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의 1군 가이드-201화 (201/235)

201. 범나비의 트라우마

금금이의 모습이 과거의 내 모습이 겹쳐 보였다.

“…형이 왜 그런 말을 해.”

“왜긴. 네가 힘들잖아.”

금금이가 울분에 찬 표정을 지었다.

“나비 형이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어.”

“…왜?”

“…형은 나한테 포기하라고 안 할 줄 알았는데, 왜 나한테 포기하라고 말해.”

저 말은 키오 시절 내가 금금이에게 했던 말이었다. 멤버들을 포기하라고 했던 금금이와 멤버들을 포기 못 했던 나.

‘금금아, 왜 포기하라고 말해.’

‘…멤버들은 형을 쳐다보지도 않을 텐데?’

금금이가 나한테 했던 말을 지금은 내가 하고 있었다.

“멤버들은 너를 쳐다보지도 않을 텐데?”

“그래도 나는 멤버들을 믿어.”

금금이의 올곧은 눈빛에 나는 심장이 철렁거렸다.

‘그래도 나는 멤버들을 믿어.’

내가 저 말을 했었다.

“왜 믿어?”

“모르겠어…….”

“그냥 믿고 싶은 거야?”

“응, 그런 것 같아…….”

나는 금금이의 모습을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의 금금이는 키오 시절의 나였다. 숙소에서 멤버들이 오기를 한없이 기다리면서 언젠간 다시 예전처럼 돌아가길 바라는 나.

내가 키오에게서 벗어나니까…….

‘키오 시절의 내 역할을 금금이가 대신하고 있었네.’

그래서 금금이를 보며 마음이 살짝 무거웠다. 하지만 지금은 금금이가 리더니까 미래가 바뀔 수도 있었다. 나보다 리더 역할을 더 잘할 수도 있었고.

내 미래가 달라진 것처럼 키오도 뭔가 달라질 거라고 생각하면서 키오 시절 있었던 기억을 잊고 살았다. 사람은 언제나 이기적이니까.

툭.

물이 떨어지는 소리에 나는 고개를 떨구며 바닥을 확인했다.

“나비 형, 울어……?”

“아…….”

금금이의 말에 손가락으로 슥 뺨을 훑었다. 그리고 손가락에 묻어 나오는 눈물을 보고 그제야 울고 있었다는 걸 알아차렸다.

“…왜? 내 얘기가 그렇게 슬펐나?”

“아니야.”

“알아요. 형도 저를 위해서 말려주는 건데…….”

완벽하게 반대인 입장이 되어보니… 뭔가 마음이 울렁거렸다. 내가 나에게 하는 말처럼 느껴졌으니까. 제발 그러지 말라고, 포기하라고 부탁하는 마음.

“…금금아, 그래서 어떻게 하고 싶은 거야?”

“멤버들을 말릴 사람은 나밖에 없어서 끝까지 말리려고.”

“내가 널 말려도?”

“응, 아무리 나비 형이 말려도.”

당연하다는 듯이 미소를 짓는 금금이를 보면서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어쩔 수 없는 건가…….

‘원래 금금이의 자리가 내 자리였는데.’

약간 떠넘긴 듯한 느낌이 들어서 적잖이 미안했다.

나는 차가운 생수를 입안에 털어 넣으면서 금금이를 쳐다보았다. 할 말이 더 있는지 금금이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그리고!”

“…응?”

“형은 미안해할 필요가 없어!”

무슨 말이지?

“나비 형은… 그럴 사람이잖아.”

“그게 무슨 말이야. 자세히 말해봐.”

금금이는 아랫입술을 씹으면서 외쳤다.

“난 다 알아. 형이 숙소에 오라고 했던 이유도! 형이 미안하다는 듯이 눈물을 흘린 이유도!”

…내 마음을 네가 안다고?

“나비 형이었으면 이런 말을 했겠지?”

“…….”

“금금아, 미안해. 네 자리가 원래 내 자리였을 텐데. 내가 네스트로 안 갔다면 네가 힘들지 않았을 거야…….”

내 마음을 그대로 들여다보았나? 나는 살짝 떨리는 눈으로 금금이를 쳐다보았다.

“어떻게 알았어……?”

“형은 원래 그런 사람이잖아. 예전부터 그랬고.”

금금이가 왈칵 쏟아진 눈물을 손으로 닦으면서 말했다.

“내가 아이돌을 할지 말지 고민할 때.”

“…아.”

언제인지 기억이 났다.

“형이 그랬잖아. 내가 도와줄 테니까 아이돌 포기하지 말라고…….”

그랬었지. 까먹고 있었다. 금금이는 아이돌로서 빛나야 하는 존재였다. 그래서 포기하지 말고 나를 따라와 달라고 말했었다.

“형이 아니었으면 나는 이 자리에 있지도 않았어.”

“…….”

“그냥 지나가는 사람 중 하나였겠지. 그래서 항상 형에게 고마워.”

저 말에 시스템창이 떠올랐다.

【트라우마 수치가 낮아집니다. (70%)】

“…그리고 미안해.”

뭐가 미안하다고.

“이런 고민은 나 혼자 해결해야 하는데.”

“아니야.”

【트라우마 수치가 낮아집니다. (50%)】

곧 금금이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원래 나비 형한테는 말 안 하려고 했거든.”

금금이는 미안하다는 듯이 나를 보았다.

“그런데… 눈앞이 막막하고 숨이 막혀서 도저히 혼자 해결할 수가 없더라고. 그래서 나비 형에게 연락했어.”

저 마음, 안다.

“그랬어?”

“응…….”

“괜찮아.”

나는 금금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미안하고, 미안해서. 너에게 다 떠넘기고 나만 도망친 것 같아서.

그래도 너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다면.

“형에게 말했더니 속이 시원하네.”

“도움이 돼서 다행이네.”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미소를 지었다.

“응! 속이 뻥 뚫려!”

원래의 활기찬 금금이로 돌아왔다. 그리고 금금이에게 겹쳐서 보였던 과거의 내 모습도 사라졌다. 그것도 완벽하게.

망령처럼 내 주변을 돌아다니던 키오의 꼬리표가 남아 있었는데. 이 대화를 통해 키오와 나는 완전히 끊어졌다.

이제는 금금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걱정할 필요도 없고, ‘키오’라는 단어에 놀랄 필요도 없겠지.

“연락해 줘서 고마워.”

“…형!”

금금이가 나에게 안기며 펑펑 울었다. 울고, 또 울고.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게 울던 금금이의 눈이 팅팅 부었다.

기절한 금금이를 보고 있는 와중에도 계속 시스템창이 나타났다.

【트라우마 수치가 낮아집니다. (30%)】

점점 트라우마 수치가 낮아지네. 주이든이 소파에서 자는 금금이를 보면서 어깨를 으쓱였다.

“이금금 자는데?”

내 품이 포근했는지 금금이는 잠에 빠졌다. 금금이가 자는 동안 멤버들이 거실에 모여서 나를 쳐다보았다.

“나비야, 듣고만 있었는데… 정말 듣고만 있었거든?”

“예.”

“나비는 금금이 도와주고 싶어?”

금금이를 도와주고 싶냐는 화목현의 질문에 나는 고민에 휩싸였다.

‘…도와줘?’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이건 내가 도와줄 필요가 없을 것이다. 금금이가 알아서 잘 헤쳐 나가겠지.

“아니요. 도와주고 싶진 않아요.”

“…그래?”

“제가 도와준다고 한들 키오 멤버들이 돌아올까요?”

…이미 키오는 금금이 중심으로 이루어진 그룹이 되었다. 그리고 실패했을 때 느꼈던 감정을 다시 느끼고 싶진 않았다. 이정진이 다가오더니 나에게 말을 걸었다.

“막내 표정이 뭔가 후련한 표정이네.”

“그렇게 보여요?”

“어, 원래 울고 나면 조금 후련하던데.”

“아…….”

“막내가 엉엉 우는 모습은 처음 봐서 신기했어.”

“엉엉 울진 않았거든요?”

“평소에는 이렇잖아.”

이정진이 소파에 앉아 팔짱을 낀 채 몸을 살짝 뒤로 뺐다.

“막내는 맨날 소파에 앉아서 팔짱 끼잖아.”

지금 이정진이 나를 따라 하고 있는 건가? 내가 평소에 저런다고?

“항상 경계한 채로 주위를 보잖아. 언제나 우리 뒤에 서 있고. 마치 습관인 것처럼.”

“…습관이요?”

주이든이 과자를 먹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어, 범나비. 너 자주 저래.”

“제가 언제 저랬어요.”

“맨날 눈썹 치켜세우고 지켜보잖아.”

“이든 형의 말은 신뢰가 전혀 안 가는데.”

“야!”

그러자 주이든의 입에 있던 과자 부스러기가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나는 기겁하며 휴지를 꺼내서 바닥에 떨어진 과자 부스러기를 닦았다.

“이러니까 형에 대한 신뢰가 없죠.”

“내가 무슨 신뢰가 없어.”

내가 주이든과 티격태격 싸우자 정요셉이 말렸다.

“우리 이든이가 신뢰가 없는 행동을 하긴 하지만. 그래도 우리 막내, 형을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야지~”

“정요셉!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말 알아?”

“내가 밉다니~? 우리 이든이, 이런 친절한 친우가 어디에 있어~?”

“친절은!”

“뭐라고…….”

정요셉이 손바닥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며 울상을 지었다.

“나는 너를 친우로 생각했는데…….”

“연기는 꺼져.”

“연기자는 상처받았어요~”

“받든지 말든지!”

“아이, 재밌어~”

이러면서도 정요셉이 과자를 달라고 손바닥을 내밀자 주이든은 과자를 나눠주었다. 금방 싸우고 금방 화해하는 둘의 모습에 나는 못 말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우리 막내는 잘 모르겠지만, 진짜로 저런 태도긴 해~”

“진짜요?”

“응~”

…진짜로? 믿을 수가 없다.

주이든이 웃음을 터트리면서 또 과자를 내 얼굴에 뿜었다. 나는 손으로 얼굴을 쓸며 눈을 감았다가 떴다.

“이든 형?”

주이든은 미안하다면서 계속 웃었다.

“아, 미안! 네가 너무 웃겨서.”

“가끔 이든 형은 너무 얄미워요.”

“그래서 뭐?”

“…형이라서 다행인 줄 아세요.”

내 진심을 담은 말이었다. 주이든은 테이블에 턱을 괴며 작게 비웃음을 흘렸다.

“너도 동생이라서 다행인 줄 알아. 친구였으면 정요셉보다 더한 고통을 당했을걸.”

“유치해요.”

“너도 유치하거든?”

화목현이 길게 한숨을 쉬었다.

“둘 다 유치해.”

내가 주이든과 동급 취급을 받는다고? 어이가 없다. 나랑 주이든은 서로를 노려보다가 동시에 입을 열었다.

“형!”

“목현 형…….”

화목현은 꿋꿋하게 미소를 유지하면서 화제를 돌렸다.

“금금이 어떻게 할까? 숙소로 보내야 할 것 같은데.”

금금이는 아직도 소파에 누워서 자고 있었다. 시끄러워서 깰 법도 한데… 이정진이 금금이를 보면서 어깨를 으쓱였다.

“숙소로 보내야지.”

“정진아, 어떻게 보내게?”

화목현의 질문에 이정진은 정말 모르냐는 듯이 눈이 커졌다.

“깨우면 되지.”

간단하고도 쉬운 정답이네. 곧장 정요셉은 금금이의 어깨를 잡아 흔들며 깨웠다.

“금금아, 일어나. 저녁이다~”

“예……?”

“저녁이라고. 숙소로 돌아가야지.”

“아!”

금금이가 소파에서 일어나 머리를 정리했다.

“저 얼마나 잤어요?”

“거의 2시간?”

“와!”

금금이는 연신 허리를 숙이며 죄송하다고 말했다.

“이렇게 잘 생각은 없었어요. 최근에 잠을 잘 못 자서 그런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하다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금금이의 핸드폰에 벨소리가 울렸다.

“어?”

“누군데?”

“멤버요.”

키오 멤버에게 연락이 왔는지 금금이의 표정에 화색이 돌았다.

“누군데?”

“여우진요.”

여우진? 걔가 연락을 한다고?

“여우진? 걔 아니냐?”

주이든이 여우진이라는 이름을 듣고는 난색을 표했다.

“낯가리면서 눈이 무서운…….”

“눈이 무섭게 생기긴 했지만 착해요!”

금금이가 해명을 한 뒤에 여우진의 전화를 받았다.

“어, 우진아. 어, 뭐라고? 지금 어디라고? 뭐!?”

무슨 내용을 듣고 있는 건지 금금이의 얼굴이 빨개졌다.

“숙소 밖에 애들이 왔대요.”

키오 멤버들이 왔다는 말에 나는 놀란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옆에서 듣던 정요셉이 왜 그러냐는 듯이 내 옆구리를 찔렀다.

‘…내가 기억하는 키오 멤버들은 이렇게 다른 멤버를 찾거나 하는 애들이 아닌데.’

정요셉을 보면서 나는 그저 미소를 지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래?”

서로 관심이 없어서 멤버들의 생일조차 모르는 놈들인데.

‘바뀌었네.’

금금이는 전화를 받더니 기쁨을 숨기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나비 형, 애들이 나 많이 기다렸대!”

“잘됐네.”

그래도 멤버들이 금금이에게 의지하긴 하나 보다.

“어, 우진아. 내려갈게!”

금금이가 급하게 나가려고 하다가 갑자기 움직임을 멈췄다.

“형들, 감사합니다!”

“그래, 다시는 오지 말고.”

“넵, 이든 형!”

주이든이 인자하게 손을 흔들었고 나는 금금이의 뒤를 따라 나갈 준비했다.

“형도 나가려고요?”

“어, 너한테 할 말도 있고.”

살짝 고개를 숙여 멤버들에게 말했다.

“저도 다녀올게요.”

그러자 화목현이 말했다.

“금금이 배웅 잘하고 와.”

“예.”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금금이가 내 팔을 붙잡았다.

“형은 여기까지만 오면 돼.”

“…….”

“나 따라오지 마.”

금금이가 엘리베이터에 오르자 나는 발을 떼고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금금이를 따라서 나간다면 내가 여전히 키오 시절을 놓지 못한 사람처럼 느껴질 것 같았기에.

“다시는 이런 문제로 오지 않을게.”

“그래.”

“그러니까 형도 우리 너무 걱정하지 마.”

씩씩한 금금이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주 연락해.”

“응! 형도 잘 지내!”

나는 금금이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형도 행복하길 바랄게!”

이 말을 끝으로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1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를 보고 나서야 나는 뒤를 돌아 숙소의 현관문을 열었다.

“뭐야? 왜 이렇게 일찍 와.”

“금금이가 따라오지 말래요.”

“그래? 그럼 범나비, 너도 밥 차려!”

“예, 예…….”

나는 멤버들이 부엌에 모여서 밥 차리는 모습을 가만히 눈에 담았다. 그때 시스템창이 번쩍이며 등장했다.

【트라우마 수치가 낮아집니다. (0%)】

【범나비의 트라우마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트라우마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범나비의 새로운 트라우마가 생성됩니다.】

.

.

.

【새로운 트라우마를 공개하기 전에 정답 풀이를 먼저 드립니다.】

【시스템의 조각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시스템의 조각이 눈앞에서 깨졌다.

‘깨져?’

그러더니 시스템창이 떠올랐다.

【새로운 트라우마가 공개됩니다.】

【키오 → 멤버들의 죽음】

멤버들의 죽음이라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