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 여행(1)
“여행 가자!”
아침부터 주이든의 우렁찬 목소리에 눈을 떴다. 저번부터 여행 가고 싶다고 말하긴 했는데. 오늘 가자고?
“여행! 여행! 여행!”
주이든이 내 옆에 누워서 나를 마구잡이로 흔들어 재꼈다.
“…형, 잠 좀.”
“자지 말고! 여행 가자고, 여행! 이번에는 영상도 찍지 말고! 우리끼리 놀러 가는 걸로 하자고!”
“갑자기 웬 여행이에요.”
“내가 가자고 했잖아!”
이번 주는 스케줄이 없는 무료한 날이라서 가도 되긴 하는데… 일단 핸드폰을 켜서 시간을 확인했다.
“이든 형, 지금 아침 6시거든요?”
“그러니까 지금 준비하고 나가면 되지!”
우리의 목소리에 거실에서 자던 화목현이 합류해서 주이든에게 물었다.
“이든이, 어디로 여행 가고 싶은 건데?”
“거기로!”
“거기가 어딘데?”
“제주도!”
제주도에 가고 싶다고? 정요셉이 벌떡 침대에서 일어나 내 침대를 급습하더니 주이든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우리 이든이, 다들 자는데 그러고 싶어?”
“내가 이래야 여행을 갈 거 아니야!”
“그건 맞지만, 그래도 아침 6시는 너무했다~”
나 역시 정요셉의 말에 동의했다.
“비행기 티켓은요?”
설마 하는 마음으로 물었다. 설마 주이든이 미리 티켓을 준비하는 주도면밀한 모습을 보여주겠는가.
“해놨지.”
주이든은 자신의 핸드폰으로 티켓을 보여주었다. 정확히 다섯 개. 주도면밀하다.
“진짜로 지금 가자고요?”
“원래 여행은 즉흥적으로 가는 거야.”
그러니까 계획도 없이 여행을 간다고? 그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지금 가도 되긴 하지.”
언제 씻고 나왔는지 이정진의 피부가 뽀송했다.
“정진 형은 벌써 준비하고 있네?”
“네가 깨우고는 준비하라며.”
“갈 거야!”
…정말로 제주도에 갈 건가. 침대에서 일어난 내가 멍하니 앞만 보고 있자 정요셉이 내 등을 토닥여 주었다.
“우리 막내, 이 상황을 즐겨.”
“…예, 그렇죠. 즐겨야죠.”
“그래야지. 즐기는 자가 일류야.”
“그렇겠죠…….”
우리는 빠르게 준비를 끝마쳤다. 제주도로 가는 비행기 시간이 오전 10시라서 서둘러야 했기에. 나도 대충 씻고 가방에 필요한 물건을 넣었다.
그랬더니…….
가방의 부피가 장난이 아니었다.
“완벽한 등껍질.”
“요셉 형.”
“어, 아니야. 그냥 감상.”
그냥 감상이라니? 내 가방이 어때서. 내가 뾰로통한 표정을 지으며 가방을 들고 거실로 나가자 화목현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나비야, 그걸 그대로 가져가게……?”
“그럼요? 다 가져가야죠.”
“어, 그래… 나비 마음대로 해.”
왜 저러지? 이 부피는 예전에 비해 약과가 아닌가. 멤버들 모두 준비가 끝나자 멤버들이 거실로 모였다.
제일 먼저 화목현이 주이든을 보며 말했다.
“제주도로 향하기 전! 먼저 비행기 티켓을 끊어준 이든이에게 박수를 보내주자.”
주이든이 앞으로 나와 멤버들의 박수를 받았다.
“그리고 이든이가 펜션도 잡았다고 하거든.”
언제 펜션까지 잡았대……?
“그러니까 이든이를 위해서라도 재밌게 제주도에 다녀오자!”
그런데 제주도에서는 택시를 타고 다니기 애매하지 않나.
“저 궁금한 점이 있어요.”
“나비야, 뭔데?”
“누가 차를 운전하나요?”
화목현이 씩 웃었다.
“내가.”
“목현 형, 운전 배웠어요?”
“당연하지. 성인이 되자마자?”
성인이 되자마자? 지금까지 화목현이 운전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데 말이다. 설마 한 번도 운전을 안 했다는 건 아니겠지?
화목현의 말에 정요셉이 물었다.
“어? 형이 운전을 배웠어? 한 번도 못 본 것 같은데~”
“당연하지. 처음이야.”
“…어? 에이, 그럼 연호 형을 데리고 가는 건 어떨까.”
“연호 형은 바쁘지.”
이러다가 사고가 일어나는 건 아니겠지. 정요셉도 나랑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침을 꿀꺽 삼켰다.
“괜찮아. 그 후로 몇 번 운전하긴 했어.”
“언제요?”
“2년 전에?”
그렇다면 우리가 데뷔하기 전에 운전을 해봤다는 거잖아. 우리는 불안감을 느낀 채 화목현의 뒤를 따라갔다.
“걱정하지 마. 공항은 연호 형이 데리고 가준다고 했거든.”
다행이다.
* * *
“얘들아, 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우리가 아파트 밑에 도착하니까 김연호가 차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은 특별하게 주이든이 조수석에 차에 올라탔다.
“…형, 연호 형이 우리 제주도까지 가면 안 돼?”
“어, 안 돼. 바빠.”
“…바, 바빠?”
“어, 되게 바빠.”
주이든은 신나게 일을 벌였으면서 화목현의 운전은 불안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 마음은 나도 이해한다.
“목현아, 어떻게 운전하는지 알지?”
“알죠.”
“정말 알지? 제주도에서 운전 사고 일어나면 큰일이다.”
“그 정도는 아니에요.”
“그렇지? 제발 부탁한다.”
김연호의 신신당부에 화목현은 그럴 일이 없다며 미소를 유지했다.
“형이 제 운전 실력 봤잖아요.”
“어, 보긴 했지.”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걱정하지 말라는 말에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저 말이 더 불안한데…….’
* * *
눈 깜빡하는 사이에 제주도에 도착했다.
“막내야, 일어나.”
“…형, 졸려요.”
“그렇다고 내 등이 베개는 아니지 않니.”
“그래도 편안해요.”
나는 이정진의 등에 얼굴을 묻으면서 공항에서 빠져나왔다. 눈가를 비비면서 주변을 훑었다. 제주도긴 한데.
“와, 비가 콸콸콸!”
정요셉이 하늘을 보면서 비가 내린다며 웃었다.
‘…우중충하네.’
뭐, 어차피 나갈 데가 있나.
“…왜 비가.”
주이든이 입술을 쭉 내밀었다. 화목현이 하늘을 올려다보더니 주이든의 어깨를 두드렸다.
“어차피 소나기 같은데? 이든아, 괜찮아.”
“바다는 꼭 가보고 싶은데!”
“1박 2일이잖아. 갈 수 있을 거야.”
“응!”
렌터카가 있는 쪽으로 가는 내내 이정진이 불안했는지 화목현에게 질문을 쏟아냈다.
“목현아, 진짜 운전할 줄 알지? 지금이라도 반납하고 택시 타고 다니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정진아, 걱정하지 마.”
“너는 믿는데, 차를 못 믿겠어.”
“에이, 나 운전 잘해.”
자신만만한 화목현의 말투에 우리는 손발을 들었다. 렌터카를 확인하던 화목현의 눈이 커졌다.
“큰 차는 몰아본 적이 없는데.”
“…목, 목현 형?”
“이든아, 걱정하지 마. 그래도 익숙해지면 운전 잘해.”
“…어?”
이왕 제주도까지 온 거, 화목현의 차에 탈 수밖에 없었다.
“자, 타자.”
나는 이정진과 정요셉의 사이에 꼈다.
“얘들아, 벨트 맸지? 간다!”
화목현이 말하는 순간, 시동을 켜자마자 자동차가 꺼졌다.
“어? 어…….”
불안하다.
‘사람 살려.’
이정진과 정요셉의 손을 꽉 잡으면서 속으로 기도했다. 무사히 여행이 끝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목현 형!”
“아, 걱정하지 마.”
정말 저럴 땐 형이고 뭐고 때리고 싶다. 다시 시동을 켜자마자 나는 보고야 말았다. 화목현의 목에서 땀이 흐르고 있었다.
“목현 형, 내 말 잘 들어. 우리는 먼저 펜션에 갈 거거든?”
“어, 어. 이든아, 근데 내가 내비게이션을 못 보겠다?”
“어? 어… 내가 안내할게.”
못 본다고요? 화목현이 운전하는 자동차는 정말 거북이었다.
“형, 좀 빨리 갈 순 없어?”
“안전하게 가야지. 우리는 아이돌이야.”
“아이돌이라도 이건 좀…….”
옆에서 산책하는 사람들이 더 빠르다. 이게 맞는 건가? 그래, 너무 빨리 달리는 것보다는 괜찮다. 사고가 안 나니까.
“바다다~!”
정요셉이 창밖을 보면서 별처럼 반짝이는 바닷가를 보았다.
“바다도 반짝이네요.”
내 감상에 이정진이 말해주었다.
“밤의 별은 하늘이고, 낮의 별은 바다라는 말도 있어.”
낮의 별이 바다라… 잘 어울린다.
“…바다에서 쉬었다가 갈까?”
다들 바다에 시선을 빼앗기자 화목현이 제안했다.
“시간도 많은데! 그러자!”
주이든은 신이 나는지 빨리 내리고 싶다고 말했지만,
“잠깐만… 주차가 힘드네?”
바다에 가고 싶어도 화목현이 근처 주차장에 주차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래서 몇 명은 카페에 가서 음료수를 사 오기로 했고, 몇 명은 바닷가에서 자리를 잡기로 했다.
“속이 뻥 뚫린다!”
주이든이 바다를 보며 외쳤다.
“나도!”
정요셉도 속이 뻥 뚫리는지 스트레칭을 간단하게 했다.
철썩.
파도가 우리를 반기는 것처럼 우리 곁으로 넘어왔다. 넓은 바다를 보니 속이 뻥 뚫려서 짧게 심호흡했다.
“우리 막내, 그러다가 파도한테 맞는다~”
“그러면 맞죠, 뭐.”
“…그러면 맞죠?”
어……? 정요셉의 말투가 조금 달라졌다.
“이든아!”
정요셉이 다급하게 주이든을 불렀다.
“왜! 사진 찍고 있는데!”
“여기서 펜션이랑 가깝지~?”
“가깝지?”
가깝다는 말에 정요셉이 바로 나를 들었다. 그러고는 어디론가 데리고 가는 것처럼 굴더니 바닷가로 몸이 움직였다.
‘잠깐만, 잠깐만!’
파도에 몸을 맡기면 좋겠다는 거였지, 바닷가에 빠지는 건 싫었다. 내가 발버둥을 치자 정요셉이 웃었다.
“우리 막내, 조금 무겁긴 하네~”
“요셉 형, 절 내려놔요.”
“파도에 맞아도 괜찮다며~?”
“아니, 이건 아니죠……!”
이러면 안 되는데. 주이든도 나에게 오더니 발을 잡았다.
“아! 우리 막내, 가자!”
“안 된다고요!”
가을이라서 들어가면 춥단 말이다.
“이러다가 감기 걸리면 어떡해요!”
“우리가 지극정성으로 돌봐줄게.”
“그건 더 싫다고요!”
그러고는 하나, 둘, 셋! 하는 동시에 나를 바닷가에 빠트렸다. 나는 물 먹은 생선처럼 입만 벙긋거리며 눈을 깜빡였다.
‘짜다…….’
바다에 빠진 생쥐 꼴이 된 나를 보며 주이든과 정요셉이 웃었다. 깊은 곳에 빠트릴 줄 알았더니 다행히 옅은 곳에 나를 빠트려서 많이 젖진 않았다.
“아.”
발목과 엉덩이만 젖은 정도? 오늘 청바지를 입어서 엉덩이가 물에 젖은 게 적나라하게 보일 것이다.
“뭐야, 나비야?”
뒤늦게 빵과 커피를 가져온 화목현과 이정진이 내 모습을 관찰했다.
“너희 또! 나비 괴롭혔어?”
“나는 아니거든! 거들었어!”
엉덩이만 둥글게 젖은 내 모습에 정요셉은 바닥에 누워서 계속 웃었다.
“하하하!”
“…재밌죠?”
“어~ 너무 재밌어~”
너무 웃어서 배가 아픈지 정요셉이 손으로 배를 잡으며 끅끅댔다.
“목현 형, 저 어쩌죠?”
“나비야, 그래도 젖은 게 문양처럼 예쁘긴 하네…….”
“그게 더 짜증 나는데요?”
왜 나만 어디로 놀러 오면 당하는 거냐고.
“이걸로 가려줄까?”
정요셉이 어디서 가져왔는지 손수건을 내 엉덩이에 댔다.
“…허.”
참고 참았던 이정진의 웃음이 터졌다. 아니, 손수건으로 엉덩이가 가려지냐고요.
“아, 내가 생각해도 웃기네.”
“…요셉 형, 일부러 그랬죠?”
“아니야~ 내가?”
정요셉의 눈가에 장난기가 가득했다. 딱 봐도 고의다, 고의. 내가 언젠간 복수한다.
그나마 손수건으로 청바지의 물기를 닦자 조금은 나아졌다. 내가 앉을 자리는 손수건으로 덮어서 최대한 렌터카에 물기가 안 묻도록 했다.
“펜션으로 가자. 커피도 사 왔으니까.”
다시 화목현의 차로 펜션까지 가는데,
“저기 마트 보인다.”
이정진이 마트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마트에서 라면이라도 살까? 점심으로 뭐라도 먹어야 하잖아.”
이정진의 제안에 멤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가요?”
나는 차에 있고 싶은데.
“엉덩이가 불편해서 못 가겠어?”
“요셉 형이 절 이렇게 만들었거든요.”
“미안, 미안. 후드티로 엉덩이 가려서 가자.”
그렇게 정요셉의 후드티로 내 엉덩이를 가리며 마트로 향했다. 이때까지 아무도 우리를 못 알아보는 줄 알았더니…….
“진짜다!”
한 네온이 우리를 발견했다.
“안녕하세요?”
인사성이 밝은 정요셉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네온이 핸드폰으로 입가를 가리며 다가왔다.
“안, 안녕하세요? 진짜 네스트 맞아요?”
정요셉이 카트를 잡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네스트 맞아요. 오늘 여행하러 왔거든요.”
그러자 네온도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저도 오늘 여행하러 왔거든요! 그나저나… 진짜로 여행하러 왔네?”
“예?”
왜 우리가 여행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것처럼 굴지? 내가 질문하자 네온이 주이든을 쳐다보았다.
“이든이가 여행 간다고 했어요.”
그랬어? 주이든은 우리의 시선을 피하며 휘파람을 불었다.
“저 사진 찍어도 될까요?”
화목현이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나섰다.
“사진 같이 찍어요.”
“뭐, 문제가 되진 않겠죠?”
“괜찮아요. 사진 찍는다고 세상이 멸망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네… 목현 선생님.”
네온의 선생님 발언에 멤버들이 살짝 웃었다. 화목현이 네온의 핸드폰을 들어서 위로 올렸다.
“자, 찍습니다.”
그렇게 마트에서 웬 남자 다섯 명이 팬 한 명을 중심에 놓고 같이 사진을 찍었다. 모자와 마스크까지 벗으면서 말이다.
“이 사진 나중에 올려주시면 안 될까요?”
“네!”
“저희가 지금은 여행하러 왔거든요. 부탁드리겠습니다.”
우리는 허리를 숙였다.
“뇌물로 뭐 사드리면 안 될까요?”
“뇌물은 괜찮은데!”
“그러면 선물이 괜찮겠네요.”
내가 과일 와인을 하나 가져와서 카드를 꺼냈다.
“제가 이거 선물하고 올게요.”
“그래, 나비가 갔다와.”
네온은 이런 건 받기 어렵다며 거절했다. 그 거절을 나도 거절했다.
“어디 가서 네스트한테 와인 받았다고 하면 자랑거리가 아닐까요?”
“…어, 그건 그렇지만.”
“이것도 추억이잖아요.”
과일 와인을 사서 건네주자 네온은 안절부절못했다.
“그런데 나비야, 다음에는 팬들에게 이런 거 주지 마.”
“왜요?”
네온이 인상을 빡 썼다.
“어떤 사람이 나비가 네온들에게 잘 사준다면서 네온 행세를 한다고 했거든.”
“나쁜 사람이네요.”
“그렇지? 그러니까 팬들한테 이렇게 안 사줘도 돼.”
걱정하는 네온의 모습을 눈에 담으며 미소를 지었다. 아이돌과 팬의 관계는 신기했다. 우리가 할 법한 걱정을 이렇게 팬들이 해주니 말이다. 그래서 항상 고마웠다.
“걱정하지 마세요. 정말 팬인 사람과 아닌 사람은 구분이 되니까.”
“그래?”
“그러니까 이거 받아도 돼요.”
과일 와인을 받은 네온의 표정에 기쁨이 물들었다.
“그… 나비야!”
“…네?”
“행복해?”
행복하냐는 질문이 뜬금없어서 나는 눈을 껌뻑였다.
‘내가 행복했던가?’
함부로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정확한 답변을 해주고 싶었기 때문에.
“오늘은 행복해요.”
“정말로 행복하지?”
“거짓말 하나도 안 치고 행복해요.”
그 말에 네온도 같이 웃었다.
“고마워요.”
네온이 마트를 빠져나가자 멤버들이 있는 곳으로 갔는데, 카트에 물건이 무슨 산처럼 쌓여 있었다.
“우리 어디 피난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