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 피로도 낮추기
어쩐지 몸이 무겁더라. 나는 얕은 한숨을 내뱉으며 시스템창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런데,
【이번 문제는 정답 풀이가 없습니다.】
정답 풀이가 없다고……? 나는 코를 막았던 휴지를 쓰레기통에 넣으면서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또 어떤 걸 하려고.’
눈앞이 하얗게 변했으나 이윽고 정신을 차렸다. 이런다고 해결될 문제는 없으니까. 대기실에 들어가자 멤버들이 반겨주었다.
“막내야, 포카 나눠주고 왔어?”
“네, 포카 나눠주고 왔는데…….”
메이크업하는 자리가 비어 있었다. 나는 그곳을 보면서 물었다.
“메이크업 제 차례예요?”
“어, 막내 차례.”
메이크업을 받으려고 의자에 앉자마자 내 의지와 상관없이 눈이 감겼다. 목 안이 간지러워서 계속 잔기침이 나오려고 하는데… 이거 괜찮겠지?
“나비야, 오늘 피부가…….”
“네?”
“푸석푸석하다.”
메이크업 선생님까지 내 피부가 좋지 않다고 하다니.
“나비야, 최근에 못 잤어?”
“자긴 했어요…….”
“아닌 것 같은데?”
최근에 활동이 바빠져서 숙소 침대에서 잔 적이 별로 없긴 했다. 연습실이나 녹음실에서 자는 시간이 많긴 했지.
하지만 나만 피곤한 건 아니다. 멤버들도 각자 예능과 드라마 일정 때문에 바쁜 와중에 피곤한 티를 내지 않았다.
‘…최대한 웃자.’
내가 사회생활 못하는 인간도 아니고.
“진짜 피곤하지 않아요, 선생님.”
“그래? 이상하다.”
나는 대화 주제를 바꾸면서 최대한 피곤하지 않다고 메이크업 선생님에게 어필했다. 메이크업을 받은 후 소파로 가자 화목현이 나를 보며 물었다.
“나비야, 피곤하지는 않지?”
“안 피곤해요.”
“피곤해 보이는데.”
메이크업으로 커버를 해도 얼굴이 피곤해 보이는 모양이다.
최대한 피로도를 낮추기 위해서 가방에서 비타민도 꺼내 먹었다. 피로회복제도 마셨고. 근데 과연 몸이 버텨줄까…….
화목현은 걱정스럽다는 듯 다가오더니 내 이마에 손을 얹었다.
“그나마 열은 안 나네.”
“제가 괜찮다고 했잖아요.”
최대한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괜찮다는 티를 냈다. 그제야 화목현은 마음이 풀리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 아프면 말하고.”
“걱정하지 마세요.”
때마침 김연호가 대기실 안으로 들어왔다.
“사녹 시작한대.”
복도에서 스태프의 말을 받은 김연호가 말해주었다. 그러자 화목현이 멤버들을 둥글게 모아서 외쳤다.
“잘하자, 얘들아.”
동시에 우리는 ‘네’라고 답했다.
“그리고! 정규 앨범 도둑 GAME 성공적으로 무사히 마치자.”
화사하게 미소를 짓는 화목현의 말이 끝나자마자 우리는 동시에 외쳤다.
“아자! 아자! 할 수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 뇌를 찌르는 듯한 두통이 느껴졌다.
‘…이거 괜찮겠지.’
제발, 몸이 버텨주길 바랄 뿐이었다.
* * *
무사히 사전 녹화를 끝낸 뒤 차를 타고 숙소로 가는 길.
“우리 막내, 잠을 좀 자아겠는데~?”
“예?”
“눈이 덜 떠졌어.”
뒷좌석에서 게슴츠레하게 눈을 뜨고 있으니 정요셉이 걱정하는 투로 말했다.
“…그래요? 근데 잠이 안 와요.”
“왜?”
“…아까 피로회복제를 두 병이나 마셔서.”
피곤해서 죽을 맛인데… 피로회복제를 많이 마신 죄로 눈이 말똥하다. 그래서인지 숙소로 이동하는 와중에도 잠을 청할 수가 없었다.
“투두 네스트 병원편 떴대. 안 잘 거면 그거라도 봐.”
“그래요……? 감사해요.”
오늘 뜨는 날인가.
몸이 피곤하니 방송 스케줄도 까먹게 된다. 억지로 눈을 감아도 잠이 안 와서 핸드폰을 꺼내 사전 녹화와 투두 네스트 병원편 반응을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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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스트] 오늘 네스트 병원편 웃겼음ㅋㅋㅋ
막내즈를 도와주는 형들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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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스트] 형들 좀비 무서워하다가 소리 빽 질러서 물린 거 웃김
막내즈들은 침착하게 병원 들어가서 확인하는데
형들은 소리란 소리는 다 질러서 좀비들 몰려옴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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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이가 좀비 앞에서 무릎 꿇고 관세음보살 노래 부른 거 웃김ㅋㅋㅋㅋㅋ
└ㅅㅂㅋㅋㅋㅋㅋㅋㅋ이 부분 킬포라고
└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내 기준 술래잡기하는 정진이가 제일 웃겼음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아ㅋㅋㅋㅋ
-목현이가 좀비 조종하는 것도 웃겼는데ㅋㅋㅋㅋ
└혼자 남겨졌을 때?ㅋㅋㅋㅋ
└ㅇㅇ 무슨 병으로 계속 오른쪽! 왼쪽! 이러면서 좀비들 훈련했잖아 좀비들 불쌍했어ㅋㅋㅠ
└그 부분 계속 돌려 봄 ㅋㅋㅋㅋㅋ
-나 네스트 콘텐츠 처음 보는데 존나 웃김?
└ㅇㅇㅇㅇㅇ 제발 투네 봐줘
└뭐 보면 됨?
└투네 김치편 제발 봐줄래?
└힐링편도 존나 잼씀
좀비편은 재밌다는 말이 대다수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나랑 주이든이 나오는 장면이 너무 진지해서 재미가 없을까 봐 걱정했었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곳에서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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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범나비 라이브 맞음?
ㅇㅅ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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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흠…
-왜 범나비 라이브 논란 있음?
└ㅇㅇ 범나비 저날 피곤해서 목소리 상태 안 좋았는데 저렇게 라이브를 잘할 수가 없다고;ㅋㅋ
└엥?
└피곤한 거랑 라이브 잘하는 거랑 무슨 상관?
-범나비는 컴백할 때마다 라이브 논란이 나네ㅋㅋㅋㅋㅋ
└라이브가 넘 깔끔해서 문제인 듯
└그러니까 왜 이렇게 못 까서 안달이냐고ㅋㅋㅋ
└팬임?
└ㅅㅂ 팬도 아닌데 지겨워서 그런다
또 라이브 논란이 일어나네. 피로도가 쌓일수록 억까가 생긴다고 하더니… 그게 지금인가?
‘…흠.’
라이브 논란이 생긴 글은 댓글 천 개가 달렸다가 곧 삭제가 되었다. 난리가 났군. 나는 무거운 눈꺼풀을 만졌다.
‘이럴수록 침착하게 행동하자.’
지금 제일 큰 문제인 피로도 역시 천천히 낮추면 되니까. 그렇다면 일단 자야 하는데. 미리 약통에 넣어놨던 수면제라도 먹을까. 하도 잠을 못 자서 병원에 말하고 수면제를 타 왔었다.
‘자도 되겠지…….’
나는 옆자리에 앉은 정요셉의 어깨를 두드리며 부탁했다.
“저, 요셉 형… 숙소 도착하면 깨워주세요.”
“어~ 좀 자라~”
“네.”
일단 수면제 약을 쪼개서 반만 먹었다. 몇 분이 지나자 서서히 눈꺼풀이 내려오고 그제야 잠을 청했다.
【범나비의 피로도가 낮아집니다. (80%)】
그리고 나는 깊은 잠에 빠졌다.
* * *
범나비가 자는 모습을 확인한 화목현이 운을 뗐다.
“나비… 자는 거 맞지?”
“어. 우리 막내, 자.”
정요셉이 범나비의 눈앞에 손을 흔들었다. 자는 걸 확인한 다음에 정요셉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하게 자.”
그제야 화목현은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나비 병원에 가봐야 하는 거 아니야? 낯빛이 좋지 않던데…….”
노래를 듣던 이정진도 이어폰을 빼며 동조했다.
“그러니까. 많이 피곤해 보이던데…….”
화목현과 이정진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의젓한 막내지만, 지금 나비의 상태는 도미노처럼 무너질 듯이 위태로워 보였다.
주이든이 살짝 고개를 뒤로 젖혀 범나비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범나비, 걱정이 너무 많아서 그런 거 아니야?”
“…어?”
“멤버들 걱정, 앨범 걱정, 팬들 걱정. 온갖 걱정을 다 하니까 잠을 못 자는 거잖아.”
일리가 있는 답변이었다.
“나, 하나 궁금한 게 있는데.”
주이든이 조수석에 앉은 화목현의 어깨를 잡았다.
“…목현 형, 있잖아.”
“어, 왜?”
“목현 형이 범나비한테 속마음 이야기하고 그랬어?”
“어?”
날카로운 지적에 멤버들이 입을 다물었다. 차 안에 잠깐 동안 침묵이 휩싸였다. 오로지 범나비의 숨소리만 들릴 뿐, 누구 하나 입을 여는 사람이 없다가 정요셉이 말했다.
“어… 찔리네~ 많이.”
아이돌 생활에 회의감이 있을 때마다 멤버들은 범나비를 찾았다. 마치 그게 일상인 것처럼. 멤버들의 대나무숲은 범나비밖에 없었으니까.
“그러면 나비의 속마음을 들은 사람은 있었나?”
누구 하나도 손을 들거나 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화목현은 놀라서 한 번 더 질문했다.
“진짜로 아무도 없어?”
숙연해진 분위기 속에서 이 상황을 모르는 범나비만 코를 골며 잠을 잤다.
“아무도 모른다는 게 말이 되나?”
“우리 이든이도 모르잖아.”
“정요셉! 그건 맞지만……!”
주이든은 입을 다물고 애꿎은 범나비를 노려보다가 눈이 커졌다.
“어, 범나비 땀난다.”
곧장 범나비의 가방에서 수건을 꺼내 범나비의 땀을 닦아주었다.
“막내가 힘든 티를 안 내서 그런가?”
이정진의 말에 화목현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 앞으로 우리가 더 잘해주면 될 것 같은데.”
그러자 주이든이 화목현한테 물었다.
“목현 형, 어떤 식으로 잘해주는데?”
“글쎄. 각자 알아서 하면 될 것 같아.”
멤버들은 범나비의 걱정을 덜어줄 수 있는 방법을 각자 고민했다. 끝내 생각을 마친 정요셉이 미소를 씩 지었다.
“우리가 잘해주는 티를 내면 우리 막내도 좋아하지 않을까~?”
“…나비가 좋아할까?”
“우리 목현 형이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네.”
“뭘?”
멤버들이 정요셉이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우리가 잘해주면 나비는 분명히 좋아할 거야. 우리를 무척 좋아하니까.”
좋아한다는 말에 주이든의 미간에 홈이 파였다.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우리 이든이, 내 의견에 태클 걸지 말아줄래?”
“아니, 네가 자의식과잉이 너무 심한 것 같으니까!”
정요셉은 다시 기침을 하면서 이목을 집중시킨 다음 입을 열었다.
“우리 막내한테 더 잘해주면 자기 고민도 말해주겠지~”
화목현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오, 나비의 고민을 들어보자?”
“그렇지~! 역시 목현 형이 잘 알아듣네!”
범나비의 고민을 들어본다… 한 번도 입을 열어본 적이 없는 막내의 고민. 멤버들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자고 있는 범나비를 응시했다.
“우리 고민만 말하는 건 불공평하긴 해.”
“오~ 그것도 그렇네~?”
“우리도 나비의 고민을 들어줘야 하지 않겠어?”
묘하게 설득력 있는 이정진의 말에 멤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비가 욕을 많이 먹고 있긴 하니까 힘들 수밖에 없겠지.”
“…응? 목현 형, 왜 범나비가 욕을 먹어?”
화목현이 모르냐는 듯이 주이든을 바라보았다.
“컴백할 때마다 나비 라이브 못한다는 글이 올라오잖아.”
“어? 그랬어?”
화목현이 너튜브에 ‘범나비’를 치자마자 직캠 밑에 라이브 논란과 관련된 영상이 있었다.
“…이런 거 안 봐서 몰랐는데.”
“그거 나비는 다 보더라.”
“이런 영상을 보면 화가 안 나나?”
“나비는 영상을 보면서 피드백을 하더라고.”
“피드백?”
멤버들은 ‘피드백’이라는 단어에 수긍했다. 팬들도 알고 있는 문제를 아이돌이 모르면 안 된다. 그건 맞는 말이었기에 주이든도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범나비 지극정성으로 보살펴 주자.”
‘지극정성’이라는 단어가 범나비한테 어울리지는 않지만. 화목현이 말했다.
“나비는 막내잖아.”
막내라는 단어가 무적이다. 다들 인정하게 만드니까. 화목현은 지극정성으로 보살펴 주면 나비도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다.
분명히.
* * *
이상하다. 자고 일어났더니 멤버들이 이상하게 잘해준다. ‘설마 나만 모르는 미션 같은 거라도 있는 걸까?’ 하고 의심할 정도였다.
“우리 막내, 과자라도 줄까?”
그것도 주이든이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과자를 나에게 준단다. 멤버들한테 이런 걸 준 적이 거의 없는 사람인데.
‘…왜 저래?’
이렇게 갑자기 친절을 베풀 때는 뭔가 무섭단 말이지.
“…이든 형, 저한테 무슨 약점이라도 잡혔어요?”
“아니.”
그런데 왜 이렇게 잘해주지? 단체로 약이라도 먹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