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4. 이겨내기
화목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퍼지면서 이번 주 공방은 전면 취소했다. 화목현은 침착하게 김동화 본부장과 우리에게 사과했다.
그렇게 HOPE 활동은 잠시 중단하게 되었다. 우리는 차에 올라타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왜 돌아가셨대요?”
내가 김연호한테 물었다.
“…고독사.”
고독사.
‘너무하네.’
한 번도 화목현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으면서, 자신의 생을 마감하다니.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열받았다. 화목현과 화목현 아버지 간의 사이를 모르는 대중들은 없었다. 그중에는 화목현을 욕하는 부류도 있었다.
“…대중들도 참 너무하다.”
정요셉이 핸드폰을 보면서 말했다.
“목현 형이 패륜아래.”
“…….”
“어째서~?”
그럴 줄 알았다.
사람들은 단편적인 가정사만 보고 화목현을 판단했다. 자기 일이면 그런 말이 안 나올 텐데 손가락은 잘만 놀린다.
“와, 목현 형… 어떡해.”
주이든의 말에 김연호가 대답했다.
“너희들은 목현이한테 어떤 말도 하지 말고 옆을 지켜줘.”
“…….”
“장례식장에 목현이 친척도 없다고 하더라.”
아예 친척도 손을 놓았던 모양이다. 하늘의 색깔이 주황색으로 바뀔 때 우리는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카메라 셔터음이 귓가에 맴돌 정도로 크게 들렸다.
‘…끔찍하네.’
회사에서 기자들은 오지 말라고 했다던데. 그런데도 꾸역꾸역 왔네.
“얘들아.”
밥을 먹지 않았는지 화목현의 볼이 쏙 들어가 있었다. 게다가,
‘울었네.’
…안쓰러워서 어떡하지.
“목현 형, 밥은요?”
“아직… 안 넘어가서.”
“그럼 상주 완장 주세요.”
우리가 손님을 맞이해야 할 것 같았다. 계속 들어오는 손님들 때문에 화목현이 계속 밥을 못 먹을 것 같아서.
“어, 어? 아니야. 너희들은 잠깐 있다가 가.”
“형! 우리가 왜 가!”
주이든은 화목현한테 버럭 화를 냈다.
“…너희들도 불편할 텐데.”
화목현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러자 이정진이 다가와 화목현의 어깨를 토닥였다.
“뭐가 불편해. 우리가 손님 볼 테니까 너라도 밥 먹고 있어. 돌아가면서 손님맞이할게.”
나는 주방에 있는 직원분에게 말했다.
“상 하나만 차려주세요.”
상을 차려달라는 말을 하고는 의자에 앉아 있는 화목현에게 다가갔다.
“목현 형, 밥 달라고 했으니까 곧 준비될 거예요.”
“어…….”
씻지도 못했는지 화목현의 얼굴은 엉망이었다.
“…미안하다. 나 때문에 음방 다 멈췄다며.”
“그럴 수도 있는 거죠. 뭐가 미안해요.”
“그냥…….”
화목현은 살짝 시선을 옆으로 돌려 영정 사진을 보았다.
“마음이 뒤숭숭해.”
“…형.”
“이상하다. 안 울려고 그랬는데.”
“울어도 돼요.”
“안 울어.”
울어도 된다는 내 말에 화목현은 고개를 떨궜다. 직원분이 차려준 밥상을 보면서 나는 숟가락과 젓가락에 씌어 있는 비닐을 벗겼다. 지금 화목현은 소리 없는 울음을 토해내고 있었다.
눈은 슬픔으로 가득하면서 정작 눈물은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다.
“나비야, 내가 이상한 사람일까.”
“…….”
“미운데… 불쌍하다는 감정이 느껴져서 싫다. 차라리 살아 있으면 몰라. 살아 있으면 살아 있다고 생각하고 잊어버릴 수나 있지.”
화목현은 아버지에게 연민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숟가락으로 밥을 퍼서 화목현의 손에 쥐여주었다.
“형이 느끼는 대로 감정을 표출해요.”
참고 억누르고 자신의 감정을 회피하면 크나큰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마치 나처럼. 화목현은 숟가락을 보다가 미소를 지었다.
“불쌍하면서도.”
“…….”
“속이 시원해. 웃기지, 나.”
화목현은 숟가락을 가져가더니 입에 밥을 욱여넣었다. 다람쥐처럼 밥을 넣더니 목에 밥이 걸렸는지 주먹으로 가슴을 두드렸다.
“여기 생수요.”
“…어.”
생수 한 병을 마시다가 화목현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 살 것 같다.”
* * *
손님맞이가 어느 정도 끝나자 장례식장은 한산했다. 아무도 없는 새벽에 형들은 자리를 잡아 술을 깠다.
“오늘 와줘서 고맙다, 얘들아.”
형들의 술잔에 화목현이 술을 따라주었다.
“뭘, 형이니까 당연한 거지.”
주이든은 닭개장을 입에 넣으면서 감탄했다.
“여기 닭개장 맛있는데?”
“맛있어?”
“어, 완전 1성급 레스토랑 닭개장 같은데.”
“웃기지 마라.”
“아니, 진짜라니까.”
주이든은 지금까지 한 번도 국물에 밥을 만 적이 없는데, 오늘만큼은 닭개장에 밥을 말아 먹었다.
“우리 이든이, 맛있나 본데?”
“맛있다니까.”
닭개장을 맛있게 먹는 주이든을 보며 화목현은 미소를 지었다.
“맛있으면 됐다. 갑자기 장례식장을 잡게 돼서 밥이 괜찮나 그런 걸 찾아볼 수가 없었거든.”
“여기 연호 형이 잡았다던데.”
“어, 연호 형이 잡아줬어.”
김연호는 그동안 화목현 아버지에게 주기적으로 연락을 한 모양이었다. 화목현이 못 하니까 자신이라도 해야겠다는 것처럼.
“연호 형에게는 미안하지.”
“나중에 연호 형에게 말해.”
화목현 아버지와 연락이 닿지 않자 먼저 찾은 사람이 김연호였으니까.
“그래야겠지.”
김연호가 아니었으면 화목현 아버지는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평생을. 키오 시절엔 이런 일이 없었던 것 같은데.
‘계속 바뀌고 있어.’
내가 소주잔을 입에 털어 넣을려고 할 때였다.
“어딜.”
정요셉이 내 손목을 잡으며 고개를 저었다.
“우리 막내는 이런 거 마시면 안 돼요~”
“…원래 장례식장에서는 술 한잔 마시는 거예요.”
“그런 소리 어디서 들었어.”
“어, 그게.”
장례식장에 갈 때마다 들었던 소리인데.
“너무 깐깐하게 굴지 마.”
깐깐하게 굴지 말라며 화목현이 정요셉에게 손을 휘저었다.
“마시고 싶으면 마시는 거지.”
이러니까 어쩐지 마시고 싶지 않다.
“안 마실래요.”
“그래, 잘 생각했어.”
정요셉이 나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장례식장에서는 정신을 놓은 사람이 없어야 하거든.”
이미 이정진과 주이든은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언제 마셨는지 소주 한 병이 비어 있었다. 정요셉은 그 모습을 보더니 어깨를 으쓱였다.
“그렇지?”
“그렇네요.”
이해가 팍팍 된다.
“목현 형은? 여기서 잘 거지?”
“응.”
장례식장에 잘 곳이 마련되어 있으니까.
“그럴 줄 알고 제가 칫솔 가져왔어요.”
“어? 그래?”
“그리고 형이 쓰던 베개도 가져왔어요.”
“…어, 그걸?”
“이거 없으면 못 자잖아요.”
화목현에게는 애착 베개가 있었다. 이 베개가 없으면 못 잘 것 같아서 가져왔더니 화목현의 눈가가 휘어졌다.
“…날 생각해 주는 사람은 너희밖에 없네.”
곧 화목현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살짝 고개를 돌린 화목현이 옷소매로 눈가를 닦았다. 나랑 정요셉은 모르는 척 다른 말로 화제를 돌렸다.
“요셉 형은 안 마셔요?”
“나? 나는 목현 형이랑 교대하려고.”
“그럼 저도 형 끝나면 깨워주세요.”
나도 오늘은 숙소에 안 가려고 준비를 철저하게 해놨다. 우리의 대화를 들은 화목현은 깜짝 놀랐다.
“너희들, 숙소 안 갈 거야?”
나랑 정요셉이 동시에 말했다.
“우리가 갈 것 같아~?”
“왜 가요?”
우리 둘의 반응에 화목현은 묵묵히 눈동자를 굴렸다.
“…어, 힘들잖아.”
“고작 이걸로 힘들어하면 세상 살기 힘들어요.”
정요셉도 동의한다며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헛소리할 거면 이거나 드세요, 우리 목현 형~”
정요셉이 손수 젓가락으로 반찬을 잡아 화목현의 입에 가져갔다.
“아~”
“아?”
아, 하고 화목현의 입이 벌리는 순간을 노려 정요셉은 젓가락을 넣었다.
“장례식장에서는 밥을 먹어야 힘을 낼 수 있다니까~”
“그, 그래.”
화목현이 억지로 밥을 먹자 옆에서 주이든이 엉엉 울었다. 그러더니 일어나 화목현의 옆자리에 앉았다.
“목현 형!”
“…이든아?”
화목현이 당황해서 숟가락을 식탁에 올려두자 주이든은 화목현을 꽉 안아주었다. 화목현은 당황해서 굳어버렸다.
“…우리 형, 고생했어.”
“…얘들아.”
“정말 고생했어.”
주이든은 계속 중얼거리며 화목현을 위로해 주었다. 뒤이어 정요셉도 화목현의 옆자리로 가더니 화목현을 끌어안았다.
“우리 형.”
“…….”
“정말 고생 많았어.”
“…….”
“정말로.”
그때 복도에서 들려오는 구두 소리에 모두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목현아!”
화목현 어머니가 오셨다. 급하게 오셨는지 머리카락이 산발이 된 채로 말이다. 주이든과 정요셉이 뒤로 물러나 화목현을 놓아주었다.
“엄마.”
“이게 무슨 일이니.”
그제야 화목현은 무너지듯이 눈물을 쏟아냈다. 화목현 어머니는 그런 아들을 안아주며 달래주었다.
“미안하다. 엄마가 더 일찍 왔어야 했는데.”
“…아니에요.”
주이든은 술이 확 깼는지 발음이 정확해졌다.
“우리 앞에서는 눈물을 한 방울도 흘리지 않더니.”
“아까 울었어요.”
“그건 운 것도 아니지.”
살짝 울긴 했지만.
“목현이가 잘 못 울어.”
근처 편의점에서 커피를 사 온 이정진이 말했다.
“못 운다고요?”
내 말에 이정진이 잠깐 생각하더니 말해주었다.
“리더는 눈물을 보이면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
“…….”
“목현이랑 종종 술을 마시거든. 그때마다 자기가 눈물을 보이면 안 되겠다는 말을 했어.”
울어도 상관없는데. 어머니의 품에 안겨 우는 화목현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우리가 도와주자!”
잠시 혼자서 고민하던 주이든이 우리 앞에 서서 말했다.
“이든 형, 뭘 도와줘요?”
“목현 형, 펑크 날 거 아니야.”
“예능이요?”
“어, 우리가 대타 하자.”
웬일로 주이든이 이런 생각을 했을까. 나도 적극적으로 동의했다.
“그런 거라면 해야죠.”
“나도~ 시간 많아~”
정요셉도 시간이 많다며 동의했다.
“그리고 목현 형이 우울해하지 않도록 최대한 밝고 자신 있게!”
이정진과 정요셉도 주이든을 따라 했다.
“밝고 자신 있게!”
“밝고 자신 있게~”
나 혼자만 안 했더니 주이든이 나를 보며 눈치를 줬다.
“범나비, 너는?”
“저도 해요?”
나는 힘없이 하늘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밝고 자신 있게.”
“자신감 넣고!”
“밝고! 자신 있게…….”
그런데 구호만 외친다고 되는 건 아니잖아.
“이번 주 목현 형 스케줄이 어떻게 되는데요?”
스케줄부터 알아야 하는 거 아니야? 그건 잘 모르는지 주이든이 팔짱을 낀 채 짝다리를 짚었다.
“그건… 모르겠는데?”
“연호 형한테 연락해 볼까요?”
“어, 그럴까?”
지금 바쁠 텐데. 그러나 몇 초도 안 지나서 김연호가 전화를 받았다.
“어, 나비야.”
“연호 형, 혹시 목현 형 이번 주 스케줄 어떻게 돼요?”
“단독 예능 촬영이 있을 거야.”
“그거 저희가 단체로 가면 안 될까요?”
“너희들이?”
“예.”
“어, 그래. 작가님한테 연락해 볼게.”
이제 제작진 측에서만 결정하면 되는데.
“우리가 될까요?”
형들은 말없이 그저 눈만 껌뻑였다.
* * *
지금 우리는 단독 예능 하루 이틀에 섭외가 되어 섬으로 떠나는 중이었다. 그리고 거기서 주이든의 뒷담화를 듣게 되었다.
“…주이든 인사 대충 하는 거 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