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 여행(2)
카트에 담긴 물건은 라면, 과자, 그리고 닭이었다. 닭?
“왜 닭이 있어요?”
정요셉이 대답했다.
“우리 목현 형이 닭볶음탕 해준다고 했거든.”
“오, 그래요……?”
“그래서 카트에 재료가 많은 거지.”
화목현이 닭볶음탕을 해준다고? 그동안 닭볶음탕을 해준다고 자주 말하기는 했지만 스케줄 때문에 먹진 못했다.
‘이번에는 먹을 수 있겠네…….’
저 멀리서 주이든이 당당하게 등장했다.
“나도 음식 하나 해!”
뭔가 했더니, 김밥 재료가 카트에 담겨 있었다.
“이든 형은 김밥을 하려고요?”
“어? 바로 알아봤네!”
“단무지, 햄, 계란, 어묵, 김을 보면 알죠.”
주이든이 김밥을 해준다고? 이건 기대가 안 된다. 세상에서 제일 요리를 못하는 사람은 아마 주이든이라고 본다.
예전에 일 하나가 있었다. 웬 새벽에 주이든이 라면을 먹자고 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무슨 라면을 한강처럼 만들어놓은 게 아닌가……?
‘아니다. 말하기 싫다.’
이 말을 하면 주이든이 나 때문에 못 만들었다고 할 게 분명했다.
“…야, 범나비! 그런 식으로 보지 마라.”
“제가 어떻게 봤는데요?”
“먹지 않겠다는 그 눈빛!”
“아니에요. 먹어야죠.”
“그래?”
주이든이 경고하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김밥 맛있다고 울지나 마라.”
“예, 그럴게요.”
1박 2일 동안 밖으로 안 나가겠다는 의지인지 물건이 점점 많아졌다. 거기에 소주랑 맥주도 있다. 와인까지.
“…형들, 죽으려고 그래요?”
술을 왜 저렇게 많이 샀대. 정요셉이 카운터로 향하면서 외쳤다.
“죽고 보자!”
…난 안 죽고 싶다.
* * *
박랜서는 네스트의 떡밥에 눈코 뜰 사이가 없었다.
그때, 네스트의 여행 떡밥이 떴다.
===============
[네스트] 미친 애들 진짜로 여행 감
어떤 분이 제주도에 있는 마트에서
잘생긴 남자들 봤다고 SNS에 올라옴
ㅁㅊ 근데 존잘이다
마스크랑 모자로 얼굴 다 가렸는데
===============
-와씨 보고 옴 존잘임 근데 왜 놀러 갔을까?
└ ㄴㄷ 궁금하다 놀러간 썰 나중에 풀어줘 ㅠㅠ
-진짜 잘생긴 애들은 멀리서 찍어도 살아남는다더니 근데 피지컬 무슨 일임?
└ ㄴㅁㅇ 우리 애들 너무 존잘이라서 미치겠다
└ ㄹㅇ 짤 보니까 키도 크고
-…그냥 감탄만 나옴
└ 여행이고 나발이고 애들 피지컬에 입이 떡 벌어짐
└ 지금 회사에서 월루 중인데 입 벌어진다
-어떤 분이 애들 만난 후기 올려줬는데 와인 사줬대 ㅠㅠ
└ ㄹㅇ?
└ 그분도 놀러 왔으니까 이거 마시라고 했다나 봐
└ 와…
└ 우리 애들 착하다…
마지막 댓글을 보자마자 박랜서가 입을 틀어막았다. 파노라마처럼 돌연프 나비부터 지금의 나비까지 생각이 났다.
“나비야…….”
이렇게 박랜서가 우울해할 때였다.
===============
[네스트] 존잘남들
화장기 하나도 없는데 그냥 존잘
코가 무슨 산이네
아니 저 사이에서 죽고 싶다
진짜로
===============
박랜서도 사진을 확인하자 우울함이 쏙 사라졌다.
“…와씨.”
존잘들. 박랜서는 하염없이 네스트를 보면서 눈 호강을 했다.
* * *
드디어 2층짜리 펜션에 도착했다.
“…와.”
멤버들은 펜션 앞에서 입을 쩍 벌렸다. 2층에 수영장이 딸린 펜션을 예약하다니. 주이든이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면서 우렁찬 웃음을 터트렸다.
“제가 비싼 곳으로 고르긴 했어.”
“…우리 이든이!”
“내가 놀러 가자고 했으니까 이 정도는~”
정요셉은 주이든에게로 달려가더니 주이든을 안아주었다. 얼마나 세게 안았으면 주이든의 몸이 안 보였다. 한 번 더 안을 것처럼 정요셉이 팔을 벌리자 주이든이 도망갔다.
“우리 이든이, 어디 가~”
“정요셉! 저리 가!”
정요셉과 주이든이 싸우는 동안 나머지 멤버들은 물건을 옮겼다.
“제가 냉장고에 넣을 걸 정리할게요.”
“그럼 나는 밥 준비할게.”
짐을 옮긴 뒤 사 온 음식을 냉장고에 넣었다. 벌써 오후 2시라서 밥 먹을 준비를 하려는지 화목현이 소매를 위로 올렸다.
“나는 지금부터 닭볶음탕을 준비할게.”
화목현은 닭볶음탕 재료를 씻기 시작했다.
“내가 알아서 할게! 다들 부엌에서 나가.”
누군가는 화목현을 도와줘야 닭볶음탕이 빨리 끝날 것 같은데…….
“이든 형은 김밥 안 말아요?”
주이든은 마이크를 잡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나는 저녁 담당이라서 저녁에 말 거야.”
자연스럽게 주이든은 노래방 기계를 켰다. 그러더니 무슨 노래를 찾는지 손가락이 바빴다.
“도둑 GAME이 있네?”
“어, 진짜로 있다.”
주이든이 도둑 GAME이 있다면서 노래를 틀었다. 반주가 시작되고 주이든의 목소리가 사방에 울렸다.
그러면 멤버들도 쉬라고 했으니까,
‘나는 쉬어야겠다…….’
혼란스러운 거실에서 나는 소파에 누워 주이든과 정요셉을 구경했다. 갑자기 정요셉이 나에게 다가오더니 내 파트에서 마이크를 건넸다.
“우리가 숨겨두었던 마음은 사라질 수 있다는걸~”
누운 상태로 노래를 부르려고 하니까 힘드네.
“워우워~”
유치원 아이들의 재롱잔치를 보는 것처럼 나는 박수를 쳐주면서 호응했다. 주이든이 노래에 심취한 상태로 정요셉과 듀엣곡까지 불렀다.
‘…평화롭네.’
귓가가 시끄러웠지만 점점 눈이 감겼다. 어쩐지 요즘 계속 자는 것 같긴 한데… 왠지 마음이 편안해져서 잠이 오는 것 같았다.
“닭볶음탕 다 됐다.”
닭볶음탕이 됐다는 말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시끄럽게 울리는 정요셉과 주이든의 노랫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시간이 꽤 많이 흐른 모양.
“밥 됐어요?”
내가 벌떡 일어나서 식탁으로 향했다. 모락모락 피어나는 연기를 보니 입안에 침이 고였다.
“나비야, 배고팠어?”
“…아니, 배고프진 않지만.”
이정진이 내 말에 반박했다.
“막내 배고픈 것 같은데.”
“…아니에요.”
“밥 먹자.”
전자레인지에 돌린 즉석밥이긴 했으나 하얀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왔다. 저기에 닭볶음탕 국물을 비벼서 김을 싸 먹으면 맛있을 것 같다.
‘근데 김을 샀던가?’
이정진을 보면서 물어보았다.
“정진 형, 김도 샀죠?”
“어, 샀어. 내가 김 가져올게.”
“형, 감사해요.”
정요셉과 주이든이 놀든지 말든지 나는 테이블에 숟가락과 젓가락을 놓았다.
“나비야, 닭볶음탕 맛 좀 봐.”
“예!”
닭볶음탕 첫입의 주인공이 나란 말이지.
화목현이 냄비 뚜껑을 열자 뜨거운 연기 속에서 모락모락 끓고 있는 닭볶음탕이 보였다. 맛있겠는데?
“우동 사리도 넣었어요……?”
“어, 닭볶음탕엔 우동 사리가 맛있거든.”
우동 사리를 보자마자 깨달았다. 화목현의 음식은 믿을 수 있다고. 입 안 댄 숟가락으로 닭볶음탕 양념을 덜어서 입에 넣었다.
간이 딱이다. 닭고기도 잘 익었고, 우동 사리에도 적절하게 간이 뱄다.
“진짜 맛있는데요?”
맛있다는 말에 화목현의 입가에 미소가 폈다.
“진짜?”
“지금 먹으면 되겠는데요?”
“간이 딱 됐어?”
“…네!”
지금 먹으면 딱 좋을 것 같다. 테이블에 음식 세팅이 끝나자 멤버들이 의자에 착석했다.
“잘 먹겠습니다!”
나는 즉석밥에 국물을 떠서 비빈 다음에 김을 싸서 입에 넣었다.
“얘들아, 닭볶음탕 어때? 맛있어?”
화목현의 걱정 어린 말투에 멤버들이 동시에 말했다.
“맛있어!”
주이든이 엄지를 척 들었다.
“진짜로?”
“와~! 이거 팔아도 되겠다. 그만큼 맛있어.”
“극찬해 줘서 고맙다.”
밥 먹는 시간이 행복할 정도로 닭볶음탕은 정말 맛있었다.
“다행이다. 이거 하려고 너튜브 한 30개는 본 것 같아.”
맛있게 먹는 멤버들의 모습을 보며 화목현은 그제야 닭볶음탕을 먹었다.
“…내가 했지만 맛있네?”
“맛있다니깐요.”
이제 저녁에 먹을 주이든의 김밥만 기다리고 있는 건가. 순식간에 닭볶음탕은 동이 났다.
“이제 저녁엔 내 차례인가!”
제일 일이 없었던 정요셉이 설거지를 담당했다.
“이든아, 김밥 기대할게.”
* * *
멤버들과 보드게임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니 벌써 해가 졌다. 바비큐 담당은 화목현과 정요셉이고 김밥 담당은 주이든. 그리고 나랑 이정진이 잡일을 맡기로 했다.
“막내야, 할 일 없으면 나랑 바다 보러 갈래? 사진도 찍을 겸?”
“놀아도 돼요?”
“어, 시간이 아직 조금 남았어.”
놀아도 되냐는 질문에 나머지 멤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도 없는 게 편해. 가, 빨리.”
“이든이 말처럼 아무도 없는 게 편해. 둘은 이번 앨범 작업도 열심히 했잖아.”
“목현 형도 허락했으니까 빨리 나가.”
그래서 이번에 화목현과 이정진이 사준 갈색 코트와 목도리를 가져왔다.
“코트 가져왔네?”
나는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코트를 만졌다.
“여행 가는 김에 가져오긴 했어요.”
“내가 골랐지만 잘 어울리네.”
“…그렇긴 한데 약간 멋 부린 느낌이라.”
그러자 정요셉이 휘파람을 불었다.
“우리 막내, 평소에도 그렇게 입고 다녀~ 옷 좀 사고.”
“집에 널린 게 옷인데.”
“맨날 입던 옷만 입잖아.”
…그건 그렇지.
“알았어요.”
“어? 우리 막내 짜증 냈다.”
“…아니거든요.”
나는 멤버들의 시선을 회피하며 이정진을 기다렸다. 그러자 기모 후드티를 입은 이정진이 카메라를 들고 나타났다.
“어? 카메라도 가져오셨어요?”
“…애들 찍어줄 용도로.”
이정진을 본 정요셉이 팔을 흔들었다.
“정진 형~ 우리도 찍어줘~”
“알았어.”
“목현 형! 사진 찍자!”
이정진이 뒤로 몇 발자국 가더니 화목현과 정요셉을 찍었다. 그리고 안에서 열심히 김밥을 싸고 있던 주이든까지 찍고서 나에게 왔다.
“자, 그럼 우리는 바다로 가볼까?”
마침 펜션에서 가까운 곳에 바다가 있었다. 밤이 되자 주변은 어두운 공간으로 바뀌었다. 별처럼 빛났던 물결도 사라지고 오로지 고요만이 남았다.
“…막내야.”
“네?”
내가 뒤를 돌자 찰칵, 하는 카메라 셔터음이 났다.
“…제가 보여요?”
“어, 보여.”
그렇게 바다에 들어가지 않은 상태로 서서 바다를 구경했다.
“요즘 컨디션은 어때?”
“쉬니까 편안해요.”
쉬니까 정말 편안했다. 저절로 웃음도 나오고. 별다른 계획 없이 주이든이 가자고 했던 제주도 여행이었으나 오길 잘한 것 같았다.
매일 바쁜 일상을 살다가 고요한 바다를 보니까 천국이 따로 없네.
“몇 장 더 찍고 가자.”
이정진이 바다를 찍고 있을 때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왜 얼굴이 익숙한 사람이 있는 것 같지?
“어?”
“…어.”
서로의 눈이 마주치자 짧은 감탄을 뱉었다. 익숙한 얼굴에 점차 가까이 다가가자 생각은 확신에 가까워졌다.
‘이남주?’
쟤가 왜 여기에 있어.
“남주 형……?”
“범나비?”
그런데 이남주만 있는 게 아니라…….
“나비 형!”
뒤에서 불쑥 튀어나온 이윤도.
“뭐야…….”
크래프트의 리더인 홍학의 등장에 머리가 복잡해졌다. 왜 여기에 있는 거지?
“크래프트?”
이정진도 크래프트를 발견하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안녕하세요. 홍학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이정진입니다.”
홍학과 이정진은 서로 손을 맞잡으며 인사했다.
“여긴 어쩐 일로.”
“놀러 왔는데.”
“저희도 놀러 왔어요. 쉴 틈이 있어요?”
“이번에 처음으로 휴가를 받았거든요.”
마침 크래프트도 휴가였다니, 우연도 이런 우연이 없다…….
“이런 우연은 인연이라고 하던데요.”
이윤도가 햇살 같은 미소를 지으면서 다가왔다. 정요셉이나 주이든 같은 타입이면 아니라고 할 텐데. 이윤도라서 딱히 아니라고 반박할 수가 없다.
“그런가.”
“그렇죠!”
나는 몇 명이서 왔는지 궁금해서 이남주에게 물었다.
“혹시 세 명만 왔어요?”
“아니요. 한 명 더 왔어요.”
“한 명은 어디에 있는데요?”
이남주가 한 명이 있는 곳을 턱짓했다. 그곳으로 시선을 옮기자 저 멀리서 커피를 들고 오는 사람이 보였다.
“뭐야?”
이름이 뭐였더라.
“박채민. 인사해.”
…아, 박채민이었지.
돌연프 때 나에게 이남주를 조심하라고 했던 인물 중 하나였다. 사람 이름을 잘 까먹는단 말이야. 크래프트의 메인보컬인 박채민은 맑은 톤을 소유하고 있었다.
“어?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이정진이 인사를 받아주었다.
“…안녕하세요.”
“연말 무대를 제외하고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는 건 처음이네요?”
박채민의 얼굴에서 정요셉이 살짝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게요…….”
“얼굴 없는 가수도 잘 봤습니다~! 노래 잘 부르던데?”
“감사합니다.”
얼굴 없는 가수 이야기가 나오자 이남주의 미간에 선이 생겼다.
“얼굴 없는 가수라고 하니 생각났는데! 왜 나한테 아니라고 했잖아요!”
“그거야 밝히면 안 되니까.”
“우리가 친한 줄 알았는데.”
“죄송하게 됐습니다. 계약이 우선이거든요.”
“흐음……?”
이남주와 대화를 나누는데 홍학이 불쑥 끼어들었다.
“이것도 인연인데 우리 같이 술이라도 마시죠.”
“…어, 예?”
홍학의 제안은 덤덤한 이정진도 놀라게 만들었다.
“저희만 온 게 아니라서요.”
“그럼?”
“펜션에 멤버들이 있거든요.”
“같이 마시죠. 어느 펜션인가요?”
“여기 근처인데.”
근처라는 말에 이윤도가 냉큼 말했다.
“우리 펜션이랑 가까워요!”
“가까워요?”
“형들이 바다 근처에 펜션을 잡았거든요!”
…이걸 어쩐다. 나랑 이정진은 눈빛을 교환하며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갈지 궁리했다.
“…정진 형, 일단은 전화해 보죠.”
“그럴까?”
멤버들이 크래프트를 데리고 간다고 하면 허락해 줄까.
“전화 좀 하겠습니다.”
혹시나 멤버들이 싫어할 수도 있으니까 이정진이 전화를 해서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정요셉의 목소리가 핸드폰을 뚫고 나왔다.
“오라고 해! 목현 형도 괜찮대! 이든이만 싫다고 했어!”
…진짜로?
“오라고 하네요. 같이 가실래요? 진짜 괜찮겠어요?”
홍학은 아직도 미소를 유지하면서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런 날이 아니라면 언제 친목 도모를 해요?”
다른 사람들도 별다른 의견이 없다는 듯 홍학의 의견을 따랐다.
“…그래요, 뭐.”
나랑 이정진은 눈빛을 주고받으면서 우리가 있던 펜션으로 걸어갔다.
‘이게 맞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