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 백호 시상식 OTT 부문
다음 날 오후. 더블에이 회의실에 왔는데 아직 술의 여파가 남았는지 나를 제외한 멤버들의 얼굴이 초췌했다.
“…속이 쓰리다.”
정요셉이 테이블에 엎드린 채 중얼거렸다.
“왜 우리만 초췌하냐? 크래프트는 멀쩡하던데.”
아침에 일어난 크래프트 멤버들은 멀쩡했다.
“우리가 약한 거야.”
화목현이 눈을 크게 뜨며 하품을 쩍 했다. 그때 회의실 문이 열렸다.
“안녕하세요.”
새로운 인물이 등장했다. 그런데 누구지?
“저는 이번에 팀장직을 맡게 된 오민석입니다. 반갑습니다.”
원래 있던 팀장님이 가고 새로운 팀장이 온 모양이다. 원래 있던 팀장님보다는 젊은 분이었다.
“안녕하세요.”
멤버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했다. 인사가 끝나고 화목현이 자리에 앉으면서 오민석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럼 오늘 모이자고 하신 분이…….”
“접니다.”
새로운 팀장님이 회의실에 모이자고 했군.
“오늘 모이자고 한 이유는 제 소개를 드리려고 했던 것도 있고, 이번 백호 시상식에서 OTT 부문이 생겼거든요.”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다가 오민석의 뒷말에 놀랐다. OTT 부문이 새로 생겼구나…….
“그 OTT 부문에 정요셉 씨가 신인남우상 후보에 들어갔습니다. 축하드려요.”
멤버들의 시선이 일제히 정요셉에게 향했다. 정요셉의 눈이 커졌다.
“어? THE END가요?”
“네, THE END에서 맡았던 태위선이라는 배역이 인기가 많았잖아요.”
태위선이라는 배역이 매력적인 캐릭터긴 했다. 원래는 냉정한 성격이라 사람이 죽든 말든 눈 하나 깜빡 안 한다. 하지만 동료가 위협에 처하면 냉정함이 사라지고 자신의 몸을 던지는 역할.
‘…그 캐릭터가 유행하긴 했지.’
군인 말투 패러디가 많이 나오기도 했으니까.
“그렇긴 하지만… 제가요?”
“그리고 하나 더, 인기스타상 후보에도 들어갔다고 합니다. 이건 들으셨죠?”
“…예, 인기스타상은 연호 형이 미리 연락을 주긴 했습니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정요셉은 머리를 긁적였다.
“또 하나.”
또 있어?
“이번 백호 시상식에서 네스트가 무대에 섭니다.”
오… 배우들 앞에서 무대에 선다고?
“오, 나는 가기 싫은데.”
주이든이 테이블에 턱을 괴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이든아.”
이정진이 다급하게 주이든의 말을 막으려고 했으나 주이든은 멈추지 않았다.
“아니, 그렇잖아. 우리가 무슨 광대야? 시상식 무대만 가면 호응도 안 해주고. 서커스에서도 반응은 해준다.”
주이든의 말이 맞긴 했다. 배우들이 있는 시상식 무대에 서는 건 마치 선생님 앞에서 발표하는 학생들 같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시상식을 보는 시청자들도 불편함을 느끼기도 했다.
“…어떤 노래를 불러야 할까요?”
“제일 최신곡으로 불러달라고 하던데요.”
최신곡으로 불러달라…….
“도둑 GAME을 불러달라는 거겠죠?”
“그렇습니다.”
화목현은 오민석의 대답을 듣고는 가만히 있었다.
“다른 노래는 안 되나요?”
“다른 노래도 괜찮습니다. 두 곡을 불러달라고 했거든요.”
화목현은 살짝 걱정이 드는지 오민석에게 물었다.
“…흠, 다른 노래라면 뭘 하고 싶어서?”
“딱히 없지만.”
하지만 좋은 방법은 생각이 나지 않는 모양이다.
“저는 다른 노래를 하고 싶은데요.”
“…범나비 씨는 뭘.”
“THE END의 OST를 부르고 싶습니다.”
우리 노래를 모르는 배우들도 있을 텐데, 우리 노래만 부르면 재미가 없지 않겠는가.
“요셉 형의 기도 좀 세워줄 겸.”
정요셉이 화들짝 놀라면서 입꼬리를 한껏 위로 올렸다.
“내 기를?”
“정요셉이라는 배우가 네스트라는 그룹에서 아이돌로 활약하고 있다는 평가도 받고 싶거든요.”
‘흥미를 이끌어야지.’
정요셉이 원래 배우가 아니라 아이돌이라고 하면 화제성도 모을 수 있다. 오민석은 수첩을 꺼내서 내 말을 받아 적기 바빴다.
“도둑 GAME은 안 부르나요? 백호 시상식에서 노래를 부르면 홍보가 될 텐데요.”
“도둑 GAME도 부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일단 백호 시상식에서 허락해 줘야겠지만.
“한번 물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민석은 알겠다면서 미소를 지었다.
“제가 열심히 설득해 볼게요.”
다행히 새로운 팀장이 의욕이 넘쳐서 좋네.
“그럼 저는 먼저 일어날게요. 대화를 더 나누고 싶은데 오자마자 할 일이 많네요.”
오민석은 백호 시상식 측과 통화하러 가보겠다면서 먼저 회의실을 떠났다. 숙소로 가기 전, 정요셉이 나에게 물었다.
“우리 막내~ 우리 노래만 부르면 되는데 왜 그랬어?”
“…음, 그냥 그러고 싶었어요.”
“이유가 있을 거잖아.”
무슨 이유가 있겠나.
“요셉 형 때문이죠.”
이 말에 정요셉이 살짝 놀란 것처럼 몸을 움찔했다.
“그것도 있고, 재미도 보고 싶어서요.”
“어?”
“평범한 무대는 재미가 없잖아요?”
* * *
백호 시상식은 착착 진행됐다. OST 무대와 도둑 GAME 무대를 꾸미고 싶다고 하니까, 백호 시상식 측에서는 좋다며 흔쾌히 허락했다.
다른 멤버들은 아직 연습실에 오지 않고 나랑 정요셉만 있었다. 정요셉이 벽면 거울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안녕하세요. THE END에서 태위선 역할을 맡았던 네스트의 정요셉이라고 합니다. 저는 태위선이라는 역할을 위해서…….”
“요셉 형, 뭐 해요?”
“수상 소감을 연습하고 있었어.”
“그럼 간략하게 하죠?”
“간략하게 하기엔 고마운 사람들이 너무 많아~”
그런가.
“…아, 떨린다.”
정요셉은 심장 부근을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정요셉도 백호 시상식은 떨리는 모양이다.
“이번에 백호 시상식에 대한 관심이 굉장하던데요?”
“어… 맞아.”
“인기 투표도 진행되고 있던데.”
정요셉이 인기 투표 후보에 오르자 팬들이 투표해 달라고 부탁하는 글들이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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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ND] 태위선 받자 제발
우리 위선이 받아야 해요
우리 위선이는 잘못이 없어요
사람들을 구하고 싶었을 뿐이에요
그러니까 투표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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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호 시상식 투표?
└ ㅇㅇ
└ 해야지 존나 연기 잘했음
└ ㅠㅠㅠㅠㅠ 현생 바빠서 몰랐는데 투표하러 갈게
-근데 태위선 아이돌이었음?
└ 어 네스트
└ 헐 몰랐다
└ 아역배우인 줄;
└ 연기를 졸라 잘해서 몰랐어
-연기 못하는 아이돌 많았는데 태위선으로 연기돌 이미지 바뀜
└ ㄴㄷㄴㄷ 차세대 연기돌 될 듯
└ 정요셉 원래 연기했었잖아 ㅋㅋㅋ
인기 투표상은 태위선이 받아야 마땅하다는 글까지 올라왔다.
“…태위선 인기 많던데요? 이러다가 위선 형이라고 불러야 하는 거 아닌가.”
“아니야. 인기 없어~”
“인기 없다면서 눈은 웃고 있는데요?”
THE END는 이미 전 세계 플렉스 순위 1위에 올랐다. 그래서인지 일본에서도 덩달아 태위선의 인기가 높아졌다.
하긴 THE END에서 정요셉이 처절한 연기를 잘하긴 했지.
“저도 인상 깊게 봤어요.”
“어? 봤어? 안 본 것 같았는데.”
“최근에 다 봤어요.”
대충 보고 싶진 않았다. 한 컷 한 컷 놓치고 싶지 않아서 아껴 보다가 드디어 다 봤다.
‘왜 인기가 있는지 알겠다.’
배우들의 연기와 BGM, 그리고 감독의 연출 모두가 좋았다.
“덕후들을 모을 드라마긴 했어요.”
드라마도 덕후를 만들어야 인기가 오래가는 법이다. 대사도 벅차오르게 잘 쓰셨던데.
“우리 막내, 어떤 부분이 좋았어~?”
드라마를 봤다고 하니까 정요셉이 신나서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제일 명장면이라고 생각하는 건 태위선이 연못에서 얼굴을 씻는데 갑자기 연못 중앙에서 피가 위로 솟구치더니 좀비 떼가 몰려오는 거요.”
“…아, 그 장면도 명장면이지. 그러면 명대사는~?”
명대사는 당연히.
“요셉 형의 ‘인간이 인간을 구합니다’라는 대사요.”
“오~ 우리 막내, 내가 좋아하는 대사를 말해주네~”
“그 대사가 태위선이라는 캐릭터를 보여준다고 생각했어요.”
태위선은 사람을 구하는 데에 힘을 썼다. 그 누구도 죽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 그런 사람이 인류를 구하려고 나섰을 때 말했던 대사였다.
“또 드라마 제안 들어오면 할 거예요?”
“…모르겠어. 앞으로 연기를 할지 말지.”
정요셉은 연습실에 드러누워서 눈을 감았다.
“…연기가 좋긴 한데. 나한테는 네스트가 더 맞나 봐.”
“그래요?”
나도 정요셉의 옆에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배 위에 가지런히 양손을 얹었다.
“아이돌보다 배우가 천직 같다는 평가도 있긴 했거든.”
“…….”
“그런데 내 생각에 왠지 배우는 내가 아닌 것 같아.”
“그래도 연기를 잘하니까…….”
“우리 막내는 나에 대한 내 점수가 후한 편이네.”
“제가 그렇게 보여요?”
내가 얼마나 점수를 짜게 주는데.
“아이돌로서 형의 모습을 백호 시상식에서 보여줘야겠네요.”
“어?”
“우리 요셉 형이 연기만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면 좋잖아요.”
모두 다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좋으니까. 나는 정요셉이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 씩 웃었다.
“잘해봅시다, 형.”
“우리 막내, 뭔가 미소가 사악한데.”
사악하긴.
“형이 더 사악하거든요?”
“우리 막내 요즘? 어?”
정요셉이 내 볼을 살짝 꼬집으며 흔들었다.
“형한테 개긴다?”
“그러니까 막내죠.”
갑자기 대화를 멈추고 나랑 정요셉은 눈빛을 주고받다가,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 * *
임드림은 뒤늦게 THE END 세계관에 빠져서 허우적거렸다. 원래 다들 재밌다고 난리를 치면 나중에 보는 타입이 있지 않은가. 그게 바로 임드림이었다.
‘제발 요셉이 연기 길만 걸었으면…….’
아이돌 정요셉도 좋았지만 정요셉은 연기력도 워낙 좋았다. 정요셉은 발성부터 완벽했으니까. 자막을 안 봐도 귀에 쏙쏙 들어오는 발성. 이 발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드라마 보는 덕후들은 알 것이다.
임드림은 네잎봉을 가져와 테이블에 올려두었다. 마침 오늘 백호 시상식에 네스트가 나온다고 했으니까. 봉이 있어야 벅차오를 때 휘두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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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ND] 오늘 백호 시상식 LIVE!
TEH END 팀 나온다 ㅠㅠ
막내인 요셉이가 테이블 중앙에 있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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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ㅠㅠㅠㅠㅠ시즌 2 소취요
└ 진짜 시즌제로 나와야 한다 ㄹㅇ
└ 진심으로
-네스트 정요셉이라고 소개하네 ㅋㅋㅋㅋ
└ 아 맞다 위선이 아이돌이었지
드라마 팬들도 도둑 GAME의 진가를 알아봐 줬으면 좋겠다. 이번 도둑 GAME의 인기는 날이 갈수록 올라갔다. 특히 이번 앨범은 덕후들이 환장할 컨셉이었다.
‘내가 오타쿠긴 하지만.’
그때 화면에 네스트가 등장했는데,
“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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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네스트 센스 있네?
다들 THE END에 나왔던 의상 입고 있음
(화면_캡쳐_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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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이 군복 입었다 ㅁㅊ
└ 의사 목현이 대학생 정진이 검사 이든이 학생 나비
└ 센스 있네 ㅋㅋㅋㅋㅋㅋㅋㅋ
-엥? 네스트 노래가 아니라 OST를 부르네?
└ 어?
└ ?
└ 어 진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