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 백호 시상식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요셉이가 THE END 출연자들이 모여 있는 테이블에 앉아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정요셉 : 절망과 고통 속에서 너는 앞만 전진해.]
감미로운 목소리로 OST를 부르자 배우들이 옆에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배우들 웃어서 보기 좋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라도 귀엽게 봤을 듯
-백호 시상식 오랜만에 보는데 축하 공연 재밌다
[정요셉 : 위험이 도사리는 공간]
순간 모든 불이 꺼지고 조명은 오로지 요셉이를 비추고 있었다. 요셉이가 THE END 배우들을 향해 인사했다.
[정요셉 : 나는 당신들을 구하네]
-아 과몰입 ㅅㅂ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채팅창에서 스포일러 금지
-아니 요셉아 ㅠㅠㅠ
===============
[THE END] ㅅㅍㅈㅇ ㅠㅠㅠㅠㅠㅠ
저 OST 태위선이 좀비한테 물리고
동료들에게 인사하는 장면 아님?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
-ㅠㅠㅠㅠㅠㅠㅠㅠ 맞음
└ 과몰입 세게 온다…
-태위선 시즌 2 안 나오면 난 죽는다
-위선아…
다시 불이 켜지자 어느새 네스트가 무대 위에 올라가 있었다.
-새로워서 좋다
-배우들 당황했는데ㅋㅋㅋㅋㅋ
-나비 분명 교복 입었는데 위화감이 없다 실제 배우인 줄~
-오랜만에 보는데 잘생겼다ㅋㅋㅋㅋㅋ
-네스트 원래 잘생김?
조명이 꺼지고 도둑 GAME 무대가 펼쳐졌다. 네스트의 미모가 널리 알려졌다는 점이 임드림은 매우 마음에 들었다.
[-기다려 주세요.
당신의 물건은 우리가
훔쳐 갈 수 있으니
조심하길-]
요셉이 카메라를 보며 윙크했다. 어깨를 들썩이는 안무에 THE END 배우들도 어깨를 들썩이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혔다. 특히 이서혁이 카메라를 아예 집어삼킬 것처럼 립싱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ㅅㅂ이서혁ㅋㅋㅋㅋㅋㅋㅋ
-배우들도 흥얼거리네ㅋㅋㅋㅋ
-처음으로 축하 공연 재밌게 봄
-우리 네스트ㅠㅠㅠ 기특해
도둑 GAME 무대가 끝나자 네스트가 허리를 숙였다.
-위선 형 노래도 잘 부르네 ㄷㄷ?
-극
-락
-라이브 잘한다
-노래가.안정적이네요.좋습니다.
무대 뒤로 빠졌던 요셉이 테이블에 착석하자 MC가 칭찬을 했다.
[MC : 요셉 씨, 노래 솜씨가 아주 대단합니다!]
[정요셉 : 하하하!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셉의 호탕한 웃음에 옆에 앉은 배우들도 웃음을 터트렸다.
[MC : 다음 시상은 인기스타상입니다.]
“우리 요셉이!”
임드림은 신인남우상은 힘들더라도 인기스타상은 요셉이가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투표를 열심히 했다.
[MC : 인기스타상은 이번 해에 인기가 많았던 분에게 드리는 상이죠?]
제발 우리 요셉이가 받아라!
* * *
무대가 끝나고 대기실에서 멤버들이 양손을 꽉 잡았다.
“제발!”
주이든이 소리를 쳤다.
[MC : THE END에서 태위선 역할을 맡았던 정요셉 씨입니다! 축하합니다!]
정요셉이 인기스타상에 호명이 되었다.
“와! 와!”
주이든이 자기 자리에서 크게 뛰며 환호성을 질렀다. 최대한 표정을 숨긴 채 정요셉은 배우들과 감독의 환호성을 받으며 무대 위로 올라갔다.
“이 영상을 보면서 생각한 건데, 군복을 입은 채로 올라간 배우도 있을까?”
이정진이 모니터를 보면서 홀린 듯이 말했다.
“그러게요……?”
그래도 권위가 있는 시상식에 군복을 입고 올라가는 건 조금 이상한 일인가 싶었지만.
-군복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옷 갈아입을 시간은 주시라고요
-ㅋㅋㅋㅋㅋㅋㅋ태위선이 받는 상 같다
기존 드라마 팬들은 좋아하는 것 같았다.
[MC : 드라마 시청자분들이 뽑아주신 상인데요. 먼저 정요셉 씨의 소감부터 들어볼까요?]
상과 꽃다발을 들고 있어 MC가 정요셉의 입가에 마이크를 가져다 댔다.
[정요셉 : …어.]
어제 잘도 수상 소감을 생각해 놨으면서 정요셉이 떨고 있었다. 여러 번의 시도 끝에 정요셉의 입이 열렸다.
[정요셉 : 다른 분들은 믿기지 않겠지만, 저는 제가 연기를 못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다시는 연기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 것 같습니다. THE END 대본을 받자 태위선이라는 캐릭터가 마음에 들었거든요.]
정요셉이 상을 보며 호흡을 가다듬자 관객석에서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니야!]
그 말에 울상이었던 정요셉의 표정에서 웃음이 피어났다.
[정요셉 : 태위선이라는 역할을 맡은 저를 사랑해 주신 시청자 여러분, 그리고 팬분들께 감사드리고 저를 설득해 주신 황민 감독님께도 감사합니다. 그리고…….]
정요셉의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입을 다물었다.
[정요셉 : 나를 끝까지 도와준 우리 네스트 멤버들, 사랑하고 고맙다.]
그리고 꽃다발을 흔들더니 정요셉은 뒤를 돌아 눈물을 훔쳤다. 벅차오르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해서 정요셉은 계속 하염없이 눈물을 닦았다.
계속 모니터를 보고 있는데 대기실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씨.”
주이든이 고개를 떨구면서 휴지로 눈물을 닦았다.
“요셉이가 저런 말을 할 줄 아는 녀석이었구나…….”
화목현은 천천히 고개를 옆으로 돌려 살짝 나온 눈물을 닦았다.
“흐흡…….”
이미 이정진은 정요셉이 상을 받을 때부터 흐느끼고 있었다.
나만 홀로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나만.
“연호 형, 휴지…….”
김연호에게 휴지를 받으려고 손을 뻗었는데.
“…큽.”
울지 않겠지 싶었더니 김연호는 이미 안경을 벗고 눈물을 닦고 있었다.
하긴 정요셉의 수상은 눈물이 날 만했다. 연기에 트라우마가 있었던 정요셉이 당당하게 인기스타상을 받았으니까.
“…너는 눈물도 없냐.”
“저요?”
눈물을 닦던 주이든이 나에게 직접 물었다.
“저는…….”
상을 받을 사람이 받았다는 기쁨만 있었다.
“눈물을 흘릴 사람은 따로 있는데 내가 울 수는 없잖아요.”
“…그래, 범나비 잘났다.”
“칭찬 감사합니다.”
주이든의 어그로를 넘기면서 모니터를 계속 쳐다보았다. 인기스타상 수상이 끝나자마자 OTT 부문 신인남우상 시상식으로 이어졌으니까.
“…와씨, 왜 이렇게 떨리냐. 우리 1위 후보에 들었을 때도 이렇지 않았는데!”
주이든은 모니터를 보면서 달달 다리를 떨었다.
“이든아, 자리에 앉으면 덜 떨릴 거야.”
“목현 형은 안 떨려?”
“나는 전혀 떨리지 않아.”
하지만 화목현도 다리를 떨고 있었다. 둘이 똑같은데?
“목현아, 너도 다리가 떨리는데?”
“아, 정진아 이건… 혈액순환을 한다고.”
“…그래?”
혈액순환은 개뿔. 나는 눈이 팅팅 부은 이정진을 보면서 생수를 건넸다.
“정진 형, 이거 꽝꽝 얼린 거라서 눈 마사지하면 괜찮을 거예요.”
“어, 고맙다.”
“천천히 눈 주위를 문질러서 부기 빼세요.”
“고맙다.”
“나가면 팬들이 있을 것 같아서. 좋은 모습 보여야죠.”
밖에 우리를 보러 온 팬들이 많아서 말이다.
[MC : OTT 부문 신인남우상 후보입니다.]
슬슬 OTT 부문 신인남우상 후보가 떴다.
“떴어……!”
조용히 모니터를 확인하고 있던 김연호가 외쳤다.
“연호 형도 놀랄 줄 아는 사람이구나.”
주이든의 말에 멤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김연호는 감정이 없는 로봇인 줄 알았더니 감정이 있었네.
“…흠.”
우리의 시선이 부끄러웠는지 김연호가 연거푸 헛기침을 뱉었다. 모니터에서는 신인남우상 후보를 보었는데, 곧 정요셉의 얼굴이 나왔다.
“으아아아!”
주이든이 벌떡 일어나면서 테이블 주위를 돌았다.
“진짜 왜 내가 떨리냐고… 쟤는 안 떨고 있는데!”
모니터에 보이는 정요셉은 의연했다. 딱 봐도 본인이 받겠냐는 듯한 태도였다.
“요셉이가 받아야 할 텐데.”
목현의 중얼거림에 공감했다. 언제 또 정요셉이 OTT 부문 신인남우상 후보에 들 수 있겠는가…….
그때 모니터에 정요셉이 비쳤다.
“아……!”
[MC : 신인남우상 정요셉!]
신인남우상을 정요셉이 받았다.
“받았어!”
신인남우상을 받았어…….
[MC : 이번에 정요셉 씨는 THE END에서 인상적인 군인 역할로 사랑받았는데요.]
밑에서 올라오는 감정의 물결은 환호로 튀어나왔다.
“뭐야, 범나비! 안 놀랐을 줄 알았는데!”
주이든도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면서 환호했다.
“우리 정요셉이 신인남우상을 받았다!”
정요셉은 THE END 동료들의 축하를 받으면서 시상식 무대 위로 올라갔다.
[MC : 정요셉 씨, 축하합니다!]
황민 감독이 자기가 가지고 왔던 꽃다발을 정요셉에게 건네주었다. 신인남우상 트로피를 받아 든 정요셉의 표정은 멍했다. 자기가 신인남우상을 받았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은 모양이었다.
[정요셉 : …어, 그러니까. 잠깐만요. 이게 꿈인 것 같아서.]
정요셉이 자기 볼을 세게 꼬집었다.
[정요셉 : …진짜 현실이네요. 신인남우상,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신인남우상 수상 소감은 준비하지 않아서 중구난방이어도 양해 부탁드립니다.]
신인남우상 트로피를 보는 정요셉의 눈가가 서서히 붉어졌다.
[정요셉 : 이 상의 무게가 제 어깨를 짓누를 것 같습니다만, 그 무게를 이겨내고 더욱 좋은 연기로 보답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이 말을 안 한 것 같아서.]
정요셉은 눈물이 고인 채 활짝 미소를 지었다.
[정요셉 : 네온들, 사랑해요.]
그러자 관객석에서 환호성이 쏟아졌다. 정요셉이 힘찬 환호를 받으며 내려오자 시스템창이 떠올랐다.
【정요셉의 ‘트라우마’가 바뀝니다!】
【연기 → 부모님】
이 순간에 연기에서 부모님으로 트라우마가 바뀌었다고? 잠깐만, 부모님……?
똑똑.
대기실에서 울리는 노크 소리에 김연호가 대기실 문을 열었다.
“어? 요셉이 대기실에 다 모였네요.”
정요셉의 부모님이 오셨다. 김연호도 놀랐는지 눈이 동그래졌다.
“어… 오셨네요?”
“김연호 매니저님 덕분에 무사히 왔습니다.”
아까 김연호가 어딜 가나 했더니 정요셉의 부모님과 연락를 했던 모양이다.
‘…근데 어떻게 온 거지?’
우리는 정요셉과 부모님의 사이가 어떤지 잘 알고 있으니까. 정요셉의 부모님이 오면 난리가 나지 않을까 싶은데. 주이든이 먼저 나에게 귀에 대고 살짝 속삭였다.
“…야, 이거 괜찮냐?”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는데요?”
그때 정요셉의 부모님과 눈이 마주쳤다.
“안녕하세요. 어머님, 아버님.”
“어머, 나비야. 오랜만이다.”
“그러게요. 그날 이후로 처음 뵙네요.”
내 인사가 신호탄이 되어 멤버들도 정요셉의 부모님에게 인사했다.
“멤버들이 다 늠름하네.”
정요셉의 아버지는 과묵한 편인지 칭찬을 하고는 말이 없었다.
“아! 내가 깜빡했네. 소소하게 선물을 준비하긴 했거든.”
딱 봐도 백화점에서 사 온 선물 같은데.
“와인이야.”
축하 파티를 위한 와인.
정요셉의 부모님이 어떤 와인인지 설명하는 순간 나는 눈치껏 김연호에게 다가갔다.
“요셉 형은 알고 있어요?”
“…어, 어? 모르겠는데, 그건.”
“요셉 형이 부른 거 아니에요?”
“요셉이 부모님이 그렇게 말하긴 했어.”
말하긴 했다는 건… 나는 불안함을 느꼈다.
‘…아니겠지.’
정요셉에게 안 물어보고 온 건 아니겠지.
“부모님이 거짓말을 하겠어?”
“…멤버들도 있는데.”
김연호가 고개를 저으면서 내 불안함을 잠재웠다. 그렇게 믿고 있자. 근데 뭔가 상황이 이상했다. 정요셉의 부모님이 왔다는 건 정요셉에게 연락을 받고 왔다는 건데.
‘…그 정요셉이 연락을 했다고?’
정요셉이 부모님에게 연락을 했다면 우리한테 언질이라도 줬을 것이다. 모두가 의아해할 때였다.
“백호 시상식은 어떻게 오신 거예요?”
“…어? 요셉이 수상은 축하해 줘야지.”
“아~! 싸운 줄 알았는데!”
황급히 화목현이 주이든의 신발을 밟았다.
“그럼 오늘은 정요셉이 연락해서 오신 거예요?”
“어, 그렇지…….”
정요셉 부모님의 대답이 영 석연치 않았다. 괜한 의심이 들긴 하지만… 모니터에서 잠시 백호 시상식 2부를 기다려 달라는 예고가 떴다.
‘오겠다.’
폭풍이 오기 전인 것처럼 대기실은 조용했다. 그때 정요셉이 대기실 문을 열고 들어와 소리쳤다.
“나 왔다~!”
하지만.
“…요셉아! 우리 왔어.”
정요셉의 부모님은 신인남우상을 보면서 기쁜 듯이 미소를 지었다.
“잠깐만, 잠깐만.”
정요셉이 눈가를 짓누르며 차분하게 물었다.
“어떻게 오셨어요……?”
“당연히 신인남우상 수상 축하해 주려고 왔지.”
“제가 연락하지 않으면 오지 말라고 했잖아요.”
“아, 그게… 요셉이가 신인남우상을 받았잖아. 우리 요셉이가 연기를 시작하고 상을 받았다는데 부모가 당연히 와야지…….”
정요셉의 눈빛이 흔들리더니 이윽고 신인남우상이 바닥에 떨어졌다. 정요셉의 무너진 마음처럼. 신인남우상의 중심이 부서지자 정요셉의 아버지가 역정을 냈다.
“상을 왜 떨어트려!”
“…상이 중요해요?”
“상이 중요하지!”
아버지가 나서서 바닥에 떨어진 신인남우상을 줍자 정요셉이 헛숨을 쉬었다.
“…상이 중요하니까 저는 나가 있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