다. 사실 낙지를 혼자 잡기엔 무리였는데 잘됐네.
“형들… 진짜.”
내가 울상을 짓자 이정진이 내 등을 토닥였다.
“혼자 못 하겠지?”
“예…….”
“이럴 땐 협동하면 좋으니까. 빨리 낙지 20마리 잡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형들에게 피해만 끼치지 말자는 생각으로 형들의 뒤를 따라갔다. 그러자 이정진이 주이든을 보면서 입을 열었다.
“이든아, 다 같이 잡으니까 너는 나랑…….”
“삽질하자고?”
“응, 그러면 요셉이가 낙지를 잡아줄래?”
정요셉이 허공에 손으로 잡는 시늉을 했다.
“요셉이가 잡을게~”
마지막으로 이정진이 나를 쳐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막내는 구멍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기만 해.”
“그래도!”
“형들이 책임질게.”
형들이 책임진다는 말이 왜 이리 듬직하지. 나는 알겠다며 눈에 불을 켜고 구멍을 찾아다녔다.
“형들, 오른쪽 구멍!”
내가 그렇게 외치자 형들이 빠른 속도로 달려가 삽질을 했고, 정요셉이 재빠르게 손을 뻗어 낙지 다리를 잡아당겼다.
“와! 크다!”
정요셉이 큰 낙지를 흔들었다.
“다른 구멍을 찾자!”
각자 맡은 일이 생기니 효율도 좋아졌다.
“우리 몇 마리 잡았어요?”
주이든은 13마리, 이정진과 정요셉은 5마리, 내가 잡은 1마리를 포함해서 총 19마리를 잡았다.
이정진이 눈에 불을 켠 채 말했다.
“낙지 1마리만 더 잡자. 그러면 끝나.”
1마리만 더 잡으면 이번 일정이 끝난다. 우리는 눈에 독기를 품은 채 낙지 구멍을 찾았다.
그런데도 낙지 구멍을 찾기가 어려웠다. 슬슬 밀물이 들어오기 시작하여 발등까지 물이 차올랐기 때문에.
주변을 샅샅이 뒤지던 중 나는 발견했다. 낙지가 들어가 있는 구멍을.
“형들, 찾았어요!”
그 말에 형들이 치타처럼 빠르게 뛰어왔고, 이정진과 주이든이 동시에 삽을 들고 구멍을 팠다. 그리고 낙지가 슬쩍 구멍 밖으로 튀어나오는 순간을 노려 정요셉이 낙지를 잽싸게 손으로 잡았다.
“마지막 낙지!”
정요셉이 낙지를 하늘 높이 올리며 환호했다.
“할아버지, 잡았어요!”
우리의 환호에 오지창 할아버지가 고개를 저었다.
“빨리 와! 물 들어온다!”
멀리서 우리를 지켜보던 오지창 할아버지가 빨리 오라며 소리쳤다. 정요셉이 채집통에 낙지를 넣었고, 우리는 오지창 할아버지가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 * *
엉망진창이 된 모습을 본 오지창 할아버지는 얼른 집에 들어가서 씻으라고 우리를 배려해 주셨다. 우리가 씻고 나오자 채집통에 있는 낙지 개수를 확인한 오지창 할아버지는 우리에게 호감 쿠폰을 건네주었다.
“수고 많았어.”
이정진이 호감 쿠폰을 받았다.
“아니에요. 감사합니다.”
“저녁은 먹고 가. 안 그러면 호감 쿠폰 다시 뺏을 거다.”
저녁? 오지창 할아버지는 라면에 낙지와 조개를 넣었다며 먹고 가라고 말했다. 처음으로 오지창 할아버지가 미소를 보여주었다.
“할아버지 웃었지……?”
이정진이 나에게 물었다.
“예, 웃었어요.”
“…웃으시다니.”
갯벌에 있는 내내 오지창 할아버지가 미간을 좁히며 호통을 쳐서 이렇게 웃는 분이 아닐 줄 알았다. 오지창 할아버지가 부엌에서 라면을 끓이는 도중에 주이든이 나타났다.
“와, 냄새 죽인다.”
씻고 나온 주이든은 라면 냄새에 킁킁 소리를 냈다.
“안 그래도 라면 먹고 싶었는데!”
“낙지랑 조개도 넣었대요.”
“뭐?”
“거기다가.”
오지창 할아버지가 외쳤다.
“꽃게도!”
“들었죠, 형들? 꽃게도 넣었대요.”
해물을 좋아하는 정요셉이 수건으로 머리를 감싼 채로 나와 입을 쩍 벌렸다. 그러더니 오지창 할아버지에게 다가가 진심을 담은 감사 인사를 전달했다.
“우리 할아버지, 감사해요.”
“우리 할아버지?”
“해물도 넣어주셨는데 우리 할아버지죠.”
정요셉이 도와드리려고 그러는지 오지창 할아버지 옆으로 다가갔다.
“라면은 다섯 봉지면 되나?”
“아니요!”
오지창 할아버지의 질문에 내가 답했다.
“부족해?”
“예, 부족해요.”
라면 다섯 봉지는 약하다. 주이든도 다섯 봉지는 안 된다며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저희 잘 먹어요, 할아버지!”
“얼마나?”
“열 봉지는 먹어요.”
열 봉지라는 말에 오지창 할아버지는 거짓말하지 말라는 듯이 미간을 찌푸렸다.
“진짜예요!”
정요셉이 항의하듯이 말하자 형들도 거들었다.
“저희 잘 먹어요.”
“할아버지, 제 이름을 걸고 진짜입니다.”
신뢰가 느껴지는 이정진의 말투에 오지창 할아버지는 싱크대 위 선반에서 라면 봉지를 꺼냈다.
“그럼 이거 먹고 한 번 더 끓여줄게.”
“아니에요! 저희가 끓여도 되는데.”
나는 문 옆에 세워둔 접이식 테이블을 꺼내서 거실 바닥에 깔았다.
“수저는 어디에 있어요?”
내가 묻자 오지창 할아버지가 싱크대 옆을 턱짓했다.
“저기.”
오지창 할아버지가 알려준 곳에서 수저랑 그릇을 가져와 물에 씻은 뒤 접이식 테이블에 올려두었다.
“냄비 받침대가…….”
정요셉이 서랍에서 냄비 받침대를 가져왔다.
“우리 막내, 여기.”
“감사해요.”
이제 라면만 완성되면 끝이다.
“됐다.”
오지창 할아버지가 됐다고 말하는 동시에 냄비를 접이식 테이블 위에 올렸다. 냄비 뚜껑을 열자 뜨거운 열기가 피어오르더니 라면 냄새가 풍겼다.
“짠.”
오지창 할아버지가 숟가락을 들자 형들이 외쳤다.
“잘 먹겠습니다!”
“잘 먹어라.”
나도 뒤늦게 젓가락을 들고 말했다.
“잘 먹겠습니다.”
형들은 일사불란하게 각자 그릇에 면과 국물을 떠서 먹었다. 제일 먼저 오지창 할아버지에게 라면을 드린 뒤에 내 그릇에도 라면을 떴다.
“김치도 줘?”
그때 오지창 할아버지가 좋은 제안을 해주셨다.
“좋습니다.”
“내가 가져오마.”
“제가 가져올게요.”
식사 중에 어른이 일어나는 모습은 좋지 않다. 내가 일어나서 냉장고 앞에 가자 오지창 할아버지가 말했다.
“냉장고 제일 아래에 있을 거다.”
나는 냉장고를 열어서 아래에 있는 김치 통을 꺼냈다. 형들은 먹이를 찾는 하이에나처럼 나를 쳐다보았다.
“…신김치.”
적나라하게 풍기는 신김치 냄새에 형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빨리!”
주이든이 재촉했다. 나는 김치 통을 열어 작은 그릇에 옮겨 담은 뒤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그리고 김치로 라면을 싸서 입에 넣었다.
“와.”
절로 감탄이 나오는 맛. 열심히 일한 뒤에 먹는 라면이라서 더욱 맛있었다.
“어때?”
오지창 할아버지의 말에 형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순식간에 라면이 사라졌고 냄비에는 라면 국물만 남았다.
“와, 벌써 다 먹었어.”
주이든이 냄비를 보며 감탄했다.
“더 끓일까?”
오지창 할아버지가 그 말을 하는 순간 정요셉이 멤버들 눈치를 봤다.
“할아버지~ 혹시 밥이 있을까요?”
“밥? 밥솥에 있어.”
정요셉은 밥솥 뚜껑을 열자마자 눈이 커졌다.
“밥 많다!”
밥을 그릇에 퍼서 가져온 정요셉이 냄비에 부어도 되는지 물어보았다.
“부어?”
형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할아버지는요?”
“나도.”
그러고 보니 오지창 할아버지가 저녁을 같이 먹고 싶다고 했었지. 왜 그러신 걸까. 그런데 그때 주이든이 말했다.
“할아버지.”
“왜?”
“왜 저희랑 같이 저녁 먹고 싶으셨어요?”
오지창 할아버지가 숟가락을 잠시 내려놓으며 말했다.
“오랜만에 누군가랑 밥을 같이 먹고 싶었거든.”
“…….”
“자식들은 섬에 내려오기가 힘들어서 같이 밥을 먹는 일이 잘 없어.”
하긴 사는 게 바쁘니 섬까지 내려오는 건 힘들 것 같았다.
“자식들이 육지로 올라오라고는 하는데 그게 쉽나.”
“그렇죠.”
주이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사람들의 온기가 조금 필요했어.”
오지창 할아버지는 물을 마시면서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이정진이 고개를 옆으로 돌리더니 휴지로 눈물을 닦았다.
“그런데 혼자 있는 게 더 편하긴 해? 안 그래?”
오지창 할아버지의 질문에 우리는 웃음을 터트렸다. 오지창 할아버지는 국자를 들고 냄비에 부은 밥을 국물과 섞었다.
“너희들, 빨리 안 먹으면 내가 다 먹는다.”
우리는 기분 좋게 라면 국물에 밥을 말아 먹었다.
* * *
그렇게 다른 할머니가 계신 곳으로 이동하려고 할 때였다. 오지창 할아버지가 우리에게 다가오시더니 낙지를 선물로 주셨다.
“내일 아침에 못 만날 것 같아서 주는 거야.”
“이 귀한 걸… 감사합니다!”
주이든이 낙지를 품에 안으며 연신 상체를 숙였다.
“어디로 가는데?”
“이 윗집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자 오지창 할아버지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힘들겠구나.”
“예?”
“윗집 할매 고추 농사하고 있거든. 밭이 커.”
밭이 크다고?
“그래서 우리가 평소에 자주 도와주고 그러거든. 자식들이 그만두라고 하는데도.”
“얼마나 커요?”
오지창 할아버지가 고개를 들어 산 쪽을 눈으로 훑었다.
“저기 산에 밭이 있어. 그 밭이 다 윗집 할매 거야.”
잠깐만… 나는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저 밭에 있는 고추를 우리가 다 따야 하는 건 아니겠지? 오지창 할아버지가 우리의 어두운 낯빛을 보시더니 호탕하게 웃으셨다.
“괜찮아. 저 윗집 할매가 적당히 굴릴 테니까.”
굴린다는 말 자체가 무서운데요?
“그럼 가봐. 오늘 고생했어.”
우리는 오지창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하고 윗집 할머니 댁으로 이동했다. 위로 서서히 올라가자 윗집 할머니의 밭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 저게 다 밭이라는 거지?”
이정진이 넓은 밭을 보며 감탄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위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매운 고춧가루 냄새에 코가 찡했다.
“도착했다.”
정요셉이 도착했다고 말했으나 먼저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고추가 무섭긴 무섭다.
“들어갈게요.”
그래도 안 들어갈 수는 없으니 내가 철문을 밀었다.
“왔어?”
생각보다 할머니가 젊으셨다.
“안녕하세요. 오늘 일하러 온 청년들입니다.”
그렇게 소개하자 할머니가 반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 이름은 임자유.”
임자유?
“임자유?”
“그래, 임자유 할머니라고 부르면 돼.”
임자유 할머니는 성격이 약간 급하신 모양인지 곧바로 빨간 고추가 들어 있는 포대기를 가져오셨다.
“어! 너희들.”
“예!”
“이 포대기 들어서 바닥에 고추를 뿌려.”
정요셉과 주이든이 뛰어가 포대기를 잡았다.
“나머지 두 명은 바닥에 널려 있는 고추를 넓게 펴는 작업을 하면 된다.”
“네.”
“고추가 매우니까 목공 장갑도 끼고.”
우리는 임자유 할머니가 주신 목공 장갑을 낀 채 포대기에 들어 있는 고추를 넓게 폈다.
“너희들이 더 일찍 왔으면 고추밭에서 고추 좀 따 와달라고 부탁하려고 그랬는데, 벌써 해가 져서 안 되겠네.”
이 섬에 온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노을이 지고 있었다.
“…노을 분위기 봐.”
고추를 넓게 편 이정진이 하늘을 보며 감상에 젖었다.
‘…예쁘네.’
그런데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목현 형도 봤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네요.”
그 말에 형들도 동조했다.
“그러니까~ 아~ 목현 형 보고 싶다~”
그때였다.
[얘들아.]
화목현의 목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