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 돌연프 시즌 2(2)
힘든 상황이긴 했다. 고예찬과 예전 멤버들이 서로를 쳐다보며 눈싸움을 벌이고 있었기 때문에. 중간에 낀 우리만 힘들었다.
“여기, 새로운 질문지입니다.”
“감사합니다.”
방송작가에게 새로운 질문지를 받았다. 곧장 새로운 질문지를 읽는데 꽤 마음에 들었다.
“오…….”
네스트와 고예찬을 분리하여 오로지 연습생들을 위한 질문으로 바뀌었기에 만족스러웠다.
‘…이래야지.’
인터뷰 질문이 악질적이면 우리만 욕을 먹을 뿐이다. 누가 신인들에게 욕을 하겠는가. 연차가 쌓인 우리들을 욕하면 모를까.
그런데 1시간 만에 질문지를 바꾸려면 스태프들이 얼마나 갈렸을지…….
‘죄송하긴 하네…….’
방송작가는 우리에게 어떻게 진행이 되는지 설명해 주었다.
“이번 방송은 너튜브 인터뷰 방식처럼 진행돼요.”
너튜브 인터뷰 방식?
“왼쪽 모니터에 채팅이 올라오고 오른쪽 모니터에 우리 화면이 보일 거예요. 그 밑에 자막이 나올 거고요. 지금 대기 인원 2만 명이라고 합니다.”
2만 명…….
사람들이 얼마나 돌아온 연습생 프로젝트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이제 방송 시작이 얼마 안 남은 상황. 모든 준비가 끝났다.
“이제 방송 시작하겠습니다!”
방송작가의 신호에 맞춰서 카메라가 켜졌다. 시작하라는 신호에 화목현이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먼저 인사부터 하겠습니다.”
화목현이 우리에게 눈짓하자 멤버들이 입을 열었다.
“ONLY ONE, 네스트입니다!”
단체 인사를 끝내자 화목현이 바로 입을 열었다.
“이번 돌아온 연습생 시즌 2의 깜짝 인터뷰 MC를 맡은 네스트입니다. 돌연프 시즌 1을 시청해 주셨던 여러분, 저희 기억하세요?”
술술 MC 멘트가 나오는 화목현을 보며 나는 미소를 지었다. 요즘 단독 예능을 하더니 입담이 좋아졌단 말이지.
이번엔 내 차례.
“시청자 여러분, 설마 저희를 잊어버리신 건 아니겠죠? 돌아온 연습생 프로젝트 시즌 1의 주인공! 1위 네스트입니다.”
연습생들의 박수가 쏟아지고 다음은 주이든이 말했다.
“사실 네스트가 돌아온 연습생 프로젝트 시즌 2에 온 이유가 따로 있습니다. 그건 바로!”
모니터에 연습생들이 비치자 채팅창이 폭발하며 위로 올라갔다.
“돌아온 연습생 프로젝트 시즌 2의 인물들을 파헤치기 위해서입니다!”
주이든이 검지로 카메라를 가리키자 화목현이 손바닥을 펼쳤다.
-고예찬! 예찬아!
-네스트 MC 잘 봄
-와 신서율 쟤는…
-개인 연습생들 낯짝 두껍네 ㄹㅇㅋㅋ
신서율은 고예찬의 예전 멤버로, 지금은 ‘마일드’라는 그룹의 리더인데 고예찬을 노려보고 있었다.
‘…사이가 안 좋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는데?’
고예찬은 멤버들이 싫다고 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사이는 좋은 줄 알았더니…….
나는 다시 정면을 보면서 표정을 유지했다.
“그럼 첫 번째 질문입니다~”
정요셉이 양쪽 연습생들을 번갈아 보면서 말했다.
“일단 라스트와 마일드는 각자 자기소개부터 할까요? 그럼 마일드부터 시작해 주세요.”
신서율이 마이크를 들어서 힘차게 말했다.
“안녕하세요! FG 엔터의 신인 마일드라고 합니다. 저는 마일드의 리더 신서율입니다. 얼굴 꼭 기억해 주세요!”
…마일드가 FG 엔터에서 내놓은 신인이었던 건가. FG 엔터도 참 대단하다.
“이제 오른쪽.”
라스트의 리더로 추정되는 연습생이 마이크를 쥐었다.
“안녕하세요. 더블에이 라스트의 리더 김화원입니다.”
김화원…….
우리 소속사지만 대단한 점 한 가지를 발견했다. 김화원의 이미지가 화목현과 비슷했던 것이다.
“앞으로 멋있는 모습 보여 드리겠습니다.”
자기소개가 끝난 줄 알았던 김화원이 의자에서 일어나더니 갑자기 비보이 댄스를 추기 시작했다.
‘어……?’
예상도 못 했던 행동에 주이든이 신난 표정을 지으며 호응했다.
“김화원! 김화원!”
“선배님도 하실래요?”
김화원이 능숙하게 풋워크를 끝내며 주이든에게 물어보았다.
“그래도 될까요?”
“네~ 그럼요.”
“오늘은 제가 주목받는 날이 아닌데~”
말릴 틈도 없이 주이든이 의자에서 엉덩이를 뗐다.
“선배님은 비보이 댄스를 출 줄 아시나요?”
“나도 출 수 있긴 하죠?”
후배들은 주이든의 모습을 보면서 응원하기 시작했다. 아니, 그런데 후배를 소개하는 자리에서 우리를 내세워도 괜찮을까?
주이든은 왼손으로 바닥을 짚더니 오른쪽 다리를 차며 완벽한 토마스를 했다.
비보이 댄스 중에서도 토마스가 제일 어려운 걸로 아는데.
“선배님! 선배님!”
이건 저절로 감탄이 나오는데? 주이든이 비보이 댄스를 잘 추는 편이었구나.
‘몰랐다.’
전혀.
“와!”
“워!”
갑자기 춤판이 벌어지자 마일드의 리더인 신서율도 질 수 없다는 듯이 멤버들에게 앞으로 가라고 손짓했다.
“마일드의 춤 멤버인 허상이가 나갑니다.”
허상이가 의자에서 일어나서 무대 위로 걸어가자 신서율이 멤버를 소개해 주었다. 허상이는 주이든의 춤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허상이의 차례가 다가오자,
“허상이!”
신서율이 허상이를 불렀다.
“아자!”
허상이가 모자를 눌러쓰더니 팔로 중심을 잡고 위로 다리를 뻗은 프리즈를 보여주었다.
-ㅁㅊ
-춤판이 벌어졌는데요?
-이게 더 재밌다
-와 독기
-인마! 이게 돌연프다!
-시즌 2 기다리길 잘했다.
인터뷰가 재밌게 돌아가자 채팅창도 화력이 높아졌다. 스태프들은 재밌다는 듯이 눈빛이 반짝였다.
“허상이! 허상이! 허상이!”
허상이의 차례가 끝나자 주이든이 포즈를 취했다.
“…내 차례인가.”
주이든이 고예찬에게 모자를 달라고 손짓했다.
“이든 선배님, 모자를요?”
“응, 잠깐만 빌립시다.”
고예찬의 모자를 받은 주이든은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는 카메라를 보면서 윙크했다. 그러더니 자세를 잡고 그 어렵다는 윈드밀을 해버렸다.
“…워.”
입 밖으로 감탄이 튀어나왔다. 이정진과 정요셉이 어깨에 팔을 두르며 주이든을 응원했다.
“주이든! 주이든! 주이든!”
“우리 이든이 최고!”
윈드밀을 성공한 주이든이 시원한 미소를 날리며 모자를 벗었다.
“예찬 씨, 고마워요.”
저 말투는 또 뭐람. 고예찬은 눈빛을 반짝이며 모자를 받았다.
“아닙니다! 선배님!”
“네가 아니었으면 윈드밀은 못 했을 거다!”
그리고 훈훈한 모습까지 보여주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ㅁㅊ
-윈드밀을 이길 수가 없다
-아나 ㄱㅇㄱㅋㅋㅋㅋㅋㅋㅋ
-선배가 후배를 이기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후끈했던 분위기가 가라앉자 이정진이 마이크를 들고 질문했다.
“두 번째 질문입니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촬영에 임할 건지? 먼저 라스트부터 듣도록 하겠습니다.”
이번에는 라스트 고예찬이 입을 열었다.
“저는 돌연프 시즌 1과 다른, 새로운 모습을 보여 드릴 예정입니다.”
“새로운 모습이 뭡니까?”
내가 질문하자 고예찬이 짧게 숨을 가다듬었다.
“돌연프 시즌 1에서는 어리숙하고 어정쩡한 모습을 보였다면 돌연프 시즌 2에서는 멋진 모습만 보여 드릴 겁니다.”
그런데 신서율이 마이크를 잡았다.
“그 모습을 돌연프 시즌 1에서 보여줬으면 좋았을 텐데요.”
-ㅎㄷㄷ
-와
-헐
-이래도 돼?
-아무리 방송이지만…
-근데 맞말이라 할 말이 없음
숙연해진 분위기 속에서 고예찬은 입을 다물었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겠지.’
여기서 지면 고예찬은 돌연프 시즌 2 내내 신서율의 말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닐 것이다.
-…숨 막힘
-이걸 어떻게 말함?
그 순간 고예찬이 마이크를 들고 말했다.
“그때의 저는 죽었고, 지금은 새로 태어나서요.”
이런 식으로 대답하다니. 고예찬이 다르게 보였다.
“범나비 선배님은 인생을 살아가는 원동력이 무엇인가요?”
그때 신서율이 나에게 질문했다.
‘인생을 살아가는 원동력?’
나는 바로 말할 수 있었다.
“제 형들이요.”
“선배님들이요?”
“제 원동력은 형들입니다. 형들이 있으면 힘들었다가도 힘이 나거든요.”
내가 씩 웃으면서 형들을 바라보자, 형들도 나를 보며 미소를 지어주었다.
“연습생분들은 안 그런가요?”
이 정도면 잘 넘어갔다고 생각했거늘,
“흑…….”
어디선가 들려오는 울음소리에 놀라 고개를 돌리자 고예찬이 고개를 떨군 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참고 참았던 감정이 폭발한 모양이었다. 갑작스러운 눈물에 당황하는 분위기 속에서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스태프에게 휴지를 받고는 고예찬에게 건네주었다.
“죄, 죄송합니다…….”
고예찬이 죄송하다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분위기를 풀 겸 정요셉이 나를 타박했다.
“우리 막내가 예찬이를 울렸네.”
“죄송합니다.”
나는 죄송하다는 말을 꺼냈다. 그리고 고예찬이 진정되길 기다렸다.
일단 왜 울었는지 물어봐야 했다.
안 그러면 사람들이 고예찬과 신서율의 관계를 이간질할 테니까.
고예찬이 진정되자 나는 고예찬에게 물어보았다.
“고예찬 연습생, 왜 갑자기 울었나요?”
“…나비 선배님이 형들 이야기를 하니까 갑자기 그립다는 생각이 들어서.”
어떤 마음인지 알 것 같았다. 고예찬은 리더였으니 형이라는 말이 더 그리웠을 것이다.
“뭘 말하는 걸까요?”
고예찬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맞은편에 앉아 있는 예전 멤버들을 쳐다보았다.
“…제가 좋아했던 멤버들이.”
“…….”
“자주 형이라고 불렀었거든요.”
그러자 차분했던 신서율의 눈동자가 세차게 떨렸다.
“제가 좋아했던 멤버들이라서…….”
“…….”
“싸우고 싶지 않아요.”
그러고는 고예찬은 마이크를 꽉 쥔 채 소리 없는 울음을 터트렸다.
-아
-ㅠㅠㅠㅠㅠ
-연예계가 나쁜 거지… 애들이 나쁘겠냐
-눈물 나
-돌연프 시즌 2 미치겠네
-이런 곳에서 살아남으려면 멘탈 세야 하는데
-예찬아…
고예찬은 휴지로 눈물을 닦아내면서 말을 이어갔다.
“서로 의지했는데 떨어지게 되면서 싸우는 분위기가 형성되니까 마음이 아파서…….”
“…….”
“예전 멤버들을 정말 좋아했거든요. 제가 그룹에 혼자 남았던 이유도 그거예요. 멤버들의 향기가 완전히 사라질까 봐… 그게 무서웠거든요.”
고예찬이 고개를 들어 예전 멤버들을 바라보았다.
“미안해, 얘들아. 이 말을 해야 했는데.”
고예찬의 눈물에 맞은편은 이미 눈물바다가 되어 있었다. 고예찬의 사과에 눈물이 나는 모양이었다.
“…왜 그걸 지금 말해.”
“용기가 없어서.”
“바보야?”
신서율이 주먹을 꽉 쥐었다.
“…형.”
신서율은 말을 잇지 못했다.
“리더로서 자질이 부족했던 것 같아서 미안해. 정말로…….”
고예찬과 신서율은 자리에서 일어나 서로를 안아주었다.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본 것 같았다. 무슨 말을 하려고 입을 벌리는데 옆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났다. 누군가 했더니.
“왜 내가 눈물이…….”
이정진이 소매로 눈물을 닦아냈다.
“정진 형, 울어요?”
“이 모습을 보니까 눈물이 나잖아.”
“그러다가 화장 지워져요.”
“응…….”
금세 살벌했던 분위기에서 훈훈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형들은 돌아가면서 몇 가지의 질문을 했고, 돌연프 시즌 2의 인터뷰는 막을 내렸다.
* * *
“감사합니다!”
스태프들에게 인사를 하면서 스튜디오에서 빠져나오는 찰나, 고예찬이 나를 불렀다.
“저기, 나비야.”
내가 뒤를 돌자 고예찬이 갑자기 나를 끌어안았다.
“고마워.”
“…내가 뭘.”
너희들이 다 한 건데.
“네가 우리 예전 멤버들 데리고 와달라고 했다며.”
“어, 어?”
“정말로 고마워.”
그러면서 고예찬은 뒤를 돌아 라스트 멤버들에게로 가버렸다. 덩그러니 혼자 남은 나는 허무한 헛숨을 뱉으며 형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형들.”
화목현이 나를 보고는 보부상 가방을 건네주었다.
“김진현 팀장님이 고맙대.”
“…예?”
“고예찬이 SNS 인기 순위에 올랐다고 하더라.”
우리는 인기 순위에 없나.
“거기에 이든이도 올라갔지.”
“윈드밀?”
“어, 그 윈드밀.”
주이든의 윈드밀이? 나쁜 말이 있을까 지레 겁이 났는데 화목현이 뒷말을 덧붙였다.
“나쁜 건 없었고, 재밌다는 말만 있더라.”
“그럼 다행이네요.”
내가 가방을 들자 주이든이 옆으로 와서는 당당하게 어깨를 폈다.
“당연하지. 나의 윈드밀은 뛰어나거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엄지만 척 보여주었다. 이제 우리 HOPE 활동만 잘하면 된다.
‘대상을 노릴 거니까.’
내가 다짐을 하는 사이에 눈앞이 반짝하더니 시스템창이 나타났다.
「문제 29, 팬들을 행복하게 만들기! (1,150,000/453,900)
페널티:교통사고를 당함.
정답 풀이:교통사고 D-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