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 얼굴 없는 가수(3)
오늘 자정에 꽃바람 스트리밍 영상이 올라왔다. 그러자 영상이 켜지길 기다리는 사람들의 숫자가 점점 늘어나더니 어느새 만 명을 돌파했다.
다들 내가 얼마나 노래를 잘 부르는지 한번 보겠다고 벼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건 거의 실험대에 놓인 생쥐나 다름이 없는 거 아닌가.
“이게 무슨…….”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올 줄은 몰랐다. 살짝 긴장되긴 하는데… 왠지 연습생 시절로 돌아가는 기분이라서 묘했다.
그것도 그건데.
내 영상 채팅에서 왜 다른 가수 노래 홍보를?
-오징어가 너무 크니까 ㅅㅂ 다른 가수 곡이 묻힘
-ㅋㅋㅋ진짜 편지가 좋음? 인정을 못 하겠다 다른 곡들이 더 좋은데
-다른 곡도 봐주세요ㅠㅠ
-더 좋은 곡도 많은데 오징어 때문에 ㅎ
하긴 다른 곡의 조회수는 처참하게 낮았다. 사람들은 나 때문이라고 했지만…….
‘왜 나 때문이지?’
오히려 내 영상 채팅에는 다른 곡 영상 홍보가 더 많았다. 얼굴 없는 가수가 내 홍보는 안 해주는 이런 상황에서 내 욕밖에 없으니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12시가 되자 꽃바람 스트리밍 영상이 켜졌다. 나는 영상을 보는 것보다 대중의 반응을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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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오징어–꽃바람 같이 듣자
이번에는 유채꽃밭에서 진행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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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락이네? 자신감 있나 봐 ㅋㅋ
└ 그러니까 ㅋㅋㅋㅋㅋ
-고음 오지게 깔끔하다
└ 22
└ 33
└ 44 아이돌이 락 부른다고 하면 걱정부터 드는데 오랜만에 편안~
-노래를 무슨 저렇게 불러?
└ 왜? 문제 있음?
└ 너무 잘 불러서;;
└ 못 부른다는 줄ㅋㅋㅋㅋ
-이거 범나비네 내 귀가 범나비라고 함
└ ?또 비비네 ㅋㅋ
└ ㄴㄴ
└ 내 귀가 말해줌 아니라고
└ 범나비일 리가;
-만약 이거 네스트 범나비다? 나 다이빙하러 갈게
└ ?ㅋㅋㅋ
└ 동영상 찍어서 올려라
└ 제발 다이빙해 줘ㅠ
└ 갑자기 범나비였으면 좋겠다~
꽃바람을 잘 부르긴 했나 보다. 이렇게 아득바득 이를 갈면서 범나비가 아니라는 댓글이 보이니 말이다.
“흠…….”
사실 나도 고생하긴 했지만, 나보다 더한 고통을 겪은 사람들은 팬들이었다.
라이브 억까 영상부터 시작해서 오징어랑 나를 비교하는 영상까지. 나였어도 덕질 힘들다고 나가떨어졌을 텐데.
설마… 탈덕하는 건 아니겠지.
“설마.”
* * *
탈덕은 무슨.
“씨발… 이거지!”
이백수는 꽃바람 영상을 보는 순간, 꾹 참던 비명을 냅다 질렀다. 그동안 오징어를 인정하지 않았던 사람들도 꽃바람 영상을 보고는 인정해 버렸다.
“뭐야?”
그런데 다른 역풍이 불었다. 지금까지 오징어는 범나비라고 하더니, 이제는 오징어는 범나비가 아니란다. 이백수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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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사람들 아니라고 박박 우기는데
오징어 범나비 맞으면 어쩌려고 그럼?
아이돌 선입견 버려
아이돌도 노래 잘 부르는 애들은 잘 부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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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 다 받음
└ 22
└ 33
└ 44
-ㄹㅇ 아이돌도 노래 못 부르면 데뷔 못 해 ㅠㅠ
└ 아니던데;;
└ 아니라고 우기는 새끼들 거울이나 처봐라 ㅋㅋ
이백수는 맥주를 마시면서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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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심사 위원 3 꽃바람 영상 봤으려나ㅋㅋ
오징어 다음 곡 안 좋길 바라던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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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ㄴ 아님
└ 뭐가 아님?
└ 좋길 바라서 그렇게 말했던 거야 그래도 심사 위원 3번이 속을 시원하게 긁어주긴 함
└ ㅋㅋ 심사 위원 3 심하긴 했거든 정당성 부여 ㄴㄴ
└ 정당성 부여가 아니라 맞말
-이게 잘 부르기는 한 건가…
└ 귀가 어디 이상한 곳에 붙어 있음?
└ 왜?
└ 그냥 물어봄 ㅋ
-범나비가 아니라는 건 알겠음
└ 꽃바람으로?
└ ㅇㅇ
└ 아…
“역겹네.”
끝까지 아니라고 바득바득 우기는 모습이. 손가락만 놀리면 되는 줄 알지. 나중에 대중 앞에 나타날 나비를 생각하니까 속이 시원했다.
“한 번 더 볼까?”
이백수는 꽃바람 영상을 다시 클릭했다. 곡이 유채꽃밭과 잘 어울렸다. 잔잔한 피아노 소리가 울리며 오징어가 리듬을 타더니 마이크를 잡았다.
[-내 안에 숨은 욕망이
숨을 내쉬자
밖으로 튀어나오네
oh- oh- oh-]
그러고는 일정한 음으로 가사를 읊었다.
[-진득한 숨결이
너의 뺨을 건드리며]
베이스의 둥, 둥, 둥 소리에 맞춰 숨을 뱉는 오징어의 호흡은 극락이었다.
“미쳤어.”
[-네 귓가에 들리는
이 심장 소리의 울림
너에게 어떻게 들릴까]
자막이 없어도 가사가 귀에 꽂는 발성. 그때였다. 기타 소리가 길게 늘어지면서 드럼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너에겐 들릴 수 없는
바람의 소리]
오징어가 마이크를 위로 들며 카메라가 하늘을 쳐다보는 순간이었다. 바람 소리가 들리더니 유채꽃밭이 흔들렸다. 그리고 마이크를 양손에 쥔 오징어가 고음을 내질렀다.
[-꽃바람처럼 살랑이네--!]
두성이 섞인 고음에 이백수의 몸에 전율이 일렁였다. 그루브를 타는 박자감과 고음. 다시 드럼과 기타가 멈추고 오징어가 스탠드 마이크를 빼내며 하늘을 쳐다보았다.
[-오직 너만이 바람을 멈출 수 있어
오직 너만이 꽃을 뜯을 수 있어
(오직 너만이)]
주문을 거는 것처럼 노래를 부르던 오징어가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의 나는
네가 필요하니까]
오징어가 홀로 카메라 정면을 쳐다보았다.
[-바람, 바람, 바람
바람, 바람, 바람]
마지막으로 줌아웃이 되면서 동영상이 꺼졌다. 이백수의 입에서는 연신 감탄이 나왔다.
“저렇게 부를 줄 안다고……?”
이백수의 감상과 비슷한 댓글이 많았다.
-노래 오지게 잘한다
-또 들어왔음
-아니 이 노래 마성이네;
-나 바람바람바람 부분만 부르는 중 중독성 쩐다
-이거 수능 금지곡임 ㅇㅈ?
바람, 바람, 바람 부분이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오징어가 네스트 범나비라고 밝혀지는 순간 난리 나겠네ㅋㅋㅋ
-저렇게 노래를 잘할 줄은 몰랐음 읍읍!이 놀라겠지
-심사 위원 3의 반응이 제일 궁금하다 ㅋㅋㅋ
이백수도 심사 위원 3의 감상평을 기대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어떻게 나오는지 두고 보자.”
인정할지, 아니면 이번에도 신랄하게 깔지.
* * *
편지와 꽃바람이 조회수 1등을 차지하면서 이번 주 얼굴 공개 멤버가 되었다. 그래서 지금 나는 얼굴 없는 가수 스튜디오에서 홀로 대기실 소파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사실 조금 놀랐지.’
꽃바람이 인기를 끌 것 같긴 했지만, 파급력이 이렇게 셀 줄은 몰랐다. 주이든이 준 초콜릿을 입에 넣으며 심신의 안정을 취할 때였다.
“나비야?”
“네?”
“사진 찍자.”
김연호의 입꼬리에 미소가 걸렸다.
“왜요?”
“공식 SNS에 올리려고.”
“방송이 끝나고요?”
“어, 나비가 오징어라고 알려야지.”
오징어라고 하니까 어감이 조금 안 좋긴 하네. 팬들이 왜 오징어냐고 화를 낸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그때 오징어 과자를 먹고 있어서 오징어라고 지었을 뿐이지만.’
그때 김연호가 내 옷을 보며 입을 열었다.
“오늘 복장도 예쁘네.”
“스타일리스트 선생님이 잘해주셔서 그렇죠.”
오늘 복장이 좀 예쁘긴 했다.
마치 연말 시상식 무대에 설 것처럼 옷이 화려했기 때문이다. 한창 김연호랑 옷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데 대기실 문이 열렸다.
“어, 정진아.”
그리고 이정진이 등장했다.
“형? 어떤 일로 왔어요?”
“막내 힘들 것 같아서.”
나 때문에 왔구나.
“…정진 형, 안 바빠요?”
“안 바쁘지. 오히려 심심해.”
그렇지 않을 텐데.
엊그제 신곡 준비로 한창 힘들다고 화목현과 대화 나누는 모습을 목격했었다. 이정진이 내 옆자리에 앉았다.
“원래 요셉이랑 같이 오려고 했는데… 요셉이는 스케줄이 잡히는 바람에 못 온대.”
“아, THE END 때문에요?”
“응, 전 회차가 오늘 저녁 플렉스에 풀리잖아.”
…아, 그랬구나. 요즘 얼굴 없는 가수 활동 때문에 정요셉의 THE END를 신경도 못 썼네.
“전혀 몰랐어요.”
“막내는 그럴 만해. 그래서 오늘 숙소에서 파티 할 거래.”
어떤 파티를 진행하려고?
“목현이랑 이든이가 라디오 방송 끝나면 숙소에 케이크를 사 온다고 하니까.”
“그래요?”
나도 뭔가를 가지고 가야 할 것 같은데.
“저도 뭔가를 사면 좋을…….”
그때 이정진이 앞에 있던 과자를 집어서 내 입에 욱여넣었다. 입막음을 이렇게 하네.
“곧 있으면 무대 위로 올라간다며. 실시간 방송?”
“예, 실시간으로 방송을 할 거래요.”
편집도 없이 실시간으로 진행한다. 잘할 수 있을지가 관건인데. 때마침 대기실 문이 열리고 얼굴 없는 가수 스태프가 들어와서 말했다.
“이제 오징어 님 갈게요.”
그러면서 스태프가 나에게 상자를 건네주었다.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만큼 일단은 정체를 밝히기 전 얼굴에 상자를 쓴단다.
다행히 앞이 보이도록 눈동자 쪽 구멍은 뚫려 있었다.
“정진 형, 저 갔다 올게요.”
“막내야, 떨지 말고.”
“안 떨어요.”
그냥 빨리 찍고 내려오면 좋을 것 같았다. 그렇게 대기실에 김연호랑 이정진을 놔두고 스태프를 따라갔다.
“여기서 기다리다가 제 신호에 맞춰서 올라가겠습니다.”
무대 밑에 도착하자 내 꽃바람 영상 소리가 들렸다. 아직 내가 올라가지도 않았는데? 불길한 생각이 들던 찰나.
“락 장르를 들고 왔네요.”
심사 위원 3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런, 대놓고 평가를 들으라는 건가.
‘제작진들, 선을 넘네.’
차라리 무대 위에 올라가서 평가를 들으면 모를까.
“조회수가 100만을 돌파했고 댓글에도 좋다는 말이 많네요.”
심사 위원 3의 말투에는 영혼이 없었다. 이번에도 자기 귀에는 꽃바람이 별로라는 건가. 이 정도면 그냥 귀를 막고 살아야 하는 수준 같은데.
“심사 위원 3번님은 또 별로인가요? 오징어의 꽃바람이?”
“심사 위원 2번님? 별로라는 소리는 안 했습니다. 다만 조금 더 자극적으로 갔으면 좋았을 것 같아서요.”
자극적? 도대체 어떤 자극을 원해서 저러나. 저 멀리서 스태프가 나에게 패드를 건네고 카메라가 등장했다.
‘카메라?’
내가 패드로 댓글창 읽는 모습을 찍겠다는 거군. 얼굴 없는 가수가 흥하니까 이런 식으로 나오겠다? 일단 스태프가 하라는 대로 영상 댓글을 확인했다.
‘별수 있나.’
-ㅇㅈ 더 자극적으로 갔으면 좋았을 듯
-아 3번 사이다~
-노래는 잘 선곡했는데 아쉽다는 생각이 들긴 함
-나는 괜찮던데ㅋㅋ
-여기 사람들 기준이 높네
스태프가 나에게 원하는 반응은 댓글창을 보면서 놀라거나, 한숨을 내쉬거나, 미간에 힘이 들어가는 것 정도겠지. 그러나 나는 입술 주변을 검지로 긁으면서 눈을 껌뻑였다.
“댓글 반응이 어떤가요?”
“반응이요?”
질문도 해?
“괜찮네요.”
“가슴에 꽂히는 아픈 댓글은 없나요?”
여기서 가슴이 꽂히는 댓글이 어디에 있는가. 그나마 뽑는다면.
“힘내라는 댓글이 마음 아픕니다.”
이 댓글이 제일 눈에 꽂혔다. 인터뷰가 끝났는지 작가가 나에게서 패드를 가져갔다.
“곧 무대 위로 올라갑니다.”
“네.”
리프트에 올라서서 움츠려 앉았다.
“총 조회수 290만을 넘긴 오징어입니다!”
오징어라고 하니까 이상하네. 소개가 끝나자마자 리프트가 올라갔다. 무대 위로 올라가자 카메라 몇 대가 나를 찍었다.
“안녕하세요. 오징어입니다.”
심사 위원들도 얼굴이 가려져 있어서 누군지 알 순 없었다.
“지금 얼굴을 공개하시면 됩니다!”
지금 공개해도 되나?
“얼굴 공개하겠습니다.”
뒤를 돌아 상자 벗을 준비를 하려는 때였다.
“잠깐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