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 생일 파티 성공
화목현과 이정진의 생일 카페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그나저나 3일 내내 카페에서 일하고 HOPE 안무 연습까지 했더니.
‘…몸이.’
비명을 지른다. 어기적거리며 방에서 나오자 이정진이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왜 그렇게 걸어?”
“몸이 아파서요.”
“아파?”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정진이 소파에서 일어나더니 부엌으로 걸어갔다.
“막내, 내가 만든 김치볶음밥 먹을래?”
“네? 네, 저 배고파요.”
“4인분 한다?”
“네, 제가 다 먹을 수 있어요.”
이정진이 부엌에 들어가서 김치볶음밥을 만드는 동안 나는 식탁 의자에 앉아 멍하니 앞만 주시했다.
생카를 준비한 뒤로 화목현과 이정진이 유독 잘해준다. 감격이 컸던 탓이다. 내가 만들었던 특전은 그 뒤로 온라인샵에 공짜로 풀었다.
팬들이 나를 위해서 마음을 써주는데…….
‘이 정도는 해야지.’
사랑하면 베풀 줄 알아야 한다. 엄마에게 배운 이론. 쉬는 틈을 타서 핸드폰으로 팬들 상황을 살폈다.
한동안 ‘나비 생카’라는 키워드가 커뮤 순위에서 오르락내리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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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스트] 나비 사랑스러워ㅠㅠ
형들 챙기는 모습이 막내다워서 귀여움
호랑이 인형탈 쓴 채 카운터 맡고
손수 포토 카드 만들고
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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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아라 이게 우리 막내다
└ 22
└ 333
-지방이라서 울었는데 나비가 특전은 온라인샵에 무료로 풀어준대
└ ㅅㅂ
└ 지방 팬도 챙겨주는 우리 나비가 최고다
-생카 하는 3일 내내 나비 왔다고 사람들 몰려서 죽는 줄;
└ 주변 카페에 죄송하다고 선물까지 줬다고 함
└ 말 나올까 봐 미리 차단하네 무섭다 ㄷㄷ(좋다는 뜻)
└ ㅠㅠㅠㅠㅠㅠ
-주변 카페에 뭐 줌?
└ 사장님들 노트북 한 대씩 줬대
└ 뭐?
└ 와
└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클라스
└ 미쳤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도 카페 사장이라도 할 걸 그랬네 ㅡㅡ
└ 그러니까 나비도 보고 노트북도 얻고 나 뭐 함?
└ 시발 ㅠ
내 얼굴이 공개되면 주변 카페에 피해가 갈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로 인한 피해를 받을 주변 카페 사장님들께 어떤 선물을 할까 고민하다가 노트북을 드렸다.
노트북은 카페에서도 자주 사용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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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스트] 나비 얼굴 성형한 거임?
ㅈㄱ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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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지 이 신박한 어그로는?
└ 우리 나비 자연 미남임
└ 어머니 얼굴 쏙 빼닮음
└ ㅁㅈㅁㅈ
-어그로가 아니라 그만큼 잘생겼다는 칭찬 아님? 아군이다 총 내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우리 나비가 존잘이긴 함
잘생겼다고 칭찬하는 글도 올라오고.
오히려 생카로 이미지가 더 좋아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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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스트] 사실 환승 이미지 때문에
나비 별로였는데 생카로 좋아짐
죄송합니다
이런 분인 줄도 모르고
저도 입덕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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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이제?
└ 죄송합니다ㅠ
-와 이걸 이렇게 쓰냐? 미쳤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ㅋㅋㅋㅋㅋㅋ
└ 왜왜?
└ 환승 이미지로 나비 욕 졸라 얻어먹음 ㅅㅂㅋㅋㅋ 그걸 모르는 사람이 없을 텐데 이렇게 쓰니까 빡치지
└ 와;;;;;;;
-좆같은 환승 언급
└ 워딩 워워
└ 나비를 생각하자
└ 후 내려감
너튜브에 ‘나비 환승’이라는 억까 영상만 200개가 넘어가니까.
지금은 너튜브에 내 이름을 치면 억까 영상보다는 팬들의 브이로그나 편집된 내 영상이 많아졌다.
‘이렇게 이미지가 변하다니…….’
죽을 때까지 환승 이미지는 안 바뀔 줄 알았는데.
“막내야, 밥 먹자.”
이정진이 김치볶음밥이 완성됐다면서 식탁에 김치볶음밥을 올려두었다. 맛있는 김치볶음밥 냄새에 침샘이 폭발했다.
이정진의 김치볶음밥에는 햄과 김치가 들어 있었다.
“우리 집 김치는 원래 맛있어서 별거 안 넣어도 맛있어.”
“와…….”
“자, 먹자.”
먹으려고 숟가락을 드는데.
“여기 계란.”
“…정진 형.”
“왜, 감동받았어?”
“네.”
나는 숟가락을 들어 계란 노른자를 터트렸다. 고소한 노른자가 김치볶음밥에 스며들어 참기름을 바른 것처럼 윤기가 돌았다.
“잘 먹겠습니다.”
노른자로 비빈 김치볶음밥을 입에 넣자마자 고소함이 입안에 풍겼다.
“곧 생일 카페 브이로그 올라가.”
“어, 진짜요?”
“내가 편집했다?”
며칠 동안 밤을 꼬박 새우는 것 같더니 그걸 편집했군.
“구경해도 돼요?”
“아니, 오늘 올라가니까 꼭 봐.”
“검수는 했고요?”
“당연히 했지. 연호 형한테 별로인 부분은 말해달라고 부탁했거든.”
김연호는 객관적으로 잘 살펴보니까 괜찮을 거다. 맛있는 김치볶음밥을 먹으면서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어디선가 통통통, 소리가 나더니 이윽고 전자레인지 안에 있는 그릇이 좌우로 움직였다.
“형? 저게 뭐예요.”
“어? 잠깐만.”
그러고는 전자레인지에서 펑펑펑펑! 소리가 났다.
“내가 팝콘을 그릇에 넣어놨는데.”
“예?”
“오늘 나랑 영화 보기로 했잖아.”
“아, 그랬죠?”
“팝콘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 전자레인지에 팝콘 두 개를 넣고 돌렸거든.”
“어?”
이정진이 의자에서 일어나 전자레인지를 열었더니…….
“…이게.”
팝콘이 바닥에 우수수 떨어졌다. 그때 이정진과 나의 눈이 딱 마주쳤다.
“…아깝다.”
“바닥이 깨끗하니까 주워서 먹으면 되지 않을까요?”
“안 더러워?”
“더러울 게 뭐가 있어요.”
나랑 이정진이 바닥에 떨어진 팝콘을 줍는 그때 벨소리가 울렸다.
“누구지?”
이런 상황에서.
“이든 형?”
왜 전화했지?
나는 곧바로 주이든의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네? 형?”
“범나비, 잘 들어봐.”
“예.”
“막내야, 형이 많이 사랑한다.”
…주이든이 갑자기 나한테 고백을 한다고? 이상하다. 아, 오늘 라디오에 출연한다고 하지 않았나?
“…형? 누가 협박해요?”
“아! 시간 없어!”
“형.”
“왜!”
나한테 전화해서 ‘사랑해’라는 대답을 듣는 미션이라도 걸렸나? 그런데 내가 이렇게 쉽게 말해줄 필요가 있을까?
“이든 형, 제가 말해줄 것 같아요?”
“이러면 안 돼.”
“뭐가 안 돼요?”
“…형이 사랑한다고 말했잖아.”
왜 ‘사랑’이라는 단어를 말할 때 목소리가 유독 낮은지 모르겠네.
“형, 지금 부엌이 난장판이 됐거든요?”
“왜?”
“정진 형이 전자레인지에 팝콘을 돌리다가 팝콘이 바닥 여기저기에 튀었어요.”
“그거 큰일이네?”
“네, 이것도 큰일인데…….”
“나도 큰일이야.”
“그래요. 큰일이겠죠?”
“동생!”
이럴 때만 동생이다. 맨날 범나비라면서 성을 꼬박꼬박 붙이면서.
“그럼 제가 한 가지 부탁을 하면 들어줄 거예요?”
“뭔데?”
“일단은… 상품이 뭔데요?”
“상품은 한우랑 백화점 상품권 10만 원 .”
“아, 그럼 저는 한우가 좋아요.”
“내 거야!”
주이든의 외침에 라디오 MC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이든 형, 지금 저한테 전화해서 후회하고 있죠?”
“어, 완전 후회 중.”
“형이 성을 떼고 ‘나비야’라고 불러준다면 그 말을 해줄 의향이 있어요.”
이럴 때가 아니면 주이든을 조련할 수 없을 테니까. 이정진도 재밌는지 팝콘을 줍다 말고 전화 내용을 듣고만 있었다.
“그래! 내가 성 떼고 불러줄게!”
이건 팬들도 기다릴 것이다. 주이든은 동갑내기나 동생에게는 꼭 성을 붙이고 말하는 버릇이 있어서.
그런데 흔쾌히 수락하다니.
“진짜요?”
“어! 한우도 줄게!”
“와~ 나비는 정말 행복해요. 이런 날이 드물거든요. 팬들도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주이든이 호흡을 가다듬더니 말했다.
“나비야, 사랑한다.’
“…….”
“야? 범나비!”
…실제로 들으니까 전화를 끊어버리고 싶은데. 주이든이 숙소에 돌아와서 나를 얼마나 괴롭힐지 생각하니까 기분이 아찔했다.
“예, 저도… 이든 형, 사랑합니다.”
“와!”
주이든이 원하는 대답을 내놓자 라디오 MC가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나비 씨.”
“안녕하세요.”
“왜 대답을 늦게 해준 겁니까?”
“이렇게 하면 팬들이 좋아할 것 같아서요.”
“오, 맞습니다. ‘역시 나비가 막내온탑이다’, ‘나비가 잘하고 있다’, ‘나비야 고맙다’, ‘나비야 사랑해를 듣다니 행복하다’라는 댓글이 올라왔어요.”
“제가 팬들의 마음을 잘 알거든요.”
뻔뻔한 대답에 라디오 MC가 호탕하게 웃었다.
“다음에 라디오에 모셔도 될까요?”
“저는 언제든지 좋습니다.”
라디오 MC와 훈훈한 마무리를 하고 있을 때였다.
“범나비… 집에서 보자.”
“예, 형. 저도 보고 싶어요.”
이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이든이가 숙소 오면 많이 화내겠네.”
“그러게요.”
이정진과 함께 다시 바닥에 떨어진 팝콘을 담았다.
“막내, 다음 달 생일 아니야?”
“…어, 벌써 그렇게 됐나요?”
빠른 속도로 생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그것도 몰랐네. 이정진은 팝콘을 줍다 말고 나를 바라보았다.
“몰랐어?”
“몰랐죠.”
“우리 생일은 그렇게 챙기면서.”
형들의 생일은 잘 챙기고 싶었다.
“형들은 가족이잖아요.”
“…….”
“아니에요?”
나는 가만히 이정진을 바라보았다.
“…어, 새롭다.”
“예?”
이정진은 바닥에 주저앉았다.
“예전에는 나비가 나를 위로해 주려고 이런 말을 한다고 생각했는데.”
위로해 주는 말. 그런 의도가 전혀 아니었다고는 말 못 하겠다. 조금은 그런 마음도 있었으니까.
“지금은 그런 게 아니라 진심으로 말하는 것처럼 들려서 기분이 좋네…….”
“형.”
이정진에게서 쓸쓸한 낯빛이 엿보였다.
“현재도, 미래도 우리는 같이 보낼 거니까. 가족보다 더한 사이 아니겠어요?”
“…….”
내 말은…….
“제가 형 옆에서 지켜줄게요.”
“…뭐?”
팝콘을 줍던 이정진이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거짓말처럼 들리나? 아닌데? 진심이라는 걸 알려주기 위해서 이정진의 눈을 보며 다시 말했다.
“형도 절 지켜주세요.”
“…묘하게 협박처럼 들린다?”
“저는 언제나 형의 곁에 있을 테니까.”
어떤 미래가 닥쳐와도.
“나만?”
“당연히 형들 모두요.”
모두를 지킬 거다.
* * *
화목현은 방에서 잠든 나비를 보며 문을 닫았다.
“범나비 자?”
“어, 자.”
“그래?”
주이든의 옆자리에 앉은 화목현은 팔짱을 낀 채 물었다.
“웬일로 화를 안 냈어?”
“나?”
주이든이 턱을 문지르며 웃었다.
“화를 낼 필요가 있나.”
“어?”
“웃기잖아. 고작 성 떼고 불러달라는 부탁을 하다니.”
화목현의 귀에는 웃기다는 표현이 귀엽다는 말로 들렸다.
“뭐… 내 동생이잖아. 형이 봐줘야지.”
주이든은 소파 쿠션을 가져와 기세등등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주이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화목현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다 컸네.”
“나도 컸지.”
하지만 화목현에게는 고민이 있었다.
“나비의 생일은 어떻게 준비할까.”
“아, 범나비 곧 생일이지.”
“어…….”
동시에 화목현과 주이든은 입을 다물었다. 지금껏 누군가의 생일 파티를 준비한 역사가 없긴 했다. 해봤자 Q 라이브 때 케이크를 가져온 게 다였다.
“아… 범나비 생일이.”
“4월 1일.”
“4월 1일… 뮤직비디오 찍는 날 아니야?”
하필이면 뮤직비디오를 찍는 날이 범나비의 생일이었다.
“그날 깜짝 놀라게 해주면 되겠네.”
“어떻게?”
“일명, 범나비 생일 대작전.”
거창한 이름과 달리 주이든의 눈가가 음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