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 찌라시
벌써 찌라시가 퍼진 모양인데? 빠르긴 하다. 나는 귀를 쫑긋 세우며 스태프들의 대화를 귀에 담았다.
“어디서 나온 말인데?”
“그 유명한 잡지사 있잖아.”
“거기 단독 SNS에 올라왔어.”
단독 SNS에 올라왔다는 말에 이정훈이 헛기침을 뱉었다.
“정훈 형, 어디 아픈 거 아니죠?”
“아… 괜찮지. 괜찮아.”
“진짜요? 어디 아픈 것 같은데.”
“아니야. 진짜로 괜찮아.”
괜찮다고 말하면서 이정훈의 얼굴은 사색이 됐다. 그 꼴을 본 뒤 밥차에 다가가 메뉴판을 보는데.
하필 오늘 메뉴가 ‘마약 분식’이었다.
정요셉은 ‘마약’이라는 단어를 보더니 외쳤다.
“오늘 점심은 마약 김밥이다!”
마약 김밥 옆엔.
“마약 떡볶이?”
“와! 마약 떡볶이다! 마약이라고 하는 거 보니 정말 맛있겠는데~?”
“마약이 중독성 있다는 뜻으로 쓰이긴 하니까요.”
“음~ 맛있겠다~”
정요셉은 콧노래를 부르면서 식판에 이것저것을 담았다. 마약, 마약, 마약… 정요셉이 마약이라고 말할 때마다 이정훈의 어깨가 움찔했다.
“아!”
그러다가 지나가던 스태프의 어깨에 부딪히는 바람에 이정훈의 식판이 바닥에 떨어졌다. 이정훈의 바지부터 운동화는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저런.’
이정훈은 팍 인상을 쓰면서 스태프를 노려보았다.
“어! 죄송해요…….”
스태프가 죄송하다는 듯이 곧바로 휴지를 가져와 이정훈의 바지와 운동화를 닦자 이정훈이 코웃음을 쳤다. 닦으면 닦을수록 붉은색으로 번지고 있었기 때문에.
“아… 씨발.”
그대로 터진 이정훈의 욕설에 주변이 술렁거렸다.
“이거 비싼 건데, 괜찮겠어요?”
“…네?”
“바지는 괜찮은데 이 신발, 비싼 거라고요.”
스태프에게 저 비싼 신발을 새로 사줄 돈은 없을 것이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변상을…….”
“아하, 변상이라고요?”
이 장면,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잠깐 영혼이 바뀌었을 때 이정훈이 이러지 않았나. 이정훈은 앞머리를 거칠게 흩트리며 거친 숨을 몰아 뱉었다.
“‥스태프님, 돈 있어요?”
“네?”
“돈 있냐고요. 일하면서 받은 돈은 있을 거 아니야.”
“…네, 있습니다.”
“그러면 내놔.”
“네?”
“내놓으라고. 한 달치 월급.”
무작정 돈을 달라는 이정훈을 보면서 스태프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그걸 주면 한 달 동안 번 돈이 다 날아가는 건데.
‘시끄러운 건 질색이니까.’
내가 이정훈에게 말했다.
“정훈 형, 신발값 제가 드릴게요.”
“…뭐? 네가 왜.”
“생각해 보니까 제 실수 같아서요.”
“어, 그래?”
스태프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대로 있으라는 듯이 눈짓하며 미소를 지었다. 이정훈은 감동했다는 듯한 표정으로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네가 싸가지가 없긴 했지만 꽤 괜찮은 애긴 하네.”
“돈은 매니저를 통해서 드릴게요.”
“그러든가.”
안 받는다고는 안 하네. 스태프는 고맙다는 듯이 내 손을 잡았다.
“감사합니다…….”
“뭘요. 일 보세요.”
애초에 이런 산속에 명품 운동화를 신고 온 사람 잘못이지. 언제 어디서든 신발이 더러워질 수 있을 텐데 뻔히 신고 왔으니까. 신고 왔으면 조용히 넘어가든가.
‘시끄럽게.’
한차례 폭풍이 끝나자 THE END 감독인 황민이 손을 흔들었다.
“어! 요셉아!”
“감독님!”
“여기밖에 자리가 없다. 다들 여기서 먹어.”
나는 뒤에서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황민 감독님.”
“오랜만입니다? 브이로그는 잘 찍고 있어요?”
“산속이라서 좋은 장면이 나올 것 같아요. 촬영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이거 너튜브에 올리면 네스트 팬들이 드라마를 볼 수도 있잖아요? 거의 공짜 홍보인데 제가 거절할 리가 없죠.”
그 점을 노리고 브이로그 촬영을 허락해 달라고 한 건데. 이정훈을 포함해서 우리는 황민 감독의 주변에 앉았다.
“나비 씨는 요셉이 연기하는 거 봤어요?”
“요셉 형의 연기를 보면 내용을 스포당할 것 같아서 제대로 안 봤습니다.”
“그래요? 아쉽네. 이제 연기를 꽤 잘하거든.”
연기를 잘한다는 말에 정요셉은 마약 떡볶이를 먹다가 목에 걸렸는지 물을 찾았다.
【정요셉의 연기력이 올라갑니다. (15%)】
연기력이 높아졌다는 시스템창을 보면서 나는 정요셉에게 물을 챙겨주었다.
“우리 막내, 고맙다.”
“뭘요.”
그러면서 황민 감독에게 정요셉을 칭찬했다.
“요셉 형이 연기를 엄청 열심히 하는 배우거든요.”
“아, 그래? 그건 처음 듣는데.”
“THE END 촬영을 하면서 연기에 욕심이 생겼나 봐요.”
정요셉이 옆에서 그만하라고 내 옆구리를 찔렀으나, 한번 열린 입은 닫을 수 없었다.
“곧 네스트 정규 앨범이 나오거든요?”
“그러면 한창 바쁘겠네.”
“그렇게 바쁜 와중에도 요셉 형은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더라고요.”
“호오~ 그랬단 말이지.”
“그런데.”
나는 주변 눈치를 보면서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최근에 연기를 못 하겠다고 하더라고요.”
이 말에 황민 감독의 눈이 커졌다.
“요셉아, 왜?”
황민 감독이 정요셉을 쳐다보며 물었다. 정요셉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계속 내 종아리를 발등으로 후려쳤다.
‘아픈데.’
정요셉은 식판에 시선을 떨구며 대꾸했다.
“…아, 최근에 자신감이 조금 떨어져서.”
“아… 그래서 최근에 NG를 많이 낸 거야?”
“…아마도.”
“흐음… 그랬어?”
“갑자기 카메라를 보니까… 대사가 기억나지 않더라고요.”
황민 감독은 정요셉을 똑바로 보았다.
“요셉아.”
“네?”
“넌 충분히 잘해주고 있어. 그러니까 자신감을 잃으면 안 돼.”
“…….”
“알겠어?”
“네,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덕분에 자연스럽게 정요셉의 얼굴에 활기가 생겨났다.
【정요셉의 연기력이 올라갑니다. (35%)】
이대로 쭉 연기력이 올라가면 좋을 텐데…….
“…요셉이는 황민 감독님한테 절해야 한다니까.”
그런데 꼭 이렇게 초를 치는 새끼가 있단 말이지. 이정훈의 말에 황민 감독이 팔짱을 끼며 자연스럽게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정훈아, 왜 나한테 절을 해야 해?”
“황민 감독님 아니었으면 이런 드라마에서 배역을 따냈겠어요?”
“음, 그건 요셉이가 연기를 잘한 덕분이지.”
“그러면 저번에는 왜 요셉이를 혼내셨어요?”
“아… 그거?”
황민 감독이 크게 웃으면서 손을 휘저었다.
“연기를 더 잘했으면 하는 마음에 연기력을 끌어올리려고 혼을 낸 거야.”
“아… 연기를?”
“더 잘하길 바라는 마음?”
그 말에 정요셉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정요셉의 연기력이 올라갑니다. (75%)】
연기력이 확 높아졌네.
‘…아무튼 정요셉이 웃으니까.’
괜찮네. 그렇게 넘어가려는 때였다.
“감독님!”
조연출로 보이는 스태프가 놀란 토끼처럼 뛰어와 감독님의 귓가에 무어라 속삭였다. 그러자 와그작 인상을 찌푸린 황민 감독의 시선이 이정훈에게 닿았다.
“…그 찌라시의 주인공이 우리 드라마에 출연하는 배우라고?”
“…그럴 수도 있다고 합니다.”
“허!”
드디어 찌라시가 황민 감독의 귀에 들어갔네.
정요셉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황민 감독에게 물어보았다.
“감독님, 마약이라고요?”
“어, 이상한 찌라시가 도는 모양이야. 우리 드라마에 출연한 남자 배우가 마약을 했다고…….”
“마약… 엄청 나쁜 거 아니에요?”
“나쁘지. 엄청 나쁘지… 왜 하필 우리 드라마 출연 배우야?”
물의를 일으킨 배우가 있다면 다시 찍을 수밖에 없으니 황민 감독도 골치가 아픈 것이다.
“아직 누군지 안 밝혀졌지?”
“아직은.”
“…회의 좀 해야겠다.”
골치 아픈 사건이 하나 늘었다는 듯이 황민 감독은 의자에서 일어났다.
“나 먼저 일어날게.”
“네, 감독님.”
나도 살짝 눈인사를 하면서 황민 감독의 뒤를 빤히 쳐다보았다.
이정훈은 자신이 걸릴까 봐 조마조마한지 어떤 말도 꺼내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식판에 얼굴을 파묻고 밥을 먹었다.
“우리 막내, 맛있어?”
“네, 맛있어요.”
“이것도 찍어야 하는 거 아니야?”
“다 먹고 밥차만 찍으려고요.”
정요셉이 떡볶이가 맛있다면서 내 식판에 몇 개를 올려주었다.
“마약 떡볶이도 맛있어.”
“맛있어요?”
“어, 마약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서 그런가? 더 맛있어~”
그때 갑자기 이정훈이 주먹을 쥐더니 테이블을 내리쳤다. 굉장한 소음에 정요셉이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이정훈을 쳐다보았다.
‘왜 저래?’
도둑이 제 발 저린가.
“…마약, 마약.”
정요셉이 이정훈의 어깨를 잡으며 물어보았다.
“어? 왜 그래요, 정훈 형?”
“아니, 마약은 나쁜 거잖아. 그런데 무슨 음식 옆에 마약을 붙여서 지랄을…….”
“아하! 그런 거예요? 난 또.”
표정 관리를 하나도 못 하네. 나는 이정훈을 쳐다보지도 않고 계속 정요셉한테 물었다.
“오늘 컨디션은 괜찮아요?”
“당연히 괜찮지.”
“그래요? 연기에는 무리 없고요?”
“연기에 무리가 있었다면 황민 감독님께서 한마디 던졌을걸~”
…그렇다면 다행이다.
“언제 또 찍으러 가요?”
“조금 이따가~? 지금은 상황이 조금 심각해진 것 같아서.”
멀리서 보이는 황민 감독의 굳은 얼굴은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흐음.”
나는 이정훈의 초췌한 얼굴을 보면서 속으로 휘파람을 불었다.
꼬리가 길면 언젠간 밟히는 법.
이정훈이 마약으로 경찰에 잡히는 순간 정요셉도 조사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보니까 이정훈이 SNS에 정요셉과의 친목질 사진을 여러 장 올렸던데.
이윽고 이정훈은 사색이 된 채 누군가에게 연락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나 먼저 일어난다.”
그러고는 이정훈은 어딘가로 가버렸다.
“진짜로 그거 하나 봐.”
정요셉이 내 귓가에 속삭였다.
“그러니까 그 단어에 민감했던 거죠.”
“그게 진짜였다니.”
“아, 그리고.”
아까 바지 주머니에 넣었던 약통을 정요셉에게 보여주었다.
“와, 설마 그거야?”
“네, 그거예요.”
그거라는 말에 정요셉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 약도 형한테 주라고 하던데요?”
“진짜 개쓰레기네.”
정요셉은 이정훈이 앉아 있던 자리를 노려보았다. 그러면서 조용히 낮은 목소리로 자신의 속마음을 내비쳤다.
“…나한테 주는 건 몰라도 우리 막내한테 주니까 짜증이 좀 나네.”
“형이나 저나 똑같죠.”
“넌 어리잖아.”
고작 몇 살 차이 난다고.
“개나 소나 약쟁이 만들려고 저러는 거죠.”
약 말고도 재밌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 고작 쾌락을 좇으려고 사는 삶이라니. 하찮다.
“약쟁이?”
“그럼 뭐라고 부를까요? 미친 새끼?”
내 욕설에 정요셉이 울듯이 웃었다.
“목현 형이 들었으면 조용히 하라고 했을 텐데. 속 시원한 말을 들으니 좋긴 하네.”
내 말이 정요셉의 속을 시원하게 해준 모양이다. 해맑게 웃는 걸 보니.
“아~ 오늘은 뭔가 연기 잘할 것 같다.”
“진짜요?”
“어~ 완전.”
그때 눈앞에 시스템창이 떠올랐다.
【정요셉의 연기력이 올라갑니다. (85%)】
우리도 테이블에서 일어나 식판을 들 때였다. 정적에 가까운 산속에서 다급한 스태프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야! 마약 기사 떴는데?”