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9. 돌연프 시즌 2(1)
제물.
주이든이 세게 말했으나 제물이라는 표현이 맞긴 하지.
“나만 그렇게 생각해?”
주이든의 말에 나는 고개를 주억댔다.
“…제물이 맞는 것 같아.”
화목현도 인정했다.
‘…제물이 맞지.’
그 당시만 해도 키오에서 도망가고 싶다는 마음에 생각을 못 하긴 했지만. 돌이켜 보면 주이든의 말이 맞았다.
주이든은 나를 손짓하며 말했다.
“사실 지금이야 잘 풀려서 그렇지, 우리가 잘 안 풀렸다면 범나비가 집중 공격 당했을걸?”
“지금도 당하고 있잖아~?”
“하긴 정요셉 말대로 지금도 당하고 있지?”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가 만약 범나비가 네스트를 탈퇴하고 우리만 네스트에 남는 상황이었다면?”
나는 고개를 들어 주이든을 올려다보았다.
“끝까지 저를 이용했겠죠.”
“그래, 나는 거기까지 생각했다니까?”
김진현 팀장님은 그걸 노린 걸 수도 있다. 연습생 하나 버린들 네스트는 이미 팬덤이 형성된 상태였으니까. 나를 빼고 가자는 팬들도 많았고.
“…이걸 드디어 말하네. 속이 시원하다!”
주이든은 속이 시원하다며 생수를 벌컥벌컥 마셨다. 동시에 대기실 문이 열리더니 김진현 팀장님이 등장했다.
“어, 얘들아. 오랜만이다.”
좋은 얼굴을 한 채 우리에게 인사하는 김진현 팀장님을 보면서 나는 물어보았다.
“예찬이는 어디에 있어요?”
“예찬이? 예찬이는 자기 멤버들이랑 있지.”
그 멤버들은 더블에이에 소속되어 있었던 연습생. 고예찬이 들어가서 총 7명이 되었다.
그룹 이름은 라스트인 모양이던데.
“팀장님, 저 궁금한 게 있는데요.”
“응? 뭔데.”
김진현 팀장님은 미소를 유지한 채 의자를 끌고 와 앉았다.
“예찬이를 어떻게 하려고 그러시는 거예요?”
“뭘 어떻게 해?”
“저처럼 만들 생각이세요?”
직구를 던졌다. 올곧게 뻗은 말에 김진현 팀장님은 당황했는지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뭘 너처럼 만들어? 나비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는데.”
그럼 더 직구로 말할까.
“저랑 예찬이의 상황이 좀 비슷하잖아요. 그래서 궁금했어요.”
“어, 그랬구나.”
“그걸 알아야 저도 질문지에 대한 답변을 더 자세히 할 수 있잖아요.”
김진현 팀장님은 억지로 미소를 유지하면서 눈을 데구르르 굴렸다. 뇌를 굴리는 소리가 내 귓가에도 들린다.
“무슨 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항상 예찬이를 위해서 행동할 거야.”
“아, 예찬이를 위해서.”
아직 돌연프 시즌 2가 시작되지 않은 만큼, 팀장님은 고예찬이 얼마나 욕을 먹게 되는지 잘 모를 것이다.
‘나는 이미 키오 시절을 겪어서 그것도 잘 넘겼지.’
그렇게 돌연프에서 쏟아졌던 욕을 웃어넘길 수 있었다. 네스트로 성공하고 싶은 욕망이 더 컸기 때문에.
고예찬은 돌연프 시즌 2를 버틸 수 있을까. 그것도 제 2의 데뷔를.
“…그렇다면 네스트를 이용할 필요가 없을 텐데요.”
이번에는 화목현이 나섰다. 화목현이 그렇게 말할 줄은 몰랐는지 김진현 팀장님은 적잖게 놀라는 중이었다.
“목현아, 뭘 네스트를 이용해.”
역시 네스트를 이용하려고 했던 모양이군.
“이 사실, 오민석 팀장님은 아세요?”
“…뭘?”
“김진현 팀장님이 질문지를 작성하고 우리에게 줬다는 거요.”
“어, 내가 말했던 거 같은데.”
같은데?
‘…확실하게 말하진 않은 모양이네.’
김진현 팀장님은 거짓말을 하면 이마에 식은땀을 흘리는데, 마침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식은땀을 닦고 있었다.
“…음, 기억이 잘.”
이 말로 확실히 알았다. 오민석 팀장님은 모른다는 것을. 김진현 팀장님은 질문지를 보면서 우리 눈치를 보았다.
“너희들이 어그로를 끌어주면 후배들도 이끌어줄 수 있고 좋잖아?”
후배들을 이끈다… 말은 쉽지. 나는 스태프가 준 질문지를 들어 김진현 팀장님에게 들려주었다.
“그럼 ‘나비 씨는 돌연프 때 욕을 많이 먹었는데 예찬 씨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처지가 비슷한 것 같은데.’ 이런 질문으로 어그로를 끌 생각이세요?”
“나비야.”
“왜요, 팀장님?”
“방송이야. 방송. 어그로를 끌어야 살 수 있는.”
김진현 팀장님의 눈빛이 무섭게 반짝였다.
“네스트가 후배들을 이끌어주면 너희들의 이미지도 좋아지잖아. 안 그래?”
“…….”
그래서 네스트의 후배 그룹을 대대적으로 홍보한 건가?
“나비야, 네가 네스트로 안 왔어도 이렇게 성장을 했을까?”
“…….”
“그건 다 내 덕이란다.”
김진현 팀장님이 당당한 태도로 말했다.
“네가 욕을 많이 먹긴 했지만, 지금을 봐! 오히려 지금은 대중들이 나비를 불쌍하고 안타깝게 여기잖아.”
주이든의 말이 맞았다. 애초부터 김진현 팀장님은 나를 이런 식으로 이용하려고 데리고 온 거였네.
그래도 별생각은 들지 않는다. 다만, 네스트의 인기로 고예찬을 띄울 생각인 것 같아서 문제지.
욕망에 젖은 김진현 팀장님의 눈동자가 나를 보고 있었다.
“네가 잘했던 것처럼…….”
“…….”
“예찬이도 잘하지 않을까?”
뭔가 한 대 얻어맞은 느낌.
애초에 김진현 팀장님을 믿은 적도 없지만 나를 이 회사에 데려다준 사람이었기에 어느 정도는 괜찮은 사람이라 여겼다. 그런데 김진현 팀장님도 별다를 바 없었군.
‘다시는 안 만나면 되는 일이지.’
나는 눈동자를 살짝 돌려 형들을 살폈다. 형들은 어떤 말도 얹지 않았다. 약간 화가 난 것 같았지만.
“예찬이는 알아서 잘하겠죠. 우리의 도움이 없어도.”
“…어?”
“팀장님에게 예찬이는 저 같은 존재 아닌가요?”
나는 어깨에 닿는 김진현 팀장님의 손길을 거부하며 미소를 유지했다.
“그래도 이 질문대로는 답변하기 싫습니다.”
“…나비야.”
김진현 팀장님은 다른 형들의 의견을 들으려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저도 나비 말에 동의해요. 후배 그룹이긴 하지만 돌연프가 어떻게 편집할지 알아서 싫습니다.”
“목현아… 너까지 이럴 거니?”
믿었던 화목현마저 거절하니 김진현 팀장님은 저절로 물러났다.
“그럼 인터뷰를 아예 안 할 거야?”
인터뷰는 하긴 해야지.
“제가 생각하는 이미지가 있긴 한데. 팀장님, 해주실 거예요?”
김진현 팀장님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그게 뭔데?”
나는 내가 생각해 본 의견을 내놓았다.
“어차피 예찬이에게는 불쌍한 이미지가 있잖아요? 멤버들과의 관계, 개인 연습생 탈락, 제 2의 데뷔, 망돌. 이런 이미지가 구축된 상태에서 우리로 어그로를 끌어봤자 예찬이에게 돌아가는 이득은 없을 거예요.”
“…어, 그렇지.”
나는 테이블에 있는 질문지를 가져와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 질문지에 적힌 질문들, 다 썩었어요.”
“…아니, 나비야. 질문이 썩었다니.”
내가 질문지를 훑으며 말했다.
“우리가 예찬이를 라이벌로 인식하고 있는지? 이런 질문을 왜 합니까?”
고예찬은 아직 데뷔도 안 했다. 어떤 반응이 나오는지 보지도 못한 상태에서 라이벌? 이게 말이 되나.
“이런 거 말고, 돌연프 시즌 2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한 질문을 하면 될 것 같은데요.”
“그러면 재미가 없잖니.”
자극적인 맛은 없겠지.
“자극적으로 하면 되죠.”
“어떤 식으로?”
나는 해답을 내놓았다.
“예찬이의 예전 멤버들 그룹을 모아주세요.”
어차피 라스트 멤버들의 인터뷰가 끝난 뒤에 고예찬의 예전 멤버들도 인터뷰할 예정이었다. 인터뷰를 앞당겨도 별문제가 되진 않는다. 형들도 이건 예상 못 했는지 나만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왜 예전 멤버들을 모아?”
“동영상에 같이 나오는 장면만 떠도 충분히 자극적일 거예요.”
엄청 자극적일 거다. 이미 돌연프 티저가 머릿속에서 지나갔다.
[-고예찬과 예전 멤버들의 만남]
이런 식으로 어그로를 끌겠지. 이런 소재를 놔두고 왜 네스트를 건드리는지 의문이었다.
그때 김진현 팀장님이 나를 보며 질문했다.
“그러면 두 그룹을 어떤 식으로 만나려고?”
“우리는 돌아온 연습생 프로젝트에서 개인 연습생 그룹과 만난 사이잖아요? 두 그룹을 만날 이유는 충분하죠.”
돌연프 시즌 1 우승자가 3등을 만날 이유는 다분했다. 응원한다고 말할 수도 있고…….
“그리고 네스트가 후배만 챙기는 이미지가 아니라, 다른 그룹의 후배도 챙기는 이미지를 가지면 좋고요.”
“…….”
“라스트도 일석이조 아닌가요?”
하지만 문제는 고예찬의 멘탈이겠지. 고예찬이 예전 멤버들을 만나면 멘탈적인 부분에 금이 갈 수도 있었다.
“어때요? 팀장님.”
김진현 팀장님은 곰곰이 생각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어, 그래. 그러자!”
“좋아요.”
“역시 이런 점은 네가 좋다!”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지금 와서 좋다니.
“나가서 스태프랑 대화 좀 나누고 올게!”
“예.”
형들이 인사도 하기 전에 김진현 팀장님은 대기실을 나갔다. 주이든이 나에게 조용히 다가오더니 말했다.
“그래도 돼?”
“안 될 건 없죠.”
“…어떻게 보면 썩은 질문보다 더 안 좋은 상황이 생길 수도 있는데.”
“그건 우리 탓이 아니잖아요.”
돌연프가 욕을 먹겠지. 그걸 노리는 거다.
돌연프에서 진행하는 건데 우리가 욕을 먹을 이유는 없다. 더군다나 돌연프를 띄우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돌연프에게 고마운 마음이 없는 건 아니었다. 서사를 쌓기 좋은 편집점이 많아서 분량을 많이 챙겨줬으니까.
그 덕분에 팬덤도 크게 형성되었고.
하지만 네온들은 우리가 돌연프 시즌 2에 잠깐 출연한다는 기사가 떴을 때 싫어했다. 아직도 돌연프 망령이 나를 괴롭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너 혹시.”
“이든 형, 왜요?”
“돌연프로 화제를 돌리려고?”
“그렇죠.”
우리가 무리한 요구를 한 것도 아니니까.
“우리는 가만히 앉아서 두 그룹을 지켜보기만 하면 돼요.”
“어떤 식으로~?”
옆에 있는 소파에 누워 있던 정요셉이 물었다.
“음… 두 그룹의 기 싸움을 보면서?”
주이든이 기겁하며 감탄했다.
“와, 우리 막내. 무섭다.”
“제가요?”
“어, 많이 무서워.”
대중의 욕이 난무하는 돌연프에서 살아남기가 얼마나 어려웠는데.
“많이 힘들었어?”
이정진이 물었다.
“아니라고는 말할 수 없죠.”
“…그랬어?”
조심스럽게 말하는 이정진을 보면서 나는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돌연프 덕분에 형들과 잘 지내고 있잖아요.”
“우리 막내, 긍정적이네~”
정요셉이 나에게 쿠션을 던졌다. 나는 자연스럽게 쿠션을 잡아 품에 안았다.
“그런데…….”
“…….”
“김진현 팀장님이 원래 저런 이미지였나? 좀 무섭더라. 김진현 팀장님을 보니까 사람이 제일 무섭다는 걸 새삼 깨달았어.”
“그랬어요?”
“흔히 연예계 사람들은 믿지 말라고 하는데, 왜 그런 말이 있는지 알 것 같아.”
“원래 사람은 믿으면 안 돼요.”
사람을 믿으면 큰일이 나는 법이다. 나도 여러 번 겪었기도 하고.
“이번 돌연프 시즌 2에 서혁 형이 MC로 나온다던데.”
어디서나 이서혁은 잘나갔다. 그렇다고 해도 시즌 1에서 나간 이서혁이 시즌 2의 MC가 되다니.
그때 대기실 문이 열리고 스태프가 나오라고 손짓했다.
“인터뷰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벌써 1시간이 지난 모양이다. 우리는 스태프의 안내를 받으면서 촬영 스튜디오로 향했다.
“…오.”
나도 모르게 놀랐다. 고예찬이 당당하게 어깨를 편 상태에서 예전 멤버들을 응시하고 있었으니까.
‘독기가 올랐네.’
저런 표정을 짓는 고예찬은 처음 본다.
“네스트분들은 의자에 앉아주세요.”
의자에는 이름이 적혀 있었는데 중앙에 내 이름이 있었다. 나를 센터에? 의자에 앉으려는데 예전 개인 연습생 멤버들이 우리를 보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엄청 우렁차네. 우리도 똑같이 우렁차게 인사해야겠는데.
“안녕하세요. ONLY ONE!”
화목현이 구호를 외치자,
“네스트입니다!”
우리는 다 같이 인사했다. 뒤늦게 인사를 안 했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라스트도 의자에서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선배님들!”
힘찬 인사를 받고 의자에 앉았는데 내 옆에 앉은 주이든이 작게 말했다.
“벌써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