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의 1군 가이드-166화 (166/235)

166. 동생이란

사실 이정진의 가족관계에 대해서는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다. 이정진이 함부로 말을 꺼내는 성격도 아닐뿐더러.

‘…말수도 적지.’

나는 이정진이 가져다준 휴지로 코피를 닦으면서 안심하라는 듯이 말했다.

“피곤하면 코피가 자주 터지긴 해요.”

“…저번엔.”

“아, 그때도 피곤해서.”

“그래.”

이정진의 눈동자가 심하게 떨렸다. 저번에도 갑자기 아이돌 노트와 영혼이 바뀌며 이정진의 눈앞에서 피를 토한 적이 있었다.

그날 내가 이정진의 트라우마가 되었지.

‘왜인지 궁금했는데…….’

이정진에게 동생에 관련된 트라우마가 있었던 모양이다. 멤버들이 무슨 말이냐는 듯이 나에게 눈짓하는 걸 보면 이정진이 멤버들에게는 말하지 않은 모양이다.

주이든도 검지로 코를 만지며 입을 열었다.

“나도 연습생 때 피곤하면 코피가 자주 흐르긴 했는데!”

“이든이도 자주 코피가 났지.”

“목현 형, 기억해?”

“기억하지. 그땐 이든이가…….”

다행히 과거를 추억하는 쪽으로 화제가 바뀌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나는 휴지로 콧구멍을 막으며 이정진의 얼굴을 살폈다.

‘…아직도 표정이 안 좋은데.’

무슨 기억이 떠올랐는지 이정진의 눈동자가 잘게 흔들렸다. 마치 큰 트라우마랑 마주친 것처럼 말이다.

“어…….”

동시에 이정진이 손에 쥐고 있던 물컵을 바닥에 떨어트렸다.

“정진 형!”

옆에 있던 정요셉이 이정진의 옷을 살폈다.

“다친 곳은 없어?”

“어, 어. 없어. 괜찮아.”

“그래? 물 많이 흘렸는데.”

“그러면 요셉아, 나 화장실 좀 갔다 올게. 옷 확인도 하고 싶고.”

“어~ 다녀와.”

화장실에 다녀온다는 이정진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도 따라가려는 찰나였다.

“놔둬.”

정요셉이 놔두라는 듯이 내 어깨를 잡고서 말렸다.

“정진 형이 원래 멤버가 아프면 조금 놀라는 타입이거든~”

“왜 그렇게 놀라요?”

“무슨 이유인지는 나도 잘 몰라. 예전에 나랑 이든이가 안무를 외우다가 다친 적이 있었거든. 그때도 정진 형이 조금 이상하긴 했는데… 아무튼 이유는 나도 잘 몰라~ 정진 형이 말을 안 해줘서.”

그렇다면 이정진의 가족사를 멤버들도 모른다는 거네. 슬쩍 화목현과 주이든을 찔러보았다.

“…형들 연습생 시절은 어땠어요?”

화목현이 팔짱을 끼면서 말했다.

“이든이는 시끄러웠지.”

“내가 시끄러웠다고?”

“연습생 시절 때 이든이는 연습실에 오자마자 크게 소리를 질렀거든.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주이든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 말을 연습실 올 때마다 했어.”

“아! 그랬지!”

“이든이는 아주 씩씩했어. 평가 때도 항상 좋은 성적을 거두고 그랬지.”

그렇게 칭찬이 이어지자 주이든은 굉장히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야, 범나비! 내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알아? 본받을 만하지?”

“…그랬군요.”

“못 믿는 눈치다?”

“에이, 제가 왜 못 믿어요.”

옆에서 정요셉이 주이든의 연습생 시절에 대한 말을 덧붙였다.

“이든이가 연습생 시절 때 의견을 너무 잘 내서 무서웠다는 연습생도 있었어.”

“내가 무서웠다고? 내가 얼마나 순박한데.”

“응, 우리 이든이가 말끝마다 소리를 질러서 무서웠대.”

“내가 뭐가 무섭다고.”

주이든은 말에 악센트가 있긴 했다. 말끝에 느낌표가 항상 있다고 해야 하나.

“이든이가 연습생들이랑 마찰이 자주 있긴 했지.”

“마찰은 무슨 마찰이야. 언제나 잘 풀렸는데!”

그때 뭔가 떠올랐는지 정요셉이 갑자기 웃었다.

“아, 말하니까 생각났는데… 한번은 이든이가 정진 형이랑 싸웠다?”

싸웠다고? 나는 주이든을 보면서 인상을 썼다. 믿을 수가 없었다.

“…예? 거짓말이죠.”

“진짜야. 진짜로 싸웠어.”

“진짜로요?”

주이든도 까먹었던 기억이 떠올랐는지 손을 휘저었다.

“아, 정요셉! 그거 말하지 마!”

주이든은 자기 흑역사라며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듣고 있던 화목현도 기억이 났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이든이랑 정진이가 싸우긴 했지. 이제 기억났어.”

“아! 목현 형도 조용히 있어!”

…뭔 일이길래? 이정진이 싸웠다는 게 뭔가 상상이 잘 안 간다. 그 순한 사람이?

“어떤 이유였더라? 아, 정진이랑 이든이가 듀엣 무대를 준비하기로 했거든. 그런데 팀장님이 정진이랑 이든이 무대는 약간 귀여운 무대였으면 좋겠다고 말한 거야.”

“…귀여운 무대요?”

둘이 귀여운 무대를? 전혀 상상이 안 간다.

“둘 다 애교 있는 타입은 아니잖아? 그래서인지 뭔가 삐걱대더니 틀어지기 시작했던 것 같아. 맞아?”

화목현이 그렇게 말하고는 주이든에게 물었다. 주이든은 한참 동안 말을 안 하다가 한숨을 푹 쉬었다.

“…맞아. 정진 형이 너무 내 말만 들어서 그랬던 거야. 의견이 하나도 없었거든!”

의견이 없었다? 노래 작업을 할 때는 의견이 많아서 죽겠는데.

“…또 생각하니까 화나네. 나는 안무를 디테일하게 잡으면서 서로의 의견을 말하면 좋겠다고 그랬는데!”

주이든이 입술을 내밀며 말했다.

“정진 형은 내 의견이 다 좋다고 하잖아. 어이가 없었지.”

“…….”

“나는 정진 형의 의견을 듣고 싶은데! 정진 형이 다 좋다고 하니까 나도 의욕이 없어져서 결국 싸웠지, 뭐…….”

주이든은 굉장히 뚱한 표정을 지었다.

“나중에 들은 사실인데.”

“뭔데요?”

“정진 형이 그때까지 누구 앞에서 제대로 의견을 내본 적이 없다고 하더라고. 나중에 작곡 작업을 제대로 하면서 성격이 많이 변하긴 했지만.”

누구 앞에서 의견을 내본 적이 없다… 오한준이 그랬지. 이정진은 말이나 감정을 잘 표출하지 않았다고.

“맞아~ 정진 형은 그때도 조용한 성격이었지. 지금도 조용해서 정진 형이 있는지 없는지 잘 살펴봐야 알 수 있고.”

이정진은 원래 조용한 성격이었을까? 화목현도 동의한다는 듯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정진 형이 앞에서 의견을 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어요?”

“그거야… 멤버들끼리 단체 무대를 꾸밀 때 한 번도 ‘아니요’라는 대답을 들은 적이 없었거든. 뭐든 해달라고 부탁만 하면 ‘네’라고 대답했고. 그래서 멤버들이랑 정진 형한테 말했지.”

“뭐라고요?”

“의견을 내보라고. 그래도 정진 형은 입을 다물더라.”

의견을 내본 적이 없는 사람. 조용한 사람.

“쑥스러워서 그런 걸까요?”

“나비야, 그랬으면 작업실에서 정진이가 화를 냈을까?”

아… 하긴. 음원 녹음할 때 이정진은 우리를 쥐 잡듯이 잡았다.

“뭔가 있어. 내 촉이 그렇게 말해주고 있다니까.”

그게 동생에 관련된 트라우마라는 건가.

‘하지만 멤버들의 말로는 유추할 수 없는데.’

다른 멤버들에게 몰래 알려달라고 부탁할 수도 없지 않은가.

“나는 알 것 같은데~”

“요셉 형이 어떻게 알아요?”

“저번에 음원 녹음 끝나고 뒤풀이 겸 술을 마시러 간 적이 있었거든. 그날 정진 형이 유독 술에 취해 있길래 한번 물어봤거든. 옛날에도 성격이 조용했냐고~?”

정요셉이 진지한 표정으로 상체를 앞으로 당기며 말했다.

“원래 조용한 성격은 아니었대.”

“…예?”

“조용하기는커녕 맨날 사고만 치고 다녔는데.”

사고만 치고 다녔다고? 얼굴과 전혀 매치가 안 된다.

“그런데 어떤 사고가 일어난 뒤로 성격이 조용해졌다고 말해줬어.”

“어떤 사고요?”

“그게 어떤 사고인지는 말해주지 않았어. 물어보고 싶긴 했는데~ 정진 형의 표정이 슬퍼 보여서 물어보기 좀 그랬어.”

어떤 사고라… 주이든이 팔짱을 끼자 미간의 골이 깊어졌다.

‘…그 사고가 동생에 관련된 건가.’

그때 복도에서 걸어오는 발소리라 들리자 나는 대화의 주제를 돌렸다.

“요셉 형은 연습생 시절 때 어땠어요?”

“나? 나는 뭐… 성실한 연습생이었지.”

그러자 화목현과 주이든이 헛소리하지 말라는 듯이 혀를 찼다.

“요셉이는 시끄러웠어. 항상 주변이 사람들로 북적였거든.”

“그래요? 학교에서는 조용했다고 들었는데.”

“학교에서는 조용히 있고 싶었겠지.”

정요셉은 팔짱을 끼면서 더 말해보라는 듯이 눈짓했다.

“정요셉은 너무 시끄러워서 나랑 자주 싸웠어.”

“어, 이든이랑 자주 싸우긴 했지.”

“얼마나 시끄러웠는지. 처음에 회사 들어왔을 때 정요셉이 연습생들을 소개해 주는데, 나는 회사 관계자인 줄 알았잖아.”

얼마나 낯을 안 가리는 거야.

“그럼 학교에서는 왜?”

“학교에서는 귀찮아서. 맨날 어떤 연예인 봤냐는 질문부터 시작해서 선을 넘는 질문이 많았거든. 짜증 나서 대꾸를 안 해주다가 나중에는 혼자서도 잘 지냈지~ 얼마나 편했는지 몰라~”

“그래도 성격이 더럽다는 소문은 안 나서 다행이네요.”

“뭐?”

정요셉이 내 목에 팔을 두르면서 팔에 힘을 줬다. 점점 조여오는 정요셉의 팔에 숨이 막혀 외쳤다.

“아, 요셉 형……!”

그때 소란스러운 연습실 안으로 이정진이 들어왔다.

“오? 정진 형, 화장실에 오래 있었네.”

“아, 전화하고 왔어.”

“누구랑? 설마…….”

이정진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연애는 아니고. 부모님한테 연락하고 왔어.”

“갑자기? 왜?”

“제사 때문에.”

“누구 제사인데?”

그 말에 이정진은 무덤덤하게 대꾸했다.

“친동생 제사.”

그제야 멤버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면서 일제히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다.

‘…동생에 관련된 트라우마.’

왜 갑자기 오늘 이런 시스템창이 떴는지 알 것 같네. 친동생의 제사라…….

“정진아, 나는 동생이 있는 줄 몰랐는데?”

“…이런 일까지 말할 필요는 없으니까.”

사뭇 이정진의 눈동자에 파도처럼 슬픔이 일렁였다.

“봐. 이렇게 조용해지잖아. 불편하게 할 생각은 없었어.”

그러더니 이정진은 할 작업이 있다며 노트북을 켜서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철저하게 우리와의 대화를 차단하겠다는 의미였다.

원래의 나라면 이정진의 작업을 방해할 생각도, 이정진의 이어폰을 뺏을 생각도 안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지. 나는 이정진의 귀에서 이어폰을 빼며 말했다.

“술 마셔요.”

“어?”

“술 마시러 가자고요.”

그리고 이런 제안도 안 했을 텐데.

“지금 ‘어’라고 했어요. 허락한 거예요?”

“아, 아니.”

“갑시다.”

나는 이정진의 팔을 잡고 일으켜 세우면서 멤버들을 쳐다보았다.

“제가 살게요.”

내가 산다는 발언에 멤버들이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이든이 나와 이정진 사이를 파고들면서 외쳤다.

“자~ 어디로 갈까!”

* * *

어디로 가긴.

편의점에서 맥주랑 소주, 그리고 막걸리를 사서 연습실로 돌아왔다. 김연호가 술집은 안 된다는 연락을 해왔기 때문에.

“…막내야, 왜 술을 먹자고 하는 거야?”

“제사 지내야죠.”

내 말에 이정진이 입꼬리에 미소를 머금었다.

“막내야, 제사 어떻게 지내는지 알아?”

“…어, 대충은.”

“잘 모르는 모양이네?”

“예.”

“갑자기 막내가 술을 먹자고 하다니.”

어떤 말도 하지 않고 이정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연습실 구석에서 테이블을 꺼냈다.

“그럼 해볼까.”

그리고 연습실 중앙에 테이블을 놓더니 핸드폰을 그 위에 올려두었다.

‘…동생 사진?’

핸드폰 화면에는 앳된 얼굴이 보였다. 딱 봐도 유치원에 다니는 어린아이 같았다. 이정진한테 가까이 다가간 정요셉은 핸드폰 화면을 보며 질문했다.

“어, 형 동생~?”

“어, 내 동생.”

“닮았다. 형이랑.”

“당연하지. 내 동생인데.”

흐뭇하게 웃으면서도 이정진은 안쓰러운 눈길로 핸드폰을 쳐다보았다. 드디어 이정진이 테이블 앞에 앉으면서 말했다.

“제사 이야기가 나왔으니 어쩔 수 없이 친동생에 대해 말해야겠네.”

“…….”

“그렇다면 일단 제사부터 지내볼까?”

아무도 입을 열지 않다가 주이든이 슬쩍 손을 들었다.

“제사를 어떻게 지내는지 잘 모르는데!?”

주이든을 따라서 정요셉도 양손을 들었다.

“나도 모르는데.”

그랬다. 여기에 제사를 지내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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