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 투두 네스트 – 산장 게임편(1)
어제는 다행히 편안하게 잤다. 일어나니까 몸도 가뿐하고 머릿속도 말끔했다. 그건 그렇고. 오늘은 투두 네스트 산장 게임편을 찍는 날인데.
나만 홀로 주차장에 놔두고 멤버들은 미리 촬영장에 갔다.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갑자기 조연출이 나에게 안대를 건네주었다. 이걸 끼고 기다려 달라고.
안대를 낀 채 가만히 기다리고 있는데 근처에서 발소리가 나더니 차 문을 열었다.
“범나비 씨?”
“네……?”
“얼굴 맞는지 확인해.”
나는 귀를 쫑긋 세웠다. 경호원으로 보이는 성인 남자가 내 안대를 벗기면서 사진과 번갈아 보았다.
“얼굴 확인하니까 범나비 씨가 맞네.”
얼굴을 확인한 경호원은 다시 나에게 안대를 씌웠다. 이번 투두 네스트의 컨셉이 뭐길래…….
“양쪽 잡아!”
그러고는 갑자기 내 양팔을 잡더니 어디론가 끌고 갔다.
“절 어디로 데려가는 거죠?”
“…그건 말할 수 없습니다.”
“아니, 왜 저를 이렇게 데리고 가는지.”
그 남자는 무작정 나를 데리고 가더니 잠시 섰다.
딸깍.
문고리를 내리는 소리와 함께 경호원이 내 안대를 강제로 벗겼다. 그대로 쏟아지는 환한 빛에 눈살을 찌푸렸다.
‘이게 무슨 일이지.’
멍하니 앞을 보는 동안 경호원들이 문을 닫았다. 그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
서서히 눈을 뜨고 방을 둘러보자 책상 위에 종이가 있었다.
“…산장 게임?”
그리고 나는 그 종이를 들어 읽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당신은 ‘탐정’ 범나비로 살아갑니다.
알리바이와 설명은 30분 내로 외우세요.》
잠깐만, 탐정? 그래서 투두 네스트 회의 때 내가 없어도 되었던 거군.
《탐정 복장》
이라고 적힌 바구니에는 주황색 코트와 수첩이 있었다. 주황색 코트를 입자 그 밑에는 쪽지가 있었다.
《탐정 범나비,
오늘 아침 어떤 이에게 긴급한 연락을 받아 산장 게임에 참여했습니다.
그 내용은 바로,
탐정 범나비를 고용했던 재벌 2세가 죽었다는 소식.》
나는 다음 페이지를 넘겼다.
《산장 게임은 웹예능으로 재벌 2세가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재벌 2세가 죽었고? 나는 빠르게 머릿속에 정보를 집어넣었다.
《탐정 범나비는 재벌 2세를 죽인 범인을 찾으라는 의뢰를 받았습니다.
이 산장에서 재벌 2세를 죽인 범인을 찾으세요.》
의뢰를 한 게 누구인지에 대한 정보는 알려줄 수 없다는 건가? 또 다른 비밀이 숨겨져 있을 수도 있겠는데.
다음 페이지를 넘기자 알리바이가 나왔다.
《알리바이
아침 : 오전 7시에 일어나서 2시간 뒤인 9시에 탐정 사무소로 향함
점심 : 탐정 사무소에 있었음
저녁 : 오후 7시에 재벌 2세를 만남
최근 재벌 2세는 돈을 달라는 협박 편지를 받아 범나비를 고용함
그리고 협박 편지를 보낸 사람이 정요셉이라는 사실을 알아냄》
내가 알리바이를 외우고 있는 그때였다.
“밖에 시체가 있어!”
주이든의 목소리가 들렸다.
‘시체가 있다고?’
문 옆에 작은 창문이 있어 커튼을 걷어내자 세트장이 보였다. 원으로 이루어진 감옥에 각자 한 명씩 들어가 있었고, 중앙엔 재벌 2세로 보이는 사람이 누워 있었다.
“다들 괜찮나요?”
나의 외침에 화목현이 감옥 창문을 통해서 대화했다.
“너는 누구야?”
“안녕하세요. 이번 사건에서 탐정을 받은 범나비라고 합니다.”
“범나비 씨요?”
“네.”
내 소개가 끝나자마자 스피커에서 찌직, 소리가 났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PD의 목소리는 아니다.
[T : 당신들을 초대한 T라고 합니다.]
T? T가 나에게 의뢰한 사람인가?
[T : 이 중 재벌 2세를 죽인 범인이 있습니다.]
범인이 있다……?
“뭐? 여기에 범인이 있다는 거야? 나는 아닌데!”
주이든의 목소리가 내 귀에 쏙 박혔다.
[T : 그래서 저는 당신들을 납치하여 산장 게임을 하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재벌 2세를 죽인 범인을 찾기 위해서 우리를 이 방에 감금한 거네.
‘근데… 나는 탐정인데도 가둔다고?’
이상한데.
[T : 지금부터 게임의 규칙을 알려 드려야겠죠? 방 안에 3장의 카드가 있을 겁니다.]
카드가 있다는 말을 듣는 즉시 카드를 찾으려고 눈동자를 굴렸다.
[T : 카드의 종류는 총 3개입니다. 용의자, 흉기, 장소.]
“야! 이 공간을 빠져나갈 방법은 없어?”
주이든의 외침에 T가 작게 웃었다.
[T : 이 공간에서 빠져나갈 방법은 있습니다. 그건 바로, 방에서 가져온 3장의 카드를 통해 범인이 어떻게 재벌 2세를 살해했는지 유추하면 됩니다.]
…보드게임이랑 비슷하네.
[T : 어떻게 살해했는지 알게 되었다면, 재벌 2세의 시체 옆에서 정답을 외치면 됩니다.]
외치라고? 그건 고인 모독 아닌가.
[T : 용의자가 싸이코패스, 흉기가 칼, 장소가 촬영장이라고 한다면. 싸이코패스가 촬영장에서 칼로 재벌 2세를 죽였다고 말하면 됩니다. 단!]
또 있어?
[T : 제한 시간은 2시간입니다. 2시간 이내로 어떻게 죽였는지 알아내지 못한다면 모두가 죽습니다. 자, 지금부터 산장 게임을 시작합니다.]
T의 목소리가 끝나자마자 중앙에 설치된 시계가 움직였다.
《2시간》
시간이 흐르는 소리에 맞춰서 나는 방 안을 살폈다. 일단 카드를 찾아야 하니까. 무릎을 꿇고 침대 밑을 살펴보는데,
“찾았다.”
침대 밑에 붙어져 있는 카드는 ‘집’이라고 적힌 장소 카드. 그리고…….
“이정진?”
‘이정진’이라고 적힌 용의자 카드를 발견했다.
용의자 카드를 보면서 천천히 생각을 정리해 갔다. 흉기 카드도 찾아야 하니까.
침대에서 벗어나 책상을 확인하는 순간, 책상 위에 올려져 있던 노트북 화면이 켜졌다. 내가 책상을 만지면서 노트북을 건드린 모양이었다.
“…뭐야. 이건.”
노트북에는 동영상이 띄워져 있었다.
“…음?”
확인해보니 재벌 2세가 어떤 이에게 종이봉투를 받는 동영상이었다. 재벌 2세가 그 종이봉투를 뜯자마자 어떤 이에게 전화가 왔다.
[재벌 2세 : 네가 처리했잖아. 왜 이유를 나한테 물어?]
재벌 2세가 전화를 받으면서 누군가에게 호통치는 영상이었다.
‘…재벌 2세가 무시한 상대가 범인일 수도 있겠네.’
재벌 2세의 핸드폰 화면을 자세히 보고 싶어서 동영상을 확대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동영상 화질이 워낙 좋지 않아서.
[T : 시간이 흘러 각 방의 문이 열립니다.]
끼익.
나를 가뒀던 방의 철문이 열리고 나는 재벌 2세가 있는 중앙으로 걸어갔다. 원래 시체를 보면 죽었을 때 남은 흔적이 있기 마련인데…….
“아무것도 없네.”
아무런 흔적이 없었다. 목을 졸리거나 상처를 입은 흔적 말이다.
“잠깐만!”
그때 주이든이 내 행동을 멈추게 했다.
“그렇게 시체를 만지면 안 되지. 네가 범인일 수도 있잖아.”
“…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죄송합니다.”
“우선 서로 자기소개라도 하지?”
하긴 자기소개가 필요하긴 하겠네. 나도 이 사람들의 직업을 모르니까.
“저는 탐정입니다.”
“탐정?”
“네, 재벌 2세가 직접 고용한 탐정입니다.”
“아하. 그렇다면 벌써 범인이 누군지 알겠네?”
“아니요. 아직은 모릅니다.”
“그게 무슨 탐정이야?”
“왜 시비죠? 처음부터 시비를 거는 게 제가 아는 주이든이라는 사람과 비슷하네요.”
그러자 주이든의 눈이 커졌다.
“내 이름을 어떻게 알았지?”
“얼굴에 적혀 있습니다. 주이든이라고.”
“그렇다면 내 직업을 소개하겠네. 나는! 산장지기라네.”
산장지기?
“재벌 2세가 쓰는 산장을 내가 지키고 있지.”
그래서 복장이 산악회 회원 같았군.
“재벌 2세와는 어떤 관계죠?”
“뭐, 비즈니스적인 관계지.”
비즈니스적인 관계인 사람이 용의자라…….
“저도 소개하겠습니다.”
그때 화목현이 나섰다.
평범한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네.
“이번에 산장 게임에 참여한 화목현이고 직업은 프로게이머입니다.”
“재벌 2세와 어떤 관계인가요?”
“제 구단에 후원해 주다가 나중에 사적으로 만난 뒤로 친해진 사이입니다.”
화목현, 프로게이머, 친해진 사이…….
이제부터 수첩에 적어야겠는데.
그때 누군가가 막대기를 들고 자기소개를 했다.
“저는 너튜브 브이로거입니다. 이름은 이정진이고, 너튜브 채널 이름은 쟁쟁입니다.”
“저! 브이로그 봤었어요!”
주이든이 호들갑을 떨었다.
“감사합니다, 징징이님.”
“징징이님이 뭔가요?”
“저의 너튜브 구독자 애칭입니다.”
구독자 애칭까지 있으면 꽤 인기가 있는 브이로거라는 건데. 주이든이 가까이 오더니 이정진을 보며 반가운 미소를 지었다.
“브이로그에 얼굴이 안 나와서 항상 얼굴이 궁금했는데!”
응?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브이로거인가.
“브이로그에 얼굴이 나오지 않나 봅니다?”
“아, 제가 하관 밑에만 찍거든요.”
흐음… 이런 사람이 왜 여기에 있을까.
“재벌 2세와 어떤 관계인가요?”
“별 관계 없이 그냥 산장 게임에 참여한 사람이에요.”
그렇군. 이런 건 차차 알아가면 되는 거고. 이제 마지막 용의자만 남았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정장을 입은 사람의 얼굴은 날카로웠다.
“제 이름은 정요셉이고 재벌 2세랑 친한 친구 사이입니다.”
친한 친구?
“친한 친구요?”
“네, 친하게 지내고 있죠.”
모두를 의심하는 순간,
“일단은 범인을 찾는 게 급선무잖아요?”
화목현이 먼저 운을 뗐다.
“그렇다면 각자의 방에서 증거를 찾았을 텐데, 그걸 보면 어떨까요?”
각자의 방에 증거가 있으니까 그걸 살펴보면 범인을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증거를 봐야 하는데, 누구 방부터 볼까요?”
제일 먼저 대답한 사람은 이정진.
“제 방부터 보죠.”
“방에는 뭐가 있었습니까?”
“일기장이 있었습니다.”
일기장에 의문을 가질 때였다. 정요셉이 입을 열었다.
“우리 재벌 2세가 일기를 자주 썼어요. 자기가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일기장에 흔적을 남긴다면서?”
…재벌 2세는 자기가 죽을 것을 예상했군.
“우선 이정진 씨의 방부터 살펴보죠.”
우리는 이정진이 있던 방으로 향했다. 이정진의 방은 나랑 가구 배치랑 똑같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노트북이 있던 자리에 일기장이 있었다.
“이게 재벌 2세가 적은 일기장 맞아요?”
정요셉이 맞다고 대답했다.
“그럼 누가 일기장을 좀 읽어주세요.”
“제가 읽어볼게요~”
“정요셉 씨, 부탁드립니다.”
정요셉이 일기장을 들었다.
《3월 3일
미친 새끼.
갑자기 산장 게임에 자기를 넣어달라고 한다.
출연자를 이미 다 넣은 방송인데.
갑자기 넣어달라니?
아무리 친하다고 해도 정도가 있지.
언젠간 죽여 버릴 거다.》
…죽여 버릴 거다?
“자, 다음 페이지를 읽어볼게요~”
《5월 5일
오늘은 나의 생일날.
편지 하나가 왔다.
나를 죽인다는 협박 편지.》
《6월 6일
협박 편지 보낸 새끼를 찾았다.
내 뒤통수가 얼얼하다.
죽여 버릴 거다.》
나는 슬쩍 정요셉을 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협박 편지를 보낸 사람이 이 사람인데.’
정요셉은 무표정한 상태였다.
“마지막 페이지입니다.”
마지막 페이지라면 제일 중요할 터.
《7월 7일
내일 나는 죽는다.》
“이렇게 끝났는데요?”
일기장은 여기서 끝.
아직 협박 편지를 보낸 사람이 정요셉이라는 사실은 밝히지 않는 게 좋겠지. 모든 사람이 의심스러운 상황에서 정요셉을 방패로 세워 진짜 범인이 뒤로 숨을 수도 있었다.
“…일기장은 좀 평범한데?”
정요셉이 일기장을 다시 책상에 올려두고 우리는 다시 중앙으로 돌아갔다.
“다른 방도 한번 가보죠.”
내 말에 정요셉이 손을 들었다.
“제 방에는 상자가 있었거든요? 거기에 핸드폰이 들어 있었어요~”
“핸드폰이요?”
“그것도 우리 다섯 명의 핸드폰.”
“핸드폰이라면 재벌 2세와 연락을 자주 한 사람을 알 수 있겠네요.”
“어, 그렇지? 아마도?”
“혹시 핸드폰을 먼저 봤나요?”
“궁금하니까 봤지.”
핸드폰을 먼저 봤다면 수상한 사람을 눈치채고 있을 수도 있겠네.
“그러면… 누가 범인일 것 같아요?”
검지로 둥글게 원을 그린 정요셉이 씩 웃었다.
“화목현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