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 좋은 일
귀신 소동 이후, 연달아 좋은 일이 생겼다.
“목현 씨가 이번에 예능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오민석 팀장님의 말이 끝나자마자 우리는 화목현을 향해 박수를 쳐주었다. 이정진은 화목현에게 물었다.
“목현아, 어떤 예능인데?”
“…체험학습 컨셉? 지방으로 내려간 다음 일손을 도와서 돈을 받는 식으로 진행될 것 같아.”
“일손 돕는 예능? 너랑 어울리네.”
“응, 그래서 한다고 했어.”
이번에 화목현이 단독으로 예능에 출연한다. 예능 제목은 하루 이틀.
“얘들아, 축하해 줘서 고마워.”
좋은 일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리고 앨범 선주문 1일 차에 벌써 50만 장 돌파했어요! 이 추세로 보면 100만 장은 물론, 150만 장도 돌파할 것 같아요.”
오민석 팀장님이 손뼉을 마구 쳤다.
‘벌써 50만 장…….’
미니 앨범인데 이렇게 좋아해 주시다니… 팬들의 사랑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오민석 팀장님이 이정진을 바라보았다.
“이번 앨범 컨셉이 팬들에게 먹혔나 봅니다. 이정진 씨가 열심히 해준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아, 아닙니다.”
이정진은 이번 앨범에 엄청나게 몰입했다. 그래서인지 앨범의 완성도도 꽤 높았다.
“일단 축하할 소식은 여기까지인데.”
오민석 팀장님이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말했다.
“오늘 들은 소식인데… 다이아몬드 멤버 한 명이 탈퇴한다고.”
다이아몬드? 이건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별다른 일은 없었던 것 같은데.
‘어쩌다가?’
주이든도 뜻밖이라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턱을 괴었다.
“팀장님, 왜 탈퇴한대요?”
“마약을 하다가 걸렸다는데요.”
마약? 갈 데까지 갔구나.
“이정훈이 마약 걸렸을 때도 연예계가 술렁거렸잖아.”
이정훈 이야기가 나오자 정요셉의 이마에 주름이 생겼다.
“이정훈이랑 같이 마약 한 사람을 찾다가 다이아몬드 멤버가 걸렸나 봐. 다이아몬드가 대형 기획사 소속이라 그런지 처음에는 조용히 넘어갔는데…….”
오민석 팀장님이 입맛을 다셨다.
“그 뒤로 클럽에서 마약을 하다가 팬한테 걸렸대.”
팬한테 마약을 걸려? 팬들의 마음은 무너졌겠다.
“마약 하는 사진이 유출되면서 경찰 쪽에도 들어간 모양이야. 그래서 탈퇴하게 되었다고 하던데.”
“오늘요?”
“어, 오후에 기사 올라올 거야.”
정상으로 올라갈 것 같았던 다이아몬드가 나락으로 가는구나.
“그리고…….”
“그리고?”
“만우절에 아이돌 열애 기사가 날 거다.”
만우절에 열애 기사요?
“누군데요?”
“아마 키오가 아닐까 싶은데.”
키오… 키오라는 말에 멤버들이 일제히 나를 쳐다보았다.
“왜 나를 봐요?”
금금이가 걱정되긴 했지만… 내가 기억하는 키오는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열애 기사가 뜨면서 연달아 마약 관련 기사도 뜰 거고.
하지만 키오는 무너지지 않았다. 몇몇은 군대로 도망을 가고 남은 인원으로 키오를 이끌어나갔기 때문에.
그게 나였지.
“키오 쪽은 문제가 많은 모양이더라.”
“…왜요?”
“리더가 멤버들이랑 사이가 안 좋대. 심지어 광고 촬영장에서 멤버들끼리 싸웠다고 하더라.”
…리더라면 금금이잖아? 나는 오민석 팀장님에게 물었다.
“…키오의 리더라면 금금이요?”
“응, 금금이가 먼저 멤버 멱살을 잡고 소리를 질렀다고 하던데…….”
금금이가 열심히 멤버들을 케어해도 잘 안 되는 모양이네. 어차피 키오는 안 될 운명이었나…….
나는 허벅지에 올라가 있는 손을 그러쥐면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키오 시절에 들었던 말들이 머릿속에서 떠다녔다.
리더가 부족해서, 리더가 잘 통솔하지 못해서, 리더가 멤버를 잡아주지 못해서 생긴 일이라며 모두가 손가락질을 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도 꿋꿋하게 버텼다.
욕을 먹어도 팬들이 있었으니까. 팬들은 나의 기둥이자 나의 중심을 잡아주는 사람들이었다.
끝까지 버티고 싶었다. 그래서 죽을 만큼 노력하면서 키오를 정상에 올려두었다. 그랬더니 내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바로 성대 결절이 왔으니까.
다른 것들에 신경을 쓰는 탓에 내 몸을 보살피지 못한 것이다. 소속사 측에 성대 결절이 왔다고 말했지만 활동을 중단할 수는 없었다..
“…금금이한테 연락은 안 왔어?”
화목현이 걱정스러운 말투로 나에게 물었다.
“…아니요. 연락은 오지 않았어요.”
나는 단호하게 말하며 오민석 팀장님을 쳐다보았다.
“그 밖에 다른 전달 사항이 있을까요?”
“…음, 없습니다. 그리고 이번 주에 뮤직비디오를 찍는다고 하니까, 다들 컨디션 관리 잘하세요.”
그렇게 회의가 끝나는 동시에,
(이금금) 형 연락해도 돼요?
금금이에게 톡이 왔다.
* * *
숙소 소파에 앉아 나는 하염없이 금금이의 톡을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도 답장을 보내지 않았으니까.
“야, 범나비. 연락할 거냐?”
주이든이 소파에 누워서 나를 올려다보았다.
“글쎄요.”
“…그래, 이금금한테 가도 이 형은 말리지 않는다.”
“좀 말려주죠?”
“내가?”
그나저나 말리지 않는다면서 왜 내 옷깃을 잡고 있는 건데.
“근데 왜 옷깃을 잡고 있어요?”
주이든이 다리를 달달 떨며 말했다.
“네가 힘든 표정을 짓고 있으니까 그렇지.”
“…그러게요. 저한테도 호구 같은 모습이 있나 봐요.”
“뭐, 호구?”
주이든이 혀를 차면서 상체를 일으켰다.
“너는 입체적인 사람이야. 무슨 호구라고 표현해.”
“…….”
“다른 사람들이 너를 본다면 호구라고 욕을 하겠지. 저 새끼 왜 손절도 못 하고 저렇게 질질 끄냐면서.”
“…….”
“근데 그게 맞는 거야. 사람 사이의 인연을 어떻게 한순간에 끊어.”
맞다. 사람 사이의 인연은 쉽게 끊을 수 없다.
“범나비, 키오랑 만나고 싶으면 만나.”
“…….”
“네 마음이 가는 대로 하라는 거다.”
주이든은 초콜릿이 들어간 과자를 입에 넣으면서 우물거렸다.
“차라리 금금이를 숙소로 데리고 와.”
“예?”
“목현 형이 너한테 말을 못 하겠다고, 내가 대신 말해보라고 부탁하더라.”
그 말에 나는 주이든을 쳐다보았다.
“네가 울상으로 있으니까 목현 형이 걱정하잖아. 나도 걱정이 되고.”
“…제가 언제 울상이었다고.”
“지금도 울상이거든? 흑흑!”
주이든이 흑흑거리면서 울상을 지었다. 내가 언제 저렇게 울상을 지었다고. 그럴 리가 없는데. 괜히 손으로 얼굴을 만졌다.
“네가 그 회사에서 어떤 말을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네가 키오 이야기만 나오면 울상을 지으니까 짜증이 솟구치거든?”
그러자 각 방에서 멤버들이 나오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금금을 이 숙소로 불러.”
“…예?”
“안 나가고 싶다면 직접 불러야지.”
맞는 말이다. 그리고 나도 왜 이렇게 떨고 있는 건가. 무슨 미션 같은 걸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대화를 나누면 되는 일인데…….
‘…그래, 뭐가 무섭다고.’
금금이에게 답장을 보내려는 순간이었다. 시스템창이 나타났다.
「문제 28, 범나비의 트라우마를 이겨내기! (100%)
페널티:시스템의 조각을 못 얻음
정답 풀이 : 시@#스@#!템의 !#@!조#각」
【범나비의 ‘트라우마’가 공개됩니다.】
【‘키오’】
…이제야 내 트라우마가 공개된다고? 그것도 ‘키오’라니.
내 인생을 흔들 만큼 키오 시절이 강렬했단 말인가. 그나저나 금금이에게 답장을 보내야 하는데. 핸드폰을 쥔 손에서 간신히 힘을 빼고 거친 호흡을 뱉었다.
‘침착하자.’
그리고 정답 풀이를 자세히 확인했다.
‘시스템의 조각……?’
웬 시스템의 조각이…….
“범나비? 안 불러?”
주이든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금금이에게 답장을 보냈다.
(범나비) 우리 숙소로 와
(범나비) 형들이 밖에 나가는 건 안 된대
답장을 보낸 뒤 쿠션에 얼굴을 묻었다. 트라우마 공개가 타격감이 있었던 모양인지 잠이 몰려왔다.
* * *
몇 분 뒤 금금이가 숙소로 찾아왔다.
“안녕하세요, 형들!”
금금이가 싹싹하게 인사를 하자 화목현이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금금아, 어서 와.”
“오랜만입니다, 형들!”
그런데 금금이의 목소리가 좋지 않았다. 딱 들어도 알 수 있었다.
“금금아, 너 목소리?”
금금이가 손바닥으로 목을 문지르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아, 목소리? 무리하게 목을 쓰는 바람에 성대 결절이 와서…….”
덤덤한 금금이의 말에 나는 숨이 턱 막혔다.
【트라우마가 높아집니다. (101%)】
지난 생에서의 내 모습이 떠올라 시스템창이 뜬 모양이었다.
“왜 성대 결절이 온 거야?”
“…회사에서 무리하게 일을 했거든. 뭐, 우리 소식은 이미 아실 것 같은데!”
금금이는 말하기 싫은지 말을 얼버무렸다. 금금이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본 결과, 금금이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뭐가 그렇게 힘들었으면 살이 쪽 빠져서.
“…금금아, 왜 연락했어?”
금금이가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그냥 형이 보고 싶었어.”
그 모습이 어쩐지 예전의 나와 겹쳐 보였다. 그땐 내가 금금이를 보고 싶어 했는데.
“형은 내 상황을 조금이라도 알 것 같아서.”
“…알아.”
“잠깐만…….”
금금이가 눈물을 흘렸다. 나는 그런 금금이의 모습을 놓치지 않고 계속 바라보았다.
“형, 내가 키오의 리더잖아.”
“응.”
“그런데 회사 사람들이 다들 내 탓이라고 하니까.”
내가 들었던 말들을 지금은 네가 고스란히 받고 있는 모양이구나.
“금금아, 여기.”
“감사합니다.”
금금이는 화목현이 건네준 휴지를 받아 눈물을 닦았다.
“이번에 앨범이 나오거든.”
“응.”
“…그런데 곧 열애설이 터진다고 하니까.”
금금이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그 말을 들은 주이든이 팔짱을 낀 채 말했다.
“멤버들에게 좀 조심하라고 말하면 되지 않나?”
주이든이 간단명료한 대답을 내놓았으나 금금이는 고개를 저었다.
“멤버들에게 말했는데도 말을 안 들어요.”
“왜 말을 안 듣는데?”
“…연습생 시절부터 열심히 했으니까 이제 좀 쉬고 싶대요. 어차피 회사에서도 멤버들의 사생활에 대해서는 놓고 있거든요. 어이없죠?”
금금이는 주먹으로 가슴을 내려쳤다.
“우리 키오 멤버들이 다들 실력은 좋거든요?”
“…….”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제 욕심이었을까요?”
“…욕심은 아니야.”
“그렇죠?”
씁쓸한 분위기 속에서 정요셉이 물을 건네주었다.
“금금아, 이거라도 마셔~”
“감사합니다…….”
금금이는 울먹거렸다.
“우리 멤버들, 그렇게 나쁘지 않거든. 착해… 착한데 애들이 인기를 누리니까 그게 오래갈 줄 알았는지 지금은 그냥 자신을 놔버렸어.”
울분이 섞인 말투로 말하던 금금이는 이내 울음을 터트렸다. 고개를 떨군 채 울음을 삼키는 금금이를 보면서 과거의 내가 떠올렸다.
‘금금아, 우리 잘할 수 있어.’
‘형은 몰라.’
‘뭘 모르는데.’
‘아이돌 활동만 한다고 미래가 보장되진 않잖아. 그래서 사업을 해야 한다니까?’
금금이를 말렸던 때가 있었다.
‘왜 그렇게 바뀌었어.’
‘…아이돌은 쉬워. 이미 성공했잖아.’
‘…뭐가 쉬운데?’
‘우린 대상도 받았잖아. 이제 끝이야.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다니까? 이제 남은 건 사업밖에 없어.’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다며 내 손을 뿌리친 금금이였다.
원래 사람의 마음은 쉽게 바뀐다. 그 마음을 원래대로 돌려놓는 건 어렵지만.
“…금금아.”
나는 울고 있는 금금이를 불렀다. 아래로 떨궜던 고개를 든 금금이가 나를 쳐다보았다.
‘나를 보는 것 같네.’
우린 그대로인데, 우리의 상황은 바뀌었네.
“…형?”
“사람의 마음은 잘 안 바뀌어.”
쉽게 손에 넣은 성공은 아이돌에게 독이 된다.
“그러니까 너도 포기해.”
“포기 못 해.”
“…왜 포기를 못 해.”
“애들은 돌아올 거야.”
“왜 그렇게 생각해?”
“그거야…….”
금금이는 곰곰이 생각하면서 머리를 굴렸다. 나는 마치 과거의 나에게 말하는 것처럼 단호하게 말했다.
“애들은 안 돌아와.”
【트라우마 수치가 낮아집니다. (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