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 얼굴 없는 가수(1)
음악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갑자기 잡힌 예능이에요?”
“그건 아닌데…….”
김연호가 말끝을 흐렸다.
“지금 네 여론이 안 좋잖아.”
“아, 제 여론이요?”
“…라이브에 대해서.”
최근에 나의 라이브 실력에 대해 말들이 많았다. 무시하려고 그랬는데 김연호는 신경을 쓰고 있었나.
“나비가 서바이버물 이후로 단독 예능을 찍지 않았잖아.”
“그렇죠.”
“이번에 단독 예능을 나가면 팬들도 좋아하지 않을까?”
“그래서 음악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나가라는 거예요?”
“어, 그렇지.”
…이건 생각해 볼 만하지.
“나비가 팬들을 위해서 나갔으면 좋겠거든.”
“…….”
“음악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나가서 노래 잘 부르는 모습을 보여주면 좋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야…….”
김연호가 예능 권유를 잘 안 하는 타입인데.
‘얼마나 몰이가 심하면…….’
어떤 예능인지 한번 물어보기나 하자.
“…흠, 어떤 프로그램인데요?”
“얼굴 없는 가수라는 프로그램인데, 얼굴 없이 오로지 노래 영상을 너튜브에 올려서 너튜브 조회수로 승부를 가른다고 들었어. 어때?”
‘거기에 참여라.’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라이브 하는 모습을 팬들에게 보여주면…….’
팬들의 추억 일부분이 될 수 있겠지. 고민에 빠져서 허우적대고 있자 화목현의 말이 귀에 박혔다.
“나비야, 한번 나가보자.”
“…나가도 될까요?”
“나비가 나가면 앞으로 노래를 들어주는 사람들이 많아질 거야.”
화목현의 말에 설득이 안 되자 정요셉이 나섰다.
“아니지.”
자는 거 아니었나. 옆에서 안대를 끼고 있길래 자는 줄 알았다.
“우리 막내는 이거 꼭 해야지.”
“해야 한다고요?”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우리 막내한테 올 수 있을지 모르잖아~?”
“그렇긴 하지만.”
정요셉이 저렇게 말하니까 혹하긴 한다.
‘…뭐, 해볼까.’
나는 결심한 말투로 김연호에게 말했다.
“그 예능, 해볼게요.”
“작가님에게는 내가 말해놓을게.”
근데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노래.’
가장 잘하는 분야긴 하지만… 대중의 귀에 잘 맞을지.
“우리 막내라면 잘하겠지. 목현 형, 안 그래?”
“응, 나비는 잘하지.”
화목현이 부담스럽게 나를 쳐다보며 웃었다. 좀 부담이 되긴 하네.
‘…뭐, 나는 노래 잘 부르니까.’
노래 하나는 자신감이 있었다.
* * *
특별한 촬영은 없었다. 그저 노래에 어울리는 세트장을 만들어서 얼굴을 가린 채 노래를 부를 뿐.
나는 이정진의 작업실 소파에 앉아서 어떤 노래를 고를지 고민에 빠졌다.
“막내야, 노래는 정했어?”
“아직이요.”
“아직?”
어떤 노래를 고를지 정말 빡셌다. 내가 자신 있는 장르의 노래를 불러도 대중적인 인기가 없으면 큰일이지 않은가. 거기다 너튜브 조회수가 좋아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나한테 물어보려고?”
“…예, 그것도 있고.”
“그것도 있고?”
“제 목소리로 어떤 노래를 불러야 할지 모르겠어요.”
키오 시절에도 음악 프로그램에는 잘 나가지 않았다. 대부분 단체로 나갔지.
“오디션 봤을 때는 무슨 노래를 불렀는데?”
“90년대 노래인 ‘너의 그늘은’요.”
“왜 그 노래를 불렀어?”
“…아버지랑 할머니가 좋아했던 노래라서요. 이 노래를 부르면 오디션에 붙을 자신이 있었거든요.”
아버지는 노래를 좋아하셨다. 그것도 많이. 그래서 90년대 노래를 자주 틀어주셨다.
“귀에 익은 노래는 자연스럽게 잘 부르게 되거든요. 그랬더니 오디션에도 붙었죠.”
“그럼 이번에도 90년대 노래를 부르는 건 어때?”
90년대 노래를?
“막내가 그랬잖아. 귀에 익은 노래는 자연스럽게 잘 부르게 되었다고.”
…그럴 수도 있겠는데.
“그리고 그동안은 내가 너에게 고음만 시켰잖아?”
“…….”
“평소와 다른 느낌으로 노래를 부르는 범나비는 새로운 모습이라서 사람들이 좋아할 거야.”
이정진이 미안하다는 듯이 뻘쭘한 표정을 지었다.
“형, 그런 표정 짓지 마세요.”
“이번 기회를 통해 막내가 노래를 잘 부른다는 걸 사람들이 인식해 줬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어.”
“원래도 잘했잖아요.”
“그걸 나만 알기가 싫으니까. 대중들이 알아주길 바라는 거지.”
…이정진의 마음에 보답하기 위해서는 잘 불러야 할 텐데. 이정진이 핸드폰을 만지면서 나에게 말했다.
“이 노래는 어때?”
“…어.”
이 노래는… 내가 생각하는 사이 이정진이 말을 이어갔다.
“얼굴 없는 가수는 조회수가 잘 나온 영상을 심사 위원들이 평가한다고 하던데.”
“어, 네.”
“조회수가 제일 잘 나온 사람은 얼굴을 공개할 수 있다고 하더라.”
이정진도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가 아니라면 관심이 없는 편인데.
‘조금 감동인데…….’
이정진은 신중하게 고민하더니 나에게 노래 리스트를 보여주었다.
“막내야, 이렇게 골라봤거든?”
노래 리스트는 전체적으로 괜찮았다.
“형이 골라주세요.”
“내가?”
“예, 저는 못 고르겠는데요?”
이정진은 노래 리스트를 보더니 한 곡을 골랐다.
“편지는 어때?”
“편지요?”
하지만 이 곡은 내가 부르다가 네스트의 이름에 먹칠을 할 수도 있는 노래였다. 기교 없이 담백하게 부르는 노래라서 부르기 힘들다는 평도 있었고.
그런데 이정진이 왜 이걸 부르라고 했을까.
“그럼 정진 형, 왜 이 노래를 골랐어요?”
“여기에 나비의 과거 이야기를 살짝 첨가하면 좋을 것 같아서.”
“좋을 것 같네요.”
“그렇지?”
부모님의 영향으로 90년대 노래를 안다는 사실만으로 플러스 요소가 될 수도 있다. 우리나라는 특히 스토리를 중요시하니까.
‘…괜찮겠는데.’
하지만 얼굴 없는 가수 제작진 측에서는 두 곡을 골라달라고 했었다.
“노래 하나 더 골라야 해요.”
“두 곡이야?”
“두 곡으로 준비해 달라고 했어요.”
한 곡은 90년대니까, 한 곡은.
“최신곡으로 할까요?”
“좋은 생각인데?”
“그런데 저한테 필요한 사람이 있어요.”
“필요한 사람?”
나는 이정진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말했다.
“정진 형이 필요해요.”
“내가?”
나는 이정진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정진 형이 부르라고 했잖아요? 그러면 당연히 옆에서 도와줘야죠.”
“…어? 어, 그렇지.”
“그러니까 잘 부탁드립니다, 형.”
노래는 정했고, 이정진도 섭외했겠다.
‘이건 이길 수밖에 없는데?’
실실 웃음이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오자 이정진이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막내야, 왜 그렇게 웃고 있어?”
“아, 저 웃고 있어요?”
“어, 입꼬리가 무슨 광대에 걸리겠는데.”
나는 손바닥으로 입가를 가렸다.
“…형, 저 의욕이 생겼어요.”
“어? 의욕이 생겼어?”
“네, 웃음이 나올 만큼이요.”
슬슬 웃음도 나왔다.
“잘해야겠어요.”
“그래? 의욕이 생긴 건 좋지.”
“지금부터 특훈에 들어가야죠.”
“그래, 막내야. 파이팅.”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화목현의 어깨를 그러쥐었다.
“형도 저랑 같이 특훈에 들어가야죠?”
당황한 이정진이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어, 왜? 나를…….”
“제 형이잖아요.”
“어, 어. 그렇지?”
억지로 이정진을 끌어당겼다. 이렇게 됐으니 노래를 잘 부른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노래를 잘 불러야겠다.
“얼굴 없는 가수 조회수를 뽑아버리죠.”
이참에 악플을 없애도록 해야겠지.
* * *
김올팬은 한가롭게 도둑 GAME 안무 영상을 보는 중이었다. 네스트가 티저에 입고 나왔던 옷을 입고 촬영한 영상이라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는 커뮤니티에 들어가는데 김올팬의 눈에 띈 글이 하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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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스트] 이 영상 나비 같은데 아닌가?
QTQ 방송국에서 나온 음악 프로그램
얼굴 없는 가수?라길래 클릭해 봤거든
바로 나비 목소리 들림
근데 이름이 적폐다
오징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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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진짜로
-나비 아니야?
-에이 나비는 따로 스케줄이 없었잖아
-프리뷰도 안 뜨고 사생들이 ㅋㅋ 모를 리가 없음
나비의 단독 예능? 새롭다. 하지만 김올팬은 얼굴 없는 가수의 바이럴이라고 생각했다.
“…나비가 나올 리가.”
돌연프가 끝나고 단독 예능을 한 적이 없는데. 예능을 찍어봤자 서바이벌물을 찍어서 김올팬은 짜게 식었다.
물론 서바이버물도 재밌긴 했지만, 나비의 매력이 두드러지게 나오진 않아서 아쉬웠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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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스트] 진짠데? 나비 맞아!
바이럴이라고 생각했던 내 자신 눈 감아
그 영상 댓글에 나비라고 계속 달리는 중임
오징어 노래 오지게 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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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 잘한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너무 잘하는데?
-노래를 너무 잘 불러서 뭐라 할 말이 없음
└ㅇㅈ
└너튜브 댓글에서도 노래 잘한다고 난리임
-…나비 담백하게 잘 부르네
└그러니까
└저 노래로 잘 부른다는 느낌 주기 힘든데 미쳤음…
-고음 셔틀로 있기엔 아까운 인재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나비의 진가를 알릴 때가 오다니 신난다ㅠ
└요즘 도둑 게임 활동 내내 나비 노래 못한다는 댓글 계속 달려서 화났었는데 오히려 좋음
-근데 왜 이름이 오징어?
진짜로 범나비라고? 김올팬은 얼굴 없는 가수를 검색하자마자 조회수 20만을 돌파한 영상을 눌렀다.
[오징어 :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 자막이 없어지고 노래가 시작되었다.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얼굴이
잊을 수 없다는 말이 맞았구나]
담담하게 시작하는 노래의 시작에 김올팬은 점차 보컬의 음색에 빠져들었다.
[-편지의 내용은 보잘것없지만
보고 싶다는 말에 무너져
그대가 보고 싶은 밤
그대가 그리운 밤
하지만 볼 수 없는 밤]
나비의 목소리에 살짝 눈물이 고인 것 같았다.
“…뭐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어서
나는 기적을 바라요
그대가 내 꿈에 나타나기를]
잔잔한 목소리에는 기교가 없어 담백했다. 귀가 쨍하지도 않고, 편안한 잠을 불러들이는 노래.
[-오늘도 당신에게 전할 편지를 씁니다]
그건 그렇고 이 목소리를 들으면 들을수록.
“나비잖아?”
이 영상의 주인공은 완벽하게 범나비다. 그런데 팬을 제외한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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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이 동영상이 범나비 맞음?
아닌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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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네스트의 범나비라고?ㅋㅋ X랄
-아닌 듯 ㄹㅇ 내가 범나비라고 쳐서 영상 보고 왔는데 아니던데?
-보컬 좋은데 제발 아이돌 묻히지 마;;ㅋㅋ
-팬들 자의식과잉 대박이다 ㅋㅋㅋㅋㅋㅋㅋ
이런 반응이 대다수라서 그런지 네온들도 입을 다물었다. 혹시나 아닐 수도 있으니까.
“근데 나비 맞는 것 같은데…….”
김올팬은 이를 악물었다.
“그래, 마음껏 나비가 아니라고 생각해라.”
나중에 범나비라는 이름이 나오면 엄청나게 놀랄 테니까.
* * *
음악 방송 대기실. MC인 이남주가 대기실에 들이닥쳤다. 그리고 나에게 다가오자마자 하는 말이 있었다.
“얼굴 없는 가수, 편지!”
이걸 어떻게 알았지?
“당신, 맞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