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 HOPE 뮤직비디오
HOPE 뮤직비디오를 찍기 위해 어느 대학교에 도착했다. 이번 HOPE 뮤직비디오 컨셉은 ‘공포 동아리’였다.
우리 컨셉은 ‘공포를 즐기는 사람들’인데 과연 공포를 즐길 수 있을까……?
“와, 무섭다……!”
주이든은 대학교를 보더니 무서워 죽겠다며 정요셉의 팔을 붙잡았다.
“우리 이든이, 학교가 뭐, 뭐가 무섭다고~”
정요셉도 무서운지 목소리가 떨렸다.
“정진아, 대학교도 밤에 오면 무섭네… 그동안 항상 낮에 와서 몰랐는데.”
“…그러게.”
나를 제외하고 형들은 무서운 걸 싫어한다. 하물며 공포영화에서 귀신 그림자만 나와도 무서워서 벌벌 떠는데 이 컨셉을 유지할 수 있을까.
그때 뮤비 감독님이 오시더니 우리에게 말해주었다.
“우리 나비 씨가 귀신을 무서워하는 역할이에요.”
제가요?
“그리고 나머지 분들이 공포를 즐기는 컨셉으로 진행할 거예요. 형들이 막내를 보살펴주는 역할인 거죠.”
우리 형들이 공포를 모르는 컨셉이라…….
‘어울리지 않는데…….’
내가 가늘게 눈을 뜬 채 형들을 훑었다. 벌써 형들은 벌벌 떨고 있었다. 한 줌의 빛도 없는 대학교 내부에서 뮤비를 찍으려고 하니 무서운 모양이었다.
화목현이 대학교를 보면서 입을 열었다.
“…우리, 잘할 수 있겠지.”
글쎄요.
이제 막 대학교를 탐방하려고 했는데 카메라 감독님 한 분이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했다.
“계속 카메라가 꺼지는데.”
뮤비 감독님이 인상을 썼다.
“왜 꺼지는데?”
“잘 모르겠어요. 촬영만 하려고 하면 카메라가 꺼져서…….”
카메라 감독님의 말에 나는 어수선한 분위기를 감지했다. 촬영하려고 하면 카메라와 마이크가 꺼지는 현상이 계속 일어나는 모양이었다.
촬영 시간이 조금씩 지연되자 우리는 한곳에 모였다.
“그런 말이 있잖아. 귀신이 많이 있는 곳에서는 카메라가 계속 꺼진다고~!”
정요셉이 중얼거리듯이 말했더니 주이든이 양손으로 귀를 막았다.
“정요셉! 무섭다고! 그런 말 하지 말라니까!”
“아니, 이든아~ 진짜래~!”
“아니야! 아니야!”
주이든은 ‘아아아아’라는 소리를 내며 정요셉의 말을 차단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듯이 뮤비 감독님이 우리에게 핸드폰을 하나씩 쥐여주었다.
“자, 각자 핸드폰으로 찍읍시다.”
“그런데 대학교가 너무 어두운데요?”
핸드폰으로 찍기에 대학교는 생각 이상으로 어두웠다. 건물 자체 내부의 전등도 꺼버렸는지 눈앞이 깜깜했다.
‘이곳을 가라고?’
우리는 얼빠진 표정으로 뮤비 감독님을 응시했다.
“괜찮을 겁니다.”
…괜찮을 거라고?
“어디까지 가는데요?”
화목현의 질문에 뮤비 감독님이 대학교 1동 건물 2층을 쳐다보았다.
“촬영은 간단해요. 2층에 ‘공포 동아리’라고 적혀 있을 겁니다. 거기까지 가시면 돼요.”
“정말로 거기까지 가면 돼요?”
“네, 도착만 하면 불이 바로 켜지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올라가세요.”
불이 켜진다고 하니까 다행이긴 하네. 그때 뮤비 감독이 나에게 한 가지를 제안했다.
“나비 씨는 중간에 귀신이 나오면 놀라는 척을 해주시면 됩니다.”
“귀신이요?”
“스태프가 분장한 거니까 걱정은 하지 마시고요.”
귀신으로 분장한 스태프가 앞으로 나와서 인사했다. 우리도 인사를 한 뒤 뮤비 감독님을 쳐다보았다.
“나비 씨가 놀라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댓글이 많더라고요? 그 모습을 뮤직비디오에서 보여 드리면 좋잖아요. 우리가 원하는 건 오직 그것뿐이에요.”
현란한 뮤비 감독님의 말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팬들이 원하니까.’
우리는 핸드폰으로 촬영을 하며 대학교를 탐방하는 느낌을 주기로 했다.
“갈까?”
화목현이 앞장서서 1동 건물 현관문을 열었다. 우리가 안으로 들어왔는데도 한 명만 밖에서 들어오지 않았다.
“…우리는 공포 동아리다. 공포 동아리다. 공포 동아리다.”
눈을 감으며 주이든이 세 번을 외치더니 용기 내어 주먹을 쥐었다.
“주이든, 가자!”
“빨리 와, 이든아.”
화목현이 빨리 오라며 손짓하자 주이든이 알겠다며 천천히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주이든은 건물 내부를 보더니 말이 많아졌다.
“…건물 내부 엄청 무서운데? 안이 깜깜해. 아무것도 안 보여. 진짜로 귀신이 나올 것 같은데?”
정요셉이 주이든의 어깨를 잡으며 비웃었다.
“우리 이든이, 무섭다고~?”
“안 무섭거든?”
이정진이 뒤를 돌더니 정요셉과 주이든을 향해 싸우지 말라며 고개를 저었다.
“조용히 하자. 그러다가 귀신 나와.”
소란스러운 상황에서도 이정진은 착실하게 몰입을 유지했다. 바닥이 대리석이라서 자칫 잘못 움직이면 넘어질 수도 있었다.
“형들, 바닥 조심해요.”
내가 바닥을 조심하라고 한 지 1분도 되지 않자 정요셉과 주이든이 비명을 질렀다.
“으아!”
“악!”
앞으로 잘 걸어간다고 생각했거늘.
“악!”
“와아악!”
뒤이어 화목현과 이정진까지 비명을 질렀다. 우리는 아직도 현관문 입구 근처에서 벗어나지 않은 상태였는데.
역시 내가 귀신을 무서워하는 컨셉으로 가는 건 너무 허술하다. 어쩔 수 없이 멤버들을 보면서 말했다.
“…제가, 제가 갈게요. 형들이 제 뒤를 따라오세요.”
나는 최대한 무서워하는 척하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안은 정말 어두웠다. 앞으로 걸어갈 수 없을 만큼.
그러다가.
“히잉.”
히잉? 이게 무슨 소리야? 나는 행동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때 주이든이 말했다.
“히잉… 이런 소리가 나.”
뒤따라오던 주이든이 기겁했는지 손으로 귀를 막았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나도 몰라! 무섭단 말이야……!”
그냥 창문에서 바람이 들어오는 소리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고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찾아보았다. 빛이 없어서 핸드폰 플래시를 켜서 찾아보았다.
“저기 올라가는 공간이 있네.”
화목현의 손가락으로 시선을 옮기자, 복도 중간에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였다. 이제 중앙으로 가면 되는데…….
쨍그랑.
갑자기 도자기 깨지는 소리가 났다.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누가 도자기 깼어요?”
내 물음에 형들이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아니라면 다른 곳에서 도자기를 깼을 가능성이 높다.
“…아무것도 아니라면 중앙 계단 쪽으로 갈게요.”
형들은 대답이 없었다.
잘 따라오는지 궁금해서 살짝 고개를 뒤로 돌리자, 형들이 입을 다문 채 따라오고 있었다. 내가 미소를 지으며 중앙으로 가자 계단 벽면에 있는 거대한 그림에서 불이 켜졌다.
“…그림에 불이 켜졌는데?”
중앙 계단 벽에 걸린 거대한 그림은 남자 초상화였다. 그런데 초상화의 눈이 왠지 우리를 보는 것 같았다.
“저 녀석, 나를 보는 것 같은데…….”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범나비, 너도?”
웬일로 주이든과 생각이 같다니. 기분이 나쁘면서도 괜찮았다.
“왜, 왜?”
뒤늦게 정신을 차린 화목현이 우리에게 물었다.
“저기 봐요. 남자 초상화가 우리를 보고 있어요.”
내가 남자 초상화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랬더니 화목현이 신기하다는 듯이 일어나서 남자 초상화에 가까이 다가갔다.
“안 보고 있는데?”
정말로 화목현이 다가가니까 우리를 보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우리 기분 탓인가?”
주이든이 헷갈려할 때였다.
“움, 움직여!”
그 후로는 난리가 났다. 주이든은 나를 붙잡았고, 정요셉은 어디론가 뛰어가 버렸고, 이정진은 바닥에 주저앉으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거기다가,
“…어.”
화목현은 말을 잃었다.
“…하.”
이걸 뮤직비디오에 넣는다고? 말이 되는 소리인가. 형들의 엉망이 된 모습을 보면서 나는 절로 한숨이 나왔다.
나는 혼미한 정신을 붙잡으며 외쳤다.
“형들!”
그러자 정신없이 움직이던 형들의 움직임이 멈췄다.
“우리 2층 동아리실로 가야죠! 저 너무 무서워요……?”
처음으로 큰소리를 냈다. 형들도 정신을 차리며 내 뒤에 한 줄로 섰다.
“가자~!”
“나비가 무섭다잖아!”
정요셉과 주이든이 정신을 차렸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동아리실로 향했다.
2층을 둘러보는데 주이든이 방금 전 말했던 소리가 내 귓가에 들렸다.
힝.
아무래도 바람이 통하는 창문이 있는 모양이었다.
“저기다!”
먼저 발견한 사람은 역시나 주이든.
“어디요?”
“저기 봐봐.”
주이든의 손가락을 따라서 고개를 움직이자 어떤 동아리실 앞에 마네킹이 세워져 있었다. 웬 마네킹?
그런데 어쩐지 마네킹이 서서히 우리 쪽으로 움직이는 것 같다? 나만 그렇게 느낀 건 아니겠지. 내가 뒤로 한 발짝 물러나자 형들이 뒤에서 왜 그러냐고 물었다.
“마네킹이.”
“왜, 왜?”
주이든이 내 팔을 잡으며 마네킹을 쳐다보았다.
“쟤… 왜 움직여?”
“…그러게요?”
그때였다.
“으아아악!”
형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비명을 질렀다. 그 비명이 신호탄이 되었는지 마네킹이 우리 쪽으로 달려왔다. 아니, 왜 저게 달려와? 의문을 가진 채 마네킹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다른 곳으로 뛰었다.
“우리 어디로 가!”
“글쎄요!”
“아니!”
달리고 달려서 끝자리에 도착했으나 마네킹은 우리를 끝까지 쫓아왔다. 그때, 마네킹은 오른팔을 위로 들어 구석에 몰린 우리에게 종이를 전달했다.
“…제가 가져올게요.”
형들은 이미 패닉에 빠져 떨고 있었다. 나는 살짝, 아주 살짝 앞으로 다가가서 마네킹이 전달한 종이를 잡아당겼다.
‘사람이었어?’
어두워서 마네킹인 줄 알았다. 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자 화목현이 내게 다가와 질문했다.
“뭐라고 적혀 있어?”
“그러니까…….”
종이를 펼치자,
《메롱》
“메롱?”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이 사람들이 우리를 놀리나.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연속으로 일어나자 화가 치밀어 올랐으나 이것도 일이라고 생각하니 화가 풀렸다.
‘…참자. 참아야지.’
탕, 탕, 탕, 탕!
그때 복도에 불이 켜지더니 1층에서 뮤비 감독님이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그제야 내 뒤에 있던 형들도 손뼉을 쳤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나비의~ 생일 축하합니다~”
…아, 생일.
“나비야, 앞으로 나와.”
“예?”
뮤비 감독님이 호랑이와 나비가 그려진 케이크를 내밀었다.
“자, 나비 씨. 불어요.”
초를 꺼야 하기에 나는 입으로 바람을 불었다. 초가 꺼지자 스태프들이 손뼉을 쳐주었다.
“생일 축하드려요.”
“감사합니다.”
화목현이 뮤비 감독님의 케이크를 받으면서 나에게 건넸다. 그러면 이게 다 몰래카메라인 건가?
“핸드폰에 찍힌 영상은 예정대로 뮤직비디오에 쓰일 예정입니다.”
“예?”
그 난장판 영상을 뮤직비디오에 쓴다고? 어떻게?
“…예?”
우리는 동시에 의문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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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스트]
안녕하세요, 네온.
목현입니다.
10년 뒤에
우리는 서로를 기억할까요?
오늘 저녁 6시에
HOPE 티저가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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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드림은 SNS 알람을 보자마자 입이 쩍 벌어졌다. 지금껏 계속 새 앨범 떡밥이 올라왔지만 이런 식으로 홍보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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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스트] 방금 올라온 글 뭐야?
저녁 6시에 올라온다고 했잖아
그럼 5분 뒤인데?
티저가 공개된다고?
이게 무슨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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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예고도 없이 올라온 목현이의 홍보 SNS에 네온들도 어리둥절한 모양이었다. 그때 또 하나의 글이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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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스트] 이거 봄?
(SNS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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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저가 공개되기 직전 어떤 네온이 글 하나를 올렸다. 이 SNS에 올라온 사진을 처음 본다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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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_clsrn
우리는 친구
(내친구들_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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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진에는 이정진만 없었다. 그리고 SNS에 다시 글이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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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_clsrn
내 친구들은 나를 잊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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