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의 1군 가이드-203화 (203/235)

203. 엄마

나는 무작정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비야?”

“형들, 저 화장실 다녀올게요.”

“어, 그래. 많이 급한 것 같으니까.”

“예.”

나는 화목현의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화장실로 달려갔다.

“왜 저렇게 뛰어가? 급한가?”

뒤에서 들려오는 주이든의 말을 무시하면서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했으나 아무도 없었다.

나는 화장실 거울에 비치는 아이돌 노트를 응시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글쎄…….】

“…자세하게 말해.”

【네가 생각한 그대로야.】

“그게 무슨 말이야?”

아이돌 노트는 으스대면서 씩 웃었다.

【네가 생각한 대로 네스트는 대상을 받기 전에 사고를 당하거든. 선택지는 네가 죽거나, 멤버들이 죽거나 둘 중 하나였어.】

“선택지가 있었던 거야?”

아이돌 노트가 나를 똑바로 응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선택지가 있는데 왜…….”

【너는, 항상 멤버들 대신 죽었으니까.】

…그럴 것 같았다.

“가혹하네.”

…너무나도 가혹한 선택지네. 숨이 턱 막힐 만큼.

“그렇다면 난 회귀할 때마다…….”

【멤버들을 선택했어.】

아이돌 노트가 말로 내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어쩐지 그럴 것 같더라니.

【너도 알고 있잖아. 멤버들의 죽음보단, 네 죽음이 훨씬 나았으니까.】

“…….”

아이돌 노트가 거짓말을 할 리는 없으니까 사실일 것이다.

‘정말 나답네.’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멤버들을 대신해서 죽었을 것 같으니까.

【네가 계속 회귀한 것도 멤버들을 보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어.】

아이돌 노트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왜? 네가 회귀한 이유가 거창하지 않아서 싫나?】

“아니.”

【그런데 왜 눈물을 흘리고 있어.】

글쎄다. 나는 고개를 떨군 채 세면대 물을 틀었다. 그러고는 양손에 물을 담아 얼굴에 퍼부었다. 이게 눈물인지 물인지 구분될 수 없도록.

“한 번이라도 성공한 적은 없어?”

【성공?】

“…멤버들을 구하거나, 나를 구하거나.”

그러나 아이돌 노트는 적당히 돌려서 말하는 법이 없었다.

【없어. 단 한 번도.】

“…….”

【그랬다면 너는 회귀하지 않았을 테고.】

아이돌 노트의 말에 무너지듯 자리에 주저앉았다. 메마른 강처럼 더 이상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현실을 깨닫게 되어서 그런가…….

【…너는 최선을 다했어.】

“…….”

【그래서 한 번 더 기회가 찾아왔잖아.】

한 번 더 찾아온 기회.

“기회라고?”

【그래.】

“…어떤 기회인데?”

이 물음에 아이돌 노트는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시스템창이 아이돌 노트를 조심하라고 했는데.’

머리가 터질 것처럼 복잡했으나 작은 희망을 보았다. 이전의 기억이 사라진 채로 회귀한 이유는 따로 있을 터. 이건 아이돌 노트도 모르겠지.

‘알았으면 알려줬을 거고.’

마지막으로 하나 더 물어볼 게 있었다.

“아이돌 노트, 하나만 묻자.”

【뭔데?】

“내가 회귀하면서 후회한 적이 있어?”

내가 선택한 회귀. 거기에 후회한 적이 있을까. 아이돌 노트는 살포시 미소를 짓더니 고개를 저었다.

【너는 한 번도.】

“…….”

【후회한 적이 없어.】

내가 선택한 삶에 후회한 적이 없다.

【오히려 멤버들을 걱정했지.】

“…….”

【어머니도 걱정하고.】

엄마…….

【처음 회귀했을 때 너는 위태로웠어. 그래서 어머니가 네 걱정을 많이 했어.】

“…내가 많이 위태로웠구나.”

어쩌지. 지금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나는.”

【범나비, 괜찮아.】

“…….”

아이돌 노트가 진정하라는 듯 위로하는 투로 말했다. 그래도 이렇게 가만히 있는 것보단 움직이는 편이 좋겠지.

하지만 어디로 가야 할까?

【범나비, 어머니를 찾아가 봐.】

“엄마를?”

【그래.】

어머니를 찾아가 보라고? 나는 주저앉았던 몸을 일으키며 거울 속 아이돌 노트에게 말했다.

“고맙다.”

처음으로 고맙다는 말을 한 것 같았다.

* * *

1박 2일 정도는 집에서 쉬는 걸 오민석 팀장님이 허락해 줬다. 아마 내 상태가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었기에 허락해 준 것 같았지만.

거기다 멤버들의 입김도 있었고.

‘막내 좀 쉬게 해주세요.’

‘우리 막내가~’

‘범나비가! 지금까지 쉬지 않고 달렸거든요!’

‘나비가 많이 힘들어했어요.’

다들 오민석 팀장님에게 이렇게 강력하게 말해주었다. 나는 택시에서 내려 편의점 앞을 서성댔다.

‘…왠지 들어가기 힘드네.’

엄마가 있는 편의점에 도착했으나 섣불리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나는 마스크를 쓰고 모자를 꾹 눌러쓴 채로 편의점 근처를 배회했다. 바쁘게 움직이는 엄마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자연스러운 미소가 지어졌다.

딸랑.

편의점 출입문 소리에 맞춰 엄마가 뒤를 돌았다.

“어서 오세요……?”

엄마는 나를 보더니 놀란 토끼처럼 눈이 커졌다.

“엄마, 아들 왔어요.”

“너, 어떻게 왔어?”

“그냥 왔어요.”

“왜? 무슨 일 있어?”

엄마의 걱정 어린 시선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무슨 일은 없어요.”

그냥 엄마가 보고 싶어서 왔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이리 와, 아들.”

내가 팔을 벌리자 엄마가 나를 꽉 끌어안았다. 나는 엄마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그리운 엄마의 냄새에 울컥하고 터질 것처럼 마음이 뭉클했다.

돌아온 연습생 프로젝트 이후로 처음 오는 거니까 거의 2년이 다 되어간다.

“어쩌다가 온 거야?”

“엄마도 보고 싶고, 그냥 겸사겸사.”

“무슨 일 있는 건 아니고?”

“아니야…….”

“그런 것 같은데?”

역시 엄마의 촉은 무시를 못 한다니까. 나는 엄마의 시선을 회피하면서 손가락으로 볼을 긁적였다.

“그냥 마음이 안 좋아서.”

“마음이 안 좋아?”

“응, 조금?”

엄마가 날카롭게 말했다.

“왜? 일이 잘 안 풀려?”

대략적으로 맞는 말이라 마음이 찔렸다.

“응, 뜻대로 되는 게 없어서…….”

그러자 엄마가 내 등을 때렸다.

“아.”

무슨 이유인지 엄마가 한 번 더 내 등을 때렸다. 이건 진짜 아픈데?

“엄마?”

“뭐가 뜻대로 되는 게 없어.”

“…엄마.”

이걸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말해야 하는 걸까. 엄마는 어서 말해보라는 듯이 허리에 손을 얹었다.

거의 무슨 심문하는 사람처럼 행동한다.

“네가 범죄자야?”

“어?”

“…범죄자도 아닌데 왜 그렇게 범죄자처럼 굴어.”

그러자 엄마가 내 어깨를 꽉 잡았다.

“어깨도 펴고.”

“응.”

“당당하게 앞을 주시해야지.”

나는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나는 아들이 어디 가서 슬픈 표정 짓는 거 별로 안 좋아한다?”

“…슬픈 표정 아닌데.”

“내가 보기엔 슬퍼 보여.”

그러고는 엄마는 본론에 들어갔다.

“그래서, 뜻대로 안 되는 일에 대해서는 말 안 해줄 거지?”

“…엄마.”

엄마는 아무런 말도 없이 나에게서 떨어지더니 입술에 호선을 그렸다.

‘불안한데?’

그 불안한 낌새는 바로 나타났다.

“할 말 없으면 일부터 하자.”

“일?”

“어.”

일부터 하자고? 엄마가 카운터에서 종이와 펜을 꺼내 나에게 들이댔다.

“네가 오기만을 기다렸단다, 아들.”

“…엄마?”

“원래 사람은 일을 해야 머릿속의 나쁜 잡념이 사라지거든.”

그러더니 엄마는 나를 카운터로 힘껏 밀었다. 카운터에 의자가 있길래 앉긴 했는데, 이러다가 손님이 오면 어떡해.

“엄마, 손님은?”

엄마가 나를 보며 실소를 터트렸다.

“세상 사람들이 너를 다 아는 것처럼 굴지 마.”

“…그건 아니지만. 혹시나 엄마한테 피해가 가면.”

“어떤 피해가 오는데?”

“사람들이 사진을 찍을 수도 있으니까……?”

그러자 엄마가 콧방귀를 꼈다.

“그러면 나야 좋지. 편의점 홍보도 되고.”

“…….”

“이제 엄마도 SNS 광고 효과에 대해서 알거든?”

그러더니 엄마는 빨리 싸인이나 하라고 명령했다. 그런데 종이가 좀 많다?

“엄마, 종이가 너무 많은데.”

“그래도 할 수 없어.”

“어?”

“적게 하고 싶으면 인기가 없든가. 네가 인기가 많아서 그래.”

…무슨 말투가 주이든 같아.

“몇 장이야?”

“100장.”

“엄마, 이거 하루 종일 해도 안 될 것 같은데?”

다시 엄마가 내 팔뚝을 때렸다. 오늘 3대나 때렸어.

“엄마…….”

“빨리 하기나 해.”

그렇게 아무도 없는 싸인회가 시작되었다. 이걸 위해서 여기 온 게 아닌데.

‘…잡생각이 사라지네.’

엄마 덕분에 나쁜 생각이 사라지긴 했다.

손이 뻐근하면 쉬고, 눈이 아프면 쉬었다. 저녁이 되자 차츰 편의점에 있는 게 나름 익숙해졌다.

의외로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몇 없기도 했고…….

나를 알아본 것 같은 사람들도 나를 위해서인지 편의점 안으로 들어와서 나에게 아는 척을 하지는 않았다.

“엄마는 물건 창고 좀 갔다 올게.”

“내가 가면 안 돼?”

“그동안 편의점 좀 봐.”

“아니, 나 이런 거 잘 못하는데.”

“그래도.”

괜찮을 거라는 엄마의 말에 나는 할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녁이 되고 편의점에 오는 손님 수가 점점 적어졌다.

그때 한 손님이 편의점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손님이 김밥과 음료수를 들고 카운터에 오자마자 나와 눈이 마주쳤다.

“이거 계산… 어?”

“…네?”

“알바생이에요?”

“아, 그건 아니고.”

아들인데.

“그럼 사장님은 안 계세요?”

이분은 우리 엄마랑 친하게 지내는 손님인지 엄마의 안부를 물었다.

“물건 창고에 다녀온다고 하셨어요.”

“그러면 알바생도 아닌데 왜 카운터에 있어요?”

나를 도둑으로 몰아가는 건가. 손님의 눈초리가 예사롭지 않았다.

“…그게, 잠시 도와주느라.”

“잠시?”

“예.”

점점 손님의 눈초리가 의심으로 번져지기 시작했다.

‘난 도둑이 아닌데…….’

이러다가 정말로 도둑으로 오해를 받아서 경찰이 올 수도 있었다. 설마 기자나 사생은 아니겠지.

“전 도둑이 아니에요”

“…그렇다고 알바생도 아닌데 카운터에서 계산을 하나요?”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그러지 않지.

“그건…….”

손님이 김밥으로 나를 가리켰다.

“도둑이죠!”

“…예?”

“도둑 맞죠!”

내가 도둑이라고? 나는 손님에게 다시 한번 물었다.

“제가 도둑처럼 보여요?”

“그렇게 마스크랑 모자를 쓰고 있으니까 도둑처럼 보이죠!”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 손님에게 도둑으로 몰려 경찰이 오는 것보다는 마스크랑 모자를 벗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저는.”

나는 마스크를 벗었다.

“사장님 아들인데요?”

“…어, 어?”

손님이 놀라며 입을 틀어막았다.

“…죄송합니다!”

손님은 나에게 곧장 사과했다. 사과까지는 안 해도 되는데.

“아니에요. 그럴 수 있다고 봐요.”

다시 마스크를 끼자 손님은 얼굴이 붉어진 채로 손을 휘저었다.

“죄송해요. 진짜로 몰랐어요…….”

“저야말로 감사하죠. 우리 엄마 걱정해 주셨잖아요.”

손님이 정말 죄송하다며 연신 사과했다.

“…아니에요!”

오히려 나도 고개를 숙이며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러더니 손님이 살짝 나를 보더니 물었다.

“저, 기억나세요?”

그러고 보니 어디에서 본 것 같은데? 어디서 봤지. 익숙한 얼굴이었다. 나는 한 번 본 얼굴은 잊지 않는데…….

그러자 손님이 힌트를 주셨다.

“…저 편의점에서 한 번 만났었는데!”

“언제요?”

“돌연프 때! 여기서!”

그때 만났던 팬이라면 딱 한 명뿐이었다. 내가 직접 사탕을 사준 팬. 드디어 얼굴 매치가 되면서 나는 손바닥을 짝 쳤다.

“사탕, 맞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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