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의 1군 가이드-181화 (181/235)

181. 얼굴 있는 가수

내가 상자를 벗으려고 하자 심사 위원 3이 말렸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MC도 당황하여 심사 위원 3에게 물었다.

“심사 위원 3번님, 왜 그러시죠?”

“저 상자를 벗기 전 제가 오징어 가수에게 할 말이 있습니다.”

나한테 무슨 할 말이지?

“왜 잔잔한 노래인 편지에서 이번에는 불꽃처럼 빠른 템포인 꽃바람을 했습니까?”

“…어.”

왜 불렀는지가 궁금한 건가. 나에게 이유는 단 하나밖에 없었다. 마이크를 위로 올리며 나는 자신만만한 말투로 말했다.

“이 노래에 자신이 있어서 불렀습니다.”

내 말에 심사 위원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왜 놀라지……?

“왜 자신이 있었습니까?”

이번에도 심사 위원 3이 질문했다.

“…음, 자주 불렀던 노래이기도 하고.”

“이 노래를 자주 불렀다고요? 나이가 젊은 것 같은데.”

나이가 젊다는 말에 나는 반박했다.

“젊다고 해도 자주 부를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심사 위원 3은 짧게 헛기침을 뱉었다.

“…원래 노래를 잘 불렀습니까?”

또 심사 위원 3이 질문을 던졌다. 뭐가 그렇게 궁금한 게 많은지. 대충 상자를 벗고 내 정체를 밝힌 뒤에 무대 밑으로 내려가고 싶은데.

“처음부터 노래를 잘 부르진 않았습니다. 그저 열심히 노력해서 키운 실력입니다.”

“노래 실력도 타고나지 않았다는 건가요?”

“타고났으면 어릴 때부터 가수를 했겠죠?”

드디어 질문이 끝난 줄 알았는데, 심사 위원 3은 아예 입가에 붙어 있는 마이크가 떨어지지 않았다.

“그럼 아예 처음부터 꽃바람으로 노래 실력을 보여줘도 되는데, 왜 처음에는 편지를 골랐는지 묻고 싶네요.”

“…음, 어린 시절 할머니랑 아버지가 자주 90년대 노래를 틀었습니다. 계절이 바뀌어도 집 안에는 음악이 멈추지 않았어요.”

나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저는 이런 식으로 자연스럽게 90년대 노래를 접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나에게 해준 말이 있었다.

“아버지가 노래는 사람을 위로해 주는 존재라고 했거든요. 그래서 편지로 많은 분들을 위로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이번에는 심사 위원 2가 물었다.

“이건 사적인 질문인데, 왜 노래는 사람을 위로해 주는 존재라고 하신 건가요?”

이건 어디에서도 말하지 않았는데. 나는 뜸을 들이며 침음이 섞인 한숨을 뱉었다.

“저희 아버지는 제가 태어나고 자신의 꿈을 포기했습니다. 그때 항상 곁에 있었던 게 노래라고 하더군요.”

“아…….”

“아버지는 힘들고, 지치고, 삶이 무료할 때 음악이 달래줬다고 말해주셨습니다.”

심사 위원 2가 감동한 표정을 지으며 흐뭇한 미소를 띠었다.

“말해주셔서 감사해요.”

“아닙니다.”

내 말이 끝나자 MC가 상자를 벗어달라고 부탁했다.

“이제 상자를 벗겠습니다.”

나는 뒤를 돌아 상자를 벗으며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리했다. 그리고 천천히 심호흡을 한 뒤에야 몸을 돌리며 카메라에 대고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잠깐 동안 오징어라고 불린, 네스트의 막내 범나비라고 합니다.”

힐끗 오른쪽 채팅 모니터 화면을 봤다. 그럴 줄 알았다는 댓글과 몰랐다는 댓글이 앞다퉈서 올라왔다. 내가 심사 위원들을 향해 꾸벅 고개를 인사하자 심사 위원 2가 말했다.

“와~ 실물로 보는 건 처음인데 진짜 잘생겼네요.”

“감사합니다.”

“아니, 사실 영상에서는 얼굴이 보이지도 않았는데 잘생김이 느껴지더라고요.”

“그랬습니까? 그랬다면 제가 잘못했네요.”

“아, 잘생김을 풍겨서?”

“네, 그렇죠.”

능청스럽게 답변하자 MC가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제일 보고 싶었던 심사 위원이 있으셨나요?”

“…어, 당연히.”

자연스럽게 시선이 심사 위원 3에게로 향했다.

“심사 위원 3번님이 제일 궁금했습니다. 심사 위원은 얼굴 공개 안 하나요?”

“하하하!”

왜 웃지? 심사 위원 3이 재밌다는 듯이 깔깔 웃었다.

“제 얼굴 공개하면 안 될 텐데.”

“아, 왜요?”

“저한테 공격이 들어올 수도 있잖아요.”

우리 팬들이 공격을 할 수도 있다는 말을 돌려 말하네. 그걸 알면서 카메라에 대고 그렇게 말한 거 아닌가.

‘…웃기네.’

여기서 그냥 넘어가면 호구가 되는 거고, 화를 내도 호구다. 최대한 우리 팬들이 무섭지 않다는 인식만 심어줘야지. 우리 팬들이 얼마나 귀여운데.

“우리 팬들은 그렇게 시간 낭비를 안 합니다.”

“…예?”

“그만큼 바쁘고 귀여운 팬들이라서요.”

네스트 덕질만으로도 바쁠 텐데.

“…팬들이 귀여워요?”

“네, 엄청 귀여운데요.”

사실을 말할 때가 온 건가. 나는 카메라를 보면서 고백하듯 말했다.

“사실 얼굴 없는 가수도 팬들 때문에 출연했습니다.”

의외라는 듯이 MC가 대답했다.

“어, 이유가 뭔가요?”

“그동안 제가 이런 무대는 잘 안 했거든요. 이참에 팬들에게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어서 이렇게 얼굴 없는 가수에 출연하게 되었습니다.”

심사 위원 3이 고개를 까딱였다.

“팬들을 소중하게 생각하시네요. 아이돌이라서 그런가요?”

“당연히 팬들은 소중한 존재 아닌가요? 심사 위원 3번님은 아닌가 봅니다?”

“저는 실력으로 이 자리에 있는 거라서.”

“아.”

…이걸 듣자마자 하나를 깨달았다. 그냥 심사 위원 3은 세게 말하는 타입이네.

“…대단하시네요.”

당연히 실력이 좋으니까 심사 위원을 했겠지. 그걸 누가 모르나? MC가 상황 정리에 나섰다.

“이제 끝낼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마지막으로 얼굴 없는 가수에 출연한 소감을 들어볼까요?”

소감이라… 얼굴 없는 가수로 내 이름을 알린 것만으로도 만족스럽다.

“얼굴 없는 가수에서 편지와 꽃바람을 부른 네스트의 막내 범나비를 기억해 주시길 바라겠습니다. 제 목소리를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인사를 끝낸 뒤에 심사 위원 3을 쳐다보았다.

“아! 그리고 심사 위원 3번님한테 할 말이 있습니다.”

“뭐죠?”

나는 마이크를 입에 대고 말했다.

“충고 감사했습니다.”

“어, 네?”

“심사 위원 평가 영상, 재밌었어요.”

진짜라는 듯이 말끝을 강조하면서 뒤로 빠졌다.

‘…흠, 말 잘한 거겠지?’

그렇게 나는 무대 밑으로 내려갔다.

“하…….”

스태프에게 마이크를 건네고 한숨을 내뱉는데 저 멀리서 이정진이 다가오고 있었다.

“막내야, 고생 많았어.”

“…저 때문에 형이 힘들었죠.”

“나는 노래만 골라줬잖아.”

“그래도요.”

이정진이 아니었으면 혼자 생각하고 머리를 썼을 텐데.

“방송 재밌던데?”

“그래요?”

“솔직하게 말해서 재밌었어.”

그랬던가……? 오히려 이정진의 반응이 놀라웠다.

“싸가지 없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어요?”

“아니, 웃겼어.”

…진짜로?

* * *

얼굴 없는 가수 출연은 내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했다. 특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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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네스트 범나비였네

미안합니다

오해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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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미안

└ 탈아이돌급이라서 놀라긴 함

└ 무슨 탈아이돌까지;

-너무 잘해서 아이돌 아닌 줄 알았음

└ 잘하긴 했지

└ 존나 잘해

-사실 나도 팬인데 나비라고 안 믿었어

└ 22

└ 33

자진해서 미안하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거기다가 심사 위원 3의 무례한 태도에 사람들이 벼르고 있었다는 것만은 딱 알 수 있었다.

-아 범나비 사이다였음 ㄹㅇ

-심사 위원 3은 자기가 무슨 엄청난 전문가인 줄 아나 ㅋㅋ

솔직하게 대답했다고 이렇게 좋아하는 분위기라니. 욕먹을 각오로 말했던 건데 도리어 반응을 좋게 만들었다.

그렇게 평온하게 숙소 생활을 할 때였다.

“…야! 미친!”

주이든이 숙소로 오면서 외마디 욕설을 뱉었다.

“이든아, 욕은.”

화목현이 욕하지 말라고 경고를 하자 주이든이 놀란 사람처럼 허둥지둥거렸다.

“…아니! 나 회사에 갔다가 엄청난 소식을 들었거든?”

“무슨 소식?”

“우리 BEC 인수한대.”

BEC가 어디더라.

“걔 있잖아.”

“누구요?”

“고예찬! 고예찬을 회사에서 만났다니까?”

오랜만에 듣는 고예찬이라는 이름에 기억을 거슬러 올라갔다. 돌연프 때 QTQ 소속 개인 연습생으로 들어가서 결승까지 갔던 애가 아닌가?

하긴 데뷔 소식을 듣지도 못했다.

‘잘 살고 있는 줄 알았더니.’

그건 또 아닌 모양이었다.

“그 BEC 엔터가 QTQ 방송국 회사였죠?”

“어, 근데 BEC 엔터가 사실상 망했대. QTQ 방송국이 아예 손을 떼버리는 바람에!”

그렇게 망한 회사를 우리 회사에서 왜 인수하려고 하는 거지? 우리의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해서인지 주이든이 당당하게 허리에 손을 얹으며 선포했다.

“이 내가! 인수하려는 이유까지 듣고 왔다!”

“뭔데요?”

“내년 초에 돌아온 연습생 프로젝트 시즌 2가 나오는데, 우리 회사에서 연습생 한 명이 부족하대.”

연습생 한 명이 모자란 상황이라고? 뭔가 나랑 비슷한 상황 같은데.

“한 명을 데리고 온다고요?”

“어, 고예찬만.”

나머지 멤버들은 안 데리고 오고? 이건 주이든도 모를 테니까 굳이 묻지 않았다.

“그래서 돌연프 시즌 2에 넣을 연습생 한 명을 찾다가, 그냥 회사까지 인수하자고 의견이 나온 거래!”

주이든이 가쁜 숨을 고르면서 말했다.

“우리 예전 팀장님도 다시 온대.”

“예?”

“예전 팀장님이 다른 회사에 가지 않고, 우리 후배 그룹 총괄 프로듀서가 된다는 말이 있어. 그런데!”

또 있어? 이정진이 부엌에서 물을 가져와 주이든에게 건네주었다.

“잠깐만! 물 좀 마시고!”

벌컥벌컥 물을 마신 주이든이 소파에 앉고는 차분하게 말했다.

“BEC만 인수하는 게 아니래!”

“그럼요?”

“구구 엔터.”

“구구 엔터요?”

걸 그룹과 보이 그룹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엔터. 우리나라에서는 큰 반응이 없지만 외국에서는 인기가 치솟고 있었다.

“구구 엔터의 데뷔조 걸 그룹을 데리고 올 거래.”

“…우리 회사 걸 그룹도 한다는 겁니까?”

“그렇지!”

걸 그룹까지 한다고… 그럴 만한 돈이 있나?

“이 사실, 조만간 팬들도 알게 되겠네요?”

정요셉도 걱정하듯 말했다.

“…오, 그러면 팬들이 우리를 걱정하겠는데~?”

“그렇죠. 인수가 이루어지면 회사는 우리에게 소홀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깐요.”

이런, 팬들이 걱정하겠는데.

“BEC 엔터를 인수하는 건 이해가 가는데, 구구 엔터의 걸 그룹 연습생을 데리고 온다는 건 왜일까요?”

정요셉이 김밥 하나를 입에 넣었다.

“회사에서 연습생 키우는 비용이 은근히 많이 들어. 그래서 데뷔하면 연습생 시절에 썼던 비용을 제외하고 돈을 주잖아.”

“그렇죠.”

“그런데 이미 만들어진 데뷔조 걸 그룹을 데리고 온다면?”

“…트레이닝이 필요 없다?”

“비용적으로 생각하면 좋은 거지.”

…돈. 하지만 여전히 한 가지 의문이 있었다.

“데뷔조까지 올라간 애들을 데리고 오기는 힘들지 않나요?”

“…음.”

그랬더니 멤버들이 나를 쳐다보았다.

“자기소개 하는 거냐?”

“…아, 저는 한 명이었잖아요.”

“데뷔조에 올라갔다고 무조건 데뷔할 수 있는 구조도 아니잖아.”

하긴 연습생이 데뷔조에 올라갔다가 떨어지는 경우는 허다하다. 나도 데뷔조에 올라갔다가 무산된 적이 많았지.

“이든 형, 방금 고예찬 만나고 왔다고 했죠?”

“어, 왜?”

“고예찬 좀 만나려고요.”

고예찬을 만나서 물어볼 것도 있고.

“연호 형은 회사에 있죠?”

“나비야, 회사에 가려고?”

“네,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러 가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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