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 투두 네스트 – 산장 게임편(4)
복숭아 향수로 재벌 2세를 죽였다?
“알레르기로 죽었다면 사망진단서에 질식사라고 나오지 않았을 겁니다.”
“아, 맞네~”
정요셉은 복숭아 향수를 제자리에 놓으러 가고 나는 남은 시간을 확인했다.
《35분》
별로 시간이 남지 않았는데…….
다른 곳을 살펴볼 바에는 산장을 확인하는 편이 좋았다.
‘산장지기가 너무 수상하니까.’
나는 납작 엎드려 산장 바닥을 샅샅이 훑었다. 그런데 소파 밑에 뭔가가 숨겨져 있었다.
“…저게 뭐지?”
내 말에 이정진이 뒤를 돌아보았다.
“탐정님, 뭐라도 발견했나요?”
“네, 뭔가를 발견한 것 같은데. 이정진 씨가 소파를 잠시 들어주실래요? 제가 꺼내볼게요.”
이정진이 소파를 들고 내가 팔을 뻗어 물건을 잡았다. 내가 꺼낸 물건은 신문.
“신문인데요?”
“신문이요?”
마구잡이로 구겨진 신문을 펼치자 눈에 띄는 문장이 있었다.
《재벌 2세, 교통사고의 피해자?》
교통사고의 피해자? 이질감이 들어 기사의 내용을 읽었다.
《새벽에 투네 사거리에서 보행자가 차량에 치인 사건이 발생했다. 항간에는 금융 재벌 2세가 낸 교통사고라는 소문이 있었으나 다음 날이 되자 경찰서에 20대 남성이 나타나 자기가 낸 교통사고라고 자백했다. 경찰이 수사한 결과, 피해자는 가해자의 아버지로…….》
“기사의 내용으로는… 주이든 씨가 덮어쓴 게 이거 같네요.”
뺑소니로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자가 재벌 2세인데… 왜 주이든이 죄를 덮어쓰며 자신이 교도소에 들어간 거지?
“…이거 참 복잡한 사연이네요.”
이 정도의 힌트로는 주이든에 대한 의문을 없앨 수가 없어 조금 더 산장을 뒤졌다. 그러다 산장 모닥불 근처에서 불씨에 타다가 만 비닐을 발견했다.
‘비닐?’
털면 털수록 수상한 산장이다. 그리고 잠시 뒤, 열쇠 꾸러미를 발견했다. 그 열쇠 꾸러미를 보는 순간 깨달았다. 범인이 누군지.
“다들 확인했나요?”
다들 증거 찾기에 혈안이 돼서 내 말이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나는 더 큰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30분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니 우리 모여서 대화를 나눠보죠?”
그러자 증거 찾기를 멈추고 모두들 알겠다는 듯이 고갤 끄덕였다.
“다들 회의실로 모여주세요.”
우리는 회의실에 모여 각자 찾은 증거를 말하기로 했다. 먼저 손을 든 사람은 정요셉이었다.
“탐정 씨?”
“네.”
정요셉은 싱겁다는 듯이 말했다.
“탐정 씨의 말대로 정말 탐정 사무소에 알리바이가 있던데. 네가 재벌 2세랑 저녁을 먹은 영수증. 탐정 씨, 잘 빠져나가네?”
“감사합니다.”
“아, 나는 탐정 씨가 범인인 줄 알았는데… 내가 발견한 알리바이는 이게 끝이야.”
정요셉의 차례가 끝나자 주이든이 손을 들었다.
“나는 정요셉 씨의 증거를 찾았어.”
주이든이 정요셉의 증거를 찾았다며 테이블 위에 칼을 올려놨다.
주이든이 검지로 칼을 가리키며 정요셉을 쳐다보았다.
“칼로 재벌 2세를 죽이려고 했더라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주이든의 주머니에서 대포폰이 나왔다.
“여기 대포폰에 적힌 문자메시지를 읽어봐.”
우리는 대포폰을 가져와 문자메시지를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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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요셉) 그 새끼를 죽여
(정요셉) 몰래 죽이면 아무도 모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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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문자메시지를 보낸 시간이 오후 7시였다.
“제가 재벌 2세가 만났던 시간이 아닙니까?”
내 질문에 정요셉이 해명했다.
“원래 그때 죽이려고 했는데 갑자기 이상한 놈이 나타나서 재벌 2세랑 밥을 먹잖아. 그래서 다음을 기약했지.”
“그래서 못 죽였다는 거군요.”
“그렇지? 아쉽게도.”
주이든의 차례가 끝나자 다음은 화목현이 일어났다.
“다음은 제가 말하겠습니다.”
화목현은 자신이 발견한 증거로 브리핑을 했다.
“제가 지목한 사람은 이정진입니다.”
화목현이 이정진을 고른 이유는 두 가지였다.
“이정진 씨는 산장 게임 직전에 너튜브가 한번 나락을 갔더라고요?”
“네…….”
“너튜브 연말 모임에서 구독자 욕을 했다는 이유가 맞을까요?”
“…사실 구독자 욕이 아니라 친구 욕이었습니다.”
화목현은 이 점을 강조하듯이 회의실에 있던 노트북을 가져왔다.
“그런데 수상하지 않나요?”
“어떤?”
“흥신소의 노트북에서 이 USB를 발견했습니다.”
USB? 흥신소라는 말에 정요셉이 턱을 괴며 흥미진진하게 구경했다. 화목현은 노트북에 USB를 꽂아 동영상을 틀기 직전이었다.
“동영상의 날짜를 자세히 봐주세요.”
화목현은 마우스 오른쪽을 클릭하더니 우리에게 동영상 날짜를 보여주었다.
“이 영상은 2년 전에 찍은 겁니다. 그것도 이정진 씨의 친구가 찍은 영상이죠. 그런데 이 사건이 갑자기 물의를 빚게 됩니다. 왜일까요?”
화목현이 다른 영상을 재생시켰다.
“이 영상은 재벌 2세가 퍼트렸습니다.”
이 사실을 몰랐는지 이정진은 눈이 커지면서 어이없는 웃음을 흘렸다.
“그 증거로 회장실에서 발견한 녹음본을 틀겠습니다.”
[재벌 2세 : 그 브이로그 하는 새끼 나락 좀 보내라. 말을 안 들어.]
화목현은 동영상을 끊더니 정요셉을 바라보았다.
“이정진 씨를 나락으로 끌고 간 사람 중에는 정요셉 씨도 있습니다.”
정요셉이? 화목현은 다시 동영상을 틀었다.
[정요셉 : 그래서 어쩌라고?]
[재벌 2세 : 2년 전, 연말 모임에서 그 새끼가 이상한 말을 뱉었다는데? 그게 구독자 욕을 하는 것처럼 손을 쓸 수는 없나?]
[정요셉 : 너는 나보다 악질이네, 악질이야. 그래서 돈은?]
[재벌 2세 : 큰 거 두 개.]
[정요셉 : 알았다.]
그렇게 녹음본이 끝났다.
“와… 이 새끼들, 쓰레기네.”
잠잠하게 있던 이정진의 눈동자에 파동이 일어났다.
“나는 시키는 일을 했을 뿐이야. 그러면 너도 재벌 2세를 죽일 이유가 있는 것 같은데.”
“…전 지금 알았어요.”
“그건 모르는 일이지.”
하지만 이정진의 눈빛에서는 진정성이 느껴졌다.
정요셉이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사악한 미소를 띠었다.
“자자, 빨리 브리핑을 하자고?”
화목현의 브리핑이 끝나고 내 차례가 되었다.
“저는 산장에 들어가서 주이든 씨의 증거를 찾고 있었습니다.”
“나는 아니라니까?”
주이든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주이든 씨의 증거는 많았습니다.”
나는 아까 들고 온 신문을 꺼냈다. 주이든이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 신문을 보시면 20대 남성이 주이든 씨고, 그 교통사고의 피해자는 주이든 씨의 아버지입니다.”
모두에게서 하나같이 감탄사가 입에서 나왔다.
“또 산장에서 주이든 씨의 계약서를 찾았습니다. 그 계약은 재벌 2세를 대신해서 2억을 받고 교도소에 들어간다는 거죠. 여기 증거로 사진이 있습니다.”
“…….”
“주이든 씨에게 묻겠습니다. 이 기사의 내용이 사실입니까?”
내 질문에 주이든은 부들부들 떨었다. 이윽고,
쾅!
주이든이 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리쳤다.
“나는 재벌 2세가 친 게 아버지인지 정말 몰랐어! 갑자기 재벌 2세가 나를 찾아오더니 계약을 하자는 거야. 그것도 2억씩이나 주고.”
“아버지와 소통이 안 된 상황이었습니까?”
“당연하지. 아버지라는 사람은 나를 버린 존재였으니까.”
“그렇다면 재벌 2세가 아버지를 죽인 사실은?”
“교도소에서 나오고 난 뒤에 알았어.”
재벌 2세가 악독하긴 하네.
“그럼 주이든 씨는 재벌 2세를 죽이고 싶었겠네요?”
“죽이고 싶었다. 왜?”
“그래서 죽였습니까?”
억울하다는 듯이 주이든이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난 정말 죽이지 않았어.”
그때 가만히 있던 이정진이 입을 열었다.
“제가 주이든 씨의 증거를 제출하겠습니다.”
“어떤 증거입니까?”
“산장에서 발견한 주이든 씨의 통장입니다.”
이정진이 나에게 통장을 건네주었다. 통장 내역을 확인해 보니, 지금껏 재벌 2세에게 받은 돈과 최근에 받은 돈까지 적혀 있었다.
《재벌 2세
-100,000,000
-3,000,000
-3,000,000
-20,000,000》
재벌 2세에게 돈을 꽤 많이 받았잖아?
“날짜를 보면 교도소에서 나오고 난 이후로 재벌 2세에게 돈을 받고 있습니다. 그 후로는 산장지기를 하면서 월급으로 받은 모양이에요. 그런데 이천만 원은 언제 받은 겁니까?”
주이든이 말하기 싫다는 듯이 눈을 감았다.
“왜 받은 건지 말하지 않는다면 주이든 씨를 범인으로 몰 수밖에 없습니다.”
“…재벌 2세가 온갖 이상한 짓을 했거든.”
“구체적으로 말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살인.”
…살인?
“재벌 2세가 교통사고를 자주 냈거든…….”
“설마.”
“그걸 묻으려고 산장을 만든 거야.”
허… 모두가 어이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뱉었다.
“사실 나는 산장을 지키는 산장지기가 아닌…….”
“범죄를 덮어주는.”
“그래, 그런 사람이야.”
주이든이 살인을 봐주는 사람이라.
“나도 재벌 2세를 죽이고 싶었지. 죽이고 싶어서……!”
“죽이고 싶어서?”
“시도는 해봤어.”
“시도를 해봤다고요? 아니잖아요.”
나는 모닥불 옆에서 발견한 열쇠 꾸러미를 바지 주머니에서 꺼냈다. 열쇠 꾸러미를 본 주이든의 표정이 굳었다.
내가 열쇠 꾸러미를 증거로 내놓은 이유는 따로 있었다.
“열쇠 꾸러미를 보시면.”
“…….”
“어디에 사용하는 열쇠인지 라벨로 표시가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딱 하나만 표시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갑자기 끼워 넣은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열쇠. 거기에 주이든은 열쇠공과 연락한 적이 있다.
“주이든 씨, 이 열쇠… 회장실 열쇠 아닌가요?”
“…아닌데.”
“아니라면 회장실에 가서 문을 열어보면 되겠네요.”
나는 직접 열쇠 꾸러미를 들고 회장실로 향했다.
“여기서 문이 열리면 주이든 씨가 범인으로 확정되는 겁니다.”
“…….”
“그것보다는 자기 입으로 밝히는 게 낫지 않을까요?”
나는 열쇠를 회장실 문에 꽂았다.
“주이든 씨?”
한 번 더 물었으나 주이든은 입을 다물었다. 열쇠를 돌리자 서서히 돌아가는 문고리를 보면서 모두가 주이든을 응시했다.
“…아, 젠장.”
주이든이 쓰고 있던 허름한 모자를 바닥에 떨어트렸다.
“이렇게 주이든 씨가 범인으로 확정됐네요.”
화목현이 고개를 돌려 주이든을 쳐다보았다.
“왜 죽였나요?”
“…아버지가 죽었는데 당연히 죽이고 싶지 않겠어?”
주이든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시간을 확인했다.
《5분》
5분이라면 시간이 없다.
“주이든 씨.”
나는 주이든에게 물었다.
“혼자 여기에 남을 겁니까?”
“…어.”
“알겠습니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어 주이든을 제외하고 우리는 처음에 있었던 장소로 되돌아왔다.
시간이 없어 내가 대표로 외쳤다.
“주이든이 회장실에서 재벌 2세를 질식사시켰다.”
그러자 박수 소리와 함께 스피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T : 축하합니다. 범인을 찾으셔서 말이죠.]
그 후의 대답에 나는 눈을 껌뻑였다.
[T : 즐거웠나요? 탐정 범나비 씨.]
무슨 뜻이지? 저 말을 이해하기 전,
탕.
소리가 나면서 공간의 불이 꺼졌다. 다시 불이 켜질 때는 투두 네스트 PD와 스태프분들이 박수를 치고 있었다.
“네스트 여러분, 고생했어요.”
그제야 나는 탐정 범나비가 아닌, 네스트의 범나비로 돌아왔다. 아직도 심장이 벌렁거렸다.
“…와.”
나는 가슴에 손바닥을 얹으며 심호흡을 했다.
“PD님, 이걸 언제 준비했어요?”
“두 달 정도 준비했습니다.”
나는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PD님, 이거 언제 나와요?”
그러자 PD가 의미심장한 말투로 말했다.
“네스트가 도둑 GAME으로 1위 하는 날입니다.”
…예? 1위를 못 하면 어떻게 하려고.
“그날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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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두 네스트 산장 게임편을 찍은 뒤 우리가 차에 오르자 김연호가 나를 보며 제안했다.
“나비야, 음악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해볼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