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의 1군 가이드-204화 (204/235)

204. 깨달음

“맞아요!”

나는 짧게 감탄했다.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는데도 이 편의점에 온다고?

“저 그때부터 팬 됐어요!”

“와… 그래서 계속 이 편의점에 오신다는 거예요?”

“그렇죠!”

아직도 팬이라니…….

“…정말로 감사해요.”

나는 진심을 담아 말했다.

“제가 더 감사하죠.”

“…예?”

뭐가 감사하다는 걸까. 나는 궁금해서 손님을 쳐다보았다.

“저 돌아온 연습생 프로젝트 때부터 네스트로 쭉 달린 팬이거든요?”

그리고 팬의 말을 귀에 담았다.

“항상 네스트한테 감사하다는 말을 전달하고 싶었어요.”

왜일까.

“사실 제가 꿈이 있었는데… 집에 여유가 없어서 꿈을 포기했어요. 그리고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살다가 돌연프를 보게 됐거든요.”

팬은 부끄러운지 시선을 아래로 떨궜다.

“…그때 나비가 그런 말을 했잖아요.”

“…….”

“꿈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

“눈앞의 현실이 안 좋아도 버티는 사람이 이긴다고.”

생각해 보니 돌아온 연습생 프로젝트 인터뷰에서 그렇게 말했던 것 같았다. 팬의 눈이 수많은 별이 모여 있는 것처럼 반짝였다. 얼마나 찬란한지 나까지 집어삼킬 것 같았다.

“그런데 이상과 현실은 다르잖아요? 그 말이 계속 머릿속에 남더라고요. 그동안 어떤 사람의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팬이 방긋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지금은 다른 길을 개척해서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어요. 덕분이죠.”

“…….”

“꿈을 이루기 위해서 작정하고 팬 싸인회 같은 데는 못 갔지만…….”

수줍게 미소를 짓는 팬을 보니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팬의 말에 힌트를 얻었다.

‘…다른 길을 개척하자.’

내가 개척해 나가면 된다. 나도 살고, 멤버들도 살 수 있는 방법.

“그러니까 앞으로도 쭉 아이돌을 해주면 좋겠어요!”

“…….”

“늘 이런 팬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는데! 마침 기회가 찾아와서 말해요…….”

내가 팬들을 좋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내가 어떤 사람이든 간에 나를 좋아해 주는 마음이 얼마나 소중한지.

“고마워요.”

“…제가 더 고맙죠.”

“아니에요. 진짜로 고마워요.”

고마운 마음은 진심이니까.

“아, 팬 싸인회 한 번도 못 가봤다고 했죠?”

“네! 그래도 앨범은 다 있어요!”

나는 싸인해 놓은 종이를 보면서 팬에게 말했다.

“마침 제가 싸인을 하고 있었거든요. 한 장 가져갈래요?”

“…진짜요? 이거 가져가도 돼요?”

“예, 당연히 되죠.”

나는 싸인해 놓은 종이를 팬에게 건넸다. 하지만 이것만 주면 좋은 추억이 되지 않을 터.

“혹시 이름이 뭐예요?”

“…이름 말고 다른 것도 돼요?”

“네? 돼요.”

팬은 고민하더니 말했다.

“음… ‘편의점 학생 팬’이라고 적어주세요.”

“…….”

“둘만의 추억이니까!”

똑똑하다. 그렇게 말하면 나도 계속 기억할 수 있으니까.

“다른 건 필요 없어요?”

“예! 싸인으로 충분해요!”

싸인은 충분하다. 나는 종이에 ‘편의점 학생 팬’을 적었다. 싸인을 받은 팬은 마치 세상을 얻은 것처럼 환한 미소를 지었다.

“평생 아이돌!”

피곤해도 동태 눈깔 같은 건 절대 보여줄 수 없었다.

“평생 네스트!”

내가 손바닥을 내밀자 팬이 하이 파이브를 해주었다. 짝! 소리가 났고 우리는 서로를 보며 웃었다.

“이건 제가 현금으로 낼게요. 포스기 어떻게 다루는지 모르시죠?”

“어, 어떻게 아셨어요?”

“딱 보면 알죠.”

팬은 나에게 세상 다정하게 현금을 건넸다.

“파이팅!”

팬이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물건 창고에 있던 엄마가 돌아왔다. 나는 카운터에서 나와 엄마가 가져온 박스를 들었다.

“허리 조심.”

“예.”

“너는 아이돌이잖아.”

엄마의 입에서 아이돌이라는 말이 나오다니. 왠지 안 어울려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엄마는 왜 웃냐면서 카운터로 가더니 현금을 확인했다.

“손님 오셨어?”

“현금을 쥐여주고 갔어요.”

“오, 착한 손님이네. 뭐 샀는데?”

“김밥이랑 음료수?”

나는 엄마가 놔두라고 한 곳에 상자를 놔둔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 아들, 얼굴이 아까보다 조금 펴졌다?”

“…그런가?”

“어, 아까는 우중충해서 얼굴에 비 오는 줄 알았잖아.”

엄마는 피곤하다면서 카운터에 있던 의자를 가져와 앉았다.

“싸인은?”

“거의 다 했어요.”

“오, 빠르네.”

“저 이래 봬도 아이돌이라서.”

“그래, 우리 아들. 역시 아이돌이네.”

나는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싸인한 종이를 엄마에게 가져다 드렸다. 엄마는 종이 개수를 세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숫자 딱 맞네.”

조용한 편의점에서 엄마가 나에게 질문했다.

“그런데 아들, 오늘 진짜 왜 온 거야?”

“…엄마 보러 온 거라고 했잖아요.”

“엄마를 보러 왔다고? 무슨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나를 추궁하는 엄마의 질문에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엄마를 속이지는 못하겠다.

“그냥… 걱정이 앞서서.”

“무슨 걱정.”

“이대로 아이돌을 해도 될지.”

“흐음…….”

엄마는 번뜩이는 생각이 없는지 입을 다물었다.

“너는 어릴 때부터 엄마한테 의지하는 법이 없었지.”

“집이 힘들었잖아요.”

“그래, 그래도 조금은 엄마한테 기댈 줄 알았거든. 그런데 그런 것도 없이 아빠를 쏙 빼닮아서.”

“얼굴은 엄마 닮았어요.”

그러자 엄마가 기분 좋은 웃음을 흘렸다.

“그래, 얼굴은 나를 닮았지만 성격은 아빠를 닮았지.”

“아, 아닌데……?”

“닮았거든?”

엄마가 내 볼을 살짝 꼬집었다.

“그래서 얼마나 미안했는지 몰라. 네가 많이 걱정됐거든.”

“…많이 걱정했어요?”

당연하다는 듯이 엄마는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당연하지.”

“…왜요?”

“우리 아들은 남에게 기대지 않으니까.”

“…….”

“독립적으로 살면 좋지만 가끔은 남에게 기대며 감정을 공유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나는 부끄러운 마음에 고개를 떨궈 바닥을 응시했다.

“그리고 우리 아들한테는 좋은 형들도 생겼잖아.”

좋은 형들? 나는 귀를 쫑긋 세웠다.

“매번 목현이가 우리 아들 어떻게 지내는지 사진을 보내준단다.”

“…그래요?”

“보여줄게.”

엄마가 정말이라는 듯이 핸드폰에 있는 사진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멤버들과 여행을 갈 때마다 사진을 찍었는데 화목현이 그중 일부를 엄마에게 보내준 모양이었다.

“목현이가 걱정하지 말라고 얼마나 이야기하는지.”

“이건 몰랐어요.”

“그래서 너 편안하게 있으라고 집에 오지 말라고 하는 거야. 좋은 형들이 있으니까 나는 없어도 되겠지 싶어서.”

“…엄마.”

“엄마도 우리 아들 보고 싶은데.”

엄마가 팔짱을 낀 채 나를 보았다. 사랑스럽다는 듯이.

“우리 아들은 꿈이 있잖아. 그래서 아들을 믿어보는 거지.”

“…….”

“나도 그렇게 컸고.”

집에 우환이 닥쳐도 엄마는 한 번도 눈물을 흘린 적이 없었다. 오히려 항상 긍정적으로 살았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할머니가 돌아가셔도 엄마는 울지 않았다. 오히려 미소를 지으며 나를 안심시켰다.

“우리 아들이 무슨 일로 나를 찾아왔는지는 몰라도.”

“…….”

“네 선택을 믿어봐. 무슨 일이 있어도. 그러면 괜찮을 거야.”

그러더니 엄마는 거친 손바닥으로 내 뺨을 살짝 꼬집었다.

“삶은, 그런 거란다.”

나랑 엄마는 서로의 눈동자를 보다가 같이 미소를 지었다. 역시 엄마에게 오길 잘했다. 나쁜 생각도 사라지고,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그럼 이제 숙소로 가. 형들 걱정한다?”

“하루 자고 가려고 했는데.”

“안 돼. 빨리 가. 엄마도 네가 있으면 불편해.”

“아니, 갑자기?”

가라고 하니까 가긴 하겠는데.

“엄마는 이 종이만 있으면 돼.”

내가 싸인한 종이를 말하는 거였다.

“엄마…….”

“뭐?”

“진짜…….”

가끔은 나보다 더하다니까. 목적을 이뤘으니 빨리 나가라고 재촉하는 엄마를 보면서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나중에 올게요.”

“나중에 안 와도 돼.”

“엄마!”

나는 엄마에게 인사하고 편의점을 빠져나왔다. 나를 보며 인사하는 엄마를 보는데, 왜 이렇게 발걸음이 가벼운지 모르겠다.

“또 올게요.”

나에게 손을 흔드는 엄마를 보면서 나 역시 웃어주었다.

* * *

범나비의 엄마, 이진하는 목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목현아. 우리 나비 바로 나갔거든?”

“아, 그래요? 하룻밤 자고 온다고 그랬는데.”

“그랬는데 내가 가라고 그랬어.”

목현이의 웃음이 핸드폰에서 들려왔다. 이진하는 고개를 젓고는 나비가 싸인해 둔 종이를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우리 나비가 기운이 없다고 그랬지?”

“네, 기운이 없어서 멤버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거든요.”

“자기 딴에는 근심이 엄청 많은 것 같더라고.”

저 작은 머리통에 무슨 근심이 그렇게 많아서. 이진하는 순간 흐른 눈물을 휴지로 닦아냈다.

“그래요……? 무슨 걱정을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원래 나비가 어릴 때부터 걱정이 많았어. 어린애가 부모한테 잔소리까지 했다니까?”

“와, 역시 나비는 범상치 않았네요.”

“그래서 범씨인가.”

이진하는 이상한 농담을 하면서 나비가 남긴 싸인 종이를 손가락이 닳도록 쓰다듬었다.

“그래도 목현이가 있어서 다행이야.”

“…아니에요. 오히려 제가 신세를 졌잖아요.”

“신세라니, 그게 무슨 소리니? 이제 너흰 내 아들이나 다름이 없다니까? 나는 목현이 같은 아들이 있어서 행복하단다.”

“아니에요. 저야말로 행복하죠.”

대화하는 도중 목현이가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애들이 바꿔달라고 재촉해서. 잠시만요.”

그 말이 끝나자마자 다른 멤버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머님!”

“어머니!”

요셉이와 이든이의 목소리에 이진하가 웃음을 터트렸다. 종달새처럼 쫑알거리는 목소리가 귀여워서.

“그래, 다들 나비 걱정해 줘서 고마워.”

“아니에요, 어머니! 범나비 걱정은 하지 마시고 일에 집중하세요! 범나비는 저희가 책임지겠습니다!”

이든이의 강직한 목소리에 이진하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고마워.”

“어머님~ 그럼 나중에 찾아뵐게요!”

“그래, 요셉아.”

마지막으로 정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중에 찾아뵐게요.”

“그래, 정진아! 새해에 보내준 한우도 잘 먹었어.”

“…입에 맞으셨어요?”

“어, 당연하지. 한우가 입에서 살살 녹더라.”

“입에 맞으셨다니 다행이에요.”

뒤에서 이든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정진이를 혼내고 있었다.

“이제 끊을게.”

“네!”

전화를 끊으려는 찰나 멤버들이 말했다.

“어머님, 들어가세요!”

이렇게 전화가 끝났다. 핸드폰을 내려놓은 이진하는 손에 쥔 나비의 싸인 종이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언제 이렇게 컸는지.

“우리 아들, 기분이 안 좋은 것 같던데…….”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나마 옆에 멤버들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이진하도 나비를 생각하지 않고 일에 열중할 수 있었다.

멤버들에게 고마운 마음뿐이었다.

“우리 나비, 숙소 가서도 잘 있겠지.”

* * *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멤버들이 나를 일제히 쳐다보았다. 내가 없는 사이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정요셉이 소파에서 일어나더니 내 어깨에 팔을 둘렀다. 이건 가방보다 무겁다.

“우리 막내, 잘 다녀왔어?”

정요셉의 말투에서 뭔가 이상함을 감지했다. 이럴 땐 조금 무서운데…….

“예, 잘 다녀왔죠?”

“맛있는 간식은 안 사 왔고?”

“…안 사 왔는데요?”

“그러면 지금 당장 나가서 사 와.”

예?

“우리가 편의를 봐줬으면 맛있는 걸 사 와야지? 막내란 이런 거야.”

그러면서 정요셉은 내 가방을 받아 들고는 숙소 밖으로 내몰려고 했다.

“아니, 진짜로요?”

멤버들은 소파에 앉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로 사 와요?”

“어, 사 와.”

…무슨 이런. 실소가 저절로 나왔으나 이미 내 몸은 현관문 앞이었다.

“뭐 사 올까요?”

오늘만큼은 형들의 말을 듣는 것도 좋겠지. 이제는 자연스럽게 단순한 멤버들이 아닌, 형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형들, 비싼 건 안 됩니다.”

그러고는 형들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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