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 부서진 신인남우상
상황은 엉망이었다.
김연호는 밖으로 나간 정요셉을 따라갔고, 정요셉의 부모님은 부서진 신인남우상을 보면서 한숨을 푹 쉬었다.
“어머님, 아버님. 이건 저희가 치우겠습니다.”
“…어? 어, 그럴래?”
“그러니 지금은 요셉이랑 만나면 안 될 것 같아요.”
정요셉 부모님은 짧게 망설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들에게 못 볼 꼴을 보였네. 미안하다.”
“아니에요.”
“이거 와인, 꼭 요셉이한테 주렴. 편지랑…….”
정요셉의 어머니가 주신 편지와 와인을 품에 안았다.
“…저 아버님, 어머님.”
“어?”
이건 말하고 싶었다.
“이런 말이 실례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
“일단 요셉 형한테 축하한다는 말이라도 해줬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라도 부모님이 축하한다는 말보다 상을 반기면 마음이 좋지 않을 것 같거든요.”
“…아.”
“요셉 형의 행동은 정당한 행동이라는 걸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정요셉의 행동은 자식이라면 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나비야, 고맙다. 이만 가볼게.”
“저희가 데려다 드릴게요.”
이정진과 주이든이 정요셉의 부모님을 배웅해 주었다. 대기실에 남은 나와 화목현은 부서진 신인남우상을 살펴보았다. 정요셉의 마음도 이렇지 않을까.
“이거 어떡하지.”
“본드로 붙일까요?”
“그럴까……?”
“마침 저한테 오초본드가 있는데.”
“그건 왜 가지고 있어?”
“혹시 모를 상황을 위해서?”
그렇게 나랑 화목현은 대기실에 남아서 부서진 신인남우상을 오초본드로 붙였다. 그때 밖에 나갔던 멤버들과 김연호가 들어왔다.
“연호 형, 요셉이는?”
“시상식장에.”
“다행이네…….”
밖으로 도망가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그나저나 눈앞에 있는 신인남우상은 어떡하지?
* * *
몇 시간이 지난 후, 무사히 백호 시상식을 끝마치고 숙소로 갈 때까지 정요셉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숙소로 돌아와서도 정요셉은 신인남우상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내가 자려고 눈을 감을 때까지 말이다.
“요셉 형, 저 잘게요.”
내가 정요셉에게 잔다는 말을 남기면서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리는데,
“…나비야.”
“예?”
“왜, 나비라고 부르니까 이상해?”
“아니요. 그건 아닌데…….”
맨날 ‘우리 막내’라고 칭했던 호칭이 달라진 게 의아해서 그런 거지.
“왜요, 형?”
“…그냥.”
맨날 웃었던 정요셉이 기운 없으니 마음이 무겁다. 왠지 불안한 마음에 상체를 일으켜서 정요셉의 상태를 확인했다. 별다르진 않았지만…….
“이번 주는 딱히 스케줄이 없다니까… 푹 쉬어도 될 것 같은데.”
“…그래?”
“어디 여행이라도 가요. 마음이 복잡하면.”
여행이라는 말에 드디어 정요셉이 고개를 들었다.
“…여행?”
“예, 여행이라도 가면 괜찮지 않을까요.”
“그래, 여행…….”
정요셉이 혼잣말로 중얼거리더니 대뜸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고맙다.”
“…어, 예?”
“역시 내 생각 해주는 사람은 우리 막내밖에 없네.”
그, 그런가? 원래의 정요셉으로 돌아와서 다행이긴 한데.
“…정말로 여행 가는 건 아니죠?”
“모르겠는데~”
정요셉의 말투에 신경이 쓰이지만… 설마 진짜 여행을 가겠어?
“막내야, 자라.”
“…예? 예.”
“우리 내일도 만나야지.”
당연히 내일도 만나야 하는 거 아닌가.
* * *
분명 내일 만나기로 했으면서 눈을 뜨자 침대 위에 있어야 할 정요셉이 보이지 않았다.
“…허.”
침대 위에는 고스란히 쪽지가 남겨져 있었다.
《며칠만 쉬다가 올게(っ ‘ ᵕ ‘ c)
내가 어디서 쉬는지 궁금하다면
우리 누나에게 연락해 봐
그럼 이만
-귀여운 요셉이가-》
나는 질끈 눈을 감으면서 머리를 헤집었다. 여행을 가라고 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진짜로 가다니? 그런데… 어디로 갔는데?
“전화.”
곧장 쪽지를 떠올리고 정요셉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 뚜, 뚜…….
전화를 걸자마자 정요셉이 전화를 끊었다. …내 전화를?
나는 다급하게 정요셉한테 문자를 보냈다.
(범나비) 형, 뭐 해요?
(범나비) 정요셉!
(범나비) 죄송해요. 제가 지금 제정신이 아니라서
(범나비) 형? 저기요, 형!
평소에는 1초 내로 답장을 보내는 정요셉이 답장을 안 한다? 이건 비상이다. 나는 쪽지를 들고 거실로 나가서 소리쳤다.
“비상!”
내 말에 방에 있던 이정진과 주이든이 거실로 나왔다.
“무슨 일인데?”
“오늘 아침에 요셉 형 보신 분?”
이정진과 주이든은 고개를 저었다.
“…목현 형은요?”
“나? 나는… 수영하러 다녀왔지.”
“그럼 목현 형도 못 봤겠네요?”
이로써 정요셉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근데 정요셉은 왜?”
“요셉 형이 이런 쪽지를 두고 떠났어요.”
내가 쪽지를 보여주자 멤버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막내야, 요셉이 전화는?”
“안 받아요.”
“문자는?”
“답장이 없어요.”
여행을 갔다고 전화를 안 받을 리는 없지 않은가. 이건 필시 잠적이다.
“어떡하죠.”
정요셉이 본가에 가진 않을 거고. 화목현이 쪽지를 유심히 보면서 말했다.
“…요셉이 누나라는 분에게 연락하면 되는 거 아니야?”
“전 누나 연락처가 없는데요?”
나 말고도 모두가 연락처를 모르지 않나. 그때였다.
“뭐야. 번호 뒷장에 적혀 있네.”
주이든이 쪽지를 뒤집자 거기에 정요셉 누나의 연락처로 보이는 번호가 적혀 있었다.
“어?”
사람이 이래서 말을 끝까지 들어봐야 하는 건데…….
“그럼 누가 연락해요?”
누가 연락하냐는 질문에 멤버들이 나를 쳐다보았다. 나? 나를? 어이가 없어서 검지로 나를 가리켰다.
“제가 해요?”
멤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마 나비가 말을 잘하잖아.”
“이럴 땐 리더가 나서서 해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나도 낯을 가려서.”
그냥 무서운 게 아니고?
“제가 해볼게요.”
그렇게 정요셉의 누나에게 연락을 했다. 의외로 한 번에 받았다.
“여보세요?”
“어, 안녕하세요.”
“누구세요? 보이스 피싱인가?”
“아니요. 네스트의 범나비라고 합니다.”
“…왜 전화를?”
“요셉 형이 사라졌거든요.”
“요셉이가?”
정요셉의 누나는 한숨을 길게 내쉬며 물었다.
“왜 사라졌을까~?”
“…어제 백호 시상식에 요셉 형의 부모님이 왔다 갔거든요.”
“아, 그러면~ 길게 말할 필요는 없어요. 요셉이가 갈 곳은 하나뿐이라.”
하나뿐이라고?
“어디인가요?”
“아마 친할머니 집일 거예요.”
“어딘지 아세요?”
“제가 문자로 주소를 보낼게요.”
“감사합니다.”
“그 자식은 멤버들 걱정이나 끼치고. 미친 새끼인가? 나중에 제가 버르장머리를 고쳐놓을게요.’
“예, 감사합니다.”
쿨하게 전화를 끊자 정요셉의 누나에게 주소가 적힌 문자가 바로 왔다.
“범나비, 어디래?”
“강원도라는데요?”
우리… 강원도까지 가야겠는데? 그런데 가기가 애매했다. 김연호는 네스트 스케줄 때문에 바빠서 강원도에 데려달라고도 못 하겠고.
그렇다고 강원도까지 버스를 타면 우리를 알아보는 사람이 많을 테니까 차로 이동하는 게 수월할 것이다.
그렇다면?
“또… 내가 운전해야겠네?”
화목현의 운전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강원도에 정요셉이 없으면 어떡해?”
“없으면…….”
나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다시 숙소에 오는 거죠.”
“…그러면 되겠네.”
그렇게 각자 강원도에 갈 채비를 하면서 열심히 짐을 꾸렸다.
“얼마나 있을지 모르지?”
주이든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마도요?”
“…정요셉은 갑자기 어디로 사라져서는.”
“아마 어제 있었던 일 때문인 것 같은데요.”
“그거라면 인정이다.”
잠시 뒤 모두들 현관문 앞에 집합했다.
“우리는 정요셉을 데리고 온다.”
김연호에게 정요셉을 데리고 온다는 말을 남기며 미리 선수를 쳤다.
“근데 우리 차가 없잖아!”
주이든이 문제점을 콕 집었다.
“있어.”
화목현이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으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갔다.
“목현 형한테 차가 있다고?”
“응, 차를 샀거든.”
차를 샀다고?
“언제 샀어?”
“우리 제주도 여행 갔다 오고 나서 너희들이랑 놀러 가려고 샀어.”
우리를 위해서 차를 샀다니, 감동받을 타이밍인데 왜 이렇게 두려울까… 우리는 화목현의 차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신차는 빨리 안 나오지 않나?”
이정진의 질문이 끝나기 무섭게 화목현의 차가 나왔다.
“경차네?”
중형차를 살 것 같은 화목현이 경차를 샀다니.
“중고 풀 옵션으로 샀어.”
화목현이 뿌듯한 표정으로 경차를 바라보았다.
“이 차, 연호 형한테 산 거야.”
김연호가 자기는 차가 필요가 없다면서 풀 옵션 경차를 화목현에게 팔았단다.
“차에 문제는 없죠?”
“연호 형이 없대.”
화목현은 차에 시동을 걸면서 창문을 내렸다.
“얘들아, 타!”
차가 있어서 편하긴 한데… 문제는 따로 있었다.
“경차에 우리가 다 들어갈까?”
멤버들의 덩치에 경차는 좁지 않을까.
“그래도 타자.”
짐을 트렁크에 넣은 후에 차에 올라타는 순간 깨달았다.
‘…편하게 잘 수는 없겠다.’
다리를 펼 수가 없었다.
“정진아, 주소 좀 쳐줘.”
나는 정요셉에게 미리 문자를 보냈다. 그래도 알아두면 좋으니까.
(범나비) 강원도에 갈 거예요
(범나비) 우리를 말릴 수는 없음
그러자 주이든이 옆에서 내 핸드폰을 가져가더니 문자를 보냈다.
(범나비) 미친 새끼야
(범나비) 만나기만 해봐 죽여 버림
아니… 이건 누가 봐도 주이든이 보낸 문자잖아.
“이든 형, 이렇게 보내면 어떡해요?”
“어떡하긴. 나라고 생각하겠지. 나 자기 객관화 잘해.”
그때 차가 갑자기 앞으로 쑥 갔다. 안전벨트를 매서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코뼈가 부러졌을 것이다.
“형! 우리 죽을 뻔했어!”
“미안! 아직 적응을 못 해서.”
뒷좌석에 앉은 나랑 주이든은 안전벨트를 꽉 잡았다. 우리의 살길은 안전벨트뿐이니까.
‘살려주세요…….’
* * *
고속도로에서 경차는 위험했다. 위태로운 절벽을 걸어가는 것처럼 바람이 세게 불면 차가 흔들렸다.
“거의 다 왔는데?”
한 번도 휴게소에 들르지 않고 강원도로 향했다. 그랬더니 다행히 저녁이 되기 전에 와서 집은 잘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집이 많은데?”
주이든이 창문에 얼굴을 대고 동네를 살펴보았다. 주소에 적힌 집이 있긴 한데…….
“여기라는데?”
화목현이 파란색 지붕 집에 차를 세웠다.
“밭이…….”
그러고는 집 옆에 있는 거대한 밭을 보며 입을 쩍 벌렸다. 그리고 화려한 꽃이 그려진 붉은색 티셔츠를 입은 정요셉이 눈에 들어왔다.
“쟤 저기서 뭐 하냐?”
주이든이 정요셉을 향해서 소리를 질렀다.
“야! 정요셉!”
그제야 정요셉이 우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 어!?”
우리가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는지 놀란 표정을 지은 정요셉이 우리에게 뛰어왔다.
“요셉아! 뛰다가 다쳐!”
이정진의 말에 정요셉은 다시 천천히 왔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온 거야?”
정요셉의 질문에 우리는 인상을 팍 썼다.
“왜 갑자기 가출했어? 어?”
“형~ 가출이 아니라~”
“그렇게 쪽지만 덩그러니 놔두면 가출이지.”
“가출이 아니라니까?”
화목현이 인상을 쓰면서 허리에 손을 올렸다. 우리가 사고를 칠 때마다 화목현이 혼내는 방식이다.
“가출이 아니면 뭔데? 뭐……!”
“…여행!”
여행이라는 단어를 말하며 정요셉이 나를 바라보았다.
“우리 막내가 여행하라고 했단 말이야.”
…어? 왜 갑자기 화살이 나에게로 향하는 느낌이지.
“그랬어, 나비야?”
“…그게 아니라.”
맞긴 하지만… 나는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정요셉에게 눈짓했다. 내가 언제 그런 식으로 말했냐고.
“솔직하게 말할게요. 제가 요셉 형한테 여행하라는 말을 하긴 했거든요.”
“…그럼 나비가.”
“그렇지만!”
나는 정요셉을 노려보았다.
“이런 식으로 여행하라고는 안 했단 말이에요.”
그때였다.
“…흑.”
흑? 끓어오르던 분노가 정요셉의 눈물을 보고는 멈췄다. 얘는 갑자기 왜 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