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 HOPE
오늘은 HOPE 뮤직비디오가 나오는 날. 네온들은 들떴다. 김올팬도 마찬가지였다. 벌써 네스트의 공식 너튜브에 들어가 뮤직비디오가 뜨길 기다리고 있었다.
어쩔 수 없지 않은가. 6개월 만에 나오는 앨범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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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스트] 오늘임. 오늘임. 오늘임!
오늘 HOPE 뮤직비디오가 나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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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나온다 오늘 나온다 오늘 나온다
└ 심장이 두근두근두근두근
-뮤직비디오 라이브 안 하지?
└ 오늘은 라이브 안 한다고 그러던데?
└ 왜지?
└ 몰라?
김올팬은 흥분되는 마음에 계속 심장이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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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스트] 1분 전!
우리 뮤직비디오 보고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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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직비디오가 올라오기 1분 전이 되자 뮤직비디오 스트리밍이 떴다. 그런데 뮤직비디오 썸네일을 보자마자 김올팬은 자신의 눈가를 손으로 비볐다.
“…정진이가 없는데?”
썸네일에 이정진이 없다? 이게 무슨 일인가. 김올팬과 비슷한 생각을 한 네온들이 채팅창에 나타났다.
-왜 정진이가 없지?
-정진아
-아니 갑자기 정진이가 없다니?
-썸네일에 정진이가 없어!
-티저에도 없더니…
김올팬도 동의했다. 곧 너튜브 뮤직비디오 스트리밍 타이머가 꺼지고 오른쪽 상단에 15세가 떴다.
“15세?”
어떤 이유로 15세가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빵빵!]
고속도로에 홀로 서 있는 남자. 그 남자를 향해 트럭이 빠른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기사 : 이게 왜 이래?]
기사가 브레이크를 밟았으나 트럭은 멈출 생각을 안 한다. 홀로 서 있는 남자를 트럭이 덮치는 순간, 모든 물체가 멈추고 도로에 선 남자의 얼굴이 보인다.
[이정진 : one, two, three.]
[-짝.]
정진이가 손뼉을 치자 장면이 전환되면서 MP3 플레이어가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정진이가 소파에 누워 눈을 감고 있었다.
[화목현 : 정진아?]
정진이의 시점으로 시작되는지 목현이가 정진이의 어깨를 흔들어서 깨웠다.
[이정진 : 어, 어. 미안.]
[화목현 : 아니, 왜 동아리실에서 자고 있어?]
[이정진 : …졸려서.]
화목현이 MP3 플레이어를 들고 흔들었다.
[화목현 : 네가 좋아하는 노래 가져왔는데. 안 들을 거야?]
[이정진 : 무슨 노래인데.]
[화목현 : 이거… HOPE……?]
[이정진 : 그 노래 좋아하는데. 어떻게 구했어?]
[화목현 : 어떻게 구하긴. 구하는 방법이 다 있지.]
목현이의 MP3 플레이어에 HOPE이 틀어졌다. MP3 플레이어를 보면서 정진이가 입을 열었다.
[이정진 : 나, 꿈을 꿨다?]
[화목현 : 무슨 꿈?]
[이정진 : 너희들이 사라지는 꿈]
[화목현 : 이상한 꿈을 꿨네.]
[이정진 : 그치?]
그때 탁, 소리가 나더니 MP3 플레이어에서 노래가 틀어졌다.
[-forever with you]
“나비다.”
누가 들어도 나비의 목소리. HOPE은 느린 템포로 시작되었다. 그때 나비가 거대한 MP3 플레이어 모양 건물 위에 올라가 그곳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나는 또 꿈을 꾸네
네가 나오는 꿈을
(wake up)]
천천히 나비가 의자에서 일어나자 거대한 MP3 플레이어 모양 건물이 사라지고, 모든 벽면에 거울이 나타났다. 그 거울 속에서 목현이와 정진이가 웃고 있었다.
나비가 천천히 다가가더니 주먹으로 거울을 깨트렸다.
깨진 조각들에서 멤버들의 기억들이 위로 부유했다. 부유한 조각들은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카메라가 나비의 얼굴을 담았다.
[-또 그날을 기다리네
I'm like a dreamer]
그러고는 MP3 플레이어에서 나오던 노래가 끊기면서 다시 정진이가 눈을 떴다.
[정요셉 : 귀여운 요셉이가 나왔어요~]
[주이든 : 주이든도 도착.]
동아리실에 요셉이와 이든이가 도착하자 정진이가 미소를 지었다.
[화목현 : 나비는?]
[주이든 : 나비는 아직 수업 중!]
요셉이가 MP3 플레이어를 보더니 감탄했다.
[정요셉 : 이거 어디서 구했어? 요새 잘나가서 구하기도 어렵던데.]
[화목현 : 내가 구했지.]
[정요셉 : 오~]
다시 요셉이가 MP3 플레이어로 노래를 틀자 새로운 공간이 생겼다. 멤버들은 오로지 핸드폰 플래시를 의지하며 어두운 대학교 안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오로지 서로를 의지한 채.
[-기억해 줘
all time
머릿속이 아닌
현실에서]
가볍고 빠른 비트, 그리고 알앤비에 상큼함을 담았다. 아스라이 흐르는 하얀빛을 멤버들이 따라갔다. 그 끝을 향하자 이정진은 빛처럼 사라졌다.
[-3년, 6년, 9년
같이 있어야 할 그곳]
그리고 MP3 플레이어가 멈추는 소리가 들렸다.
[주이든 : 이거 안 되는데?]
탁탁, MP3 플레이어를 때리자 나비가 동아리실에 등장했다.
[범나비 : 그거 그렇게 때리면 안 된다고 했잖아요.]
[주이든 : 누가? 원래 기계는 때려야 말을 듣거든?]
[범나비 : …어, 그게. 누구였지? 아무튼 누가 때리면 안 된다고 그랬어요.]
분명 있어야 할 정진이가 없었다.
[정요셉 : 이상하다?]
[화목현 : 왜?]
[정요셉 : 뭔가 기억이 비어 있는 것 같아.]
사라진 정진이. 동아리실에 남은 멤버들은 시선을 구석으로 향했다.
[-사라진 너의 흔적은
시공간으로 흩어져]
나비의 살짝 높은 고음과 시원한 드럼 사운드에 김올팬은 저절로 고개를 까딱였다.
[주이든 : 어, MP3 플레이어 망가졌다.]
이든이의 말에 멤버들이 야유를 보냈다.
[주이든 : 아니, 진짜로 안 된다니까?]
MP3 플레이어 버튼을 한 번 더 누르자, 티저에 나왔던 치킨집이 다시 나왔다.
[주이든 : 너희들, 이것도 기억하냐?]
이든이가 고장을 냈던 MP3 플레이어가 다시 나타났다.
[정요셉 : 이거 아직도 가지고 있었어~?]
[주이든 : 당연하지. 너희들이 고장 냈으면 빨리 고치라고 했잖아.]
목현이가 눈짓하며 물었다.
[화목현 : 그래서 고쳐졌어?]
[주이든 : 어.]
그러나 MP3 플레이어는 작동이 되지 않았다.
[주이든 : 어, 이게 왜 이러지?]
[범나비 : 작동이 안 되는데?]
[주이든 : 있어봐. 잠시만.]
그리고, 분명 이든이의 옆자리에는 아무도 없었는데.
[이정진 : 그건 그렇게 하는 거 아니라고 했잖아.]
[주이든 : 어, 정진아. 언제 왔냐?]
언제 왔냐는 질문에 정진이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이정진 : 내가 언제든지 옆에 있겠다고 했잖아.]
그러고는 화면이 바뀌더니 TV가 나타났다.
[-이곳에서 널 기다려]
마지막으로 정요셉의 목소리가 울리면서 MP3 플레이어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아나운서 : 10년 전 행방불명되었던 이 모 씨가 오늘 산속에서 사체로 발견되었다는 소식입니다.]
아나운서의 목소리와 함께 동영상이 끝났다.
-사망?
-약간 소름ㅠ
-언제든지 옆에 있겠다고 했잖아 이 말 왜 이렇게 가슴이 아리냐
-죽어도 옆에 있겠다는 말이잖아
김올팬은 뮤직비디오가 몇 분짜리인지 확인했다.
“6분?”
6분이나 되는 뮤직비디오가 한순간에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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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스트] 이런 메시지 아님?
만약 누군가가 사라져도
계속 우리 옆에 있겠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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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이렇게 생각함
└ 다섯 명이 하나다 이런 뜻 같아ㅠ
└ 오 다섯 명이 하나다 맞는 듯
-그냥 메시지를 던진 듯 범나비 뺀 4인 지지하는 팬들 많았잖아
└ ㄹㅇ
└ 4인 지지 ㅅㅂ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ㅋㅋㅋㅋ 이남주 아직도 못 잊어서
-노래도 잘 나왔고 메시지도 잘 담았음! 노래가 오지게 좋다
└ ㅇㅈ
└ 앨범 퀄도 좋고 ㄹㅇ
-수록곡 허상도 들어주라ㅠㅠㅠ
└ 허상 좋더라… 난 HOPE보다 더 좋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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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스트] 와씨 음원 떴는데 차트인
7시에 1위 할 듯
이거 처음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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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허상도 같이 올라가고 있지?
└ 어?
└ 그러게
└ 뭐야
-허상 좋은데 같이 올라가네?
└ 다들 좋아서 듣는 듯
-오… 수록곡 허상 좋다는 글 많네
└ 다른 커뮤에서도 HOPE보다 허상이 더 좋대
└ ㅋㅋㅋㅋㅋㅋㅋㅁㅊ
└ 아니 HOPE이 타이틀곡이라고요
김올팬도 HOPE과 허상이 같이 올라가는 현상에 어깨를 으쓱였다. 어쩐지 타이틀곡보다 수록곡이 인기 있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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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허상이라는 곡 좋다?
약간 밴드 감성이라고 해야 하나
벅차오르는 느낌이 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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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벅차오른다? 오타쿠 간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타쿠 갬성이긴 함
└ 그 감성이 요즘 인기 있음
└ 오타쿠들 좋아하네
-네스트 팬임? 이런 글은 키워드 네스트 달고 해
└ 어? 나 네스트 팬 아닌데ㅠ
└ 아니라잖아
└ 이런 글 쓸 수도 있지
└ 뭔 말을 못 하겠네
네스트의 허상이 차트인을 하면서 듣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어, 이거 허상이 HOPE 이기겠는데?”
***
수록곡이 타이틀곡을 이기는 일이 종종 있긴 했다. 그런데 그게 실제로 일어나다니.
“…허상이 1위인데?”
아침 8시, 차트를 확인해 보니 허상이 1위였다. 전 음악 플랫폼 1위가 허상이라는 점에서 나는 조금 놀랐다.
나는 이정진에게 다가가 물었다.
“이정진 작곡가님, 허상이 인기 있는 이유가 뭘까요?”
“모르겠습니다.”
“이 곡을 왜 만들었나요?”
“새벽에 갑자기 감수성이 폭발해서…….”
“딱히 이유는 없군요?”
“당연하지.”
회사에서도 환호를 내질렀다. 타이틀곡이 1위가 아니라는 점이 아쉽긴 했지만.
“근데 진짜 인기 많은데?”
허상이 인기를 끄니까 덩달아 이번 앨범에 실린 수록곡들도 20위에 안착했다.
“기쁜 상황이긴 하지?”
주이든이 슬쩍 말했다.
“어, 그렇긴 하지.”
이렇게 사랑받는 앨범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까. 하지만 시스템이 내준 문제의 수치는 변하지 않았다.
이번 문제는 그냥 넘어갈 수가 없는 게, 교통사고가 언제 일어나는지 알아야 하니까 말이다.
그나저나 참 사악하네. 하지만 한편으로는 기뻤다. 죽음을 방지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을 수 있으니까.
“일단 축하 기념 밥이라도 먹자.”
화목현이 현관문에서 치킨 샐러드를 가져와서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그리고 사진을 찍어서 SNS에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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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네사
형들과 먹는 치킨.
맛있겠죠?
(치킨_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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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6시면 퇴근하는 네온들이 있어서 사진을 올린 거였는데.
【범나비의 사진을 보고 팬들이 행복해합니다! (1,150,000/493,900)】
응? 사소한 사진인데 팬들이 행복해하다고…….
“나비야, 뭐 해?”
“어, 아니에요.”
사진을 더 올려야 하나.
“형들, 단체 사진이라도 찍죠.”
“왜? SNS에 올리려고?”
화목현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바빠서 SNS에 안 올렸잖아요.”
“하긴! 찍자!”
바로 사진을 찍고 단체로 찍은 사진을 SNS에 올렸더니,
【단체 사진을 보고 팬들이 행복해합니다! (1,150,000/613,900)】
그 시스템창을 보니 어쩐지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더 올려줄 걸 그랬네…….’
팬들의 핸드폰을 폭발시킬 기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