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 회의실
‘…이게 무슨 일이지.’
하루아침에 ‘네스트 챌린지’가 아이돌 사이에서 유행이 되었다. 팬들의 알람을 100개씩 울리는 챌린지라고.
하루에 하나씩 SNS에 사진을 올리는 네스트 챌린지는 파급력이 꽤 셌다. 네스트라는 이름도 널리 알릴 수 있어서 좋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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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네스트에게 감사함
한 달에 한 번 오는
우리 애들이 사진을 올려줘
ㅠㅠㅠ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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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으로 타 팬들이 우리에게 감사 인사를 남길 정도였으니까.
종일 사진을 올렸더니 시스템창이 떠올랐다.
【단체 사진을 보고 팬들이 행복해합니다! (1,150,000/1,150,000)】
빵빠레가 터지면서 팬들의 댓글들이 눈앞에 스쳐 지나갔다.
[정답, 팬의 행복은 아이돌이 책임집니다!
풀이:아이돌은 팬의 행복을 책임질 의무가 있습니다.
당신의 사진으로 팬들의 행복이 충족되었습니다.]
팬들의 행복이 충족되었다는 말에 뿌듯해할 때였다.
【수치를 달성하여 교통사고 D-DAY를 알려 드립니다.】
【200일】
언제 우리가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는지 시스템이 알려주었다.
‘잠깐만?’
200일? 그렇다면 딱 시상식이 있는 날 교통사고가 났구나. 그 시상식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Q1 시상식.’
어떻게 이걸 막을까.
머릿속이 엉망이었다. 차에서 내려서 가자고 할 수도 없었다. 시상식이 있는 날은 바쁘니까.
“나비야.”
“예?”
화목현의 목소리에 눈을 떴다.
“어, 형.”
“…회의할 땐 올리면 안 돼.”
“그건 저도 알아요.”
“혹시 까먹었을까 봐.”
1일 10개 사진 업로드. 나의 한 달 챌린지다. 나의 챌린지에 덩달아 형들까지 합세하여 하루에 무려 50개가 업로드되었다.
“얘들아, 본부장님 오신다. 핸드폰 꺼라.”
오랜만에 보는 김동화 본부장이 회의실에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이네요.”
김동화 본부장이 상쾌한 미소를 지었다.
“일단 네스트에게 감사하다고 말하고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감사하다고? 김동화 본부장이 과거를 회상하듯 눈동자를 굴리며 말을 이었다.
“제가 더블에이로 옮기면서 말이 많았거든요. 김동화가 더블에이로 가면 네스트는 망한다 어쩐다, 이런 쓸데없는 말들이 많았는데 네스트가 HOPE으로 선주문 150만 장을 달성하자 그런 말들이 싹 사라졌더라고요.”
…그런 말들이 있었다고?
“그래서 지금 제 기분이 굉장히 좋다는 말입니다. 회의 시작부터 행복하네요?”
김동화 본부장이 손뼉을 짝 쳤다.
“그럼 먼저 네스트 챌린지에 대해서 말하겠습니다. 네스트 챌린지를 만든 사람이 범나비 씨라고 하셨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스트 챌린지가 많은 팬들에게 환호받고 있는 모양이던데. 그만큼 네스트라는 이름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돼서 좋네요. 거기다가.”
거기다가?
“네스트 챌린지가 공중파 뉴스에도 떴던데요.”
이건 몰랐다.
“공중파 뉴스에요?”
“아침 뉴스에 올라왔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본다는 아침 뉴스에 우리가 떡하니 뜬 것이다. 주이든이 금세 검색을 했는지 나에게 핸드폰 화면을 보여주었다.
[요즘 아이돌 사이에서 뜨고 있는 ‘네스트 챌린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허.’
이 정도 파급력은 아니라고 보는데.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김동화 본부장이 입을 열었다.
“다음은 선주문 150만 장에 대해 말하겠습니다.”
동시에 김연호가 노트북에 PPT 화면을 띄웠다.
“사실 선주문 150만 장은 네스트만의 성과가 아니잖아요?”
당연하지 않은가. 이건 팬들에게 절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아무리 우리가 팬들에게 앨범을 사달라고 말한들, 팬들이 안 사주면 그만이니까.
“네스트를 사랑하는 분들이 그만큼 많다는 증거라고 생각해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김동화 본부장은 우리에게 종이를 나눠주었다.
“뭐, 이런 당연한 사실을 회의에서 말해봤자 재미가 없잖아요?”
나는 김동화 본부장이 건네주는 종이를 받으면서 미간을 좁혔다.
“종이에 적혀 있는 건, 제가 빼돌린 정보입니다.”
정보?
“최근 크래프트랑 키오, 그리고 다이아몬드의 활동이 뜸했잖아요?”
우리가 활동하는 사이에 세 그룹의 활동이 뜸하긴 했다. 그나마 크래프트의 이남주가 예능에 뛰어들면서 크래프트의 이름을 알리고 있지만.
“크래프트는 곧 열애설이 뜰 겁니다.”
뜬금없는 열애설에 나는 놀라서 기침을 해버렸다.
“크래프트가 열, 열애설이요……?”
“FG 엔터 쪽에서는 부인할 모양이더라고요. 언론사에 열애설 증거까지 싹 다 풀 생각이라고 합니다.”
이남주가 비상이겠군…….
“크래프트의 인기가 점점 높아지고 있으니까 이런 걸 터트리는 모양입니다.”
크래프트는 소리 소문 없이 잔잔한 인기를 유지 중이었다. 다들 실력이 탄탄했으나 이상하게도 유독 이남주만 떴다.
“그리고 키오는.”
키오…….
“마약 멤버를 퇴출시킨 뒤에 다큐를 찍을 생각인가 봅니다.”
갑자기 다큐를 찍는다고?
‘…동정심을 받을 생각인가.’
그렇게 한다고 키오가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다큐를 찍어서 너튜브에 올릴 생각인 것 같습니다. 옛날 감성이 먹힐 때도 있거든요.”
그때 김동화 본부장의 미간에 선이 딱 그어졌다.
“다이아몬드는 재정비를 한다고 하길래 1년 정도 걸릴 줄 알았더니, 곧 나온다고 하네요.”
“…….”
“다이아몬드에 남은 멤버들이 팬들에게 잘해줬다고 하더라고요.”
팬들에게 잘해준다고? 걔네들이?
“라이브 방송, 콘텐츠를 공장처럼 쉴 새 없이 찍어내더니 조회수가 꽤 높아졌다고 합니다.”
김동화 본부장의 말이 끝나자마자 김연호가 PPT로 조회수를 보여주었다. 대부분의 조회수가 200만 회를 돌파해 있었다.
“한국 팬들보다는 외국 팬들에서 먹혔던 것 같습니다.”
정요셉은 곧바로 검색을 하더니 나에게 조회수를 보여주었다. 남아 있는 다이아몬드 멤버들끼리 찍은 콘텐츠 조회수가 100만이 넘은 상태였다.
‘이 새끼들은 운도 좋아.’
사회적으로 매장당할 뻔했는데도 운이 따라주네.
“HOR 엔터는 여기서 끝날 줄 알았는데…….”
김동화 본부장이 종이 다음 장을 넘기며 말했다.
“새로운 멤버를 뽑을 거랍니다.”
“예?”
“오래된 그룹은 아니니까 새로운 멤버를 뽑아도 별문제가 없다는 거겠죠.”
다이아몬드를 이대로 썩히기 싫다는 거겠지. 다이아몬드의 인지도를 포기하기엔 아까울 테니까.
“네스트가.”
김동화 본부장이 책상을 손가락으로 두어 번 두드렸다.
“대상을 받아야 하는데 대중들의 눈이 돌아갈 만한 사건들이 많네요……?”
다른 그룹의 콘텐츠가 빵빵하긴 하네.
“하지만 지금 네스트는 그룹 자체만으로도 화제성이 높아서.”
김동화 본부장이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네스트 챌린지가 뜨더니 단독 광고나 단체 광고도 많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현재 조율 중이고요.”
네스트 챌린지 덕분에 단독 광고랑 단체 광고가 들어온다고? 어, 이거 왠지.
‘얻어걸린 느낌인데…….’
이게 맞겠지?
“범나비!”
주이든이 내 어깨를 잡더니 마구잡이로 흔들었다.
“이대로 별다른 사건만 없다면 네스트의 인기는 유지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유지만 되나요?”
유지는 싫다. 더 올라가고 싶었다.
“아니요.”
김동화 본부장도 인기를 ‘유지’만 할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더 올라가야죠. 그럼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 주세요.”
종이를 뒤로 넘기자 빼곡한 글자에 눈이 침침했다.
“원래 이번 HOPE 앨범이 끝나고 싱글을 낼 생각이 있었습니다.”
“…….”
“그런데 HOPE 앨범에 수록된 허상이 인기를 끌고 있어서요.”
HOPE 앨범에 수록된 허상은 음원이 풀리자마자 차트에 올라갈 만큼 인기가 있었다.
“이걸 노려볼 겁니다.”
“뮤직비디오를 낼 생각인가요?”
“그렇습니다.”
새로운 곡보다는 수록곡으로 이미지를 굳히는 쪽이 더 낫긴 했다.
“그렇다면 타이틀이 두 개인가요?”
이정진의 물음에 김동화 본부장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번엔 타이틀곡을 두 개로 정하고 가겠습니다.”
지금 차트 순위 1위가 HOPE이고 4위가 허상이었다. 이 정도면 타이틀곡을 두 개로 해도 괜찮았다.
“…지금부터가 중요합니다. 대중을 잡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대상을 받고 싶지 않습니까?”
받고 싶다. 대상을 받아야 이 시스템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까.
“다음 주 월화수에 허상 뮤직비디오를 찍을 겁니다.”
“뮤직비디오는 어떤 식으로 촬영할 예정인가요?”
“이정진 씨의 시점으로 갑니다.”
이정진의 시점. HOPE이 죽지 않고 살아남은 멤버들의 시점이라면 허상은 다르게 간다. 꽤 괜찮은 것 같았다.
HOPE 뮤직비디오가 아련한 감성이라 좋아하는 분들이 많았으니까.
“그리고.”
김동화 본부장이 나를 바라보았다.
“아까 단독 광고를 제안받았다고 말했잖아요?”
“어떤 광고인가요?”
“폴라로이드 카메라 광고라고 합니다.”
형들이 나를 향해 웃어주었다.
“또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화목현 씨의 단독 예능 시청률이 5%로 올라갔다고 하네요.”
“감사합니다.”
단독 예능에서 화목현은 귀엽고 잔소리가 많은 포지션으로 들어갔다. 그래서인지 어르신들이 많이 좋아한다고. 나도 가끔 보는데 힐링이 됐다.
“그리고 주이든 씨는 이번에 QTQ 방송국 라디오시오의 DJ로 들어가게 됐습니다.”
주이든이 우리를 보며 씩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됐다.”
주이든은 팔짱을 낀 채 미소를 씩 지었다.
“이정진 씨는 서바이벌 작곡가에서 멘토 섭외가 들어왔는데 거절했다던데.”
“네, 맞습니다.”
“왜죠?”
“아직 제 실력으로는 부족해서요.”
키오 시절에 서바이벌 작곡가라는 프로그램에 대해 듣긴 했었다. 좋은 프로그램이라서 마무리도 괜찮았고…….
‘멘토는 어땠더라?’
이정진은 어깨를 으쓱였다.
“나도 그렇게 됐다.”
“정진 형, 나 따라 해?”
마지막으로 정요셉이 남은 시점.
“정요셉 씨는 들어오고 있는 대본이 많다고 들었는데 결정했나요?”
“아니요… 아직 마음에 드는 대본이 없어서.”
THE END를 시작으로 정요셉에게 들어오는 대본이 많다고 들었다. 지금은 김연호도 감당이 안 된다고. 그만큼 정요셉의 연기가 좋았다는 뜻이라서 나까지 뿌듯했다.
그런데.
“…목현아.”
오민석 팀장님이 회의실로 들어오는데 표정이 좋지 않았다.
“밖으로 나와서 설명을 들어야 할 것 같은데…….”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화목현은 알겠다며 의자에서 일어나 복도로 나갔다.
‘왠지 상황이 심각해 보이던데.’
형들도 상황을 인지했는지 표정이 좋지 않았다. 곧 투닥, 소리가 나더니 복도에서 뛰어가는 발소리가 났다.
‘…뭐야?’
정말 무슨 상황이 있나 싶었는데, 화목현 대신 오민석 팀장님이 들어오셨다.
“팀장님, 무슨 일인데요?”
“…어, 그게.”
오민석 팀장님도 말하기가 어려운지 뜸을 들였다.
“목현이 아버님이 돌아가셨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