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 기사
벌써 기사가 떴다고? 나와 정요셉은 서로의 눈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설마 벌써?”
“그러게요?”
황급히 핸드폰을 꺼내서 확인해 보니 실시간 연예 뉴스에 ‘마약’으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이번에 대대적인 마약 수사를 하는 도중 연예인 10명 정도가 걸린 모양이었다.
설마가 사람을 잡았다.
“정훈 형… 걸린 것 같은데?”
“그러게요.”
“내 이름도 말할까?”
“글쎄요.”
“어차피 불려 가도 상관은 없긴 하지.”
정요셉은 같이 마약 한 사람이 아니라서 말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자기가 권했다고 하면 더 큰 벌을 받을 수도 있으니.
“요셉아! 요셉아!”
그때 저 멀리서 사라졌던 황민 감독이 정요셉을 애타게 불렀다.
“네? 감독님?”
“…요셉아, 정말 미안한 일이지만.”
“네.”
“촬영 다시 해야겠다.”
결국 이정훈이 마약 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모양이다.
“미안하다.”
“왜요? 어떤 부분인데요?”
정요셉도 눈치껏 모르는 척을 했다.
“아, 정훈이가 마약을 했다고 실토해서…….”
“그래요?”
“지금 촬영장을 빠져나가서 검사를 하러 갔대.”
황민 감독이 미안하다는 듯이 말했다.
“너와 정훈이가 붙은 분량을 짧게 편집하면 되긴 하는데… CG가 필요한 장면은 편집으로도 어려워서 말이지.”
“…얼마나 더 촬영해야 할까요?”
“음, 한 달 더?”
이런… 다시 찍으려면 힘들 텐데.
“배우도 다시 뽑으려고.”
“바쁘겠네요?”
“네가 고생이지.”
이정훈의 마약 사건 때문에 스태프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한 달이라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정규 앨범이 언제 나온다고 그랬지?”
“한 달 뒤요.”
“그래도 빠듯할 텐데…….”
“어쩔 수 없죠.”
황민 감독이 가슴을 손바닥으로 쓸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근데 요셉아… 혹시 너도…….”
“마약을 했냐고요?”
“아니, 혹시 마약 하자는 권유는 안 받았어?”
“그게.”
“그랬지? 역시 그 새끼!”
황민 감독은 악질이라면서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그 약 먹었어?”
“제가 그걸 먹을 놈처럼 보이세요~?”
“아니지… 그건 아닌데, 혹시 모르잖아…….”
그때 뒤에서 스태프들이 황민 감독을 불렀다.
“그럼 나는 이만 가볼게. 오늘 촬영은 다음 주로 미뤄야겠다.”
“넵!”
“일단 수습이 먼저라.”
아무래도 타격이 클 것이다. 수습하려면 시간도 걸릴 거고. 그렇게 촬영장에 남은 배우들도 차례대로 촬영장을 떠났다. 정요셉은 기지개를 켜면서 나를 쳐다보았다.
“우리 연호 형을 불러볼까?”
“숙소로 가야 하니까요?”
“어, 그것도 있고.”
“있고?”
“제보할 것도 있고.”
* * *
정요셉이 말한 제보란 이정훈에 대한 폭로였다. 타이밍 좋게 경찰서에서는 정요셉을 불렀다. 그리고 정요셉은 이정훈에게 받은 약통을 넘겼다.
그렇게 정요셉은 마약 검사를 한 뒤 몇몇 질문만 받고 풀려났다.
연습실로 돌아온 정요셉은 경찰서에서 있었던 일들을 다 말해주었다.
“요셉아, 그런 일은 나한테 알려줬어야지.”
“나는 우리 목현 형한테 말하고 싶었는데~ 우리 막내가 말하지 말자고 하니까~”
나를 보는 화목현의 시선이 따가웠다.
“…연호 형한테 말하긴 했어요.”
“연호 형한테 말했어?”
“네, 연호 형이 해줄 일이 있어서.”
“무슨 일?”
“찌라시를 퍼트려 달라고 부탁했어요.”
“찌라시?”
나는 연습실 바닥에 누워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마약 찌라시를 퍼트려야 요셉 형한테 더 이상 안 다가올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무서운 놈.”
주이든이 누워서 꽃받침을 한 상태로 나에게 말했다.
“요셉 형 주변에 마약 하는 사람이 있는 건 좋지 않다고 판단해서 그런 거예요.”
“…….”
“어쩌면 요셉 형이… 드라마에 같이 출연했다는 이유만으로 욕을 먹을 수도 있고요.”
사람들은 어떻게든 정요셉을 엮을 것이다.
“그리고 요셉 형이 열심히 연기한 THE END 촬영이 무산될 수도 있잖아요.”
“오.”
“응?”
다들 왜 저렇게 나를 쳐다봐. 왠지 모를 음흉함이 섞인 시선들. 나는 몸을 옆으로 돌려 멤버들의 시선을 피했다.
“우리 막내가 아니었으면 큰일이 있을 뻔했는데~ 고맙다~”
“고맙긴요. 요셉 형은 남한테 민폐를 끼치면 연기 폼이 떨어지잖아요. 그걸 방지하고 싶었을 뿐이에요.”
“…어, 그걸.”
정곡을 찌른 답변이었는지 정요셉의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
“밤새 고민하고 한 일이에요.”
“우리 막내, 기특하네~”
정요셉이 나를 꽉 끌어안았다. 요즘 들어 자주 안는 것 같은데, 기분 탓인가.
“우리 막내가 없는 세상은 말도 안 돼.”
“제가 없을 수도 있죠. 이것 좀 놔요.”
“아니~ 그럴 수는 없어~”
뭐가 그럴 수는 없다는 거야. 도망치고 싶은데 멤버들도 도와주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형들? 도와줘요.”
“미안. 지금 요셉이 기분이 최상이라 도와주면 나까지 말려들 것 같아서.”
“…목현 형?”
이건 배신이지.
“이든 형?”
“나도 싫어. 많이 당했거든.”
지긋지긋하다는 듯이 주이든이 혀를 찼다.
“역시 우리 막내가 최고야.”
“…아니에요.”
“최고지, 최고야.”
호탕하게 웃은 정요셉은 자신의 기분이 최고조에 달했음을 나한테 보여주었다.
【정요셉의 연기력이 올라갑니다. (99%)】
100%가 되기까지 1%만 남은 상태에서 나는 정요셉을 보며 억지로 엄지를 들어 올렸다. 기어코 이 말을 뱉게 하네.
“그래요… 형도 최고예요.”
“우리 막내, 드디어 나를 인정했구나.”
정요셉의 얼굴에 광채가 번지자 시스템창이 떠올랐다.
【정요셉의 연기력이 올라갑니다. (100%)】
연기력이 올라갔다는 시스템창을 보자마자 나는 안심했다.
【정요셉의 연기력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THE END 촬영이 끝날 때까지 정요셉의 연기력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정요셉의 상태:(*⌒∇⌒*) 행복 모드 ON】
그래… 정요셉이 행복하면 됐지.
【미래의 힌트 3조각을 얻었습니다.】
[정답, 정요셉의 자신감을 높였습니다!
풀이:정요셉의 자신감을 높인 덕분에 마약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자신감을 높이지 못했다면 정요셉은 마약에 손을 대고 마약 중독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을 겁니다.
이정훈은 정요셉을 망칠 계획을 세우고 있었거든요.
고로, 정요셉은 범죄자가 되어 네스트 활동 중단으로 이어졌을 것입니다.]
…허, 이렇게 됐을 뻔했다는 거지?
‘이정훈, 이 미친 새끼.’
계획적으로 접근해서 마약을 주려고 했네, 이 새끼가. 얼굴이 썩어갈 때였다.
“자, 자!”
화목현이 박수를 치면서 멤버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얘들아, 내일 뮤직비디오 찍는 거 알지?”
화목현이 주이든의 어깨를 잡았다.
“이든아? 내 말 들려?”
“…어! 형.”
“그리고 내일은 박물관에서 라이브 방송 찍는 것도 알지?”
“당연하지!”
“지금부터 진지하게 연습실에서 연습 좀 해보자.”
주먹을 꽉 쥔 화목현이 침을 꿀꺽 삼켰다.
“첫 번째 정규 앨범, 성공해야지.”
* * *
박랜서는 다크서클이 광대에 내려올 것처럼 퀭한 눈으로 모니터를 쳐다보았다. 몇 개월을 덕질도 못 한 채 계속 일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하.”
이게 인생인가. 일하면 덕질을 못 하고 백수로 지내면 돈을 마음대로 못 쓰고. 박랜서는 멍한 눈빛으로 드디어 밀린 덕질을 하려고 했는데,
[도둑 GAME] 안녕하세요?
네스트의 라이브 방송이 켜져 있었다. 그것도 새벽 2시에 말이다. 이 새벽에? 갑자기?
“뭐, 뭐야?”
당황한 박랜서가 너튜브를 눌러 방송을 확인했다. 애들이 하얀색 셔츠와 정장 바지를 입고 거기에다 검은색 장갑을 낀 채 박물관 앞에 서 있었다.
-?
-뭐야
-무슨 일이지
-어?
이든이가 앞으로 나오더니 브이로그처럼 카메라를 들고 인사했다.
[주이든 : 안녕하세요, 네온?]
-안녕?
-…일단 인사는 해야지 안녕?
채팅창을 보니 다들 당황한 눈치였다. 당황한 건 박랜서도 마찬가지.
[주이든 : 오늘은 박물관 하나 털려고요!]
이든이가 박물관 안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뭐?
-뭐라고?
-아니 우리 애가 범죄를 저지른다는데요?
-범죄자가 되고 싶어?
박물관을 턴다는 말에 말리는 채팅이 대다수였다. 폭풍처럼 채팅창이 올라가자 목현이가 팔짱을 낀 채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화목현 : 저희가 의뢰를 받았거든요. 이 박물관에서 제일 비싼 보물을 훔치라는 의뢰를.]
[주이든 :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박물관을 털 수밖에 없는 거죠.]
그제야 다들 깨달았다.
-아~
-이해 완료
-다음 앨범 컨셉인가?
이것이 다음 앨범 컨셉이라는 사실을.
이든이가 조용히 박물관 뒷문으로 향하자 정진이가 자연스럽게 자물쇠를 땄다. 그런데 그다음에도 자물쇠가 있었다.
[이정진 : 안에 레이저 장치가 있는 것 같은데.]
검은색 안경을 벗은 정진이가 말했다.
-무슨 영화 찍는 것 같네
-ㄹㅇ
-약간 흥미진진
-새벽에 박물관을 터는 아이돌이라…
-그래 내가 도둑질을 하는 건 아니니까
분명히 앨범 홍보인데 어쩐지 실제 상황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천 명만 보던 시청자 숫자는 점점 늘어나서,
“만 명?”
언제 만 명이 된 거지? 그때 박랜서는 어떤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 하나를 발견했다.
===============
[네스트] 미친? 이거 뭐야
라이브 방송 보니까
애들이 박물관을 턴다는데?
앨범 홍보인 것 같음
앞에 도둑 GAME이라고 적혀 있는 거 보니까
근데 예고도 없이 박물관을 턴다니까
심장이 막 떨리네;
===============
-무슨 상황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같이 도둑질하는 것 같아서 심장 개쫄림;
└ ㅋㅋㅋㅋㅋㅋㅋ나만 그런 게 아니었네
└ ㄹㅇ
===============
[네스트] 이거 소문났는데?
네스트 도둑질한다고
===============
-아니 도둑질이 아니라ㅋㅋㅋㅋㅋㅋㅋㅋ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우리 애가 도둑질은 하는데;; 그게요;;
-아이고 우리 네스트 이미지 망했네 도둑 네스트라고 소문나겠어
└ ㅋㅋㅋㅋㅋㅋㅋㅅㅂ
└ 홍보 기가 막히게 한다
===============
[ALL] 라이브 방송 만 명 넘김 ㅁㅊ
도둑질하는 거 보고 싶어서 왔나요?
===============
도둑질하는 라이브 방송이 머글들 사이에서도 홍보가 됐는지 채팅창은 난리가 났다.
-도둑질하는 거 보러 왔음
-타 팬인데 궁금해서 보러 옴
-박물관 찐임?
타이밍도 좋게 모든 멤버가 박물관을 이리저리 훑었다. 그때 탁, 소리와 함께 정진이가 노트북을 닫았다.
[이정진 : CCTV 다른 곳으로 돌렸어.]
그 말에 요셉이가 손가락으로 귀를 두드렸다.
[정요셉 : 형, 소리는?]
[이정진 : 소리도 당연히 안 나.]
그 뒤로 멤버들이 자유롭게 박물관에 있는 물건을 찾는데,
[화목현 : 여기다.]
고글을 벗은 목현이가 박물관에서 뭔가를 발견했는지 팔을 휘적였다.
[범나비 : 새로운 공간이네요?]
새로운 공간으로 화면이 바뀌고 컴컴했던 공간이 한순간 환해졌다. 멤버들이 그쪽으로 갔더니, 그곳에는 도자기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청룡자기]
그리고 나비가 청룡자기를 검지로 가리켰다.
[범나비 : 여기에 있었네요, 청룡자기.]
[주이든 : 오~ 잘 있네.]
[정요셉 : 이제 꺼낼까?]
정요셉이 어깨에 걸친 가방을 바닥에 내려두면서 유리 압축기를 꺼냈다. 그리고 유리 압축기로 청룡자기의 주변을 두르고 있는 유리를 뚫으려는 순간, 갑자기 박물관의 조명이 꺼지면서 화면이 검은색으로 변했다.
-어?
-뭐야
-내 라이브 방송!
-이제 왔는데…
-끝인가
설마 방송 오류인가 싶었는데, 경찰차 소리가 나더니 갑자기 화면이 켜졌다. 경찰차가 박물관 앞을 가로막았다.
-이서혁?
-헐
-뭐야
“이서혁?”
이서혁의 등장에 박랜서는 깜짝 놀랐다.
[이서혁 : 도둑들의 행방을 아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