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의 1군 가이드-168화 (168/235)

168. 우울함

“나비야?”

“…….”

“자?”

연습실에 널브러진 나비의 모습을 보자마자 이정진은 웃음이 터졌다. 목현이가 연습실 구석에 있는 베개를 가져와 나비의 머리를 베개 쪽으로 옮겼다.

“…나비가 나쁜 의도로 한 말은 아니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

“알아, 목현아. 그냥 막내다웠어.”

정말로 막내다웠다. 원래 나비는 할 말을 다 했다. 이번에는 말을 조금 더 세게 했을 뿐이다.

“그런데 정진아, 동생이 있다는 건 처음 알았네?”

“아, 그건… 내가 말을 안 했잖아.”

“말하기 싫었어?”

목현의 말에 이정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말하기 싫었다. 속마음을 말하면 괜히 약점이 잡힌 것처럼 불편했으니까. 이정진은 고개를 내려 손에 쥔 빈 술잔을 보았다.

“…말은 함부로 옮기기 쉬우니까.”

“…….”

“내 말은 그게 아닌데…….”

그랬다. 빈 술잔은 곧, 이정진의 마음이었다.

“그래서 너희들한테도 말을 안 했던 것 같아.”

이정진은 최대한 멤버들과 감정이 상하는 일은 피하고 싶었다. 싸우기도 싫었고. 이정진은 소주를 들고 잔에 부었다. 그 행동을 이든이 막았다.

“그런데 이상하다. 정진 형은 녹음할 땐 말이 많잖아.”

“그건 너희들을 위해서니까.”

“아닌데! 녹음할 때마다 형은 눈썹을 위로 올리면서 자꾸 혼내잖아. 그게 얼마나 무서운데.”

“내가 뭐가 무서워.”

어이가 없다는 듯이 이든이 답답함을 토했다.

“뭐가 무섭냐고?”

이든이가 이정진의 행동을 따라 해본다며 검지로 눈썹을 위로 올렸다.

“이든아, 그 목소리가 아니지. 조금만 더 힘찬 목소리로 내볼까?”

“내가 언제 그랬어.”

“이든아, 그러면 안돼.”

이정진의 말투를 따라 하는 이든의 모습에 나머지 멤버들도 웃음을 터트렸다. 이든은 이정진을 빤히 보며 말했다.

“원래 말이 없는 사람이 힘을 숨기고 있는 거라고.”

“내가 무슨 힘을 숨긴다고.”

“시한폭탄처럼 무섭다는 거야.”

이 말에 이정진의 마음에 잔잔한 파동이 일어났다. 시한폭탄이라는 단어가 자신과 똑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때 옆에서 듣고 있던 요셉이 끼어들었다.

“우리 정진 형이 약간 시한폭탄 같긴 하지~”

“어떤 의미로 시한폭탄인데?”

요셉이 손으로 턱을 문질렀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사람. 그래서 성격도 잘 모르겠고. 우리 막내처럼 얼굴에 감정이 드러나는 타입도 아니잖아?”

“…그랬어? 나는 감정이 잘 드러난다고 생각했는데.”

“우리 정진 형은~ 가끔씩 슬플 때만 울잖아. 연습생 시절에도 그랬지만……?”

이정진은 살짝 미소를 보였다.

“슬픔은 감출 수가 없거든. 그래서 울었던 것 같아.”

“…정말 감췄던 거야?”

“감정을 드러내 봤자 좋은 게 뭐가 있어.”

짧은 정적.

‘이래서 말하면 안 되는 건데.’

정적을 깨트린 사람은 목현이었다.

“정진아, 내가 미안하다.”

그러면서 목현이가 닭 날개를 건네주었다.

“네 속사정 정도는 내가 물어보고 알아야 했는데. 리더로서 부족했던 것 같네.”

“목현아, 아니야…….”

이정진은 고개를 저으며 목현의 말을 부정했다. 그리고 안심하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예전에는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기뻐도 웃으면 안 된다고. 한 번은 울어도 또 울면 안 된다고.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가두고 있던 게 아닐까. 이정진은 술을 마시며 생각했다.

그리고 약간 술에 취한 요셉이가 이정진의 옆자리에서 활짝 미소를 지었다.

“우리 정진 형의 과거까지 아니까 이제야 한층 가까운 사이가 된 것 같은데~?”

“어?”

“나, 정요셉! 정진 형이 더 좋아졌습니다.”

요셉은 술잔을 들고 흔들었다.

“지금껏 나는 정진 형이 말이 없길래.”

“…….”

“제일 상처가 없는 사람인 줄 알았거든~? 그런데 내 착각이었어.”

“…….”

상처가 없는 사람처럼 보였나. 이정진이 상념에 빠질 때였다.

“우리 정진 형도 인간이구나.”

이 말에 이정진은 상념에서 벗어나 정요셉을 응시했다.

“요셉아, 말에 어폐가 있다?”

“우리 정진 형이 곡 작업만 하는 AI인 줄.”

이정진도 부정하진 않았다. 로봇처럼 움직이긴 했으니까.

“자, 그러면 마지막으로 정진이 동생한테 절하고 제사는 마무리할까?”

목현이 정리에 들어가자 멤버들이 다 같이 일어났으나.

“…….”

나비만 테이블 옆에 누워서 자고 있었다. 이든이는 널브러진 나비를 보며 고갤 내저었다.

“하여간 내 주변에서 범나비가 제일 특이하다니까.”

“나비가 막내잖아.”

목현이가 말하자 이든이 이해한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였다.

“하긴 쟤가 막내라서 다행이긴 해. 쟤가 형이었으면 조금 무서웠을 수도……?”

소름이 돋는지 이든의 몸이 살짝 떨렸다.

“왜 나비가 형이면 무서워?”

이정진의 질문에 이든이가 나비를 보면서 말했다.

“그냥… 목현 형과 정진 형을 섞은 느낌이라 무서울 것 같아.”

이 말에 이정진은 조용히 동의했다.

“…무섭긴 하네.”

요셉은 한참을 고민하더니 입술을 쭈욱 내밀었다.

“나는 이든이가 더 무서울 듯.”

“야, 정요셉!”

“얼마나 갈굼을 당할지 상상하기도 싫다.”

“범나비한테 물어봐! 내가 얼마나 잘해주는데!”

이정진은 싸우고 있는 요셉과 이든을 무시하며 술잔에 술을 따라서 테이블 위에 올렸다.

“오늘 와줘서 고맙다. 이제 절 2번 하면 돼.”

절을 하려고 허리를 숙일 때였다.

탁.

조명이 꺼졌다.

“뭐, 뭐야?”

절을 하다가 놀란 이든의 외침에 모두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설마 정진 형 동생분이 지나간 건 아니지~?”

“정요셉,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아니, 맞잖아. 갑자기 왜 조명이 꺼지냐고.”

누구 하나 연습실 구석에 있는 조명 버튼을 누를 수는 없었다.

“어? 형들, 안 자고 뭐 해요.”

그때 연습실 구석에서 손전등이 켜지면서 나비가 눈을 비볐다.

“…형들, 자야죠.”

다시 나비가 자리에 돌아가더니 이불로 자기 몸을 돌돌 둘렀다.

“…허.”

모두에게서 어이가 없다는 듯한 헛웃음이 퍼지면서 나비가 인상을 찌푸렸다.

“웃음소리도 진짜 시끄러워.”

“야! 정요셉! 나 말려!”

이든이가 자기를 말려보라고 했지만.

“내가 왜?”

“야! 나를 말리는 척을 해줘야 내일 범나비한테 말할 게 있지!”

“아하……!”

요셉이 이든을 말리는 척하자 이든이가 나비의 옆구리를 공격했다.

“간, 간지러워…….”

“간지러워 죽겠지!”

동생의 기일에 이정진은 항상 우울했다. 그런데 오늘만큼은 멤버들과 웃으며 속마음을 털어놔서 그런지 웃음만 나왔다.

“하하하.”

오랜만에 동생이 하늘로 간 날에 웃었다. 그동안 동생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다.

‘동생아, 생일 축하한다.’

이정진은 제사상을 보면서 속으로 말하며 바닥에서 일어났다.

“근데 나비, 내일 쪽팔릴 것 같은데?”

벌써 이든이랑 요셉이가 동영상 촬영을 해놓았기 때문이다.

“그러게.”

* * *

정말로 왜 그랬지. 나는 일어나자마자 머리카락을 잡고 흔들었다.

연습실에서 취한 기억만 있고 그 후의 기억은 없었다. 어제 대체 무슨 말을 했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거실로 나갔더니 숙소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비야, 밥 먹고 있어.

숙취에 좋은 꿀차도 타놨다.

-목현」

그리고 냉장고에는 이런 메모만 덩그러니 있었다. 나는 톡에 물었다.

(범나비) 저 어제 실수했나요?

동시다발적으로 단톡방에 톡이 올라왔다. 무슨 따발총인 줄.

(정요셉)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정요셉) ㅋㅋㅋㅋㅋㅋㅋㅋ

(정요셉) 우리 막내 일어나면 언제든지 톡해

(정요셉) 어제 일을 알고 싶다면~(ㅇㅁㅇ)

정요셉은 이러했고.

(주이든) 으이그 ㅋㅎ

(주이든) 범나비 속은 괜찮냐?

주이든은 저렇게 톡을 보냈다.

내가 어제 어떤 행동을 했길래 멤버들이 저런 반응인지. 더욱더 궁금해졌다. 깨질 듯한 머릿속에서 헤엄치듯이 어제의 일을 떠올리려고 노력했으나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하아…….”

술이 문제다, 술이 문제. 그리고 이정진은 그저 고맙다는 말뿐, 그 밖에는 어떤 말도 없었다.

내가 자는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졌길래 이정진이 고맙다고 한 걸까? 난 그럴 만한 일을 한 적이 없는데 말이다.

【이정진의 우울함을 낮췄습니다. (0%)】

그때 시스템창이 눈앞에 번쩍하고 떠올랐다.

‘어째서 0%가 된 거야?’

무슨 말을 하긴 했는데 또렷하게 떠오르는 기억은 없었다. 그럴수록 수심이 깊어지면서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미치겠네.’

이상한 말이라도 한 건 아니겠지.

【이정진의 우울함을 낮췄습니다.】

【정규 앨범 활동이 끝날 때까지 이정진의 행복함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이정진의 상태:(*˘╰╯˘*) 행복 모드 ON】

행복 모드라서 다행이긴 한데. 내가 불행한데?

【미래의 힌트 4조각을 얻었습니다.】

「정답, 이정진의 우울함이 올라갔으면 도둑 GAME 무대를 설 수 없었을 겁니다.

우울증으로 인해 작곡도 할 수 없게 된 이정진은 네스트를 탈퇴했을 겁니다.」

작곡을 할 수 없게 된다고?

“그렇다면 미래의 힌트 4조각은 또 뭐야……?”

그때였다. 방심하는 사이에 또 하나의 시스템창이 나타났는데,

【랜덤 박스를 사용하겠습니까? [YES]】

나는 갑자기 나타난 랜덤 박스를 보면서 눈을 껌뻑였다.

“…예.”

그러자 랜덤 박스가 돌아가고 새로운 시스템창이 떠올랐다.

【랜덤 박스 OPEN】

※랜덤 박스에서 1개의 아이템이 나옵니다.

【1. 딱풀:어떤 물건이라도 붙일 수 있는 아이템 [1번]】

딱풀? 이걸 어디에 쓰라고 준 거야. 나는 인벤토리에서 미래의 힌트 4조각을 한참이나 쳐다보았다. 설마 이걸 쓰라는 말인가.

“지금 딱풀을 쓸 수 있나?”

나는 바로 딱풀 아이템을 눌렀다. 그랬더니 내가 생각했던 대로 딱풀이 찢어져 있던 미래의 힌트 4조각을 붙이기 시작했다.

“…어?”

딱풀로 미래의 힌트 조각들이 붙여지는 순간.

【아이돌 노트가 위험 신호를 받았습니다!】

【아이돌 노트가 위험 신호를 받았습니다!】

【아이돌 노트가 위험 신호를 받았습니다!】

우수수 쏟아지는 붉은 시스템창에 눈살을 찌푸렸다.

“뭐야.”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 거지? 혼란스러운 시스템창을 보면서 끌 생각을 했는데.

【시작된 작업은 끌낼 수 없습니다.】

이런 멘트가 떴다.

이 멘트는 아이돌 노트의 멘트가 아닌데. 이건 필시 나쁜 일이라고 직감했다.

“아이돌 노트!”

아이돌 노트를 부르자마자 붉은 시스템창이 후루룩 꺼졌다. 그리고 다시 눈앞에 시스템창이 우르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아이돌 노트가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

【404 not found】

그리고 이렇게 시스템 과부하에 걸린 것처럼, 시스템창을 열 수 없다는 듯한 메시지가 떴다. 미래의 힌트 조각이 뭐길래 시스템창을 열 수 없다고 하는 거지?

생각지 못했던 일들이 연속적으로 일어나자, 내 뇌도 과부하에 걸린 것처럼 생각을 멈췄다.

“…시스템창?”

내가 불러도 시스템창은 뜨지 않았다.

“야, 아이돌 노트.”

아이돌 노트를 불러도 대답은 없었다. 내가 눈동자를 굴리고 있을 때였다.

【error!】

【아이돌 노트 마지막 페이지.】

그 순간 이런 게 떴다.

“아이돌 노트의 마지막 페이지.”

이 말을 되새김질하며 생각에 잠겼다.

마지막 페이지.

마지막 페이지.

아이돌 노트의 마지막 페이지.

그때 무언가가 떠올랐다.

“빨간색 노트.”

내가 회귀하고 눈을 떴을 때 금금이가 나에게 줬던 빨간색 노트. 그 노트가 떠올랐다.

그 노트에 무슨 힌트가 있는 건 아닐까?

‘…왜 이렇게 떨리지.’

침대 밑에 고이 숨겨놨던 상자를 꺼내 빨간색 노트를 꺼냈다. 빨간색 노트를 시작으로 시스템창이 나타났었지.

시스템창이 말했던 대로 빨간색 노트를 펼쳤다. 긴장이 되어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페이지를 하나하나 손가락으로 넘겼다.

그런데 원래 비어 있었던 마지막 페이지에 글이 적혀 있었다. 마치 누군가 적어놓은 것처럼.

【아이돌 노트를 믿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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