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의 1군 가이드-192화 (192/235)

192. 잠적(1)

정요셉이 눈물을 흘렸다. 울고 있는 정요셉을 보자마자 화나서 끓어올랐던 머릿속이 차분해졌다.

“요셉 형? 왜 울어요……?”

“미안. 괜히 눈물이 나서.”

정요셉은 소매로 눈물을 닦았다. 닦으면 닦을수록 옷소매에 묻은 흙이 얼굴에 묻었지만.

어쩐지 그 모습이 안쓰러웠다.

“…저도 미안해요.”

“어?”

“괜히 제가 그런 말을 해서 형이 잠적한 거잖아요.”

“우리 막내…….”

또 정요셉이 눈물을 흘리려고 할 때였다. 화목현이 우리 사이에 끼어들며 정요셉에게 물었다.

“아니, 그런데 요셉아. 왜 여행을 한 거야? 우리한테 불만이 있던 건 아닌 것 같고.”

“어떻게 멤버들에게 불만이 있겠어. 그냥 쪽팔렸어…….”

정요셉이 고개를 돌린 채 자신의 마음을 멤버들에게 털어놓았다.

“내 부모가 거짓말을 하고서 시상식에 들어왔다고 하니까…….”

“…….”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은 심정이었거든.”

“…….”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몰라.”

화목현이 한숨을 푹 쉬었다.

“그래서 여기로 온 거야? 우리한테 말도 없이?”

“말도 없이는 아니지!”

정요셉이 나를 보면서 말을 이었다.

“침대에 쪽지를 남겨놨잖아~?”

“쪽지를 남겨놔도 걱정은 되잖아…….”

정요셉은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아! 정진 형!”

이정진이 정요셉의 등을 사정없이 때렸기 때문에.

“그래도 요셉 형, 쪽지를 남겨놔도… 연락이 안 되면…….”

“그건.”

“…거기까진 생각을 안 했군요?”

멤버들이 한숨을 푹 쉬었다.

“…아, 아니. 나 그래도 오래 묵을 생각은 아니었어~”

“얼마나 묵을 생각이었는데?”

이정진의 물음에 정요셉이 턱을 문질렀다.

“이틀?”

“이틀?”

“응, 이틀~!”

이건 해맑아도 너무 해맑았다.

“이틀 정도면 괜찮잖아~? 이번 주에 단체 스케줄도 없고. 내가 스케줄 확인까지 했지~”

정요셉의 말대로 스케줄은 괜찮았다. 하지만 연락은 받아야지. 나는 이마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그래도 요셉 형, 연락은 받았어야죠.”

“…어? 그건 내가…….”

“문자, 전화 다 씹었잖아요.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기나 해요?”

내가 여행을 가라고 했던 말 때문에 정요셉이 잠적한 줄 알았다. 그래서 무서웠다. 이대로 정요셉이 영영 사라질까 봐…….

“…나비야, 진짜로 걱정했어?”

“그럼 가짜로 걱정해요? 당연히 걱정하죠. 형은 제가 사라지면 걱정 안 해요?”

“걱정하지…….”

“형도 걱정하는데 제가 걱정을 안 하겠어요? 저도 걱정은 하는 사람이에요.”

처음으로 정요셉에게 역정을 냈다. 이 순간 오히려 내가 잠적하고 싶었다.

“그래도 아무런 일도 없었으니까…….”

긴장하고 있던 몸의 균형이 무너지더니 바닥에 무너져 버렸다. 제일 먼저 주이든이 나에게 다가와 정요셉에게 호통쳤다.

“정요셉! 얘가 얼마나 걱정했는데! 미리 말을 했어야지.”

정요셉은 목 주변을 문지르며 나랑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서 무릎을 굽혔다.

“미안해.”

“괜찮아요.”

“화내지 마.”

“화가 난 건 아니에요…….”

나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안심, 기쁨. 많은 감정이 공존했다. 그때였다. 저 멀리서 누군가 정요셉을 불렀다.

“요셉아!”

“어, 할머니~ 저 여기 있어요.”

정요셉의 할머니가 뒷짐을 지며 우리를 쭉 살펴보았다.

“이 녀석들은?”

“아, 내 친구들!”

“친구들을 바닥에 앉혀놓고 뭐 해?”

“날 찾으러 왔대요.”

“널 찾으러 와?”

나는 정신이 번쩍 들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할머니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인사는 필요 없어. 내 이름은 김옥순이다.”

“…예?”

김옥순 할머니가 당당하게 말했다.

“너희들은 내 이름을 똑똑히 기억해. 이게 위대한 이름이거든?”

“예!”

우리의 대답이 만족스러웠는지 김옥순 할머니가 이제 집으로 들어가자고 말했다.

“너희들, 오늘 우리 집에서 자고 갈 거지?”

“네, 할머니!”

“네 이름은?”

“제 이름은 주이든입니다.”

“주이든? 이름이 특이하네.”

김옥순 할머니가 빨리 집으로 들어오라며 손짓했다.

“위대한 밥상을 차려줄 테니까, 빨리 들어와.”

집으로 들어가기 직전 화목현이 나랑 정요셉을 번갈아 보면서 말했다.

“나중에 요셉이랑 나비는 둘이서 화해해.”

화해는 무슨. 화해는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화해하는 시점을 놓치니 정요셉과 뭔가 어색하긴 했다.

계속 정요셉이 내 눈치를 보고 있었으니까.

‘그런 말을 하려고 했던 게 아니었는데…….’

정요셉이 멀쩡한 걸 봐서 다행이라는 말을 하려다가 그만 원망 섞인 말을 던져 버렸다. 이러려던 게 아닌데. 나는 손을 뻗어 정요셉을 붙잡아서 대화를 이어가려고 했다.

“나 안으로 들어가서 할머니 도와드리고 있을게.”

그런데 정요셉이 이 말을 남기며 먼저 집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정요셉에게 향했던 손을 내려놓으며 뻘쭘하게 서 있자 주이든이 말을 걸었다.

“야, 범나비.”

무슨 말을 하나 싶었는데.

“아니다.”

“예?”

“…음, 아니야.”

주이든이 말을 하다가 말았다.

“왜요? 무슨 말을 하려고 그랬던 건데요.”

“…참 범나비도 범나비다워서.”

저게 무슨 말이야? 정요셉이 의문스러운 말을 던지더니 트렁크에 있는 짐을 나르기 시작했다.

“너도 짐 옮겨.”

“예.”

나는 멤버들의 짐을 옮기면서 집에 들어간 정요셉을 관찰했다. 정요셉은 김옥순 할머니를 도우면서 밥상을 차리고 있었다.

정요셉에게 말을 걸고 싶어서 계속 집 주변을 알짱거렸다. 그러다가 물이 마시고 싶어서 부엌으로 들어가자 김옥순 할머니가 국자로 나를 가리켰다.

“너!”

“예?”

“칼질 좀 하냐?”

“…예, 좀 합니다.”

“그럼 옆에서 도와줘. 이 몸으로 음식 6인분을 만드는 건 좀 어려워서 말이다.”

나는 당장 재킷을 벗고 김옥순 할머니 곁에서 음식 준비를 도왔다.

“우리 손주랑은 무슨 사이냐?”

“…저요?”

“대체 무슨 사이길래 우리 손주가 너만 있으면 눈치를 보는 거냐고.”

김옥순 할머니의 질문에 나는 적당한 대답을 생각했다.

그러다가 칼질을 멈추고 김옥순 할머니에게 말했다.

“어쩌다가 요셉 형이랑 어색한 사이가 됐어요. 그래서 눈치를 보는 것 같아요.”

“어색한 사이? 친구 아니랬나.”

“저는 동생인데요.”

김옥순 할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멸치 육수를 담은 국자를 나에게 내밀었다.

“먹어봐라.”

“아, 예.”

깊게 우려낸 멸치 육수는 환상적으로 맛있었다.

“입안에 멸치가 살아 숨 쉬는 것 같습니다.”

“…뭐라고?”

나의 대답에 김옥순 할머니가 호탕하게 웃었다. 웃음소리가 정요셉과 몹시 유사했다.

“맛있다는 표현을 재밌게 하네?”

“감사합니다.”

김옥순 할머니는 깊게 우려낸 멸치 육수에 수제비를 뜨기 시작했다.

“우리 요셉이랑 어떻게 해서 어색하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예.”

“왠지 부모랑 연관이 된 것 같은데, 맞나?”

“…아, 예.”

“그럼 모든 걸 다 아는 거네.”

수제비를 뜨다 말고 김옥순 할머니가 나를 쳐다보았다.

“…그렇긴 하죠.”

“그럼 친하네?”

“예.”

김옥순 할머니가 팔뚝으로 내 허리를 쳤다.

“친한데 왜 어색해. 원래 친한 사이면 서로 바라만 봐도 웃음이 나오는데 말이야.”

“그러게요…….”

“그러게요?”

김옥순 할머니가 수제비를 뜨면서 웃었다. 이런 대화를 나누다가 정요셉이 슬쩍 등장했다.

“할머니~ 내가 도울 건 없어?”

“없어. 지금 너희 막내랑 수제비 뜨고 있잖아.”

그때 우리 옆으로 다가온 정요셉과 눈이 딱 마주쳤다.

“어, 어. 우리 막내도 있었네.”

“…예, 형.”

굉장히 어색한 사이가 돼버린 우리는 서로의 눈치만 보았다. 국자로 수제비를 휘휘 저으며 김옥순 할머니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내가 허리가 아파서… 요셉아?”

“우리 할머니, 허리가 아파?”

“그래, 할머니는 허리 아프니까 이제 네가 수제비 만들어.”

김옥순 할머니가 그대로 국자를 정요셉에게 줬다.

“어? 어?”

“…할머니는 허리가 아프다니까.”

“갑자기?”

이 말을 남기며 김옥순 할머니는 우리 둘만 부엌에 놔두고 떠나 버렸다. 그러면서 나랑 눈이 마주친 김옥순 할머니는 오른쪽 눈을 감았다가 떴다.

‘윙크?’

일부러 놔두고 떠났구나. 숨이 막히네.

“…그, 막내야.”

“예.”

“미안.”

먼저 선뜻 사과를 건네는 정요셉을 보면서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제가 더 죄송해요.”

“뭐가 죄송해.”

“…그렇게 성질내면 안 되는 거였는데.”

“아니야. 그럴 수도 있지.”

그리고 또다시 정적에 휩싸였다. 그 정적을 먼저 깬 사람은 정요셉이었다.

“내 상황을 말하자면…….”

“…….”

“사실 대기실에 부모님이 있을 때 기분이 좋긴 했거든?”

“…….”

“그런데 부모님은 내 얼굴을 보지도 않고 상만 보더라, 상만.”

정요셉이 손을 멈추고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면서 나를 바라보았다.

“…그게 묘하게 싫더라.”

“싫었어요?”

“부모가 자식이 받은 상을 좋아하는 건 당연해. 그건 나도 이해하거든? 그런데 일단 나를 보며 축하한다는 말을 건네야 하는 거 아닌가…….”

차분하게 말하는 정요셉을 보면서 신경 쓰이는 게 있었다.

“그 이후에 부모님이랑 대화는 해봤어요?”

“어, 아니.”

“왜 안 했어요?”

“하고 싶긴 한데 우리 부모님, 내가 말하면 안 듣거든.”

정요셉의 말투에서 섭섭함이 느껴졌다.

“대화라도 나눠보라고요.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로 본다는 말도 있잖아요.”

농담 섞인 내 말에 정요셉에게서 바람 빠진 소리가 새어 나왔다.

“가마니로 보이면 안 되겠다? 그렇지~?”

“…예, 그러면 사람을 만만하게 본다고요.”

나는 찰진 반죽을 손바닥으로 때리면서 강하게 말했다. 그랬더니 정요셉은 뭐가 재밌는지 실실 쪼개면서 반죽을 조금 떼어 갔다.

‘뭐 하나 싶었더니…….’

그러더니 수제비 반죽으로 하트를 만들었다.

“아, 그거 뭐예요?”

“우리 막내를 향한 사랑?”

…와, 어이가 없어서 입이 살짝 벌어진다.

“이든 형이 어이가 없을 때 하라고 가르쳐 준 말이 있거든요?”

정요셉이 눈을 크게 뜨며 순진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말?”

“웃기고 있네.”

내 입에서 비아냥이 섞인 말이 나오자 정요셉은 부엌이 떠나가라 웃었다.

“와, 우리 막내 욕 진짜 못한다…….”

“…예? 이거 욕 아닌데요?”

“욕이거든.”

“이게 왜 욕이에요.”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이 말이 욕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막내야, 농담이야.”

…아, 농락당했어. 나는 손가락에 묻은 밀가루를 정요셉의 얼굴에 묻혔다.

“뭐야?”

“욕을 못하니까 나쁜 짓이라도 해야죠?”

“허? 나쁜 짓은 잘하네.”

“형이 먼저 나쁜 짓을 했잖아요.”

“내가 언제?”

“언제는요! 아까죠!”

내가 소리를 치자 정요셉이 내 입에 냅다 검지를 집어넣었다. 이상한 밀가루 맛이 나자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정요셉의 검지를 물었다.

“아……!”

강아지처럼 손가락을 물면서 으르렁거리자 정요셉이 아프다며 소리를 질렀다.

“무슨 일이야!”

어디서 나타난 건지 멤버들이 부엌에 우르르 나타났다. 설마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나?

“둘이 뭐 해?”

주이든이 허리에 손을 얹으며 상황을 지켜보았다.

“그냥 터그 놀이?”

터그 놀이? 나는 정요셉의 검지를 더 꽉 물었다. 고통이 심한지 정요셉이 인상을 쓰며 소리를 질렀다.

“아! 아! 이거 놔~!”

“은 느요.(안 놔요.)”

우리를 보던 이정진이 고개를 내저었다.

“사이좋네.”

주이든도 공감하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정요셉이 도와달라는 듯이 화목현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나 화목현은 도와주기는커녕 수제비가 들어 있는 냄비를 확인하고 있었다.

“…배고프다.”

자연스럽게 화목현은 부엌에서 퇴장했다.

“우리 막내, 착하지? 이거 놓을까?”

나 역시 정요셉의 손가락이 찝찝해서 뱉었다.

“우리 막내가 참… 개였어.”

“빨리 수제비나 만들죠?”

“와, 손가락에 자국 났어.”

“빨리 만들어요.”

“일단 손 좀 씻자.”

세월아 네월아 하며 느리게 손을 씻는 정요셉을 보니 어이가 없었다.

“빨리 안 해요?”

“검지 상태가 안 좋은 것 같은데.”

정요셉이 아프다며 흑흑거리며 우는 행동에 그만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아, 웃으면 안 되는데. 내 웃음에 정요셉도 웃으면서 수제비를 만들었다.

“빨리 만든다?”

“예.”

원래 친한 사이에서는 이렇게 화해하는 건가. 나는 정요셉을 빤히 쳐다보았다.

“왜? 너무 잘생겼어?”

“웩.”

“누가 웩 소리를 냈어.”

여전히 티격태격하며 싸우자 밖에서 멤버들이 소리를 질렀다.

“배고프다!”

“배고파!”

“빨리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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