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 일본(1)
솔직히 놀라긴 놀랐다. 일본 팬분들이 많을 줄은 몰랐기에. 아직 네스트는 일본 활동을 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인기가 많을 줄이야.
‘돌연프의 영향이 큰 건가…….’
돌아온 연습생 프로젝트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었다. 우리는 일본 팬들에게 인사를 한 뒤에 차에 올라탔다.
나는 맨 뒷자리에 앉아서 창문을 열고 일본 팬들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 * *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방을 정하기 위해 멤버들과 가위바위보를 했다. 결국 나랑 화목현, 정요셉과 이정진이 같이 방을 쓰게 되었고 주이든이 혼자 방을 독차지해 버렸다.
촬영하기 전까지 시간이 남아서 일단 주이든의 방에 모이기로 했다.
‘…이대로 소파와 한 몸이 되고 싶은데.’
나른하게 휴식을 즐길 때였다. 옆에서 계속 심심하다고 말하던 정요셉이 벌떡 일어나더니 입을 열었다.
“우리 나가볼까~?”
정요셉의 말을 들은 김연호가 말했다.
“3시간이나 비니까 놀다 와.”
그 말에 정요셉과 주이든이 내 양팔을 잡더니 일으켜 세웠다. 나도 가는 거라고?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나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멤버들과 호텔에서 나왔다. 그런데 어디로 갈지 정하지도 않고 나오나?
“어디로 가요?”
내 질문에 화목현이 핸드폰으로 검색을 하더니 말했다.
“이 근처에 타워레코드가 있대.”
타워레코드라면 앨범을 판매하는 곳 아닌가?
“타워레코드요?”
“우리 앨범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그 말에 정요셉이 방방 뛰었다.
“우리 앨범을 볼 수 있는 건가~?”
해외에서 우리 앨범을 보면 기분이 좋을 것 같긴 했다. 이번 도둑 GAME 앨범이 일본에서 10만 장이나 팔린 걸로 기억하는데.
“그럼 갈까?”
지도를 보는 화목현을 따라 우리는 타워레코드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거의 다 도착했는지 화목현이 핸드폰을 내려놓고 고개를 들었다.
“저기네.”
화목현이 타워레코드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우리는 타워레코드에 들어가자마자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우리 앨범 저기 있다!”
주이든이 제일 먼저 찾아버렸다. 알고 보니 K-POP 코너가 따로 있었다.
“와, 와……!”
주이든이 앨범을 찾았다며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우리 앨범이기는 하지만 일본에서 보니 느낌부터 다르긴 했다.
‘네스트라는 이름으로 앨범이 나오다니.’
왠지 모를 희열이 느껴졌다.
키오 시절엔 바빠서 이런 희열을 느낄 새도 없이 지나갔었다. 이렇게 앨범을 직접 보다니 뿌듯한 마음이 컸다.
“…와, 우리 앨범 다 있어.”
주이든이 주변을 훑어보며 눈빛을 반짝였다.
“진짜 우리 앨범이 다 있네~?”
정요셉도 신기하다는 듯이 우리 앨범을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그때 우리를 부르는 목소리에 다들 고개를 돌렸다.
“네스트?”
일본 팬으로 추정되는 분이 우리가 네스트인지 물었다. 일본어를 배우지 않은 우리는 서로 눈치를 보았다.
“일본어 할 줄 아는 사람?”
다들 대답이 없었지만 나는 키오 시절 일본어를 배워서 대화 정도는 할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내가 일본어로 대답하자 일본 팬은 눈을 크게 떴다.
“어? 진짜 네스트 맞아요?”
“네, 맞아요.”
키오 시절 혹독하게 일본어를 배운 기억이 있었다. 그걸 이제야 써먹다니. 멤버들은 나에게 언제 일본어를 배운 건지 묻고 싶어 하는 것 같았지만, 앞에 일본 팬이 있어 눈치만 살살 보았다.
“저, 네스트 좋아해요!”
“감사합니다.”
주이든이 무슨 대화를 하고 있냐는 듯이 내 옆구리를 툭 쳤다.
“우리를 좋아한대요.”
내 말에 멤버들이 감사 인사를 건넸다.
“왜 좋아하게 됐는지도 물어봐 줘.”
이정진의 질문을 그대로 일본 팬에게 물어봤다.
“어쩌다가 네스트를 좋아하게 됐어요?”
“그… 돌아온 연습생 프로젝트를 보고 좋아하게 됐습니다.”
“오! 좋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돌아온 연습생 프로젝트를 보고 좋아하게 됐구나. 역시 돌연프의 파급력이 세긴 세네.
“돌아온 연습생 프로젝트를 보다가 좋아하게 됐대요.”
그 말을 들은 멤버들은 고맙다고 말하며 일본 팬과 악수를 했다. 일본 팬이 자기는 이만 가보겠다고 했고, 잠시 후 멤버들은 나를 빤히 쳐다봤다. 먼저 말문을 연 사람은 화목현이었다.
“나비야, 일본어는 언제 배운 거야?”
“…잠이 안 올 때 틈틈이 공부했어요.”
“그랬어?”
“언제 해외에 진출하게 될지도 모르잖아요.”
거짓말 같은 이 말을 멤버들은 그대로 믿었다.
“우리 막내, 그럴 것 같긴 했어~”
그럴 것 같긴 했다니? 몇 분 더 타워레코드에서 앨범을 살펴보고 있을 때 이정진이 말했다.
“사람들이 우리 알아보기 시작한 것 같거든? 이제 가자.”
주변 사람들이 우리를 알아보기 시작했는지 사진을 찍으며 수군거렸다. 점점 몰려오는 인파를 보면서 우리를 자리를 피했다.
해외에서 민폐를 끼치면 안 되니까.
* * *
우리는 호텔에 갔다가 돌아온 연습생 프로젝트 스튜디오에 도착해 인터뷰를 준비했다. 그때 김연호가 다가오더니 사람들이 많은 곳을 눈짓하며 말했다.
“저쪽이 돌연프 시즌 2 PD님.”
…돌아온 연습생 프로젝트 시즌 2 PD님? 왜 여기에 계신 거지……?
“얘들아, 인사해. 이번에 돌아온 연습생 프로젝트 시즌 2를 맡은 박희성 PD님.”
김연호의 말에 우리는 일어나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그러자 박희성 PD가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안녕?”
돌연프 PD가 바뀌었네? 하긴 돌연프 시즌 1에 있던 스태프들이 투두 네스트로 많이 빠져서 바뀔 만도 했다.
“별말을 하러 온 건 아니고. 이건 내 명함.”
박희성 PD가 명함을 내밀어 화목현이 받았다.
‘…조금 놀랐네.’
돌연프 시즌 2의 PD를 보게 될 것이라고는 예상을 못 했기 때문에.
“내가 이번에 돌연프 시즌 2를 맡게 되었거든? 그런데 부탁을 좀 하고 싶어서.”
무슨 부탁?
“네스트가 돌아온 연습생 프로젝트 시즌 2를 좀 홍보해 주면 좋겠거든.”
홍보라… 안 된다고 해봤자 박희성 PD는 어떻게든 우리로 홍보를 할 것 같은데.
“어떤 식으로 홍보를 진행하면 되나요?”
화목현이 묻자 박희성 PD가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나중에 인터뷰 하나를 진행할 예정이거든.”
“…….”
인터뷰만 해주면 되는 건가? 김연호가 미소를 지으면서 음료수 하나를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내가 너희 매니저에게 부탁했는데, 너희들이 수락을 안 하면 못 한다고 그래서.”
김연호가 먼저 선을 그었군.
“너희들은 어때? 할래?”
화목현이 고개를 돌려 멤버들의 얼굴을 확인했다.
“이상한 질문만 없다면 괜찮습니다.”
“당연히 없지.”
박희성 PD가 이상한 질문은 없을 거라며 큰소리치며 말했다.
“그럼 하겠습니다.”
“네스트는 시원시원하네.”
어차피 이상한 질문을 해도 우리 쪽에서 대답을 안 하면 그만이니까. 박희성 PD가 음료수를 흔들면서 우리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럼 아무도 없으니까 한번 물어볼게.”
무슨 질문을 하려고? 박희성 PD가 눈동자를 굴러 주변을 둘러본 뒤에 입을 열었다.
“돌연프 시즌 1에서는 조작이 없었어?”
…응? 이게 PD의 입에서 나올 말인가. 멤버들도 어떠한 말을 꺼내지 못했다. 당연하지 않은가.
“박희성 PD님, 조작은 없었습니다.”
김연호가 우리 대신 말해주었다.
“…어? 조작했냐는 게 아니라, 단순히 진짜로 조작이 없었는지 궁금해서.”
“없었습니다.”
이건 내가 대답했다. 박희성 PD는 의외라는 듯 눈이 커졌다.
“진짜로 없었다고?”
“네, 없었습니다.”
“의외네.”
뭐가 의외라는 거지.
“그냥. 왠지 있을 것 같았거든.”
“…….”
“그래서 네스트가 대단하다는 거야.”
박희성 PD가 검지를 들면서 말을 이었다. 우리도 웃는 표정은 유지했다. 그래도 사회생활은 해야지.
연예계는 PD가 갑인 곳이 아닌가.
“감사합니다.”
내가 감사하다고 말하자 박희성 PD가 기분 좋은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칭찬해 줬으니까 부탁 좀 할게. 돌연프 시즌 2에 얼굴 좀 많이 비쳐줘.”
“…그건 소속사랑 협의해서.”
화목현이 안 된다는 말을 돌려서 하자 박희성 PD가 화목현의 말을 잘랐다.
“아, 그건 신경 쓰지 마. 너희가 돌연프 시즌 2에 얼굴만 많이 비쳐준다면.”
“…….”
“좋은 예능이 있을 때 꽂아줄 테니까.”
“…….”
“안 비치면 어쩔 수 없지만, 응?”
…부탁이 무슨 협박처럼 들리네?
우리가 예능 하나에 목마른 애들도 아니고.
그래도 웃자. PD 눈에 잘못 들면 연예계 생활이 조금 힘들어질 수도 있다.
이상한 소문은 쉽게 퍼지기 마련이라.
화목현이 감사하다는 듯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저희를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뭘, 크래프트한테 연락을 취했는데 안 된다면서 단박에 자르더라고? 네스트도 안 해줄 것 같더니만 이렇게 응해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돌연프 시즌 1에서 크래프트는 2위를 했는데 당연한 거 아닌가. 어떻게 2위를 한 그룹이 또 나오겠어. 자존심이 있는데.
“그나저나 이번에 FG 엔터랑 QTQ 방송국이랑 싸웠다고 하더라고.”
이건 몰랐던 사실인데. 우리가 모른다는 자세를 취하자 박희성 PD가 나불댔다.
“그래서 당분간 QTQ 방송국에 FG 엔터 애들은 안 나올 거야. 너희들은 잘해야지. 좋은 예능 들어가고 얼굴도 알리면 좋잖아?”
박희성 PD의 말을 들으니 딱 알겠다. 이거, 너희는 크래프트처럼 행동하지 말라는 협박을 하러 온 거네.
‘이래서 방송국 놈들은.’
군침 도는 미끼가 있으면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군.
“슬슬 인터뷰 시작한다고 하네요.”
그때 김연호가 등장해서 인터뷰 진행 상황을 알려주었다.
“그럼 나는 이만 빠질게.”
박희성 PD가 빠지자 김연호가 우리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너희들 중 일본어 할 줄 아는 사람 있어? 통역사분이 있긴 한데 아무래도 한계가 있으니까…….”
아무도 손을 들지 않고 나만 쳐다봤다.
‘음, 손을 들 타이밍인가…….’
나는 살짝 손을 들었다.
“제가 좀…….”
그러자 김연호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언제 일본어를 배운 거야?”
“필요할 것 같아서 배워놓긴 했어요.”
김연호가 잘했다면서 내 어깨를 두드렸다. 그때 일본 스태프가 와서 김연호에게 뭐라 말을 걸었다. 뒤에서 등장한 통역사가 우리에게 말했다.
“곧 인터뷰 시작한다고.”
그러자 김연호가 고개를 돌려 우리를 쳐다보았다.
“얘들아.”
김연호의 눈짓에 우리는 일어나서 촬영하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여러 대의 카메라를 보면서 의자에 앉았다.
“시작할게요.”
시작한다는 말에 우리는 입꼬리를 올렸다.
“안녕하세요. 먼저 소개부터 해주실까요?”
내가 마이크를 들어 말했다.
“안녕하세요. 네스트입니다.”
간결한 소개를 시작으로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이번에 한국과 별개로 일본에서 돌아온 연습생 프로젝트가 새로 시작되는데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평범한 질문이네. 평범하게 대답해야지.
“돌아온 연습생 프로젝트는 연습생이 아이돌이 되기 전 거치는 꿈의 무대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에서도 꿈의 무대가 펼쳐진다고 하니 기대되는데요. 연습생분들이 힘내셨으면 좋겠습니다.”
말하다 보니까 길게 대답했네.
“그렇다면 새로운 질문을 해볼 건데요. 돌아온 연습생 프로젝트 시즌 1 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때도 네스트로 데뷔하실 건가요? 이 질문은 나비 씨만 대답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나를 콕 집어서 묻는다고? 멤버들은 나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저한테만?”
“네, 그렇습니다. 질문이 어렵나요?”
“아니요. 질문이 너무 쉬워서 당황했습니다.”
나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그리고 카메라를 보며 말했다.
“저는 네스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