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의 1군 가이드-202화 (202/235)

202. 진실 혹은 거짓

‘내 트라우마가… 멤버들의 죽음이라니.’

조금 충격이었다. 새로운 트라우마가 이거라니?

‘…미친 새끼.’

저절로 욕설이 나왔다.

그래서 며칠 내내 안무 연습에 집중을 못 했다. 거기다가 멤버들이 죽는 꿈을 계속 꿨다. 마치 눈앞에서 일어난 것처럼 생생한 꿈. 대상을 받기 직전에 교통사고가 나면서 멤버들을 제외하고 나만 살아남았다.

오로지 나만.

그 꿈이 나를 갉아먹으면서 점점 피곤해졌다. 심장은 계속 아리고.

‘스트레스받지 말라고 했는데.’

쓸데없이 집중을 못 하자 바로 행동으로 티가 났다.

“나비야!”

또 안무 실수. 나는 고개를 돌려 멤버들에게 미안하다며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안무 팀장님이 오더니 내 어깨를 두드렸다.

“안무를 곧잘 외우던 얘가 왜 이래?”

“죄송합니다.”

“나비야, 집중하자.”

그래도 앞으로 뛰어나오는 안무에서 계속 박자를 틀렸다.

‘이러면 안 되는데…….’

나는 앞머리를 뒤로 넘기면서 뺨을 내려쳤다. 붉어진 뺨을 보면서 정신을 차리려고 하자 안무 팀장님이 음악을 끊었다.

“나비야, 화장실 가서 얼굴 씻고 와.”

“…네.”

“정신 차리자, 어?”

나는 고개를 숙이며 화장실로 달려갔다. 그리고 조용한 화장실 안에서 물을 틀어놓고 멍하니 거울을 응시했다.

‘…멤버들이 죽는다.’

멤버들은 왜 죽은 걸까.

멤버들의 모습이 눈앞에 떠오르면서 속이 울렁거렸다. 나는 토악질을 한 다음에 휴지로 입가를 닦았다. 간신히 중심을 잡으면서 거울을 한 번 확인했더니.

“와.”

내 얼굴을 보자마자 작은 탄식이 나왔다. 잠을 잘 못 잤더니 피부가 푸석했다.

“…나 정말.”

왜 이래.

이런 모습을 팬들에게 보인다면 큰일이다. 이제라도 내 상태를 확인한 게 다행이었다. 이런 상태를 몰랐다면 아이돌 활동에 지장이 생겼을 텐데…….

나는 차가운 물로 세수를 한 뒤에 양손으로 뺨을 때렸다.

‘정신 차려.’

어쩌면 시스템의 농간일 수도 있잖아. 저번에 아이돌 노트를 믿지 말라는 말도 들었으니까, 시스템도 믿지 말자. 그러니까 정신 차려. 이제 HOPE 활동이 코앞이다.

틀어놓았던 물을 잠그고 연습실로 향했다. 그리고 안무 팀장님과 멤버들에게 죄송하다고 말했다.

“죄송합니다. 정신 차리고 돌아왔습니다.”

“나비야, 괜찮아?”

“네, 제가 이러면 안 되는데. 죄송합니다.”

안무 팀장님이 고개를 좌우로 세차게 흔들었다.

“애들한테 들었는데 이번 활동이 빡셌다며?”

멤버들이? 나는 멤버들을 힐끗 쳐다보았다. 안무 팀장님 뒤에서 멤버들이 소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활동이 그렇게 빡세진 않았는데…….’

멤버들이 나를 위해 거짓말을 해줬구나. 멤버들의 호의에 나는 미소를 지었다.

“네, 그래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거든요.”

“그랬어? 난 또, 다른 아이돌처럼 연습 안 하고 논다고 생각했지.”

“아니에요.”

“그럼 다시 시작해 보자. 박자 틀렸던 부분부터.”

“네……!”

그때 멤버들이 내 곁으로 다가왔다.

“범나비, 정신 차리자.”

“네, 죄송해요.”

“한두 번은 실수여도 세 번부터는 실수가 아니야.”

“와…….”

내가 작게 감탄하자 주이든이 콧잔등을 슬쩍 만졌다.

“이 형이 좀 멋지지?”

“예, 웬일로.”

“나도 그런 생각이 들더라니까.”

“대단한데요?”

“원래 내가 좀 대단하잖아?”

안무 팀장님이 박수를 한 번 쳤다.

“얘들아, 각자 대형으로.”

멤버들이 대형을 맞추자 안무 팀장님이 구석진 자리로 가더니 손가락을 까딱였다.

“시작한다.”

시작한다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노래가 나왔다.

‘이번에는 실수하지 말자.’

시스템이 내 미래를 정해주는 건 아니잖아.

* * *

밤 10시가 되자 안무 연습 막바지에 다다랐다. 모든 기운을 안무 연습에 쏟아부은 탓인지 온몸이 피로했다.

“…내일 올게.”

“감사합니다!”

안무 팀장님이 연습실을 빠져나가고 멤버들은 하나둘씩 바닥에 드러누웠다.

“와, 오늘 연습 빡셌어!”

주이든이 팔을 흔들더니 몸을 부르르 떨었다.

“노래가 통통 튀어서 이번 안무는 쉽겠다고 생각한 과거의 나, 매우 친다. 이번 안무는… 미쳤어…….”

“인정~”

“근데 안무가 예뻐.”

“인정~”

이번에는 대한민국에서 알아주는 댄스팀에게 안무를 맡겼다. 거기다가 안무 팀장님을 고용하여 안무를 조합했더니 안무가 빡세긴 했다.

아마 본부장님과 팀장님도 올해가 기회라는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다이아몬드 멤버의 부재와 키오의 열애설.

우리에게 라이벌은 그나마 크래프트밖에 없으니까.

‘잘하면 대상을 받을 수 있다는…….’

거기다가 이번에는 회사 전 직원에게 블라인드 테스트를 실행했다.

그랬더니 HOPE이 좋다는 반응과 함께 ALL ‘O’를 받을 정도였다. 지난번에는 노래가 별로라며 ‘X’가 꽤 많이 나왔었는데.

“그런데 우리 막내는 왜 아까 절었어? 한 번도 안무 연습할 때 절었던 적이 없었잖아.”

“아, 피로해서 그런가 봐요.”

“그래? 하긴 그럴 때도 있지~ 무대 위에 올라가도 안무를 까먹는데.”

벽에 기대서 앉아 있다가 나도 누워버렸다. 옆에 누운 이정진이 물었다.

“왜, 나비야? 컨디션이 안 좋아?”

“컨디션이 안 좋은 건 아니고.”

“잠을 못 잤구나?”

“어… 어떻게 알았어요?”

이정진이 웃으면서 말했다.

“눈 밑에 다크서클이 있는데 알 수밖에.”

그랬나? 괜히 눈 밑을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왜? 안 좋은 꿈이라도 꿨어?”

“…죽는 꿈을 꿔서.”

“죽는 꿈?”

“네, 죽는 꿈이요.”

“원래 꿈은 반대야.”

“…아.”

꿈이 반대라. 마침 쉬는 시간이라서 멤버들에게 한번 물어보았다.

“형들은 꿈에서 계속 친한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할 거예요?”

뜬금없는 질문이었으나 화목현은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흠… 계속 생각날 만큼 굉장히 슬프겠지?”

계속 생각이 난다고? 나는 멤버들에게 다른 질문을 해보았다.

“그렇다면요. 형들은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갈 것 같아요?”

“언제로?”

“친한 사람이 살아 있는 과거로요.”

화목현의 미간에 골이 깊어졌다.

“글쎄… 나는 안 돌아갈 것 같은데.”

“왜요……?”

“왜긴. 돌아간다고 해도 같은 일이 반복될 수도 있잖아. 친한 사람을 잃는 아픔을 다시 느끼고 싶지 않거든.”

이것도 맞는 말이다. 내가 조금 충격을 받은 눈빛으로 화목현을 쳐다보자 정요셉이 나를 보며 놀렸다.

“우리 막내, 놀랐네~”

“안 놀랐어요. 요셉 형은요?”

“나? 나는…….”

처음으로 정요셉이 진중하게 고민했다.

“…돌아갈 것 같아.”

“이유는요?”

“이유~? 미래에서 못 보는 사람을 과거에서라도 보고 싶으니까?”

그 사람이 보고 싶어서.

“나는!”

주이든이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안 가!”

주이든이 연습실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다.

“과거로 돌아간들, 내가 원하는 미래가 와?”

“…….”

“과거로 돌아가면 나만 힘들잖아, 나만. 누가 알아줘.”

누가 알아주냐는 말에 머리가 띵했다.

“하지만… 시도 정도는 해볼 듯?”

나는 주이든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미래가 달라질지도 모르니까?”

“…….”

“노력한 자에게는 행운이 따른다!”

할 말을 끝낸 주이든은 다시 연습실 바닥에 누웠다.

“정진 형은요?”

“나만 남았나?”

이정진은 노트북을 바닥에 놔두고 고민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구체적인 상황을 제시해 줄래?”

“구체적인 상황이요?”

“나는 그렇게만 말하면 상상이 되는 타입이 아니라서.”

“그럼… 멤버들이 죽고, 정진 형이 혼자 남은 상황이에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이정진은 대답했다.

“그런 거라면 나는 돌아가.”

“…….”

“멤버들이라면 돌아갈 가치가 충분하니까.”

연습실에는 정적이 감돌았다.

“…그냥 그렇다고. 왜 정적이야.”

확신에 찬 대답이 부끄러웠는지 이정진은 고개를 숙이며 노트북을 다시 들었다.

“정진 형 부끄러워하는 거 봐.”

“안 부끄럽거든?”

주이든이 바닥을 두드리며 크게 웃었다.

“정진 형, 대박!”

한술 더 떠서 정요셉이 엄지를 들며 칭찬하자 이정진은 그러지 말라는 듯이 손을 휘저었다.

“우리 정진 형이 이렇게 우리를 좋아하는 줄은 몰랐단 말이지~”

슬슬 정요셉도 이정진을 놀리는 데에 시동을 걸었다.

“그렇지, 이든아~?”

“그러니까 말이야! 정진 형은 평소에 말이 없어서 우리를 귀찮아하는 줄 알았는데~”

정요셉이 아까 이정진이 했던 대답을 그대로 따라 했다.

“돌아갈! 가치가! 충분하니까!”

그걸 주이든까지 따라 하고 말이다. 저러다가 이정진한테 한 대 맞아야 정신을 차리지. 화목현은 주이든의 이마를 치면서 말렸다.

“둘 다 그만해. 정진이 얼굴 터지겠다.”

이정진은 노트북에 고개를 숙이며 얼굴을 묻었다.

“그래서 나비는?”

“네?”

화목현이 팔짱을 낀 채 나를 향해 턱짓했다.

“우리는 다 말했는데, 너도 말해줘야지?”

“저는…….”

이미 돌아왔는데.

난 긴장한 채로 주이든의 말을 기다렸다.

“범나비, 멤버들이 죽는 순간 눈앞에 선택지가 나타났어. 그 선택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어.”

“…….”

“멤버들이 죽기 전으로 돌아갈 것인가?”

주이든의 질문은 지금 나의 상황이 아닌가?

“…저는.”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돌아가지 않을 것인가.

“이렇게 고민한다고?”

“…저는 신중한 편이라.”

왠지 나는…….

“…또 돌아갈 것 같아요.”

“왜?”

“…그 이유는.”

나는 시선을 올려 멤버들을 쭉 훑었다. 멤버들을 놔둔 채 홀로 살아남은 나의 모습은 내가 아닌 것 같았다.

무엇보다 멤버들을 잃기 싫었다.

‘어……?’

그 순간 깨달았다.

내 트라우마가 ‘멤버들의 죽음’이 된 이유.

대상을 받으면 아이돌 노트는 사라진다고 했었다.

그러면 대상을 받기 전에…….

‘교통사고가 있었구나…….’

그래서 계속 회귀한 건가?

“뭐야? 범나비, 왜 대답이 없어.”

그 질문에 나는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까먹었어요.”

주이든이 코웃음을 쳤다.

“쟤는 쓸데없는 걱정이 너무 많아서 사소한 질문인데도 이렇게까지 고민한단 말이지.”

주이든이 혀를 차면서 자리에 누웠다.

“어? 나비야.”

“예?”

“코피 난다.”

화목현이 가져다준 휴지로 거울을 보며 코피를 닦아내는 순간이었다. 거울 안에서 또 다른 내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이돌 노트…….’

【이제 알았네?】

아이돌 노트가 직접 나에게 말을 걸었다. 이번에는 꿈속이 아닌.

【범나비.】

현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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